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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요셉처럼 (창 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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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새해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영육간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가난하게 살아가는 한 나무꾼이 산속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마침 그 산속에 왕자가 사냥을 나왔다가 호랑이를 만나 위험한 지경에 놓인 것을 보았습니다. 이 나무꾼이 도끼를 들고 달려가 호랑이를 죽이고 왕자를 살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나무꾼을 왕궁으로 초청했습니다. 이 나무꾼이 왕 앞에 섰을 때 왕의 말이“왕자를 살려준 은인인데 무슨 보답을 하면 좋겠느냐 원하는 대로 말하라.”고 했습니다. 이때 가난한 나무꾼은 말하기를“아무 것도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임금님께서 저희 집에 한번만 행차해 주신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청년이 왕궁에서 돌아오자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서 임금님이 무슨 상을 주시더냐고 궁금해 하며 물었습니다. 아무 것도 원치 않고 임금님께서 한번만 우리 집에 다녀가시라는 부탁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바보 같은 사람이라며 흉을 보았습니다. 이런 기회가 어떤 기회인데, 많은 돈을 상급으로 내려 달라고 하지 그랬냐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뒤 왕궁에서 신하 몇 사람이 임금님의 행차를 위해 사전 답사를 나왔습니다. 길이 좁고 집은 움막이라 이러한 곳에 왕이 머물 수 없다며 입구의 논밭을 사서 길을 넓히고 새로운 큰 집을 잘 지었습니다. 그 후 궁중 요리사가 와서 음식을 준비하고 그 뒤 임금님께서 행차를 했습니다. 임금님이 직접 와서 그 가정의 형편을 다 알아본 후 많은 논과 밭을 상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이 나무꾼의 지혜로움을 귀히 여겨 이 청년을 궁궐로 데리고 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상으로 돈을 요구하지 않았느냐 라고 했지만 청년은 임금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길 원했습니다. 그 결과 먹고 사는 물질 문제는 저절로 해결 되었고, 왕궁에서 살아가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본문인 창세기 39장~50장은 야곱의 열한째 아들 요셉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열형들의 미움과 배신으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온갖 고생과 서러움을 겪었으나 훗날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본문 2절의 말씀에“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기 되어...”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림 받았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승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해주시길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며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수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기보다 내 욕구에 따라 내 필요를 채워 주시길 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삶의 지혜가 아닙니다. 그렇게 요구한다 하여 얻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모든 것 다 이루어집니다. 천하 만물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함께 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해답을 요셉의 삶 속에서 그 지혜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크신 능력을 힘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또한 범죄하여 영원한 멸망에 처한 우리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을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 귀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총을 힘입게 됩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며 살아갔습니다. 요셉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17세 소년의 나이에 형들의 배신으로 아버지마저 생이별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부잣집 아들이 노예가 되었습니다. 대가족의 열한째 아들이 고아처럼 낯선 외국에 버려졌습니다. 그래도 요셉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하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의지한 요셉의 깊은 믿음이 창세기 45:4-5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판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애굽에 팔려간 요셉이 그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에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이 흉년을 맞아 양식을 구하고자 애굽에 와서 요셉 앞에 섰을 때에 한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의 삶 속에 있어지는 모든 일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형들의 배신으로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 이로 이해 겪게 되는 천신만고의 삶, 이 소용돌이치는 기막힌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숨은 계획이 있음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인 답게 곧게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어려운 날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서러움의 날도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의 날도 있습니다. 그러한 날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삶에 지쳐 쓰러질 때에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이 있습니다. 승리의 길이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에 대하여 박두진 시인은 이러한 시를 썼습니다.

(믿음 지키기)
무너지지 말아라.
해가 솟아도 해가 빠져도 무너지지 말아라.
달이 떠도 달이 빠져도 무너지지 말아라.
별들이 펑펑 다 쏟아져도 무너지지 말아라.
온 땅 위에 꽃이란 꽃들이 일제히 다 떨어져도 무너지지 말아라.
새란 새들이 다 슬프게 울어도 무너지지 말아라.
늑대, 사자, 여우, 칡, 범, 맹수란 맹수가 다 몰려와도 무너지지 말아라.
가도 가도 끝이 없어도 무너지지 말아라.
불볕 쩔쩔 황사바람, 천둥번개, 소낙비 풍풍, 폭설, 우박
진눈개비가 쳐도 무너지지 말아라.
눈물의 폭포 피의 장강에도 무너지지 말아라.
너 자신의 영혼의 고독 해일로 덮치는 절망과 불안
죽음에 이르는 허무의 사다리에서도 무너지지 말아라.
너여, 너여 진실로 말씀이시며 승리이시며 영원이신 새 영원
뜨겁고 그 진하신 피와, 하늘 빛 푸른 눈물,
사랑이신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나니.
(박두진의 “폭양에 무름 꿇고” 中에서)

마치 요셉의 삶을 두고 지은 시 같습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믿음은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얻게 되고 말씀을 들으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롬 10:17). 믿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통로입니다.

2. 하나님은 소망의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요셉의 삶은 어두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형들의 뜻하지 않은 배신, 가족과의 이별로 인해 겪어야 하는 외로움, 노예의 서러움, 죄인 아닌 죄인의 억울함 등 그의 앞에 희망이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의 마음속에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7:1-11에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심어준 꿈이 있었습니다. 열두 형제가 밭에서 단을 묶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제들의 단은 요셉의 단 곁에 둘러서서 절하는 꿈, 또한 열 한 별과 해와 달이 요셉에게 절을 하는 꿈을 주셨습니다. 훗날 그에게 영광된 날이 있으리라는 꿈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꿈으로 또는 음성으로, 때로는 천사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장사지낸 후 3일 만에 살아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승천 후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교회가 세워 졌습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에 오셔서 역사하십니다. 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의 특성은 언제나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꿈을 먹고 삽니다. 꿈이 있는 곳에 용기가 있고 삶의 의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꿈은 승리의 원동력이 됩니다.

1858년 뉴욕의 한 가정에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습니다. 시력도 극도로 나빴습니다. 천식으로 인한 호흡곤란 때문에 앞에 있는 촛불을 끌힘도 없었습니다. 가까스로 생명을 연장해가고 있었습니다. 열한 살이 되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란다. 네가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믿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와 함께 하신다면 오히려 네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진실로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수 있단다.” 라는 말로 소망을 심었습니다. 이 어린이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드디어 23세 되던 해에 뉴욕 주를 대표하는 의회 의원이 됐습니다. 그 후 뉴욕 주 지사가 되었고, 부통령이 되었고, 드디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06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데오로르 루즈벨트 입니다. 장애아들로 하여금 이토록 위대한 삶을 살아가도록 한 것은 아버지께서 심어준 꿈 즉 소망이었습니다.

낙심과 교만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나는 마음 밭의 잡초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불신앙의 열매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는 일이 잘되면 교만하고 잘못되면 낙심합니다. 이처럼 낙심과 교만은 사탄이 우리 마음에 심어놓은 마음 밭의 잡초 입니다. 험한 세파에 시달리면서 마음에 낙심이 될 때마다 어느 성도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기를“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11)했습니다.

3. 하나님은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본문 4절에“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하셨고, 6절에는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요셉이 주인에게 전폭적인 신임과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노예가 주인집 총무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농사짓는 농기구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것이 노예의 처지였습니다. 당시 농기구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움직이지 않는 농기구로 괭이나 삽, 쟁기 같은 도구 입니다. 둘째, 움직이는 농기구로 소나 말이 있었습니다. 셋째로, 말하는 농기구로 노예가 있었습니다. 노예에게는 인권이나 생명의 존엄성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람 요셉이 주인집 총무가 되었고 훗날 당시 최고의 문명국인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았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성실한 삶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이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를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4-15)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본이 되는 착한 삶을 살아가므로, 삶을 통해 주위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도 함께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기독교 초기 성도들의 삶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 2:47) 입술로 복음을 전하며, 삶을 통해 본이 되므로 하나님이 역사하셨고 이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도리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본이 되지 못하므로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요셉의 모습에 대하여“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요셉의 외모에서 풍기는 인품이 모두에게 호감이 간다는 뜻입니다. 얼굴의 미모만 가리키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얼굴이 잘생겨서 처음에 호감을 주는 사람과의 교제는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첫눈에 반하는 사람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좋아지는 사람이 더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겉 사람은 내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대로 받는 것입니다. 내가 고칠 수도 없습니다. 요즘은 성형의술이 발달되어 외모도 많이 고치는 것 같은데 그보다 속사람을 고치고자 노력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속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갈고 닦으면 얼마든지 아름답고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권면하시기를“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베드로전서 3:3)하셨습니다.

요셉은 겉 사람 못지않게 속사람이 준수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러한 사람과 하나님은 함께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처럼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다윗이 그렇고,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만약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의 인격의 됨됨이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성경에 기록하시기를“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날이 더해갈 수록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미움을 받는다면 이는 좋은 일이 아닙니다. 특수한 사정 때문에 하나님께 사랑을 받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미움을 받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자세한 내용은 삭제하고 핵심 줄거리만 기록해 놓았습니다. 자세히 기록한다면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노예의 신분으로 주인집 총무가 되어 가정살림 전체를 맡았다는 것에 대해 어떠한 자세로 일했을까 하는 것은 상식선에 의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요셉이 게을렀다면, 만약 요셉이 주인의 눈치만 살피면서 자신의 안일만 찾았다면 주인집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총무가 될 수 있었을까? 또한 만약 요셉이 주인 몰래 거짓으로 재산을 빼돌렸다면 그래도 주인집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총무가 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신분이 비록 노예였지만 그 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성실하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주인의 눈치를 살피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을 속이면서 일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요셉은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을 인정받아서 보디발 장관 집의 모든 것을 맡아 관리했습니다. 그에게 일을 맡기면 빈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맡기면 확실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직장 없이 해매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일하지 않고 월급날만 기다리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은 직장인의 삶의 자세에 대해 말씀하시기를“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미움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6-7)하셨습니다.

일본 역사상 가장출세한 사람으로 도요도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6-1598)를 곱습니다. 그는 빈민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전국시대 영주인 오다 노부다가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맡은 일은 신발지기였습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신발을 지키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제일가는 신발 지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이렇게 생각하고 제일가는 신발지기가 되려고 노력하던 중, 어느 추운 겨울날 양주인 노부나가의 신발을 품에 끼고 몸으로 덥혀 놓았습니다. 그 정성이 노부나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놈은 쓸만한 하인이구나. 그렇다면 이번에는 말 지기를 시켜 보자.” 신발지기에서 말 지기로 승진한 히데요시는 기쁜 마음으로“아무도 할 수 없는 훌륭한 말 지기가 되어야지.”하고 말과 함께 잠자리를 같이 했습니다.“여봐라. 누구 없느냐? 말을 끌어내라.”한 밤중이라도 노부나가의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달려 나왔습니다.“네, 히데요시가 말을 대령했습니다.”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이 손질이 잘 되어 있었고 수족처럼 움직이는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좋다. 이번에는 회계책임을 맡아 보거라!”이렇게 말단의 신발지기로 시작한 히데요시는 말 지기, 회계책임자를 거쳐 마침내 일본 전국을 통일한 최고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이가 우리에게는 호감이 가지 않는 임진외란을 일으킨 장본인 입니다. 하지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삶의 자세는 본 받을 만 합니다.

노예의 신분에서 장관의 총무가 된 요셉의 삶이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영광된 날이 옵니다. 그러나 맡은 일을 하찮게 여기고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는 사람이 성공한 예는 없습니다. 일을 맡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책임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감당하되 끝까지 감당하는 더욱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부하시되“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시록 2:10)하셨습니다. 충성하되 사력을 다하라, 충성하되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변함없이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위해 생명의 면류관을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유학시절, 학비에 보태기 위해 한 저택의 청소부로 일을 했습니다. 그 집에는 청소하는 사람이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안창호 청년은 막대기로 해도 될 일을 장갑을 끼고 손으로 구석구석까지 깨끗이 닦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주인이 처음에는“저 청년이 내게 신임을 얻고자 저렇게 하는데 며칠만 지나면 저 사람도 다른 사람처럼 막대기로 일을 하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그는 여전했습니다. 이 성실한 청년의 태도에 감동된 주인은 다름 사람보다 월급을 더 주었다고 합니다. 삼년 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 주인이 안창호 청년에게 하는 말이“자네는 장차 자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큰일을 할 사람으로 믿네 자네가 한국 사람이라 했지, 자네가 떠난 그 자리에 나는 또 한국 사람을 찾아 그 일을 맡겨야 겠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주인의 예견대로 훗날 안창호는 교회의 장로로, 독립운동가로, 교육가로 활약하다가 투옥되어 감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민족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처럼 성실한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말이 아닌 삶에 있어 본이 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환경을 탓하지 아니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과 함께 하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복된 삶의 자세가 우리의 삶이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크게 복을 주시는 아름다운 삶이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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