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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임하소서 성령이여 부흥하게 하소서 (행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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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2004년도를 은혜 중에 보내고 이제 2005년도를 맞이하였습니다.  언제나 새 것을 대할 때는 적지 않은 설렘과 기대심으로 부풀게 마련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지으신 많은 피조물 중에서 인간만이 무한정 흘러가는 시간에 연월일시를 붙이면서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계산해보고 남은 시간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시간이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우리가 어디쯤 왔으며,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남은 날을 계산해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해를 맞아 새롭게 살아가려고 하면,  먼저 사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새 사람,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나를 점령하고 지배하는 나의 주인이 달려져야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워진 사람만이 새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혀 새로운 주인이 들어와 명령하시고, 그의 말씀을 듣고 그에게 복종할 때만이 인생을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으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신 새로운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한해를 열정적으로 살고, 성실하게 살고, 좋은 열매를 얻어야겠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교회는 2005년도 표어를 "임하소서 성령이여, 부흥하게 하소서"라고 정하였습니다.  다함께 표어를 읽어보겠습니다.  "임하소서 성령이여, 부흥하게 하소서" 올 한해는 이 표어를 가지고 기도하고, 이렇게 될 것을 믿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실천목표로는 1) 성령 충만한 교회  2)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  3)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라고 정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과 같은 영주교회의 목적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주교회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신 목적을 따라 구원받은 자녀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리스도의 성숙한 인격을 목표로  양육하며,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형제애를 가지고 서로 교제하며, 지역 사회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다"

  이 목적문을 요약하면 1) 구원의 확신과 함께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배하고, 예배공동체  2) 그리스도의 성숙한 인격을 목표로 양육하며, 제자훈련하는 교회 3)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파, 전도하는 교회 4) 형제애를 가지고 서로 교제하고, 친교하는 교회 5) 지역사회를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하는 것으로, 사회 봉사입니다.  예배, 제자훈련, 전도, 친교, 사회봉사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장년의 교회로,  성숙한 교회, 성숙한 성도라는 의식을 가져야겠습니다.  교회는 본질에 충실한 교회로,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교회라는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한 영혼을 구원하려고 사회를 섬기고, 복음을 전파하여야겠습니다. 

  우리는 일년동안 "임하소서 성령이여, 부흥하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함께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사회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우리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로서 금년에 반드시 추진하고 가려는 방향은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를 체험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훈련과 사회 봉사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진 교회로, 우리 교회만의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회하는 목사로서 우리교회의 가장 취약한 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장로교회의 장점이기도 하고, 장로교회의 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장로교회는 성령님쪽으로 더 다가가야 하고,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은 하나님 편으로 좀 더 가까이 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된 신앙, 바른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모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바로 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힘있는 삶을 살아가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우리의 죄악을 내어놓고 회개하려면, 또한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려면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게 하신 이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육신의 소욕은 죽이고, 영으로 살리시는 이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뜨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기쁨과 감사를 발견하게 하시는 이가 성령님이십니다. 

  저는 "임하소서 성령이여, 부흥하게 하소서"라는 제목을 정하고는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회의 직분이나, 신앙을 가진 연조나, 어떤 직책이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변화되지 아니하고, 세상으로 치우쳐 있으면서 교회의 직분에 충실할 수도 있고, 신앙의 연륜은 깊어가고, 어떤 직책을 수행하는 데는 차질 없이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에 대한 상식적인 지식도 많고, 잘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직분이나, 신앙의 연조나 직책이나 성경에 대한 지식이 믿음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른 믿음은 듣고 배우고, 받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실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지식이 믿음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은 누구이시며, 교회는 무엇을 하는 단체인 것을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구원하시는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그 분을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탐구하고 신학적으로 바르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이가 있으니, 나의 의지가 아니라, 바로 성령님이시며, 그 분의 감화 감동만이 능력 있는 신앙을 가져다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른 신앙이 되기 원하면 성령님을 모셔들이고, 그 분에게 나의 의지를 맡기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사람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에게 사로잡힌 바 되어 전적으로 사역에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살전1:5)고 하셨습니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 이것은 모두다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복음이 말로만 선포하고, 말로만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따르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고, 불변하는 큰 확신이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 6)고 했습니다. 

  여기서 힘이란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말하고, 능력이란 노동력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수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스룹바벨의 인간적인 역량이나, 제사장 여호수아의 노력을 시사하면서 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는데는 자신의 경험이나 사회적인 지위,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사람들이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편성하고, 사람을 동원하여도 그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금년 목회는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영접하게 하시는 성령을 확신하며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시는 성령의 보전하는 은총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의 몸을 성전 삼으시고 내주 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날마다 승리하게 하십니다.

  성도들은 성령의 역사를 의지할 때에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 주님과 동행하는 참된 영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성도 훈련해야 하고, 우리의 기도와 말씀을 배우는 일에도 훈련이 따라야 합니다.

  영성훈련이란 어느 시대에 유행하다가 시들해지는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계속적인 영적 순례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우리의 영성 훈련이란 이신칭의에서 시작되지만 칭의에 머물지 않고 반드시 성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독교 영성훈련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의 주도권을 인정하면서 성령 안에서 성령과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성품에까지 자라 가는 우리의 자원하는 능동적인 영성활동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에게 나의 전 존재를 맡기고 그의 인도하심을 순종하는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지말고, 성령님과 의논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하심에 예민하여야 합니다.  나는 성령의 사람이라고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차분한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힘을 기울인 결과 지적인 수준과 행동에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지성적인 존재이면서 감정적이고 의지적인 존재로서 가치판단과 더불어 가치 있는 행동이 일어나야만 제자훈련이 잘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부터는 주일오후 찬양예배를 마치면서 기도하며, 수요일 조목기도 시간을 통하여 영성을 회복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며, 새벽기도회와 구역예배를 통하여 뜨거운 기도와 사모하는 열정으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려고 합니다. 

  정리하면 기독교적인 영성이란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삶이며,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실제적인 영성이란 그리스도와 일치된 삶을 의미하는데, 영성은 거룩한 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과의 교통이며 우리 주님의 인격과 형상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성을 바르게 하며 열정적인 영성을 가져야 이 어려운 시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써 일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성 생활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혼이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 주님 안에서 거하는 성령의 충만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성장과 교회의 부흥을 혼돈할 때가 많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대하면서 탈봇 신학대학의 정문에 적혀 있는 "Pray for revival! -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동안 교회 성장학자들이 나오면서 세계 많은 교회들은 부흥(Revival)이란 말 대신에 성장(Growth)이란 말을 더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침체된 오늘의 교회를 되돌아보면서 부흥이란 말을 잊어버리고 성장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교회는 성장이 멈추게 되었고, 침체에 빠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장한 것이 아니라,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은 점진적인 성장이 아니라, 단절적인 부흥이었으며, 요한 웨슬레의 감리교운동과 미국의 대각성운동은 결코 성장이 아니라, 부흥이었습니다. 

  부흥은 성령 충만한 교회만이 가지는 특성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는 점진적인 때도 있지만, 폭발적인 부흥을 가져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2)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성령에 충만해야 하고,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에 순종해야 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영혼의 목마름을 느껴보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개인적인 사랑을 고백하면서 진실하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신앙생활은 주님과 살아있는 교제, 개인적인 만남과 약속,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성령님과 함께 걸어가시는 능력을 받아야, 평화와 기쁨, 그리고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동역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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