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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사장의 위임식 (출 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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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사장의 임명-하나님이 선택하고 세우심.

제사장은 결코 사람의 선택에 맡기지 않으셨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세우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기셨다. 이것은 사람의 뜻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자들을 세우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들에게 제사장을 골라 뽑아 세우라고 하지 않으셨다.

누구를 선택하시는가? 인간적으로 이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들의 어떤 조건이나 자격을 따라 선택하심이 아니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되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직분은 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이다. 교회에서 세우는 직분이라고 함부로 해서는 않되는 것이다. 내 생각과 판단에 따라 받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하는 것이 아니다. 종종 우리는 이런 직분 때문에 시험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 좌지우지 하려고 하는 경우도 본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세우심을 믿고 철저하게 그 직분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그 목적과 뜻을 감당해야 한다.

2.제사장의 위임식-하나님 앞에 온전케 하기 위함

위임식은 세 단계로 구성된다. 물로 씻고, 거룩한 옷을 입히고, 기름을 머리에 부으라 하셨다. 왜 이런 절차를 거치게 하시는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1)인간의 연약함 때문이다. 그의 죄성을 씻어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제사장도 항상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죄를 먼저 물로 씻어야 하고 그 다음 화려하고 거룩한 제사장의 옷, 영광의 옷을 입고 또 그 죄성을 가려야 한다. 그리고 거룩한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구별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하는 것이다.

2)이렇게 하지 않으면 제사장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 헌신 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제사장도 인간이기 때문에 수없이 죄에 또 넘어지고 유혹을 받는다. 욕심이 눈을 가리기고 하고 정욕이 끌어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죄 문제를 다루는 이 제사장의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면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거룩하게 하며 하나님과의 만남을 회복시켜주는 일이 대단히 위태롭게 된다. 제사장의 영적상태나 감정의 기복에 따라서 오늘은 제사를 드리고 내일은 또 않 되는 상태가 된다면 하나님의 일이 사람에 의해서 좌,우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덮으시는 것이다.

목사가 기분에 따라서 감정에 따라서 예배를 드리고 않 드리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은 있을 수 없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점심 시간동안에 목사님 가정에서 목사님 부부간에 불화가 일어났고 그래서 주일 오후예배를 드리지 않은 일이 있었다. 너무도 황당함을 느끼며 성도들이 돌아갔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려고 준비하다가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심히 상하는 경우가 있다. 에이 오늘 기분이 너무 않좋다고 하면서 교회에 오지 않았다고 생각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은혜를 받아야 하는 연약한 인생이다. 그렇게 모자라고 문제투성이이고, 연약한 자이기 때문에 더욱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워져야 한다.

오전에 은혜를 받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마음이 상해서 오후예배를 드리지 않고 그냥 간다면 그것은 우리의 감정에 따라서 예배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어선 않 된다. 

목사도 매우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없이 부끄러운 죄를 범하고 더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시고 특별히 연약한 부분을 가려 주시기 때문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목사는 성도들 앞에 설 때마다 뒤에서는 얼마나 많은 부담과 스트레스를 양심적으로 신앙적으로 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또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목사의 설교와 삶을 비교해 보면서 이러쿵 저러쿵 말이 있을 수 있다. 목사는 자신의 설교한 대로 살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고 성도들이 볼 때 가증스럽고 위선적으로 보일수도 있다. 그럴 때 비판과 판단의 눈으로 보면 여러분이 큰 시험에 들고 목사도 힘들게 된다. 그 목사의 설교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래서 목사를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고 목사를 인간적인 연약함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돕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부족해서 어떤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대단히 겸손한 것 같지만 엄청난 불신이고 거역인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완벽해서 하는 것 아니다.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우리들은 모두 연약한 존재이다. 자신이 능력 있고 똑똑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런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의 사명은 철저히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해야 하는 것이다. 연약함을 느끼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이 사용하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예배를 인도 하기 전, 또 설교하기 전 목사가 강대상 뒤에 엎드려 무슨 기도를 하겠는가? 하나님 제가 설교를 잘 준비했습니다. 오늘 홈런 한번 치게 해 주세요. 그런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설교를 준비하고 마음에 쏙 드는 설교를 준비하고 나왔어도 여전히 두렵고 떨리는 것이요,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써주세요,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고, 성령님이 오셔서 친히 각 사람에게 감동을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할 것 밖에 없다. 목사가 잘나서 하는 사람이 없다. 요즈음에는 목사보다 훌륭한 사람 더 많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잘 알고, 능력 있는 사람 얼마든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세우신다. 철저하게 은혜로 하지 않으면 않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계속 진행시켜 나가기 위해서 제사장을 특별히 구별하고 위임식을 통하여 그의 연약함을 감싸주시고 가려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3)이런 위임식이 없으면 너도 나도 제사장이 되겠다고 그 일을 해 보겠다고 나서게 된다.

사람이 가장 해 보고 싶은 것이 절대적인 위치에 서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감히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지나 하겠지만 종교적인 일이 익숙해지면 금지된 영역에 도전하는 사람이 생긴다. 나라고 못할 것이 무엇인가? 제사장하고 나하고 다른 것이 없고 나보다 나을 것도 없는데 하는 마음이 들면서 제사장의 자리를 넘보게 된다.

그래서 이런 위임식을 통해서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지 않고 이 직분을 넘보는 것이다.

유다의 웃시야 왕이 그런 실수를 범했다가 문둥병이 들었다. 웃시야 왕은 왕으로써 매우 훌륭했고 일을 잘한 사람이다. 나라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많은 일을 했다. 특별히 종교적으로 제사장들이 타락해서 잘못된 것들도 바로 잡았다. 그러다가 제사장의 자리를 넘본 것이다. 나도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인데 제사를 드리지 못하겠는가? 그렇게 교만해지면서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제사를 드리는 순간 온 몸에 문둥병이 발하고 단위에서 결박을 당하여 격리 수용되었다. 겸손함이 없이 능력만 내 세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울 왕도 사무엘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렸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아론도 모세의 자리를 넘보는 실수를 범한 적이 있다.

제사장의 자리는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한 시기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기도 하고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혹시라도 죽음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위험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위임식을 통하여 구별하신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며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신다. 그래야만 백성을 살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 이 땅에서 계속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만인 제사장주의가 보편화되었다. 그래서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찾고 많은 사명을 받고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 안에서 직분이 폐해진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똑 같아야 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목사나 장로나 직분자들을 세우시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와 우리들 각자의 유익을 위하여 그 직분을 인정하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세워야 한다. 신약에서는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그래서 더 많은 자격을 요구한다. 그리고 더 잘 섬기라고 한다. 그만큼 교회 안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실 설교자로 세워져 그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라도 설교자가 되기에는 문제가 많고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너무도 천한 그릇에 하나님의 보배로운 말씀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부담감 때문에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성도들이 인정해 주지 d않으면 설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적으로 위임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 사람이 우리의 목자이고 하나님이 세우신 분이고 이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다는 것을 믿으며 그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며 순종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위임하는 것입니다.

4)그러나 모든 일에 완벽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고 완벽하신 제사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의지해야 한다. 구약의 모든 제사장들, 그리고 신약시대의 모든 직분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예수님을 예표하는 자들이다. 이 직분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지키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지키기 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역에 침입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제사장의 위임식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서의 직분과 그 임무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바르게 가르쳐 주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받게 되는 은혜와 축복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그것을 철저하게 지켜지고 보호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도 처음 공적인 사역을 행하실 때 실은 위임식을 치르셨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물로 씻음을 받으셨고 하늘에서 내리는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전혀 물로 씻을 죄도 없으시고 이미 항상 성령과 함께 하시는 분이지만 이런 절차를 거치면서 구약의 예식을 인정하고 자신을 통하여 완성하신 것이다. 이런 위임식을 거쳐 공적으로 사역을 하신 것이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 마음대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행되도록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복종하신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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