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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그 날, 그 일을 마음에 두라! (눅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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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성탄입니다.
예수님만이 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이 지난 2천년간 이 인류의 희망이었고, 지난 120년간 한국 땅의 빛이셨던 것처럼 이후로도 영원토록 우리의 삶에 희망과 빛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 성탄을 맞았던 그 놀라운 경험을 한 사람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동방에서부터 온 박사 세사람, 그리고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 몇 명,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마굿간의 동물들...
정말 조촐한 탄생이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의 온 인류가 이 날을 기뻐하면서 감격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 중의 하나는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목자들의 이름이나, 동방박사들의 이름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이름은 전설로나마 그 이름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캐스파, 멜콰이어, 발타살, 알타반이란 이름의 4명의 동방박사 전설이 이야기로 전해 내려옵니다. 제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놓았으니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탄생의 소식은 누구에게 들려오는가?
첫 번 성탄절을 눈으로 지켜 보았던 목자들은 참으로 행운아입니다. 왜 천사들은 목자에게 그 기쁜 소식을 먼저 전했을까요?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목장의 목자들은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바로... <목자>입니다. *^^*

그들은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 부연설명.
그들은 삶의 자리에 최선을 다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부연설명.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부연설명.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불리웠던 찬양 중에 단조로 된 아름다운 멜로디의 찬양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계절>이란 찬양의 제목인데, 1절의 가사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제가 한번 불러 볼까요?

예수님 겨울에 오신다면 세상이 차가울 때
마음 따뜻한 사람 찾겠네 추위를 녹이도록
오 주를 찬양하네 고난의 겨울에 우리...
찾으러 오신다네.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그 계절이 겨울이라면... 어떤 사람을 찾아 오실까요?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같이 삶의 지친 이들을 위해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마음 따뜻한 사람을 찾으실 줄로 믿습니다.

천사들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들은 목자들이 취했던 행동이 있습니다.

(눅 2:15-17) 『[15] 천사들이 목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이 서로 말하기를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려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봅시다 하였다. [16] 그래서 그들은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17] 그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이 아기에 관하여 자기들이 들은 말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들은 갈급했던, 목말랐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급히 달려가서’ 그 일을 보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마음이 떨리고, 급해지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에 땀이 나십니까? 아니면 무덤덤 하십니까?

지난번 좋은만남을 경험할 때에 영적지도자셨던 김광년 목사님이 전해 주셨던 한 예화가 마음에 남습니다.
=> 스펄전 목사님 이야기, 설교 준비하러 들어가신 목사님이 하루 종일 나오질 않자 사모님이 서재 문을 열어 보니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 하시는 스펄전 목사님을 발견, 목사님의 고뇌에 찬 절규, “십자가를 하루 종일 바라보면서도 눈물이 나오질 않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되어 그 일로 인하여 흥분되는 여러분의 영혼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들은 복음의 소식을 확인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들은 것이 귀의 소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가 되길 원했습니다. 내 생의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이 되길 원하여 그들은 급히 그곳으로 가 보고자 했습니다.

가슴 뛰는 사람은 달려갑니다. 그 일에 의미를 느낀 사람은 다른 일보다 더 우선적으로 급히 그 일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의미있게 다가올 수 있는 일에 급해 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게 들려진 그 복음의 소식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일에 더 급해지기 바랍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오늘 밤 닥쳐 온 상황을 다 경험한 목자들은,

(눅 2:20) 『목자들은 듣고 본 것이 다 자기들에게 일러주신 것과 같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미하면서 돌아갔다.』

그 일이 자신에게 똑같이 일어난 것으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찬미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일은 소문만이 아니라 내 삶에 일어난 사건이 되었습니다.

급히...
달려가서...
찾아내고...
그 소식을 전한...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찬미의 사람이 되어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음 주일부터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이 시작됩니다.
저는 요즘 어떤 성경 본문을 봐도 그것과 연관이 됩니다. ^^
예수님이 삶의 변혁자요, 우리를 가능체로 만드시는 가능의 원인이 되신다는 것을 남들의 간증이나, 소문이나, 전설따라 3천리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들었던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 나오는 이 목자들처럼 한번 급한 마음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쁜 소식이 들려와도 무덤덤한 채 ‘귀찮니즘’이 발동되어서 ‘에이, 뭐 관두지 뭐...’하고 지나쳐 버린다면 인류 최대의 축제인 첫 번 성탄절의 주인공이 절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흥분하시기 바랍니다.
급히, 달려가서, 찾아내십시오~!!...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하세요. 하나님이 그 일을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신앙은 결단이요, 집중입니다. 성서에 나온 기적의 이야기 중에 혈루병을 앓던 여인의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녀는 12년간을 혈루병으로 앓으면서 온갖 의사들의 처방을 다 받으면서도 재산만 다 탕진했을 뿐... 아무 효과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그녀에게 복음이 들려 옵니다. 나사렛의 선지자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그녀의 가슴은 방망이질 치듯 떨렸을 것입니다. 그 소식이 그녀를 흥분시켰을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사회에서 낮선 여자가 총각의 옷자락을 잡는 것은 엄청난 모험입니다. 게다가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병을 가진 환자는 율법으로 사람들과의 접근이 금지되는 저주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병을 고치신다는 예수님의 소식을 들은 여인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 소문이 자신에게도 일어나야 할 사건임을 그녀는 확신하고, 또 열망하였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인파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찾습니다. 휘청이는 다리를 끌고 그분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사력을 다 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숱한 인의 장막을 뚫고 예수님에게... 예수님에게... 접근해 갑니다. 그분을 봅니다. 그러고는 12년간 자신의 육체에 머물면서 자신의 온 인생을 갉아 먹었던 병이 떠나기를 열망하는 마음을 담아...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가 낫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인생을 다 걸어 그 손 끝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그러자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멈추시고 내 옷자락을 만진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발밑에 엎드린 그 여인을 향하여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선포해 주셨습니다.

듣고, 찾고, 달려가서, 집중하여 예수님을 만진 그 여인은 이제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이 내 삶에 희망이 되었습니다. 내 삶의 기적이 되었습니다.

여리고의 소경 바디매오도 겉옷을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지르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님의 능력이 내 삶에 영향력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오늘 탄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에 치유자가 되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아직 그 예수님에 대해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내 삶에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시지 못하는 허상으로 남아있는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그 분이 이 땅에 오셨지만, 내 마음 속에 오셔서 마음 문을 두드리지만 마음 문을 열지 못하고 바깥에 세워 두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성경 본문 말씀처럼....

(눅 2:16) 『그래서 그들은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오천가족 여러분,

기독교는 경건의 종교이지만 명상의 종교가 아닙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라, 예수님을 섬기는 민족은 가만히 앉아서 운명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행동하는 것이요, 기독교의 정신은 움직이는 종교입니다. 듣고 가만히 그것을 곰곰이 되씹어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과연 맞는지 뛰고, 달리고, 가서 보고 확인해 보는 살아있는 신앙의 종교인 것입니다. 듣기만 해서 지식이 많아지는 종교가 아니라 들은 것을 실행에 옮기는 실천적 종교입니다.
만약에 목자들이 천사들의 소식을 듣고 그저 마음 속으로만, “그래 참 좋은 얘기야. 메시야 오면 좋지 뭐. 에휴~ 누군 좋겠다. 그 메시야를 보는 사람도 있을꺼야 그치?”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양 틈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면 그들은 이 땅에 오시는 온 인류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의 첫 번째 탄생의 놀라운 현장에 가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의 의미는 이런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 나는 예수님을 경험했다.”

예수님이 찾아가서 일부러 문까지 두들겨 가면서 방이 없냐고 찾았지만 준비되지 않았던 여관 주인은 예수님의 탄생이 자신의 집에서 일어나는 것을 경험치 못했습니다.
온 동네에 호적하러 온 사람들이 꽉차서 북적거려 방 한칸이 없을 정도로 베들레헴에는 사람들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별의 움직임에 관심 가졌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목동들이 허겁지겁 마굿간을 찾아 들어오는 장면에 관심을 가질 새도 없었습니다. 분주하게, 바쁘게, 정신없이 지나가버리는 시간 속에서 혹시 우리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그 시간을 놓쳐 버리고 있진 않으신지요....?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예수를 찾아 만나야 할까요?
베들레헴이 가면 예수님 탄생 교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억압받는 절규만 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거기엔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사신 길, 그분이 걸으셨던 길을 함께 걸음으로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목적에 동참하며, 그분이 걸으셨던 길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 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첫째는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예수님은 오늘날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예수님을 찾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예배 안에서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성령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렘 29:12-13) 『[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오늘 성탄의 절기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절기가 아니라, 여러분의 삶에 감동과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결단의 시작이 되는 의미있는 절기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 날, 그 일을 마음에 두십시오. 여러분에게 나타날 엄청난 사건을 마음에 두십시오. 잊혀지는 사건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정연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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