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정해야 할 목표(창 35:1-29)

  • 잡초 잡초
  • 353
  • 0

첨부 1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 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9~15)

그들이 벧엘에서 발행하여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 길을 격한 곳에서 라헬이 임산하여 심히 신고하더니,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말라 지금 그대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이스라엘이 다시 발행하여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레아의 소생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라헬의 소생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라헬의 여종 빌하의 소생은 단과 납달리요. 레아의 여종 실바의 소생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 아비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거하던 헤브론이더라. 이삭의 나이 일백 팔십세라.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16~29)

2006 병술년의 대망의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복이 여러분 가정과 자녀와 사업장과 직장과 자녀들의 학원 위에, 도한 모든 계획하시고 소원하시는 일들과, 기도핫닌 소원위에와 범사 위에 넘치는 은총으로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질투가 상당히 많으신 분이십니다. 출애굽기 20장 십계명을 알려 주시고, 5~6절에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축복된 인생을 살지 못할 때 그대로 보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이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때 보고만 있겠습니까? 부모들은 그 자식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마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인생들의 부모들 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인 저와 여러분들이 더 행복하고 축복된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다. “젖먹는 어미가 자식을 버릴지라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3장 18절 이하를 보세요.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크시타에 샀으며,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17절 이전의 말씀과 18절 이하가 전혀 연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17절에서 야곱은 숙곳까지 왔습니다. 숙곳에서 세겜으로 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18절에서는 그렇게 설명하지 않고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 세겜"으로 갔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왜 성서 기자는 야곱이 '숙곳에서부터 평안히 세겜으로 갔다'고 설명하지 않고 밧단아람에서부터 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밧단아람이 어디인지 아세요? 창세기 31장 18절을 찾아보세요.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든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야곱이 어디에서 떠났다고요? "밧단아람"에서 떠났습니다. '밧단아람'이라는 말은 '아람의 평원'이란 뜻인데, 외삼촌 라반이 사는 땅입니다. 거기에 야곱의 목적지가 나와있습니다. 가나안이었습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긴 여행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위험을 만나고 유혹을 받았어도 '가나안 땅'이라고 하는 목표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곳을 향해 갔습니다. 야곱은 분명하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이라고 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세일로 가자는 에서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창 34장은 참으로 불행한 사건을 말해줍니다. 사치와 세상 구경에 눈이 어두워 세겜성에 나갔다가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게 추행 당한 사건입니다. 이 지경을 만든 디나에게서 세상적인 호기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의 교훈을 잊지않고 신년에는 구별된 삶을 살기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이렇게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진위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청혼을 해온 세겜에게 야곱의 아들들은 그냥 그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할례를 받으라고 요청합니다. (창 34:14-17절)이 바로 이 제안입니다.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욕이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믿음으로 해결하지 않고 잔인하고 비신앙적으로 해결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 나름대로, 세겜은 그 나름대로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할례를 사용합니다. (창 34:25절) 이하에서,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꾀대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릅니다. 세겜의 사람들이 모두 할례를 받은 지 3일이 되어 염증의 고통이 가장 심한 날, 야곱의 아들들 중 시므온과 레위가 대장이 되어 창칼을 앞세우고 세겜 성을 쳐들어갔습니다. 추장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은 물론 모든 남자들을 도륙하였습니다. 양과 소와 나귀, 그리고 재물은 빼앗아 이스라엘의 소유로 삼고,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얼마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겠습니까? 야곱의 인생과 가정이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그대로 보고만 계실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믿음의 아들이 믿음을 떠나 살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한해 동안 우리에게 야곱같은 모습은 없었습니까? 왜 사람들이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갑니까? 모든 문제는 믿음을 떠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야곱에게 그 믿음을 주시고자 부르시고명령을 하셨습니다. "일어나라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라" 믿음있는 행동과 신앙적 결단을 요청한 것입니다.

새해에 하나님이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도 새해에는 믿음을 행동으로 보이며, 살아가라는 깊은 뜻이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온 야곱에게 다시 축복을 주셨는데 올 한해 동안 우리도 하나님의 복을 마음 껏 받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벧엘로 올라가는 신앙을 갖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새해엔 어디로 가야할 것입니까?(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첫 번째 :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창35:1-8)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 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

세겜에서 야곱은 자신의 생애 가운데 가장 험악하고, 어두웠던 암흑기를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30년 전에 일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네가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하란을 떠나 고향에 오고자 할 때 하나님은 야곱이 어떤 행동을 먼저 해야 할 것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창31:13)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나님은 자신을 벧엘의 하나님이라고까지 말씀해 주셨지만 야곱은 어려운 문제들이 하나씩 하나씩 해결을 받자 하나님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세겜에서 10년 동안 잘 지내는 동안에 큰 어려움을 당하고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이 인간을 먼저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은 벧엘에서 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곳에 단을 쌓고 "엘벧엘"이라고 (7절) 불렀는데 이 뜻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집의 전능하신 하나님"인데 야곱은 실제로 하나님의 집을 세웠음을 의미하고 있는 말씀이고 이제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30년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도 수 많은 험악한 세월을 보내고 아픔을 당하고 난 후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명령은 세가지 였습니다.

1) 이방 신상을 버려라.
2) 자신을 정결케 하라.
3) 의복을 바꾸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야곱이 모든 가족들에게 명령한 것이었지만 이것은 곧 하나님이 야곱에게 명령한 것을 야곱이 가족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정이 얼마나 믿음에서 떠나 타락의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가족들은 야곱의 말에 순종하여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들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 앞에 내놓았고 야곱은 그 모든 것들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벧엘을 향해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야곱의 가족들이 행했던 세가지가 우리 가운데서도 이루어져야 만이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가는 자는 반드시 이 세가지가 이루어진 후에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이 세가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리 벧엘로 올라간다 할지라도 헛수고만 할뿐입니다.

세겜에서 야곱이 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하나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예배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배였습니다. 지금 세겜에서 드린 예배에는 지금 같은 세가지 행함이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모든 예배는 벧엘로 올라가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예배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가지가 우선적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반드시

1) 모든 이방 신상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상들을 섬기고 있는 모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자신이 우상을 섬기고 있는지 모르고 신앙 생활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날 가장 무서운 우상은 무엇입니까 ? 돌부처나 어떤 형상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돈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딤후3:2) 라고 말하고 있듯이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있고 돈을 너무나 끔찍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이 많이 있는 것이 죄가 아니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가지고 벧엘로 올라가서 드린 예배는 올바른 예배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오직 예수 한 분 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될 것입니다.

2)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자신을 정결케 하는 것은 곧 나의 죄를 철저히??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만이 축복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가 어떻게 깨끗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곧 예수의 피로 만이 깨끗케 될 수 있습니다. (히9:14)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것은 곧 모든 예배에는 예수의 보혈이 있어야 만이 하나님이 예배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골로새거 1:20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의 피를 의지하고 그 피로 나의 더러운 죄를 모두 씻고 하나님 앞에 드린 예배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욜2:13절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철저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정결케 한자에게 벧엘의 축복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3) 의복을 바꾸어 입어야 합니다.

의복은 곧 행위를 뜻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에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는 말씀에서 행실이 영적으로 의복이 된다는 비밀을 요한을 통해 알려 주셨습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었다는 것은 옛 생활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살아가겠다는 의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는데 그것은 곧 너희가 이제 죄지은 모습으로 살지 말고 새롭게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3:14절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고 권고합니다.

로마서 13:12절에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생활이 바꾸어지지 않는 자연인 상태에서 아무리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헛수고만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하시고 권고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습니다. 결국 불순정하는 생활이 하나도 바꾸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 무수한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예배를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차지도 덥지 아니한 상태이기에 토하여 내리라고 하셨고,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1:11-13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이사야 13절 이후에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신다고 하셨습니까? 그것은 곧 바꾸어진 너희의 생활 모습이라고 하셨습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는 회개로 변화된 모습을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1:16-17절에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고 하셨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대개혁을 이루고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가정에 대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상이 교회와 가정 속에서 떠나야 하고 어찌할꼬 하는 회개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세상 사람들 입에서 조롱이 아닌 칭찬으로 바꾸어지는 모습을 가지고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예배가 드려질 때 벧엘의 역사가 이 땅위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 벧엘에 올라간 야곱이 다시 받은 이름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창세기 35:9-15절을 봅시다. 교독합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 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 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할렐루야!

야곱이 처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것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 한 후에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명예스러운 이름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이 벧엘에서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은 야곱의 신앙이 다시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이름 속에는 "엘"이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하는 이름이 들어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확신을 11-12절에서 하고 계시는데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이것은 곧 하나님의 언약이 이제 야곱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세겜에서 드린 예배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없었지만 벧엘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9절에 보면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밧단아람"이 어디입니까? 라반이 있는 하란인데 야곱이 지금 막 그 하란에서 돌아온 것처럼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야곱이 숙곳과 세겜에서 약 10년 동안 보낸 세월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을 떠나 타락한 인생을 살아온 야곱의 10년의 세월을 하나님을 모두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진실로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아니하시고 용서해주십니다. 우리가 진실로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지나간 생활이 아무리 추하고 더럽다 할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할 때 십자가의 보혈로 사죄의 은총을 베푸사 다시 품에 안아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회개한 마음으로 자신을 정결케 하고,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우리가 잊어버렸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 야곱이 이스라엘 이름을 잊어버렸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잊고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다고 다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세 종류의 이름이 있습니다. 교인이 있고 성도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교인은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교회 뜰만 밟고 다니는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종교인들입니다. 이들은 교회에 큰 관심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영혼에도 깊은 관심이 없는 자들입니다. 물론 누구나 처음부터 교인으로 시작하지만 빨리 교인이라는 딱지를 벗어야 합니다.

성도는 교인보다는 조금 나은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인데 거룩해져 보려고 애쓰는 자들입니다. 열심히 예배에도 참석하고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온전히 그들의 삶이 예수보다는 자신들을 위한 쪽으로 신앙 생활하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 입니까? 헬라어로 "그리스도" 라는 말은 "기름부음 받은 자" 라는 의미인 것처럼 성도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오직 예수를 위해 살아가는 자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은 곳이 안디옥인데 예수님 부활 후 제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행11:26)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진실로 오늘날 교인들 즉 종교인들은 많지만 과연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습니다.오직 예수를 위해 살고자 하는 자들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볼 때 숙연한 마음을 가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기독교인들은 잊어버렸던 이름을 반드시 다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세상 곳곳에서 드러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빛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담대하게 나와서 회개하고 성령 충만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이름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 종교인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종교인은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는 자들입니다.

야곱이 받았던 새로운 이름 우리도 이 새해에 새로운 이름 받아서 하나님 자녀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사1:18-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죄악 속에 머물려 있는 상태로는 새롭게 거듭날 수 없습니다. 어떤 죄가 있다 할지라도 담대히 나와서 회개하고 예수의 피로 깨끗함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은 회개한 자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예수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알렉산더 대제 휘하에 알렉산더라는 졸병이 있었습니다. 형편없는 그의 생활로 말미암아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마구 더러워지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어느 날 예고 없이 졸병의 막사를 방문했습니다.

겁에 질려 경례를 하고 있는 졸병 알렉산더에게 "네가 알렉산더라지?"

"네 그렇습니다"

"내가 두 가지를 명령한다. 네 이름을 바꾸어라 바꾸기 싫거든 네 삶을 바꾸어라 그래서 그 이름의 오욕을 씻어라" 라고 호령했다고 합니다.

혹시 나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욕을 당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보시고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 헤브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창35:16-29)

"그들이 벧엘에서 발행하여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 길을 격한 곳에서 라헬이 임신하여 심히 신고하더니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말라 지금 그대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이스라엘이 다시 발행하여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레아의 소생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라헬의 소생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라헬의 여종 빌하의 소생은 단과 납달리요 레아의 여종 실바의 소생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야곱에 대한 내용은 사실상 여기서 끝나고 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헤브론까지 가서 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야곱은 사랑하는 세 사람의 죽음을 맞게 됩니다.

1) 첫 번째 사람이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입니다.(본문 8절)

드보라와 야곱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였을 것입니다. 야곱이 갓난아이였을 때 키워 주었고 돌보아 주었던 유모였습니다. 리브가는 죽으면서 사랑하는 아들 야곱에 대한 부탁을 유모 드보라에게 특별히 하였을 것입니다. 아마 야곱이 숙곳에 있을 때 드보라는 야곱에게 와서 함께 살았을 것입니다.

유모 드보라가 죽자 벧엘 알래 상수리나무에 묻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는 것을 지은 것을 볼 때 야곱에게 유모 드보라에게 어머니 다음으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알론바굿"은 "눈물을 흘리다" 뜻을 가진 것처럼 야곱은 유모의 죽음 앞에 애통해 했습니다.

2) 두 번째 사람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입니다.

야곱의 생애 중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라헬이었습니다. 라헬을 얼마나 사랑하였던지 종살이 7년을 수일 처럼 지냈다고 할 정도로 라헬을 사랑하였습니다. 또 한가지는 라헬이 낳은 요셉을 가장 사랑했다는 것을 볼 때 라헬에 대한 야곱의 사랑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고 맙니다. 야곱의 슬픔이 어떠했겠습니까? 유모도 잊고 라헬도 잊은 야곱에게 큰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한 소식을 듣고도 대노하고 무슨 일을 저지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의 믿음이 다시 한번 시험 당하는 모습입니다. 또 다시 옛날의 야곱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스라엘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했습니다.

그 증거되는 말씀이 라헬이 죽고 난 후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기록 되고 있고 르우벤의 간통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로 기록되고 (21-22절) 있는 것이 깊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젠 어떤 시련이 와도 믿음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헤브론을 향해 아비 이삭이 있는 곳까지 가는 모습을 봅니다.

3) 세 번째 사람은 아비 이삭의 죽음입니다.

180세에 이삭은 죽는데 그 죽음이 야곱을 보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이삭에게 그리고 야곱에게 전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열둘 아들을 데리고 헤브론에 들어왔고 하나님의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 졌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창28:14-15)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야곱이 마지막으로 정착한 헤브론이 어느 곳입니까 ? (창23: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아브라함이 정식으로 은 사백 세겔을 주고 샀던 땅입니다. 후에 헤브론은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되어 유다를 통치하던 곳이기도 합니다.(삼하5:5)

야곱이 열두 아들을 데리고 헤브론에 정착하므로 야곱의 대한 내용이 사실상 끝나게 되는데 이것은 이제 구속사의 역사가 야곱에게서 끝나고 야곱의 자식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끝까지 가야 할 목표인 헤브론은 어디입니까 ? 그 곳은 곧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야곱이 헤브론까지 즉, 다시 고향까지 돌아오기까지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30년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까? 30년 세월 동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온 것보다는 자신이 수단과 방법을 앞세우며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우리와 너무 같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야곱이 믿음을 떠나 살 때에도 하나님은 야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손해를 볼 것 같아도 믿음의 자녀들은 믿음으로 살아가야??합니다. 믿음의 자녀는 믿음으로 살지 아니할 때 어려움이 오고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내 능력이 아니고 바로 믿음입니다.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야곱의 믿음이 헤브론까지 오도록 하나님은 야곱은 연단하시고 훈련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할 때 하나님은 우리도 연단하시고 훈련을 시키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천국까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8:8절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믿는 자는 많은데 믿음있는 자를 보기 힘든 시대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저와 여러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헤브론에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들어간 야곱의 모습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켜 주고 있는지 이 귀한 비밀을 본문을 통해 깊이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열 둘 아들을 데리고 의기 양양하게 헤브론 성에 입성한 야곱의 모습이 우리들이 이 다음에 천국에 들어가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결론을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그동안 창세기 27장부터 35장까지 야곱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펴 보았습니다. 성경은 야곱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의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져 가고 있는 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시면서 택함받은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칠십년 이상 살아온 고향을 하루 아침에 떠나면서 그것도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고향을 떠날 때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 ? 그러한 야곱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들에서 돌베게를 하고 잠을 잔 야곱을 찾아오셔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네가 지켜주리라 그리고 너는 복을 받아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리라"

야곱이 고향을 떠날 때 나이 77세 였고, 하란에서 20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고향에 돌아올 때 97세의 노구의 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거부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 야곱은 그렇게 걱정했던 형 에서와의 문제도 조용히 해결되자 그만 야곱은 세겜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믿음을 떠난 인생을 살았습니다.

10년 동안 야곱의 자식들과 가정은 말 할 수 없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딸이 강간당하고 아들들은 살인자가 되고 도독놈들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그대로 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원수 마귀에게 노리개 감이 되고 있는 야곱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원수 마귀의 종으로, 사망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내가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아담과 화와가 죄를 범하고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찾지 않으셨습니까?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죄인된 인간이 스스로 절대 하나님을 먼저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먼저 사랑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는 법은 인류 역사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악한 사울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찾아 오셔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고 사울을 회개시키고, 사도 바울로 삼아주셨습니다.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인된 모습으로 있을 때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고 그 분은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회개시키셨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이 사실을 깨달은 나이가 약107세 되던 해였던 것 같습니다. 야곱은 이제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담대히 일어나 하나님께 서원했던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세겜에서 10년 동안 살면서 그 많은 재산으로 단단한 기반을 잡았을 것인데 야곱은 그런 것이 다 부질없는 것들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믿음으로 살리라" 다짐하면서 모든 식구들을 데리고 벧엘로 올라 간 것입니다. 그러한 야곱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이름을 다시 주시면서 다시 약속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35:11절에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는 약속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요. 얼마나 귀한 은총입니까?

헤브론에 들어간 야곱은 이삭 아버지를 만나서 함께 살다가 이삭이 180살에 죽었다고 했는데 야곱의 헤브론에 들어갈 때 야곱의 나이는 107살였으므로 이삭의 나이는 167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 아비를 모시고 13년을 살았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13년 동안 믿음의 아비 이삭은 야곱에게 여호와의 신앙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창세기 46:27절 이후로도 야곱은 약10년을 더 헤브론에 살다가 애굽으로 오게 됨을 볼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야곱이 벧엘에 다시 올라간 이후로는 다시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장 4절에 보면 이삭은 자신이 곧 죽을 것 같아서 에서에게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서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이삭의 나이가 야곱이 고향을 떠날 때 약 77살이었으므로 이삭의 나이는 약 137살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때 이삭을 죽게 하지 아니하시고 180살까지 살도록 생명을 연장시켜 주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은 야곱이 이삭에게 와서 여호와의 신앙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 전까지 이삭의 생명을 주관하고 계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침 받은 야곱은 다시는 부끄러운 인생을 살지 아니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고 이삭에게 와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집은 교회입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예배만 드리고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신앙 생활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세상에 주저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서 교회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일주일에 한번 오는 선데이(주일) 종교인이 되지 마시고, 매일 매일 올라 와서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겜에서 드린 형식과 외식으로 드린 예배가 아닌 진실로 회개한 마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벧엘의 예배가 되어서 어두워져 가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떠한 것이 세상에 보여주며 살아가는 귀한 자들이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