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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땅 끝까지 미친 거룩한 팔 (사 5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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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소식이 있다.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고 골세리머니하는 모습을 보니 속이 시원하다. 우리 교회에서도 지난번 사랑의 나눔장터를 통해서 얻은 수익금으로 120여 가정이 올 겨울에 먹을 수 있는 김장을 해서 나눠주었다. 참으로 흐뭇한 소식이다. 그런가 하면, 황우석 박사의 논문과 연구가 조작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 모두가 망신당한 느낌이다. 외국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순전히 거짓말 장이로 볼까봐 염려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뉴스 속에서 살아간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좋은 뉴스를 전하고 있다. 아마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지 2천년이 넘었고, 이미 예언된 것도 수천년이 될텐데 어떻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우리에게 생생한 뉴스가 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진정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깨닫게 된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소식은 언제나 우리에게 기쁜 뉴스이다.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뉴스이다.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소식을 들은 자는 소리 높여서 기뻐 외치라고 권고한다. 함성을 터뜨려서 함께 기뻐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러면 예수께서 오신 일이 어떤 일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렇게도 기쁜 소식이 되는가? 본문 10절은 정확하게 말씀한다.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냈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은 땅 끝까지 미친 거룩한 팔로 우리에게 오셨다. 어느 어린아이가 하나님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했더니 팔을 무척이나 길게 그렸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팔은 길어서 아무리 떨어진 사람에게도 못 미치지 않는다. 땅 끝에 있는 사람에게도 그 거룩한 팔이 미친다.

기독교 방송에 소개된 내용이다. 세진이라는 어린이는 두 다리가 없다. 그래서 생모에게 버림을 받았다. 친구들은 “너는 피노키오”라고 놀려댔고, 세진이는 “하나님, 저도 착한 일을 많이 할테니까 저도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렇게 버림받아 살아오던 세진이에게 새로운 엄마가 생겼다. 자기를 낳아준 엄마는 다리가 없다고 나를 버렸지만 새로운 엄마가 생겼다. 세진이는 열심히 기도해서 새로운 엄마를 만났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진이를 입양하여 헌신적으로 키운다. 유치원 13군데, 초등학교 5군데를 옮겨다니면서 점점 굳어졌다. 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눈물 섞인 교육을 시켰다. 세진이 엄마의 말이다. “내 자식이 다리없다고 쫓겨나는데 어떻게 내가 걸어나올 수 있습니다. 아이를 목마 태우고 학교를 기어 나왔다”고 한다.

레스트랑에서 세진이 생일 파티를 해 주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밤맛 떨어진다고 항의하는 바람에 식당에서 쫓겨난다. 역시 엄마는 아이를 목마 태우고 무릎으로 기어서 식당을 나온적도 있다. 세진이가 엄마를 향하여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첫 번째 선물”이다.
친엄마에게로부터 버림받고, 친구들에게 버림받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세진이에게 입양해준 엄마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첫 번째 선물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러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셨다. 죄로 인하여 버림받고, 세상에서 실패로 인하여 버림받고, 우리의 욕심으로 인하여 버림받고, 잘못된 실수로 인하여 버림받고, 나의 교만으로 인하여 버림받고, 나의 자랑으로 인하여 버림받고, 나의 실력 때문에 버림받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다. 땅 끝까지 미친 거룩한 팔로 이 땅에 우리를 찾아 오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러한 은혜를 체험한 시편 기자는 이렇게 외친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정말로 땅 끝까지 미친 거룩한 팔로 우리를 찾아오셨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황폐한 곳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그 황폐한 바로 그곳에 예수께서 찾아오셨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 중에 “그 어린 주 예수 눌 자리 없어 그 귀하신 몸이 구유에 있네.”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가장 황폐한 자리에 태어나셨다. 가장 낮은 자리에 태어나셨다. 땅 끝까지 미치는 거룩한 팔로 이 땅에 우리를 찾아오셨다.

예수님의 생애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십자가를 지신다. 골고다의 언덕에 오르신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참한 모욕을 당한다.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으신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참으로 비참하게 숨을 거두신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땅 끝까지 미친 거룩한 팔로 이 땅에 오신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셨다.

어느 인도 사람의 간증이다. 이 사람은 예수를 정말로 미워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미워하고 성경도 정말로 증오했다. 사람들을 모아 놓고서 이 성경책은 정말로 거짓말 투성이요, 그러기에 이 성경책은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큰 소리를 치곤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경을 불태웠다. 선교사는 이 사람에게 계속해서 전도하며 성경책을 주면 진흑탕에 성경을 집어 처 넣고 했다. 이렇게 성경을 불태우고, 진흑탕에 넣고 나니 이 사람의 마음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나님 정말로 당신이 계십니까? 예수가 정말로 이 땅에 오신 구세주 이십니까? 천국이 있습니까? 이것을 당장 확인하고 싶어서 자살을 결심했다. 지나가는 열차에 뛰어 들기로 결심을 했다. 그 때에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방안이 아름다운 빛으로 가득찼고 그 순간 한 사람이 보이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언제까지 날 부인하려느냐? 내가 널 위해 이 땅에 왔다. 내가 널 위해 내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그의 손을 보았을 때에 못자국 난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하였다. 그 앞에 이 사람은 무릎을 꿇고 예수를 영접했다.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참된 평안으로 채워졌다.
이 사람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경험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하자. 이 인도사람의 경험을 믿을 만한가? 아니면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더 믿을만 한가? 분명한 것은 이 인도사람의 경험보다는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믿을만 하지 않는가?

분명한 것은 이 땅에 예수님은 “땅 끝까지 미친 거룩한 팔”로 우리에게 오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땅 끝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친 거룩한 팔이 감당하는 역할이 있다. 본문은 이렇게 전한다.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먼저, 땅 끝까지 미친 그 거룩한 팔 혹은 손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을 그림으로 금지시켰다. 하나님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야 하는데 그 방법을 손을 통해서 나타냈다. 그래서 구름 속에서 손만 드러낸 성화가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미켈란젤로의 명화 “최후의 심판”에서 심판자로 나타난 그리스도가 오른 손 바닥을 하늘을 향해 쳐들고 왼손바닥을 아래로 향하여 땅을 향하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늘을 향한 오른손은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은 자를 떠받치는 손이요, 아래로 향하는 왼손은 지옥에 떨어지는 자의 상징이다. 이 땅에 연결된 하나님의 거룩한 팔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은 땅 끝까지 미친 거룩한 팔로 오셨다. 분명한 것을 잡아야 한다. 썩은 새끼줄 잡고서 결국에 가서는 낭패를 당하지 말라. 물질이 참으로 중요하다. 돈이 있으면 편리하다. 돈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도 하고 큰 소리를 치기도 한다. 그러나 돈도 역시 썩은 새끼줄고 같다. 돈으로도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연예인은 명예와 인기를 누리고 산다. 70년대에 한참 인기를 누리던 이종용씨가 부른 대표적인 노래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이 노래를 부를 때에는 무엇이 바보처럼 사는 것인지 잘 몰랐는데... 이종용씨가 목사님이 되어서 LA에서 목회를 하고 계신다. 책을 출판했는데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인기와 명예가 모든 것이요, 나를 구해주는 팔인줄로 착각하고 사는 것이 참으로 바보처럼 살았다는 고백일 것 같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를 구원해 주는 확실한 팔은 땅 끝까지 미친 거룩한 팔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얼마나 감사한가?

그리고 땅 끝에 미친 거룩한 팔은 “그의 백성을 위로하신다.” 성탄의 찬송들이 모두 좋지만, “이 괴롬 많은 세상에 짐지고 가는 자 그 험산 준령 넘느라 온 몸이 곤하나 이 죄악 세상 살동안 새소망 가지고 저 천사 기쁜 찬송을 들으며 쉬어라.” 얼마나 감사한 기쁨의 소식인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거룩한 팔 예수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신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다. 그러기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시다.”

혼자 있을 때에 얼마나 외로운가? 절망하기도 쉽고, 낙심하기도 쉽다. 그러나 주변에 누군가 곁에 있어주면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심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찾아가서 이렇고 저렇고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잊을 수가 없다. 심방갔다가 돌아오셨는데 목사님 아들이 동네 꼬마와 싸우다가 밑에 깔려서 한참 얻어맞고 있었다고 한다. 그 아들의 이름이 혁원이었는데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 아들을 향하여 “혁원아”하고 불렀더니 위 아래가 뒤집어 졌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밑에 깔려서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땅 끝으로 밀려나서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바로 이러한 상태에 있는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은 거룩한 팔을 우리에게 미치셨다. 능력의 팔을 우리에게 뻗으셨다. 그 분이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시다.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님 오신 오늘. 우리의 마음 속에 새로운 뉴스가 되기를 바란다. 기쁜 뉴스가 되기를 바란다. 세상에는 괴롭게하고, 사기치고 훔치는 손길이 얼마나 많은가? 땅 끝에 있는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긴 팔을 뻗으셨다. 이 후로는 썩은 새끼줄 붙잡지 말고, 예수의 손을 붙잡고 승리의 생활이 이어지기를 소원한다. (곽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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