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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들어갈 방이 없으신 예수 (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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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12월이 되면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도시 곳곳에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세워져서 구세군 사관이 흔드는 종소리가 또한 거리를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백화점과 많은 상점들이 오색 전구로 장식된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놓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말이 되었음을 알고 또한 성탄절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가수들이나 개그맨까지도 이런 저런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 너나 할 것 없이 캐럴을 흥얼거리며 다니게도 됩니다.
그리고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거리에서 수고를 하는 많은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아이들은 산타클로스가 가져올 선물을 기대하며 양말을 걸어놓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합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걸까요?

지금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성탄절이 무슨 날인가요? 우리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서로 인사를 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기쁘고 무엇 때문에 기쁜 것일까요?
다시 묻습니다. 성탄절이 무슨 날인가요? 정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인가요? 그렇다면 오늘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주인공이 맞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밤 무엇을 위해서 밤을 지새웠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지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교회에서 친구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밤을 지새운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정말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였습니까? 지난 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습니까? 지난 밤 밤새껏 웃고 즐기는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습니까?

언제부터인가 성탄절의 주인공이 예수님이 아닌 산타클로스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루돌프 사슴 코가 자랑스러운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회에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날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아니 선물도 없으면 입이 쑥 나올 정도로 서운해 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성탄절이 무슨 날입니까?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불 속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단 말입니다.

자 보십시오.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밤에 들에서 지내며, 그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한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치니,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천사가 그들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즉 메시야입니다. 메시야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분이 포대기에 쌓여 구유에 놓여 있다는 것이요 이것이 목자들에게 주시는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메시야가 어떻게 포대기에 쌓여 구유에 놓여 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메시야라는 표징이라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 당시도 지금처럼 복잡했습니다. 갑자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호적 등록을 하라고 칙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자기들이 점령한 나라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고향으로 갔는데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갑니다. 그 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도 나도 고향 땅을 찾다보니 머물만한 장소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여관을 찾았지만 이미 여관도 꽉 차서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습니다. 할 수 없어 여관주인에게 사정하여 겨우 얻어 들어간 곳이 짐승 우리였던 것이요 그곳에서 아이를 낳아 구유에 뉘여 놓았던 것입니다.

분명 그날의 주인공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 그것을 천사들의 노래가 증거합니다.
자 보십시오. 갑자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준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합니다.
“더 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되시는 분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천사와 하늘 군대가 함께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모든 사람들의 환영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아니 그분께 찬양을 돌리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천사들의 말을 듣고 와서 경배를 드린 목자들, 그리고 동방에서부터 별을 보고 길을 찾아 나섰던 동방의 박사들이 전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는 가장 천한 사람들이 그리고 이방인 가운데서는 가장 존귀한 사람들이 와서 경배를 드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이 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깨어 있었고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연구하기 위해서 깨어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깨어 일하다가 천사의 전하는 소식을 들었고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 연구하다가 왕의 탄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각각 태어나신 이를 찾아가 경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그리스도 주님은 구유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경배해야할 많은 백성들 그리고 제사장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여관의 주인입니다. 목자들이 와서 경배하고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오고 하는 그 어수선한 가운데서 여관의 주인이 어떻게 했다는 말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무관심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요?

그리스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습니다. 그래요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부터 짐승취급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이 되어야 할 그분이 짐승의 자리로 밀려났단 말입니다. 그 짐승의 자리는 누구의 자리입니까?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동산 숲 속으로 숨었습니다. 스스로 짐승의 자리로 들어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짐승의 자리는 죄인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정작 죄인들은 편안한 집안에 있는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주님은 짐승의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이 이렇게 죄인의 자리로 내려가셨던 것입니다.
왜요? 바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감사드려야 하고 찬양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그 자리를 산타클로스가 차지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로 가고 산타클로스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산타클로스가 전해주는 선물만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듯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드려야 하는데 정작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은 오늘에 와서도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밤새 놀다가 정작 주님을 찬양하는 시간에는 잠들어 버리고 맙니다. 마치 신랑을 기다리다 잠들어 버린 다섯 처녀처럼 말입니다. 우리들끼리 기쁨으로 선물을 주고받는데 그리고 자녀들에게 산타클로스가 전해주는 것처럼 선물을 준비하는데 막상 주님께는 드릴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짐승의 자리까지 내려오셨는데 그 주님께 우리가 감사함으로 영광의 자리를 만들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시간 진정으로 주님께 감사드리며 찬양 드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예수님은 나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나로 하여금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나는 죄 가운데 태어나 죄 값으로 죽어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런 우리가 주님이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 죄의 형벌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늘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감사함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감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죄 가운데 살며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전해줄 최고의 선물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이 생명을 건져 구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선물도 잠시의 기쁨으로 끝나고 말지만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따라서 잠시 기뻐하다가 잊어버리고 마는 세상의 선물이 아닌 영원히 간직한 선물인 생명을 전해줄 때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더란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찬양하는 진정한 의미가 됩니다. 입으로는 기쁘다 구주 오셨다고 하면서 그 기쁘신 구주를 전해주지 못한다면 그저 입으로의 찬양으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전해준다면 그것은 영원히 이어질 찬양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잊어버린바 된 영혼들을 찾게 될 때 주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또 기뻐하시며 하늘의 잔치를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천국 잔치에 우리가 함께 참석하여야 할 것이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여 생명들을 이 천국 잔치로 초대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더 이상 예수님 안 계신 성탄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산타클로스를 주님 대신 내세우지도 말아야합니다. 성탄절은 말 그대로 거룩한 주님이 태어나신 날입니다. 그날의 기쁨을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기뻐하며 어제 저녁에도 기쁨의 잔치 마당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즐겁게 축하 행사를 치렀습니다. 그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함께 수고하고 또 기쁨으로 모두가 함께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재롱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재롱잔치가 이 세상의 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 잔치가 천국까지 이어지도록 우리가 날마다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그 소식을 널리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지금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지금 내 마음에 주님을 모실 방은 있는지요? 지금 주님이 나를 필요로 하실 때 기쁨으로 모든 것을 내어 드릴 수 있는지요? 주님이 나를 찾아 오셨는데 내가 세상 일로 너무 분주해서 주님을 맞이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졸다가 막상 주님이 오시지만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들의 목자들처럼 동방의 박사들처럼 깨어 있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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