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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예수가 어디 계시뇨?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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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조사기관에서 현대인들의 크리스마스에 관한 의식을 조사했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은 크리스마스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물음에 대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트리, 징글벨, 연말연시, 크리스마스카드가 순위에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성탄의 진정한 주인공인 예수는 몇번째였을까요? 놀랍게도 일곱번째였습니다.
성탄의 주인공이어야 할 그분,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그분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멀리 밀려나 버렸습니다.
예수에 대한 관심이 사람들에게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성탄은 예수님을 축하하기 위한 날이 아닙니다.
지금 북유럽에 위치한 핀란드 상공에서는 '에어트래픽', 즉 비행기 정체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넓은 하늘에 핀란드 행 항공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보기 드물게 하늘에서 비행기 정체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탄을 맞이해서 세계각국에서 핀란드의 외딴마을, 수도 헬싱키에서 무려 800Km나 떨어진 가상의 '산타마을'(인구3,500명)을 방문하기 위해서 전세기를 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에만 전 세계에서 무려 60만 명 이상이 산타마을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산타마을'은 가공의 마을입니다. 산타역시 상상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제 주객이 전도되어 베들레헴으로 가야 할 사람들이, 핀란드의 산타마을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에어트래픽현상까지 일으키면서 말입니다. 성탄의 주인공이 실제에 이 땅에 오셨던 예수로부터, 가공인물로 기획된 산타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번 성탄을 앞두고 미국 대통령인 부시는 세계의 유력인사 2만여명에게 성탄카드를 보냈습니다.
모두들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성탄카드를 받았으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카드를 펴본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의아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카드의 내용이 예수탄생을 축하하는 'Marry Christmas'카드가 아니라 그저 단순한 공휴일을 축하하는 'Holiday'카드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연말에 다가오는 축제의 하루,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서로 만나고, 인사하고, 선물주고 받고, 즐기는 공휴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날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Christ)와 예배(Mass)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의 원래 뜻은 그리스도께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를 찾아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면서, 동방박사들처럼 그분을 찾아가 그분에게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입니다.
이 크리스마스를 약자로 헬라어의 첫 자 X를 사용하여 X-mass라 표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날이 그야말로 X-mass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슨 날인지도 모르면서 즐기고, 그리고 죄짓는 날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 탄생하신 주인공 예수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늘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동방박사들이 처절하게 외쳤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동방 하늘에 어느 날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별 하나가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범상치 않게 여긴 몇몇의 박사들이 별을 따라 나섰습니다.
별을 보고 이동하던 이들은 예루살렘이라는 조그마한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에게 질문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즉 예수가 어디 있나요?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가 태어나신 때와 별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이상한 별이 나타난 순간, 예수님이 탄생하셨을까요? 아니면, 그 별이 베들레헴에 와서 말구유 위에 멈추었을 때, 그 순간 예수님이 탄생하셨을까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2절, 16절의 말씀이 이 질문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뇨?"(2절)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16절). 이렇게 볼 때, 적어도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왔을 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별이 나타난 그순간과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이 별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어둠을 물리칠 메시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별이 움직였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별이 박사들을 인도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별은 인도자 되신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메시야가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마2:3) 권력자들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상황을 인식하고 소동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에 그 누구도 베들레헴을 찾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거리는 남서쪽으로 겨우 7~8Km에 불과합니다.
생각만 있으면 단숨에 달려가서 확인할 수 있는 그곳으로 달려가는 자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헤롯왕과 예루살렘주민들만이 그랬을까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이 그들에게 묻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는가?" 그때 그들은 성경을 이리저리 찾아보고선 대답합니다.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2:5~6)
대제사장, 서기관 이들조차도 "예수가 어디 계시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합니다. 성경말씀은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탄생하신 예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실제로 태어나신 그분께 달려가서 경배하려는 마음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큽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야말로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에 대한 관심은 없습니다. 그분 앞에 나아와 경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가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바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예수는 어디 계시는가?
나는 그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가 어디 계시는가? 그분을 찾고, 그분을 만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만남을 통해서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마2:12)
여기에 '다른 길'은 '전혀 다른' 즉 '새 길'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별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별은 상징이고 예수님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약 2,500여개의 종교가 있습니다. 이 종교들은 모두 다 나름대로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500여개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구원을 받는다, 이 길로 가야한다, 이 길은 생명의 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일한 '새길'은 누구뿐인가요? 어느 길을 따라갈 때에 천국에 이르게 되는 가요? 예수님은 이 땅에 '새길'로 오셨습니다.
그분을 믿고 따라갈 때 생명의 새로운 길로 인도 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가 어디 계시는지, 그분을 찾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새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 예수를 만난 사람은 새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아기 예수를 만난 동방박사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모든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기 예수를 만난 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박사들이 지금까지는 무엇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걸음을 옮겼나요? 하늘의 별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또 어떤 때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 말을 쫓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잠시후, 그 모든 것은 눈앞에서 다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전혀 새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새길을 걸어간다는 말은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새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완전한 변화는 오직 예수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변화시켜 새 사람을 만들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자신의 예수는 어디 계시나요? 그 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 분께 경배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의 '새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을 만난 사람만 '새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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