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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베들레헴 탄생의 비밀 (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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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절은 정말 기쁘고 좋은 날이다. 그런데 누가 언제 퍼트렸는지 모르지만, “좋은 성탄절”과 “나쁜 성탄절”이라고 말한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성탄절이고, 날씨가 나쁘면 나쁜 성탄절이라고 말한다. 눈이 오면 기쁜 성탄절이고, 비가 오면 나쁜 성탄절이라고 말한다.

        선물을 많이 받으면 기분 좋은 성탄절이고, 선물을 받지 못하면 쓸쓸한 성탄절이라고 한다. 성탄 카드를 많이 받으면, 의미 있는 성탄절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의미한 성탄절이라고 한다. 성탄 장식을 잘 해 놓으면 흥겨운 성탄절이고, 성탄 장식이 없으면 흥겹지 못하다고 한다.

        매상을 많이 올리면 성탄절답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성탄절답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나신 성탄절을 “기쁘고 좋은 날”이라고 한다.

        눅2:10-11에서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우리 구주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이기에, 기쁘고 좋은 날이다.

        날씨상태, 기분상태, 건강상태, 인간관계, 물질의 유무에 따라, 좋고 나쁘지 않다. 그러므로 선물을 못 받고, 비가 오고 장식이 없어도, 기쁜 날이 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인간들이, 죄로 인하여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기에,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죽게 하시려는 계획을 가지셨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시키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 베들레헴을 택하셨다. 다른 장소도 많은데, 왜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하셨을까? 그것도 예수님의 부모님이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 베들레헴에서 낳았다.

        이스라엘의 상징적인 도시 예루살렘도 있는데, 예수님은 그곳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나사렛에서 부모들이 살았는데, 왜 하필이면 객지 베들레헴에서 낳게 하셨을까? 로마의 황제, 아구스도의 칙령 때문이다. 이 사실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천하로 다 호적 하라고 명령했기에, 모든 사람이 각각 호적하러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요셉은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정혼한 마리아를 데리고,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때 이미 마리아는 잉태 중이었고, 베들레헴에 갔을 때, 해산하게 되었다.

        로마 정부는 군사적 목적과 세금 징수를 위해, 14년마다 인구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인구 조사 때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자기 이름과 직업, 재산과 가족 상태가 등재되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결국 인구 조사를 위한 황제의 칙령이, 예수님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큰 하나님의 경륜이 들어져 있다. 그러면 베들레헴 탄생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 예언적인 면에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심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메시아가 태어난다고 예언하셨다.

        아담이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마귀에게 속아, 죄인으로 전락하자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겠다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3:15).

        여자의 후손은, 장차 인간을 구원하실 메시아를 말한다. 그 후 야곱은 메시아께서 12지파 중, 유다 지파에서 온다고 구체화하였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49:10).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다 지파에서 메시아가 올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또 기원전 730년경에,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나타나심을 강조하였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 할 것이요”(사11:1).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로, 베들레헴에 살던 미천한 농부였다(삼상16:1).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다 지파가 살고 있는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한다고 기다리게 되었다. 예수님 탄생 700년 전 미가는 예언하였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5:2). 이렇게 메시아 되신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한다고 다시 한 번 예언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다 지파의 땅 베들레헴에, 메시아가 오시기를 의심 없이 기다렸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심은,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는 사건이었다(눅2:1).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다.

(1)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예언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이루어짐을, 분명히 증명하는 사건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 황제도 사용하신다. 로마 황제도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다.

(2)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기록된 구약 말씀이, 참되다는 사실을 믿게 한다.

예수님께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예언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메시아임을 알게 한다.

(3)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도 모두 시간문제지, 다 성취됨을 믿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천국과 지옥이 갈라짐도 믿는다.

또한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있음도 믿는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반드시 성취됨을 믿게 한다.

2. 베들레헴이라는 말의 뜻에서(4)

베들레헴은, 두 단어가 합하여진 말이다. ת󰖹󰔲(베이트) 집이라는 말과, ם󰖒󰗞(레헴) 떡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은 ‘떡집(밥집)’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떡’이라 말씀하셨다(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라”(요6:35),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다”(요6:51)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요10:10).

7절의 구유는 φάτνη(파트네)인데, 짐승의 먹이기 위한 여물통이다. 확대 해석하면 외양간을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살아가는, 사람과 나라를 짐승으로 표현한다(겔21:31, 단7:5, 계15:2).

        이 세상을 구속하러 오신 메시아는, 짐승 같은 자들의 밥이 되기 위하여 오셨다. 사람들은 육신의 생명을 얻기 위해, 밥을 먹는다. 그러면 영생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생명의 떡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영생을 선물로 얻어야 한다. 먹는다는 말은,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 값을 대신 치르셨다. 그리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독생자를 주셨다. 그러므로 지금 떡을 먹듯이,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받으시기 바란다.

3. 장소적인 면에서

베들레헴은 옛적부터 목자들의 뜰로, 목축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서는 순간에도, 베들레헴에서는 목자들이 밤을 새우며 양을 치고 있었다(눅2:8).

        마태는 예수님께서 ‘목자로 오신 분’이라고 말한다.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 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2:6).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목자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1). 그리고 결국에는 목숨을 버리셨다.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 하시리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목자의 장(長)이라고 말씀한다(벧전2:25). 따라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목자의 뜰에 목자가 오심은, 너무나 당연하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이다.

        양인 우리를 먹이시고, 목숨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 탄생하셔야만 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다. 예수님께서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기에, 영생이라 한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때 우리는 영생할 수 있다.

        하나님의 생명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창조와 부활의 능력이 있다. 생명이 부족하면, 모두 시들게 된다. 마르게 된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후에도, 우리의 생명이 약해짐은, 하나님의 생명과 교류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힘을 얻기 바란다.

4. 군사적인 면에서

베들레헴은 군사적으로 피난처였다. BC. 586년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들레헴 근처를 피난처로 삼았다(렘41:17). 베들레헴은 군사적인 면에서 피난처였다.

        그런데 성경은 곳곳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난 큰 도움이시라”(시46:1).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이다”(사14:32).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의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 이시니이다"(시59:16).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 시니이다”(렘17:17).          이와 같이 피난처 되신, 예수님이 피난처 되는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치였다.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가장 큰 피난처는, 죽음에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품안이다.

5. 성전적인 면에서

베들레헴에는 한때, 하나님의 성막이 있었다.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베들레헴)에 있다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시132:6-7).

        예수님께서 바로 성막이요, 성전이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46년 간 지은 성전을 헐면, 3일 만에 다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부활하신 후에야, 이 말씀의 의미를 알았다(요2:18-21).

        성전이 되신 예수님께서, 성막이 있던 베들레헴에 오심은 당연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른 곳이 아니라, 베들레헴에 탄생하셨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다. 죄인 된 우리가, 오직 성막 되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이다(골1:27, 2:2).

        결론이다. 7절에 여관 주인이 등장하는데, 예수님께서 구유에 누인 이유를 “…사관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라고 했다. 여관주인은 너무 바빠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주님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일상적인 삶에 도취해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망각한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바빠서 예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도 여관 주인처럼 바쁜 사람들이 참 많다. 시간이 없어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사해지, 돈 벌어야지, 이것저것 해야 하기에, 언제 믿어도 믿을 텐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안 되고, 나중에 믿겠다고 한다.

        지금은 주님을 위해 일할 시간이 없고, 나중에 본격적으로 일하겠다고 말하는 분이 있다. 지금은 그냥 예배만 적당하게 참석하고, 나중에 때가 되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여관 주인이 메시아를 영접하고, 만나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번 성탄절에 우선순위를 조절하자!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하였다. (호6:3) “우리가 힘써 여호와를 알자”하였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왜 베들레헴에서 탄생시키셨을까요?

(1) 예수님은 예언,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시기에, 떡집으로 보내셨다.
(3) 예수님은 진정한 목자이시기에, 목자의 뜰에 보내셨다.
(4) 예수님은 진정한 피난처시기에, 피난처에 보내셨다.
(5) 예수님은 진정한 성전이셨기에, 성막터에 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셨다. 성경의 예언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만 남았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이 말씀하신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얻자.
우리를 더욱 풍성케 하시는, 목자 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자.
(이건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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