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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진실게임 (마 1: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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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진실게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가짜와 진짜를 가려내는 프로입니다. 다 진짜처럼 만들어 놓고 가짜를 하나 골라내고, 반대로 다 가짜처럼 구성해 놓고 진짜를 가려내는 아주 독특한 프로입니다. 이것을 이름하여 진실게임이라 했는데, ‘진실을 게임 한다’는 아주 야릇한 취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는 이 프로를 보면서 이런 것은 한국에서나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프로가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혹 있더라도 인기를 끌 수 있는 프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양 사람들의 문화 속에서는 진실을 게임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어쩌면 이런 프로가 한국에서 가능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는 오래 전부터 가짜가 진짜처럼, 진짜가 가짜처럼 둔갑하고, 어떤 일에 진실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배경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황우석 교수가 기자회견을 하고, 바로 이어서 미즈메디병원의 노성일 이사장이 기자회견을 하자 대부분의 신문이 진실에 대한 판별로 머리기사를 실었습니다. 어느 잡지는 아예 타이틀을 ‘진실게임’이라고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두 사람이 아주 다른 의견을 공적으로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용을 떠나서 분명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진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주간동안 국민들이 많은 혼란 속에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3일 서울대의 조사위원회가 중간발표를 하면서 황우석 교수의 논문은 실수가 아니라 조작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더 조사를 하겠지만 나머지 대립된 주장들도 조만 간에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지금 온 국민이 황우석 교수에게 실망과 충격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도 진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논문을 조작하고, 허위로 작성하여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한국민의 정직하지 못함이 이번 일로 온 세계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박힌 것이 이번에 드러나 우리 모두를 각성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고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기에, 지금부터 진실하고 정직하면 늦지 않다고 봅니다.

  여러분, 진실은 결코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말하면 그것은 다시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또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시대와 역사가 진실이 왜곡되고 통하지 않을 때 바로 그때가 세상의 끝입니다. 진실이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가 더 정직하고, 더 진실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지금까지도 진실을 게임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이 밝히고, 사람들의 증언이 있고, 분명한 사건이 증거로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한 진실게임은 사람들에 의해 지금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성탄에 관한 진실게임도 있습니다. 성탄에 대해 믿지 못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탄에 오류를 주장합니다. 오늘 그것을 짚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마음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존재입니다. 아마 성탄에 관한 논쟁가운데 이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의문시 되어왔던 부분입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이 땅에 태어났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2000년 전에 존재한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지금보다도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승천하신 이후, 가장 큰 관심거리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기독교가 형성될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지도 않은 예수님을 가상으로 만들어 그분이 탄생하고, 말씀하고, 죽으시고, 부활하고, 승천했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는 당시 어떤 사람보다도 유대인들이 의문을 던졌습니다. 그것이 점점 이방세계까지 번져 예수님이 실존의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으로 진실을 게임하며 기독교와 제자들을 궁지로 몰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특이 이런 유대인에게 예수님이 실존의 인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마태복음이 쓰여졌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을 겨냥하여 그들을 설득하려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성탄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태복음 처음에 족보로 시작됩니다. 17절에 보면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계보가 이어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를 민족의 조상으로 존경합니다. 그들은 다윗을 위대한 왕으로 인정합니다. 주님은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것을 족보를 통해 분명히 밝혀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실존의 인물이라는 것에 대한 논쟁은 그 이후에도 종종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게임으로 흔들어 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 예수님은 실존의 인물입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역사가 알려줍니다.

  역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BC’와 ‘AD’로 나눕니다. ‘기원전과 기원후’의 분기점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BC라는 말은 ‘Before Christ’ 즉,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AD는 라틴어로 ‘Anno Domini’라는 말의 약자로서 이 말은 ‘주님의 해’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탄생한 해라는 말로서 바로 그때부터 기원 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역사도 주님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주님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고, 신화에서나 나오는 인물이 아닙니다. 실제의 인물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주님의 탄생이 실제이고, 그분의 말씀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분의 죽음도, 부활도, 승천도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입니다. 누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가상의 스토리가 아니라 실제입니다. 성탄의 아침에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바로 이런 실존의 인물인 것을 굳게 믿으시고, 또한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이 실제라는 것을 믿으시면서 신앙생활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동정녀탄생입니다. 성탄에 관한 진실게임은 주님이 실존의 인물이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주님이 실존의 인물인 것은 인정하겠는데 그분이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옛날보다 오히려 과학이 발달한 지금 이 시대에 더 의문을 갖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본문은 분명한 진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동정녀탄생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였던 마리아와 요셉은 정혼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일은 오직 성령으로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18절에 이렇게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보십시오. 이 일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일은 성령으로 풀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성이나 과학으로 풀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이성으로 풀려고 했던 부분을 이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였던 요셉은 이 사실을 알고 가만히 끊으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이성적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분명 자기와 결혼한 상태가 아닌데 아이를 가졌으니 누군가의 아이라고 성급히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가 신앙이 있고, 인격이 된 사람이기에 사람들에게 나팔을 불거나, 마리아를 혼내지 않고 여기서 끝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의 인격이나 신앙을 칭찬하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것을 알려주는 것은 요셉도, 당사자인 요셉조차도 이 문제를 이성으로 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풀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와서 다시 못을 박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동정녀탄생은 기독교역사이래, 가장 큰 논쟁의 중심거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진실게임 하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고,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이런 일에 대하여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잘 믿게 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왜 동정녀 탄생으로 혼란스럽게 하는 것일까요? 중요한 2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신 하나님의 말씀, 그 권위의 말씀과 예언을 성취해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22절 이하에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바로 이 약속과 예언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은 죄가 없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 이것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한결같으신 분이시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모든 인간이 모태에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나는데 우리와 똑같으신 주님은 죄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탄생하신 것입니다.

  동정녀의 탄생은 분명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신비로운 일입니다. 이것은 과학으로 풀 일이 아니라 성령으로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동정녀의 탄생을 믿는 것은 알아서, 배워서, 증명이 되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증명이 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잘 믿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우리는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서 알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내 마음과 인생의 중심에 모시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 되심입니다. 본문에서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면서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의미 있게 소개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임마누’는 우리와 함께, ‘엘’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알려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요한복음에서 아주 자세히 알려줍니다. 요한복음은 마태복음과 달리 예수님의 기원을 탄생에 두지 않고 태초부터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신 가를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사람인 것과 동시에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4절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8장 58절에 보면 주님이 유대인들과 대화하는 중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예수님의 기원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입니다. 태초요,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사람이지만,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바울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예수님에 관한 진실게임 가운데 역사 안에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지금까지 끊임없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교회는 주님은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했습니다. 아무리 주님의 능력을 제한시키려고 해도, 아무리 주님은 인간일 뿐이라고 해도,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역사가 증명하고, 바로 증명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이 가지신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주님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단순히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이라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인간이지만 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결사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나의 죄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왜 그분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이 말구유일까요? 만 왕의 왕이신 그분이 이 땅에 오시려면 호화로운 궁궐이야 하는데 왜 말구유입니까? 구유가 무엇입니까? 짐승의 여물통입니다. 세상의 어떤 부모도 사랑하는 아이를 구유에서 받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곳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그렇게 더러운 곳에 오셨을까요?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말구유는 주님이 이 세상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온 세상은 죄로 더럽혀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로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이 더러운 죄를 해결하기 위해 주님은 오셨습니다. 그분이 아니면 어떻게 죄를 해결 받고, 그분이 아니면 우리의 더러운 죄가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주님은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하기 위해, 나를 돕고,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약한 우리를 강하게 하고, 부족한 우리를 온전케 하고, 아픈 우리를 치료하기 위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주님은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의지할 때 힘이 생기고, 그분을 바라볼 때 용기를 갖고, 그분을 붙잡을 때, 내 인생의 성공과 승리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오늘 뜻깊은 날에 다시 한번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인생의 모든 난관과 문제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런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목회가 잘 안되어서 고민하는 중, 무심코 길을 가는데 한 무당이 춤을 추면서 사람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들여다보면서 놀랐고 더 초라한 자신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떠난 뒤에 자기가 목사인 것을 알리고 당신은 어쩌면 이렇게 성공하고, 나는 왜 안 되는 거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무당이 이런 의미 있는 말을 던졌습니다. ‘나는 가짜를 진짜처럼 하는데, 당신은 진짜를 가짜처럼 하기에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진리는 하나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진실입니다. 진실은 게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받아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혹 우리가 가짜를 진짜처럼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진짜를 가짜처럼 맥없이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이 세상에 유일한 진리로, 유일한 대안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존재한 것이 사실이고,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것이 사실이며,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그분 앞에 나아와, 그분의 탄생을 축하하고, 그분을 의지하면서 힘있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서해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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