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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새 마음을 주소서 (겔 11: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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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또 한해가 흘러가고 또 한해가 왔습니다.
  참으로 시간은 붙들어 맬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습니다. 아주 멀리 있는 것 같았던 어떤 시간들이 어느새 우리의 눈앞을 번개처럼 스쳐지나가 버렸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공장에 도둑이 들어와 많은 시계를 훔쳐갔습니다. 이것을 처음 발견한 직원이 경찰에 이렇게 연락했습니다.
  "오늘 새벽 도둑이 우리 시간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직원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시계'를 '시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시간도 시계처럼 도둑맞을 수 있음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시간 속에 살아갑니다.
  어떤 글에서 “오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오늘”이란 어제 죽음의 문턱에서 “하루만 더 살 수 없겠느냐?” 고 안타깝게 부르짖으며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그렇게 애원하며 사모하였던 그 “내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나에게 오늘이 있음에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내일이 오늘이 되고 오늘이 어제가 되는 시간의 경점 하나 하나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따지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캘린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지난해의 달력을 내리고 새해의 달력을 걸었습니다.

  새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싶고 묻어버리고 싶은 과거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상처들을 하나로 묶어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에 뛰어 보내고 새로운 맘 가다듬어 꿈과 희망을 심고 싶어서 아마도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라고 이름하는가 봅니다. 그러나 새해라고 이름하여 새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살 더 먹는 나이와 달력의 년도가 2006년으로 바뀌었을 뿐 하늘도 땅도 흐르는 시간도,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서 새해가 될 수도 있고 여전히 묶은 과거에 매여 있는 사람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무엇인가 달라지리라는 기대를 갖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새해가 되었어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은 마음부터 바뀝니다.

  새로운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 사람의 인격의 모습이며 신앙의 틀이기 때문에 굳고 완고한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받을 자들에게는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라고 본문에서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의 변화는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새해를 맞으려면 마음에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는 롬12:2절의 말씀처럼 변화 받은 마음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감격하게 할 수 있는 삶이 나오고 그러한 마음에 하나님은 은혜를 더하시고 복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해 달력을 100번을 다시 건다고 해도 우리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클레멘트스톤이란 사람은 말하기를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문학가 ‘빠삐니’는 말하기를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마음이 중요합니까? 

  1. 마음은 생명을 담는 그릇입니다.
  성경에서 마음은 사람의 생명을 담고 있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잠 4:23에도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서 인간 생명의 근원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곳이 마음입니다. 생명의 불꽃이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음이 밝아야 합니다. 마음이 어두워지면 생명도 어두워집니다.
 
  2. 마음은 생각을 담는 그릇입니다.
  왕상3: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세 지혜를 주실 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지혜가 머리에 임하지 않고 마음에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머리로 굴리는 지혜는 잔꾀라고 합니다.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머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임하는 지혜는 슬기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생각을 담는 놀라운 그릇입니다. 
  잠언 23:7절에 보면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마음에 담고 있느냐에 따라 어떠한 인간이 되느냐가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 4:6-7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마음과 그 안에 있는 생각을 지켜주실 때 염려가 사라지고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3. 마음은 믿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롬 10:10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이 믿음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어떤 믿음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을 믿음을 담고 있는가 하면 멸망할 믿음을 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라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반란군이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고요한 밤하늘을 가르며 유성 하나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누군가가  '저건 신라가 망할 징조야!'라고 말을 퍼뜨렸습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반란군 진영에서는 사기가 충천했고, 정부군 진영에서는 사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정부군의 총사령관이었던 김유신은 이대로 나가다가는 패배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뭔가 묘안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궁리 끝에 김유신은 연에 인형을 매달고 그 인형에 불을 붙인 후 하늘로 날려 올렸습니다. 멀리서 보면 불덩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이었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신라의 국운이 멀리 멀리 뻗칠 징조야!'
  정부군의 진지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상대적으로 반란군의 진지에서는 풀이 꺾였습니다. 이리하여 정부군은 무난히 반란군을 진압하고 통일 신라의 초석을 닦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음에 어떤 믿음이 있느냐?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면 믿음이란 이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도 언제나 그들의 마음에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이 있나 없나를 보셨습니다.
  마 9:22절에서는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병 고침을 원하여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즉시 나음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마9:2절과 막2:5절 그리고 눅5:20절에서 침상에 눕혀 메고 온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은 믿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담으면 할 수 있습니다.
  못한다는 믿음을 담으면 그 믿음대로 안 됩니다.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담으면 나을 수 있습니다.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믿음을 담으면 그 믿음대로 죽고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믿음대로 축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중요합니다.
  축복을 받을 사람은 먼저 마음이 복 받을 마음으로 변합니다.
  삼상 10:9절에 보면 무명 청년 사울이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복이 임할 때 하나님이 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오늘 새해 첫 주일이 된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실 새 마음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일치된 마음입니다.
  겔11:19절의 말씀을 봅시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하나님이 일치된 마음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무엇 보다도 금년에 우리 나라와 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일치된 마음인 것 같습니다. 정치가들의 마음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국민들의 마음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부안 방폐장 문제를 보십시오.  한쪽에서는 찬성하고 한쪽에서는 목숨걸고 반대하고 그러는 마음이 일치한 다른 곳에서 가져가 버렸습니다. 
  새만금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가 안되니 법원이 나섰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구역과 모임의 회장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구심점은 개인의 이익이나 자기 속한 모임의 이익이 아닙니다. 교회 전체의 이익이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익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하여 섬기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럴 때 일치가 이루어집니다.

  두 번째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인가에 다 찔려서 상처투성이의 마음들입니다.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하여도 바짝 긴장하여 경계하고 과잉 반응합니다. 혹시 누가 내게 손해를 끼치지 않나 해서 경계합니다.
  굳은 마음에서 부드러운 마음을 새 마음으로 받읍시다. 온유한 마음,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빌 2:5절에서 바울은 우리안에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교훈합니다.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고 마11:29절에서는 주님이 직접 자신의 마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온유한 마음에 쉼이 있습니다.
  민 12:3절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유한 사람은 땅을 차지합니다. 복을 받습니다. 시 37:11절을 보십시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하였고 마5:5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 말씀을 인용하여 설교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결국 새 마음은 주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새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겔 36:26절에 보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라고 했습니다. 본문 겔 11:19절에서도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 라고 했습니다.
  성령 받아야 새 마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성령님이여 오셔서 내 마음에 새 마음을 주소서 라고 기도합시다.

  그렇습니다.

  새해에는 새 마음을 받읍시다.
  ① 일치한 마음입니다.
  ②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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