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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동방의 박사들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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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갑작스런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이 서서히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때, 그 때가 바로 헤롯왕 때 였다.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장소까지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하실 장소는 유대 베들레헴이었다.
마2:4-6,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약성경 미가서5:2의 성취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비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유대의 지도자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 때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 갔는가?
첫 번째 방문객은 베들레헴 지경의 목자들이었다.
두 번째 방문객은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 멀리 동방의 점성가들이었다.

정작 먼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경배드려야 할 유대의 지도자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신 분을 찾을 때 소동이 일어났다.
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사도 요한은 이렇게 묘사하였다.
요1:9-1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그럼 누가 영접하였는가?
요즘 말로 한다면 야간 당직을 서고 있는 가난한 목자와 수천리 머나먼 이방땅의 점성가들이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수천리 먼길을 헤쳐온 동방의 박사들에 대해서 증거하고자 한다.

어제도 성탄축하발표회 중에 동방박사 세 사람이 등장했었다.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는 성탄절의 단골 손님인데 대단히 낭만적이고 동화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동방 박사들에 대하여 심층 분석을 하고자 한다.

그들은 별의 움직임을 연구 분석하는 점성술사들이었다. 그들이 수 천리 멀고 험한 길을 떠나게 된 동기는 한 별의 신기한 움직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박사들은 이상한 한 별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리고 어디까지 알아 냈는가? 본문 2절에서 증거를 찾아 볼 수 있다.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알리는 싸인이었고, 그 왕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큰 왕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베들레헴 지경에서 한 밤 중에 양을 지키던 목자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렸던 것처럼, 동방의 박사들에게는 별의 움직임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렸던 것이다. 지역과 인종과 신분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지체하지 않고 경배하기 위해 달려 왔다는 사실이다.


1.포기하지 않는 용기
2:1-2,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방향과 목적이 분명한 여행이었다. 그들의 여행거리는 동방으로부터 예루살렘까지, 그 동방이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 개월 이상 걸릴 정도의 먼 거리였을 것이다. 강을 건너고 사막을 지나는 위험 지역이었다.

어떻게 왔는가? “별을 보고..” 왜 왔는가? “왕께 경배하기 위해..” 어떤 댓가를 위한 여행이 아니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여행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미국개척시대,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한 부류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또 다른 부류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동부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서부의 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주일날도 쉬지 않고 달려 갔다고 한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주일이면 꼬박 예배를 드리고 쉰 후에 출발했다고 한다. 결과는 청교도들이 먼저 도착했다고 한다. 아무런 사고도 없이..., 그러나 노다지를 캐러 온 사람들은 도중에 지쳐서 병들고 죽기도 하고 훨씬 더 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여행의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면 결과도 좋지 않은 법이다. 동방 박사들은 그들의 여행 목적이 너무나 숭고한 것이었기에 도중에 포기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여행이었다. 강의 위험, 사막의 위험, 강도의 위험, 질병의 위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예루살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천성을 향하여 순례자의 길을 가는 성도의 자세도 이와 같아야 한다. 천성에 도착하기까지 넘고 건너야 할 장애가 많다.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도착할 때까지 가야 한다.


2.크게 기뻐함(9-10절)
2:9-10,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들이 왜 기뻐했을까?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에 머물러 섰는지라.”
박사들은 별의 멈춤을 보고 직감했다. “바로 여기구나!” 그들의 여행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오랜 여행의 피로를 순식간에 날려버릴 만한 기쁨이 안으로부터 솟아 나왔다.
본문에서의 표현은 기쁨의 최상급을 의미하는 것이다. 박사들의 생애 가운데 최고로 기쁜 날이었다.

동방에서 베들레헴까지의 여행은 위험과 불편함과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수고와 고통이 컷기에 기쁨도 컷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레져벤을 타고 며칠 만에 도착했다면 “기뻐하더라”가 하나 빠졌을 것이다.

기쁨은 진리를 찾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다.
눅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2:20,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요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여러분! 동방의 박사들이 느낀 기쁨이 어느 정도였는가 짐작이 되는가? 그들의 모든 고생과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을 기쁨, 돌아가면서 그들 역시 베들레헴의 목자들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했을 것이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인해 기뻐하는가?
어느 집사님에게 물었다.
-“집사님 생애 중에서 가장 기뻤던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기뻤던 일이 한 번도 없었어요.”

시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에게 이미 큰 기쁨을 주셨다. 오늘 이 시간 그 기쁨을 회복하시길 바란다.
찬송가 500장,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나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 만으로 여러분의 기쁨이 되시길 바란다.


3.합당한 경배를 드림(11절)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엎드려 절하고..
누구에게? 아기 예수에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은 왕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울려퍼지고 하늘의 길이 열리고 구름타고 오실 메시야를 기대했었을 것이다. 소리없이 조용히 말구유에 태어나신 메시야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동방박사들도 기대감을 가지고 왔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별이 멈춘 곳은 예루살렘에서 시오리 떨어진 시골 한적한 마을의 작은 집이었다. 실망스런 마음이 스치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밤 하늘에 바로 그 별이 아기 예수를 비추고 있었을 것이다. 박사들이 왕께 대한 예를 갖추고 엎드려 아기께 절을 하였다.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께 합당한 경배를 드린 것이다.

2)예물을 드림
황금과 유향과 몰약 - 고대 근동지방의 최고의 보화. 신이나 존귀한 자에게 드리는 물건이었다. 왕에게 드릴 만한 예물을 준비하여 드림으로 예를 표하였다.

외국에서 고위 관리가 방문하면 그 사람의 직급에 따라 영접하는 수준이 다르다. 대통령이 방문할 때, 총리가 방문할 때, 각료들이 방문할 때 다 다르다.
집안의 큰 어른이나, 스승에게 찾아 갈 때 그분의 지위에 맞는 예를 갖춘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문제 제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쁨을 상실하고 무력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배에 대한 감격을 상실하고 형식적이고 의무적인 태도로 예배에 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유대인들의 모습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이 이미 그들 가운데 임하신 메시야에 대하여 무관심했었다. 알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방문자였던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큰 기쁨의 소식을 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귀담아 듣지 않았다. 좀 더 화려하고, 힘 있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지난 목요일 저녁, 크로스웨이성경공부반의 마지막 시간, 질문을 던졌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말씀, 기도, 섬김...

다 맞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을 정말 만나기 원한다면 낮아지는 것이다. 낮아지면 별이 보인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의 목적이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큰 기쁨을 맛보게 되며, 예배 때마다 그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성탄절날,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주는 선물은 수 만원, 수 십만원 짜리. 주님 앞에 드리는 성탄의 예물은 만원짜리 한 두장이라면... 거기에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있겠는가? 슬픈 성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동방의 박사들과 같은 용기와 기쁨과 경배를 드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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