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내가 너희 앞에 열린 문을 두었노라! (마 25:14-30)

  • 잡초 잡초
  • 276
  • 0

첨부 1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주일 예배 시간에 아주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담은 하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와를 보자마자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영어 성경으로 읽으면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와! 어디 갔다 이제 왔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여러분,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했겠습니까?"
그랬더니 성도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고를 게 있어야지요."

아직도 이것 저것 고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고를 게 없는 인생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한 남자만을 사랑하는 사람.  그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2006년 대망의 새해를 맞은 우리 모두들 위에 성삼위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새해의 첫 주일에 우리는 어느 사람의 말보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 올라갑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암울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성전 앞으로 나아갑니다.  거기에서 그는 환상 속에 아주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주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고, 연기로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뵙고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집에서 신령한 영의 눈으로 자신의 앞날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새해 첫 날, 첫 주일에 하나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집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성령께서 공급해 주시는 인생의 비전을 우리도 하나님의 집에서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가 본 비전으로 그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왔습니다.  그 비전은 그의 남은 인생을 놀랍게 지배해 갔습니다.  그 비전이 지칠 줄 모르는 신비한 힘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 비전이 위로부터 나는 놀라운 지혜를 주고 강하고 담대한 삶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전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 비전을 바라보는 날입니다.  2006년 이 한 해를 힘차게 끌고 갈 내 가정과 일터와 교회의 환상을 보는 날입니다.  2006년을 향한 나 자신의 꿈을 보고 예언을 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꿈과 환상과 비전을 바라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사야는 이 비전을 본 후에 이렇게 외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사야가 외쳤던 이 외침이 오늘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외침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초대교회를 보게 되면 당시에 예루살렘과 온 천하를 진동시키는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첫째가 성령 폭발의 사건입니다.  둘째는 은사의 폭발이고, 셋째는 전도의 폭발 내지는 간증의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이 폭발로 저들의 믿음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저들의 믿음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저들로 말미암아서 예루살렘과 온 천하에 비전과 꿈을 전하면서 모두가 다 좋아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2006년에는 우리들에게도 성령의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시간마다 때마다 성령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헌신과 사역을 통해서 은사의 폭발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축복을 전하는 간증 폭발이 우리들 안에서 크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금년에는 우리 모두에게서 뜨거운 믿음의 폭발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숙이 일어나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제발, 사랑하는 여러분.  시시하게 믿지 마십시오.  너절너절하게 믿지도 마십시오.  자기 변명을 가지고 믿으려고 하지도 마십시오.  자기 핑계와 자기 이유와 자기 상황을 가지고 예수를 믿으려고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언제까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방황하실 겁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위태위태한 그 종교놀이를 계속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정말로 하나님 되심을 믿으신다면 하나님께 내 인생의 전부를 맡겨버리십시오.  더 이상 발버둥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완전히 붙잡혀 보십시오.  그러면 기쁨과 평안이 충만할 것입니다.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은 복음 앞에서 자기 변명이 필요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의 뜨거운 폭발을 경험했던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서는 어떤 자기 핑계와 이유와 자기 상황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던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는 이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서도 강력한 성령의 폭발이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십시오.  날마다 시간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십시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면 육신의 성질만 사나워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십시오.  지금 이곳에 초대교회와 평양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기를 기도하십시오.
♬ "성령의 불로 성령의 불로 임하소서. 임하소서."♬

우리들에게서 은사의 폭발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각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는 사용할수록 더욱 빛이 납니다.  은사는 감당할수록 더 넘치는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나 은사를 감당하지 않으면 있던 은사도 없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에게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사의 폭발이 일어나야 합니다.  믿음의 폭발이 일어나야 합니다.  간증의 폭발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폭발만 터지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다 맡아서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것만은 분명하게 붙잡으십시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막혔던 기도가 터져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연약한 믿음이 더 강해져야만 합니다.  주를 간증하지 못하던 부끄럽고 닫힌 입술이 이제는 열려져야만 합니다.  소멸되었던 은사들이 폭발되는 역사가 내 안에서, 우리들 안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이 역사가 2006년 한 해 동안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으로 자기를 개혁하십시오.  사람이 육신을 꾸미는 것도 개혁입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도 개혁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라운 개혁은 하늘의 영에 의한 개혁입니다.  어느 날, 어느 시간에 갑자기 하늘의 거룩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내 안에 자기 개혁이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6년 이 한 해를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성령으로 자기를 개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강력한 성령의 폭발을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가 보여주듯이 성령의 폭발은 아무 곳에서나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곳에 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평양에서 일어났던 그 놀라운 부흥운동의 역사가 우리들에게 다시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사모하는 만큼만 받습니다.  많이 사모하면 많이 받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성령의 뜨거운 폭발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성령이여!  이 땅에 부어주셨던 놀라운 부흥을 다시 허락해 주옵소서!  지금 이곳에, 내 안에 성령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을 허락해 주옵소서!"

혼탁한 세상입니다.  유혹이 많은 세상입니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마다 때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내 안의 체질을 개혁해야만 합니다.  성령으로 개혁된 사람은 그 심령에 열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돈만 재산이 아닙니다.  지식만이 재산도 아닙니다.  활활 불타는 가슴도 재산입니다.  청년이 좋은 것은 저들에게는 불타는 가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불타는 열정의 사람은 무엇인가를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열정은 그 사람의 개성을 만듭니다.  열정은 더 큰 사랑을 이루게 합니다.  아십니까?  세상의 모든 기적은 열정이라는 열쇠로 열린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님에게서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사람이 좋은 말로만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애쓰는 노력과 땀과 그 모든 것들을 통하여 은혜를 받습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열정이 있는 사람은 그의 얼굴 표정부터 달라집니다.  근심 걱정으로 어둡고 답답하던 표정이 밝고 매력적이 됩니다.  무표정하던 얼굴이 활기차고 싱싱해집니다.  성령 충만하고 열정이 있는 사람은 생기가 넘치고 평안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안에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뜨거운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열정이 있어야 무슨 일이라도 일어납니다.  열정이 있어야 어떤 일이라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열정이 있어야 비전을 향해 생명 걸고 달려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성령으로 개혁시켜 주옵소서.  지금 이곳에 성령의 폭발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믿음의  폭발을 일으켜 주옵소서.  은사의 폭발을 일으켜 주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곳에 주의 성령이 임하여 큰 부흥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주의 성령이 임하시면 이 땅에는 반드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이 민족이 사는 유일한 길은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길입니다.

2006년에는 어떻게 될까?  꽁꽁 얼어붙은 경제는 회복될 것인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영적인 눈으로 볼 때에 허다한 어두움의 구름들이 2006년을 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바 말세에 일어날 수많은 어두움의 징조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 사는 여러분, 근심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캄캄한 어두움을 깨뜨릴 참 빛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처럼 거룩한 씨를 이 땅의 그루터기로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우리의 시작부터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꿈을 가지고 시작하십시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십시오.  시작하지 않고는 미래도 없습니다.  시작하지 않고는 결과도 없습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는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안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우리는 씨를 뿌리고,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2006년을 살아가면서 제발 자신의 힘과 지혜와 안목을 의지하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예레미야는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자기 생명을 조종할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알았다면 이렇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힘과 나의 지혜와 나의 안목과 나의 통찰력이 부족할 때마다 나의 걸음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 연약한 생명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는 끝없는 자기 신앙고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허물 많고 연약한 생명임을 고백하십시오.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무기력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의뢰하는 자의 두려움을 없게 하시고 힘과 노래와 구원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의뢰하고 부르짖는 자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은 나의 힘이 되십니다.  나의 방패가 되십니다.  나의 산성이 되십니다.  여호와 그분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결국 인생 최대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후원자가 되신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언제나 냉정하고 조건적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여기에 눈을 뜨지 못하면 신앙생활에 성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역사를 이루었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이 시간부터 하나님의 인도를 사모하고 열망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겠다는 강한 자기 도전을 하십시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인도는 언제나 조건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에 합한 자의 갈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자의 길을 축복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무조건 아무에게나 모든 사람들을 인도해 주지는 않으십니다.  오직 그 마음에 합한 자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도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하시기 때문에 시간마다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따르는 자를 인도하십니다.  소망의 기도를 따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국 하나님은 그 마음에 합한 자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의 성품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십시오.  여러분의 재물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십시오.  인생의 모든 태도에서 그 생각과 믿음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아주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던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적으로 볼 때에 지극히 적고 부족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서 두 가지의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이 2006년 새해를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을 향한 축복의 말씀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충성되고 신실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서 하신 말씀 가운데 첫째는,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 동일하게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  이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이 문은 기이한 문입니다.  이 문은 대사를 행하는 문입니다.  이 문은 하나님의 문입니다.  이 문은 축복의 문입니다.  하나님이 열어 놓으시면 인간은 절대로 닫을 수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내 앞에, 여러분들 앞에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의 문이 그 어느 해 보다도 크게 열린다고 하는 자신감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나와 여러분을 위해서 하늘의 문을 열어 두셨습니다.  하늘 문을 열어두시고 은혜의 빗줄기를 홍수같이 내려보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에는 더 많은 하늘의 능력을 덧입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 축복의 문을 열어 두셨습니다.  그래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서 하신 말씀 가운데 두 번째는,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 성전에는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야긴이라는 말은 굳건히 세운다는 말입니다.  보아스라는 말은 든든한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는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모두가 2006년 한해 동안에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역사 앞에 많은 기둥들이 계속 쓰임 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굳건하게 세워지는 기둥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둥들을 강하게 붙들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해보다도 감격 속에서 이 해를 시작해야 됩니다.  또 그 어느 해보다 자신감과 소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의 말씀은 주인이 먼길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서 소유를 맡기는 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주인은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두 번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세 번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너희에게 맡긴 내 소유의 달란트를 잘 활용하라고 했습니다.  돌아왔을 때에 거기에 대한 보고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2006년도 52주 365일이 전개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한 하나님 소유의 재산입니다.  사실 종의 신분에는 본래부터 소유가 없습니다.  주인의 소유를 맡았을 뿐입니다.  시간의 문제는 철저하게 주인의 것입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재산의 소유 앞에 속수무책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전혀 선택의 권한이 없습니다.  5개를 받았든, 2개를 받았든, 1개를 받았든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을 따라 행하는 일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왜?' 라고 항변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우리 인간들은 늘 공산당식 공평만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무조건 누구나 같아지기를 바라는 공평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평은 아닙니다.

가령, 이번에 수험생들이 다 수능시험을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열심히 밤을 새며 코피가 나도록 공부를 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매일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면서 놀기만 한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다같이 수고했다고 똑같이 100점을 주자고 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그 선생님은 문제입니다.  그 사회도 문제입니다.  그것은 공평의 기준이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불공평의 기준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각각 그 재능대로 주십니다.  어른과 아이의 할 일을 구별하여 주십니다.  남자와 여자의 일도 구별해 주십니다.  이 세상의 구조가, 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하도 묘해서 때로는 불공평한 것 같지만 그 속에 숨겨진 공평성이 있다고 하는 눈을 뜨고 이 해를 출발해야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현실로 출발하든, 내가 어떤 위치에서 출발을 하든 하나님은 정확하게 내 계산보다도, 내 능력보다도 더 공평하게 나를 출발시키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공의를 시인할 때에 더욱 큰 충성의 시작이 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직분을 받은 사람이든, 받지 못한 사람이든, 아니면 많은 분량의 직분을 받은 사람이든, 적은 분량의 직분을 받은 사람이든 중요한 것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말씀으로 더 충성되게 직분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게 주신 직분을 충성되게 감당하기 위해서 내 안에 은사의 폭발이 일어나야 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이제 여기에 셈하기 문제가 나옵니다.  오랜 시간의 공백을 두고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그 맡겼던 바를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도 1년 후에 주인께서 맡겼던 이 해를 계산하고 셈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맡긴 사람은 열 달란트를 만들었고, 두 달란트를 맡긴 사람도 네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란트를 맡긴 자입니다.  그는 그저 한 달란트를 덜렁덜렁 들고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영적인 눈으로 보아야 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얼마를 남겼느냐는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주인의 소유에 대한 충성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얼마나 신실하게 충성된 삶을 살았는가를 보십니다.  내가 받은 환경에서, 내가 받은 은혜에서 얼마나 질적인 충성의 문제가 나타났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들에게서 충성심과 진실성을 보십니다.  이것이 인정이 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물 붓듯이 축복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보다 아들 이삭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보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고 충성된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바칩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끊임없이 축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맡겨 주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맡겨진 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재능과 달란트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달란트,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도 별로 볼 품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도 인색하게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적은 재능을 가지고도 그것을 아주 유익하게 이웃들에게 기쁨을 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 땅에는 많이 있습니다.  적은 재물을 가지고서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오.  주인이 뭐라고 말합니까?  "작은 일에 충성하면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서 아주 작은 일에서도 진실되고 충성된 모습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충성된 종에게는 보너스가 있습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고, 많은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인 저도 그렇습니다.  성도들을 보면서 지극히 작은 일에 진실성을 가지고 헌신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갑니다.  남들이 하기 싫은 궂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특별히 여자 분들은 주방 신앙을 잘 눈여겨보면 그의 신앙됨됨이가 드러납니다.  아십니까?  뺀질거리고 빈둥거리면서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면 그 기업과 교회는 망합니다.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궂은 일에 먼저 손길이 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기 주인의 셈하기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의 문제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실 세 사람이 다 넉넉한 자본금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본전치기를 한 세 번째 종은 그래도 세상 눈으로 보면 못해도 본전은 했습니다.  주인에게서 받은 한 달란트를 잘라먹지는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렇게 야단칠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한 마디로 책망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래도 "게으른 종아!"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본전은 챙겼는데 어떻게 악한 종이라고 하셨을까요?  더구나 나중에는 무익한 종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본문을 보십시오.  한 달란트를 받은 무익한 종은 대뜸 주인에게 대듭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어떤 번역에서는 "인색하고 매정한 사람"이라고 했고, 또 다른 번역에서는 "지독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속뜻은 "주인의 손이 공평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주고, 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느냐며 자신의 잘못을 주인에게 돌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주인을 아주 비정한 폭군을 내 몰고 있습니다.  다른 두 종은 충성이 재산이었던 반면에 이 문제의 세 번째 종은 변명이 재산이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 변명쟁이, 불평쟁이 종이 "손해를 보면 어떻게 될까?"  "잘 안되면 어떻게 될까?"를 두려워하며 그 길고 긴 세월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안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아셔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하다가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엇인가를 시작하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십시오.  하려고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십니다.

만약에 성경 말씀이 이 부분을 고쳐 쓸 수 있다면 저는 이렇게 써보고 싶습니다.  세 번째 종이 "진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다가 손해를 보면 할 수 없지" 하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 했으나 다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주인 앞에서 "주인님, 죄송합니다.  원래 미련한 저를 알아보시고 한 달란트를 주셨는데 애를 썼지만 그만 다 날려버렸군요.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랬다면 주인은 아마도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의 것을 나누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익한 종은 벌이나 내리고 벼락이나 치는 분으로 처음부터 주인을 오해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의 끝없는 용서와 또 다른 기회를 주실 것을 믿으며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은 벌이나 주시고 벼락이나 치는 공포의 하나님이 아니라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오.  여기에서 주인은 운이 좋았다거나, 환경이 나빴다거나, 능력이 부족했다는 표현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결과를 미리 염려하고 겁을 먹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삶을 나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발과 과정에서 충성도를 통해 판단하시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결코 환경을 탓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마음이 없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생활이 쪼들려서 헌금을 못한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 안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헌금을 너무 강요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성령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맛사지하십시오.  절대로 내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완악한 마음, 그것은 저주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리기를 원하신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인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인색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복을 받기를 소망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염치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이 땅의 교회에는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앞에 열린 문을 열어두셨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금년에는 그 어느 해보다 신나게 출발하십시다.  충성스럽게 시작하십시다.  두려워하지 말고 시작하십시다.  기쁨과 감격과 축복과 칭찬과 더 많은 것을 맡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합시다.  이 2006년을 말입니다. (오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