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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온 땅에 예수를 가득히 (미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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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주 설교제목은 ‘예수님 집안’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온 땅에 예수를 가득히’ 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시고 예수님을 우리에게서 나타내는 일입니다. 온 땅에라도 가득히 나타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날, 생겨야하는 날이 성탄입니다.  성탄은 예수님이 우리에게서 다시 태어나시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일에는 신앙을 갖는 진통, 신앙인 다와지는 진통, 예수님을 꼭 닮은 사람을 낳는 진통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진통은 참고 이겨야합니다. 진통을 이기지 못하면 옥동자를 낳을 수 없습니다. 진통은 창조적인 고통입니다. 다른 고통에는 진통제를 사용합니다만 진통(陣痛)에는 진통제(鎭痛濟)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산모가 진통을 할 때 의사들은 오히려 더 힘을 주라고 말합니다. 참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이 우리 속에 탄생하시는 그 진통을 겪은 후련함이 있든지 이제 그 진통을 겪고 있든지 또는 겪어야하든지 하는 사람들이지요.  어쨌거나 주님은 우리와 그렇게 해서 하나되는 일체감을 주십니다.  정말 나와 하나되시고 내 안에서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하시는 분, 주님의 성탄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부터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생각해 봅니다. 
1.먼저 주님은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깊은 일체감을 가지십니다.

제가 지난 23일 금요일에 성동구청에서 있었던 성동구청과 성동구기독교연합회의 성탄예배시 설교할 때 그런 감동을 받았습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를 설교하면서 깨닫고 보니 내 마음이 말의 구유였습니다.  그런 나를 주님이 용납하신 것이지요.  나는 주님을 용납해서 모셨는데 주님이 나를 사실 용납하신 것이더군요.  주님이 말의 밥통을 용납하신 것이지요.  주님의 일체감을 감사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일체감을 나타내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1절은 딸 군대여,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5:1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딸 군대는 이스라엘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되어가서 심히 낮아진 백성입니다.  고통이 많은 백성입니다.  그래서 마치 임신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는 여인에 비유했습니다. 
4:9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
4:10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성읍에서 나가서….들에 거하며….바벨론에 이르러….

이런 표현들은 다 그들이 겪을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통으로 인해 정말 연약한 처지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속량하시는 은혜로 이끄셨습니다. 
4:10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속죄의 값으로 하여 포로된 백성은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속량의 은혜가 임하면서 이제 해산하는 여인 같은 연약한 처지의 사람에게 ‘딸 군대여’라는 칭호가 붙게 됩니다.  새로운 힘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출애굽하는 백성들에게 성경은 ‘여호와의 군대’라는 칭호를 붙였습니다. 군사훈련을 받지도 않았던 그들인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힘이 되시면 딸들이 군대가 됩니다.  왜 이렇게 강해질까요? 
하나님이 그들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된 것으로 생각하시고 그 분의 영광을 회복하시는 결심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친 사람은 하나님의뺨을 친 것과 같이 여기신 것입니다.  이 일체감이 성탄의 전제입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그 이유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고난을 겪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사람을 괴롭힙니다.  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합니다.  하나님은 그 분이 뺨을 맞은 것 같이 여기시고 일어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것입니다. 성탄은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임을 선언하는 일체감의 선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이 짐을 져 주시는 신비한 한 몸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맥스 루케이도가 쓴 책,  ‘The Gift- 바로당신을 위한 특별한 선물(두란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남북 전쟁시 북군 병사 가운데 죽음이 두려워 한 병사가 탈영 혐의로 재판장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그를 향한 사회에서의 언론은 한마디로 즉각적인 사형선고를 요구했지요.  모든 전쟁에 임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피’를 보임으로 전투에 본보기로 보일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죽음에 두려워 떨고 있던 북군 병사를 향하여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즉각적인 사면과 전투에 다시 임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얼마 후, 북군은 남군과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었고, 그 가운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한 병사가 있음을 보고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치열한 전투에 나가서 최후까지 싸우다가 죽음을 맞은 상태였지요.  죽음을 맞이한 그의 시신을 수습하던 동료들이 그의 가슴 저고리에서 한 장의 종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두려움에 떨며 달아나 사형 직전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모든 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든 링컨 대통령의 한 장의 사면서였습니다.
링컨 대통령과 그 병사가 가진 일체감.  이런 일체감으로 주님은 우리를 다 부르십니다.

5:1 딸 군대여…..떼를 모을지어다
우리는 주님과의 일체감을 갖는 일에 많은 분들을 초청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황합니까.  이제 주님은 그런 사람들과 일체감을 갖습니다. 성경에 ‘무리’라고 표현되는 그 사람들같이 우리는 지금 이곳에 모인 무리요 주님의 무리이며 구원을 위해서 떼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주님 앞에 교만할 수 없는 감동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영접해주신 그 일체감 앞에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한 분과 하나되심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2.주님은 작은 자들을 통해 출현하십니다

주님의 출현은 큰 무리와 함께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작은 자들과 함께 시작하시며 적은 무리와 함께 나타나십니다.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 그들 작은 무리들에게 천사가 먼저 하나 나타나서 작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크게 나타납니다. 

눅2: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눅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우선 작은 무리를 한 분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합니다.
눅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작은 자들에게 작게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알린 후 그 영광이 큰 것도 알립니다. 
눅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작은 자들. 작은 자인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 겸손하고 자기를 낮출 때 주님은 우리에게 큰 역사를 보이십니다. 성탄은 그렇게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가족, 삼인의 교회라는 이 두가지 작은 모임으로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대해질 것입니다. 주님을 잘 모시면 말입니다.  그래서 미가서는 예언합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이 예언을 하신 미가 선지자는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무려 700년 전, 메시아가 오실 장소에 관한 예언을 한 분이지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라고 예언한 그 분이 말한 곳, 에브라다는 어떤 곳입니까.
물론, 오늘날에 와서, 특히 12월이 되면 말구유에 놓이신 아기 예수 때문에 베들레헴은 온 세계의 주목과 각광을 받습니다. 평소에는 성지순례 황금 돔 사원이 있는 예루살렘에 밀려 있는 베들레헴이지만 이날만큼은 예루살렘보다 더 주목을 받습니다.
하지만, 베들레헴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친숙할지는 몰라도, 베들레헴 그 자체가 이스라엘 모든 지역 중에서 차지하고 위치는 생각 이상으로 지극히 미미하고 별볼일 없는 매우 작은 지역에 불과합니다.  수년전에 우리 부목사님 한 분이 성지순례 도중 베들레헴 체류시 조장으로 섬기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180여 명 총신 사상 처음, 최대 규모 졸업여행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 관광 후 해질녁 호텔 배정을 하는데 언덕 조명등 정취 물씬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행 얼마가 버스 몇 대에 나눠서 타고 다른 호텔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호텔도 좋을줄 알았습니다.?
??피곤한 일행들 샤워하기 위해서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기대와 달리 누런 녹물이 쏟아져 나온 샤워기에 놀라서 전도사님이 밀고 나오는데, 화장실 문이 뚝 떨어져 버리더랍니다. 옆 방 학생들, 문고리 망가짐에 화가나서?프론트로 나와서 조장인 우리 부목사님에게 항의를 하더랍니다. 가이드는 타 호텔에 있고 결국  항의하던 분들이 나머지 일행이 간 호텔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니 호텔 최대 수용인원이 우리 일행 전체 인원 수용불가했고 그 호텔에는 부모님들도 가셨는데 일행 도중 가장 연세 많으신 분, 부모님들 우선 배정했답니다. 알고보니 그나마 샤워기에서 녹물만 나오는 호텔은 나은 편이고 어떤 호텔은 찬물 밖에 안나오거나 흙물만 나온다고 하니 다들 기가 죽었답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저렴한 가격에 화려한 숙소, 콘도를 얻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했을 때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베들레헴은 오늘날조차도 관광객을 유치하는 도시로서 대규모 관광객을 번듯하게 수용할 번번한 호
텔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작고 허름한 도시에 불과합니다.

베들레헴의 실상은 아기 예수를 임신한 마리아가 남편 요셉과 함께 호적을 등록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아기를 출산할 위급한 상황에서도 여분의 방을 구할 수 없는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허름하기 그지없는 베들레헴에서 다시 2000년전으로 올라간 예수님 탄생 시대의 베들레헴도 아니고 거기서 다시 7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주전 2700년 전의 베들레헴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베들레헴 에브라다 그곳은 유대 땅의 고을 중에도 작은 곳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이곳 말고도 스블론 지파의 베들레헴(수 19:15)이 있는데 이 스블론에 있는 베들레헴이 더 큰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이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은(옛 지명은 에브라다임) 국경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옛날부터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간 곳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는 유서 깊은 지역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5:21∼63에 보면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100여개의 성읍이 열거되고 있는데 그중에 베들레헴이란 지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후 포로귀환 이후 쓰여진 글(스 2:21, 느 7:26)에 비로소 그 이름이 등장하나 주민 천명 이상을 가진 성읍 속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성읍, 그러면서도 눈물과 비애의 성읍이 베들레헴이었습니다.
그 미미한 베들레헴 마을의 희미한 저녁 등불 몇 개가 깜박이는 곳을 향하여 바라보면서 이 곳이 구주 예수의 탄생 장소임을 예언해야 하는 미가 선지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예루살렘이 죄로 인해 무너질 때 그 예루살렘과 이스라엘과 열방을 회복할 구주는 미미한 촌락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나오신다는 예언입니다.
이는 번듯한 아파트가 넘실대는 분당이나 일산 신도시를 제쳐두고, 벤쳐 밸 리가 모여있는 고층빌딩이 가득한 강남 테헤란로 주변을 놓아두고 허름한 판잣집 단층 건물이 무질서하게 모여있는 왕십리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외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왕십리야!
너는 서울 한복판에서 가장 발전되지 못한 곳이라 할지라도 큰 부흥과 구원의 일을 이루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시작할 것이다”

우리 교회는 왕십리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은 곳이었습니다.  낙후된 곳이 었습니다. 그런 이곳에서 우리 교회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두 세사람의 교회들로 다시 낮아지고 작아진 자들이 되어서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두 세사람의 교회 삼인의 교회를 시작하고 보니 한 사람의 가치가 큽니다. 한 두 사람의 두세사람의 그 귀중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작은 두 세사람이라도 이제 주님을 모신 자가 되면 주님이 그 곳에 함께 하시는 교회들이 됩니다.  우리는 이제 작은 자들을 찾아가서 만나주는 일을 통해서 주님이 그곳에 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전도하고 사랑의 구제를 하는 일은 성탄에 중요한 일입니다. 천사같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 사랑의 구제를 하면서 황금 유향 몰약을 주님께 바치듯이 교회에 그리고 이웃에 줌으로써 우리는 사랑의 구주를 만방에 알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사랑의 나라가 확산될 것입니다.  주님은 근본, 태초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창조적으로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정말 모신 확인이 되는 성탄절은 우리에게 새로운 태초입니다. 새사람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큰 회복의 은혜가 이 때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작은 자가 되어야하고 그래서 작은 자가 되는 고난도 있었고 뺨을 맞는 멸시도 있었고 실패와 연약함도 있었음을 감사해야합니다. 주님이 바로 우리같이 작아진 자들에게서 성탄의 날을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3.주님을 온 땅에 가득하시게 합시다

제가 처음으로 성령체험을 하고 은혜를 받은 때에 아마 누구든지 그런 경험을 하시겠지만 저의 삶은 갑자기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자나깨나 예수님 생각이 났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늘 생각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내게는 어디서나 예수님이 느껴지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디서나 보이는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내게 예수님이 임하시고 나는 예수님의 영으로 거듭났는데 그렇게 되니까 내 안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 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의 삶에 예수님이 가득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입을 열면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친지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나와 관련한 화제꺼리는 예수님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목사가 된다는 것 때문에 저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나를 말렸는데 나중에 아버님도 아셨고 온 집안이 알면서 내가 가는 곳에서는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느냐, 라는 얘기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 얘기가 나오게 되곤 했습니다. 군대를 가서도 저는 훈련을 받을 때 늘 십자가를 찾았습니다.  전봇대를 보고서 십자가를 발견했고 관물대를 보면서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내게 임하시고 나서 나의 마음에 거룩한 성탄이 왔고 그리고 온 땅은 예수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고종사촌댁이 있는데 그 사촌형님들 가운데 한 분이 사법시험에합격했습니다. 참으로 어렵게 지내던 집인데 그 집안에서 한 분이 검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 집안의 형제들 중 한 분은 인쇄소를 하셨고 한 분은 택시운전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 동생은 너무도 자랑스러운 분이었습니다. 택시를 운전하다가도 은근히 동생얘기를 꺼내게 되지요. 인쇄소를 찾는 분들에게 동생자랑을 합니다. 그 집안은 그 국회의원인 동생이 온 집안을 자랑스럽게 하는 그런 구조가 되었습니다. 때때로 한 분이 모두를 위대하게 합니다.  구주성탄은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민의 구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 땅에 가득하셔야합니다. 사실 그런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모든 곳에 전파하여서 가득하게 해야할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이 내 마음에 다시 한 번 구주로서 확실히 임하시고 나를 새롭게 하심으로써 나의 삶의 온 땅에 예수님이 가득해 지시도록 해
야한다는 것입니다. 이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성탄은 가득한 성탄이어야합니다.

주님을 진정 영접한 사람은 예수로 가득한 가정, 생활, 사명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로 가득해야합니다.  그 놀라운 변화의 시작을 위해 우리는 고난도 겪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정 모신 분들은 이제 해산의 고통 같은 고통이 지나가고 새롭게 태어나며 새롭게 주님께 모이게 됩니다. 우리는 다시 주님께로 모여야합니다. 우리는 교회로 모여도 주님께 모여야합니다.  주님이 계신 교회로 모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해서 남은 자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5:3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돌아온 사람들을 주님은 힘있게 키우시고 먹이시면서 평안케 하시고 그리고 창대하게 하십니다.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주님의 함께 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은혜의 세계를 확실히 경험하면서 모든 것을 주님께 의지할 수있게 됩니다.  이 때문에 차분히 말씀을 나누게 되고 그 말씀을 전하게 되고 전도하며 선교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땅끝까지 창대하게 하는 일에 나서게 됩니다.  내게 예수가 충만하면 온 땅에 예수를 충만하게 할 마음이 뜨겁게 됩니다.  만민에게 미칠 좋은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한 천사들 같이 됩니다.  우리는 바로 그 천사들 같은 공동체를 이루고 한 사람이 나서고 기다렸다가 모두가 나서는 기쁨도 있게 됩니다.  우리가 이제 베들레헴의 목자들 앞에 나타난 천사들같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그 밤의 천사들 같이 함께 주님을 찬양하면서 온 땅 어디에든지 함께 나아갈 마음으로 하나 됩시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밤에 무거운 마음으로 피곤한 인생으로 있을 때 왕십리교회의 한 분이 우리에게 전도하더니 어느덧 그 교회가 다 우리와 함께 주님을 찬송하였다라고 말입니다.

눅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귀함을 알고 그 분을 자랑할 사람들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온 땅에 가득하게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살기 바랍니다.  그 분이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 우리의 목적이 되게 합시다. 정말 그렇게 귀한 예수님이 우리 속에 탄생하시는 첫번 째 크리스마스가 되게 합시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 가득히 모시고 온 땅에 영광과 평화의 주님, 그리스도를 가득하게 하기를 원하는 저와 여러분으로 새로 태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치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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