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신령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엡 1:3-14)

  • 잡초 잡초
  • 211
  • 0

첨부 1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태가 달려져서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복을 빌고 있습니다.  참으로 편리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새해 아침에 조금 자려고 하는데 잘 수가 없어요, 문자 메시지가 연속 날아오는데, 모두 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이라고 하면 유학(儒學)에서 말하는 오복을 생각합니다.  장수하는 수(壽), 재물이 넉넉한 부(富), 건강하고 마음이 평안한 강녕(康寧), 덕을 좋아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덕을 행하는 유호덕(攸好德), 제 명대로 살다가 평안히 죽는 고종명(考終命)을 생각하는데, 이것을 오복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동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은 여전히 오복에 머물러 있습니다.  새 집을 짓고 상량할 때는 대들보에 연월일시를 쓰고, "하늘의 세 가지 빛에 응하여 인간 세계에서는 오복을 갖춘다"((응천상지삼광 비인간지오복 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이라고 쓰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오복을 좋아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복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아슈레"라고 하는데, 이 말이 쓰여진 상황을 보면 물질적인 면에서 잘 살고 넉넉한 것을 복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내면적인 상태에서 복을 찾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혜문학이 발전하면서 인생을 오래 살아보고 달관의 지혜를 가지고 새로운 각도에서 보니 진정한 복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찾아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잠16:20에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도처에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면서 그의 뜻을 이루고, 그 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복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정한 복이 무엇이며, 무엇을 복되다고할 것인지 진지하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지적하면서 저주를 말씀하였으며,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복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조건이 좋다고 하여 그것이 진정한 복이 되느냐 하면 그것이 진정한 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돈이 많았기에 화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권력의 자리에 들어가므로 인생을 실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잠시 잠깐의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받아야 하고 누려야 하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 세상에 살면서 부귀영화를 다 누려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누린 부귀영화를 다 말씀드리지 않아도 한 나라의 왕으로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많은 부인과 자식들을 거느리고, 잘 살았습니다.  그가 일생을 살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만한 교훈시를 썼습니다.  다윗의 마스길이란 시가 시32편입니다.  그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온갖 죄로 얼룩지어 정말 보잘것없는 초라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자기를 짓누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온 몸에서 진액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마치 여름 가뭄에 타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2)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가 가려지고, 죄인이라고 정죄 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복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 아니라고 당당히 세움을 입을 사람이라면 그가 진정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 와서 진정한 복이라고 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우리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아서 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을 복된 사람이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인생에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4:6-8에서 "그래서 행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사람이 받을 복을 다윗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죄를 덮어주시는 사람은 복이 있다.  주님께서 죄 없다고 인정해주실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다윗이나 신약의 사도바울이 훌륭한 것은 인간의 실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복이라는 말을 할 때에 영어로 Blessed, Good, Happy라는 말을 사용하게 됩니다.  복이라는 말이나 행복이라는 말은 동의어입니다. 

  영어의 복이라는 말은 우리는 행복, Happy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사실은 축복이라는 말의 Blessed 라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Blessed라는 말은 영적인 축복에 대하여 사용하는 말입니다.  유명한 산상보훈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는데, 여기에 사용하는 복이라는 말은 헬라어 "마카리오스"라는 말입니다.  Happy라는 말의 어원을 따져보면 '발생하다', '일어나다', '생기다'는 "Happen"이란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Happy라는 말은 '우연히', '운 좋게', '행운의'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Blessed라는 말은 '신성한', '신의 은총을 입은', '축복 받은', 그런 뜻입니다.  지금 현대어 성경에는 현대인들이 많이 쓰고 흔히 사용하는  'Happy'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흠정역 성경을 비롯한 여러 번역에서는 Blessed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여러분,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란 꽃말을 가지고 있지만,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란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운을 바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수많은 세 잎 클로버 중에서 네 잎의 클로버를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까이에, 그리고 수없이 널려 있는 행복을 제쳐두고 오지 않는 행운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수많은 세 잎 클로버의 행복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만족해야 합니다.

  오늘은 "신령한 복을 받아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겠다고 작정하고 교회를 나오시는 분들은 모두다 하늘에 속한 신령을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성부 하나님께 대한 찬송, 성자 예수님에게 대한 찬송, 그리고 성령에게 드리는 찬송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성경에 성부, 성자, 성령의 순서를 잘 지키면서 차례대로 나오는 성경이 많지 않은데, 성부, 성자, 성령의 질서를 잘 따르는 대표적인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예정하시는 성부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면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구원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그 안에서 믿음을 주셨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쳐주시는 성령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1.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십니다.

  3절 말씀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 곧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신령한 복이란 구약 시대의 물질적이며 임시적인데 반하여 신약시대의 영적인 복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여 주셨고, 예정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기에 우리 편에서 왜 선택하시고 예정하셨느냐고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 다만 감사와 찬양의 제목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선택하여 주셨고, 영원한 구원으로 보증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너는 내 것이라고 선택하여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한번 예정하심으로 영원히 예정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영원히 보증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하나님만의 아시는 바요, 기뻐하시는 뜻에 따르는 것으로 우리는 다만 감사와 찬양을 돌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정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예정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선택과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은 창세전부터였습니다.  예정하신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기뻐하시는 뜻대로 우리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로마의 옥중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핍박하고 박해하던 사람이요, 교회와 성도들의 원수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주님을 위하여 일생 헌신하였고,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의 일생을 뒤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생애를 아름답게 사용하여 주시는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를 선택하여 주셨고, 예정하신 분명한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생을 뒤돌아보면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선택과 예정은 감사하고 보답하려는 신앙을 허락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복은 하늘에 속하여 있습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은총이란 아주 적은 것이요, 하늘에서 누릴 수 있는 은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는데, 이러한 사실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엄청난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창세전에 선택하신 하나님의 예정을 생각하며 찬송하던 사도바울은 이 세상에 오신 우리 주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2.  신령한 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하시는 은총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 곧 죄사함의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는 죄사함의 은혜입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노예를 해방하는데 속전을 지불하고 노예 문서를 사서 그것을 파기하고 노예를 자유 시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값을 지불하다, 속전을 지불하다는 말이 속량, 구속, 대속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풍성한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이것은 사랑입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이것은 공의입니다.  죄는 반드시 벌하고 마는 하나님의 공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에 죄는 반드시 벌해야 하고, 그러나 그 벌을 아들에게 다 맡기고 아들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신앙고백의 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엔 크리스토"입니다.  사도바울의 모든 신앙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되고 있습니다.  죄 사함의 문제가 어디에서 해결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어디에서 해결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구약이 신약이 만나는 자리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3.  신령한 복은 성령의  인쳐주시는 보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명한 칼빈주의 5대강령이란 것이 있습니다.  칼빈주의라는 말은 칼빈의 후배 지도자들이 17세기 초에 수립한 하나의 신학체계입니다. 이것의 약자로 TULIP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T), 무조건적인 선택(U), 제한된 구속(L), 불가항력적인 은혜(I), 성도의 견인(P)입니다.  이것을 다 설명할 시간은 없지만, 성도의 견인이란 교리는 아주 중요합니다.  한번 선택하여 구원하셨으면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성령이 책임지시고 보증하여 주신다는 신앙입니다. 

  13-14절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요10:28-29에서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대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한번 구원하시면 영원히 구원하시고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지키시고 보존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되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올 한해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은총을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