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가 너도 사랑하노라! (막 1:4~11)

  • 잡초 잡초
  • 320
  • 0

첨부 1


  요즘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는 곳마다 몸짱, 얼짱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불경기라고 하지만 미용성형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은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모두들 외모 지상주의에 포로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잘못된 성형수술 때문에 신세를 망친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방송에 보도된 선풍기 아줌마가 좋은 예가 아닙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진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지연이나 혈연이나 학연으로 사람을 평가하며, 심지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차를 타며 어떤 집에 사느냐 하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지파 출신이고 어느 지역 출신인가 하는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또 누구에게 배웠는가 하는 것도 주요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판단 기준으로 볼 때 눈길조차 줄 수 없었습니다. 화려한 옷이나 멋진 외모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습니다.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모습 그대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주목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까닭은 오랫 동안 듣지 못했던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그가 마구 쏟아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의 눈치나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는 그는 근본부터가 다른 것 같았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 세례 요한이 바로 그 인물이었습니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가 예고했던 바로 그 인물입니다. 그가 거침없이 쏟아 내고 있는 말씀도 이미 오래 전 선지자를 통해서 주셨던 말씀입니다.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있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기이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먹는 것도 메뚜기와 석청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인기 따위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는 회개를 촉구했을 뿐입니다. 불과 같은 메시지로 그는 심령들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그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 철저히 회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10)

  과연 단순하지만 아주 분명한 그의 외침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례 요한의 관심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정작 그의 관심은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예수님뿐이었습니다. 느닷없이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마가복음 1장 7절 말씀입니다.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사람들의 갈채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인기를 얻으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예수님의 모습을 가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스스로 예수님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삶의 목적은 오직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뿐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세상에 소개한 다음 바람과 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의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오직 예수님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의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과연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당을 건축했는가 하는 것도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로 구원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무려 사백 년만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 때문에 몹시 흥분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서 세례 요한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주인의 신발끈은 주로 종들이 풀어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예수님의 종의 역할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존재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 보여 주는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의 삶에서 주님이 얼마나 잘 드러나고 있습니까? “네가 믿는 예수라면 난 절대로 믿고 싶지 않아!” “네가 가는 천국은 난 결코 너와 함께 가고 싶지 않아!” 아직도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면 우리는 완전히 실패했음을 솔직히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말과 행동으로, 그리고 구체적인 삶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드러내고 있습니까? 세례 요한의 삶의 목적은 예수님을 바르게 드러내는 것이었고 과연 그는 그 목적을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는 달리 주님의 세례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공생애는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세상에 구원 역사를 이루시려고 오신 주님이 이제 그 놀라운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이 땅에 오신 주님은 그 사역도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그 때에...”라는 표현과 함께 주님의 공생애 시작을 알리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세례 요한이 주님을 온전히 세상에 소개한 바로 그 때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구원 역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섬김이 온전히 이루어진 바로 그 때에 주님은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사실 주님은 죄가 전혀 없으시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세례를 받으심으로부터 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의 표시인 세례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시기 위해서 스스로 세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주님은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는 것을 주님은 들으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 신비하고 놀라운 세례 사건과 함께 세례 요한은 그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잠시 말씀을 전하다가 잡혀서 죽임을 당하는 간단한 기록이 그에 관한 기록의 전부입니다. 세상에 주님을 소개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고 그 임무를 온전히 수행했기 때문에 그는 미련없이 무대 뒤로 사라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 요한은 어떻게 그렇게 조용히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질 수 있었을까요? 아마 그 때에 하늘로부터 또 다른 소리가 그에게 들려왔을 것입니다. 주님이 들으셨던 소리와는 또 다른 소리가... 그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그는 만족할 수 있었고 기꺼이 무대 뒤로 물러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도 내 사랑하는 일꾼이라 내가 너도 기뻐하노라.” “내가 너도 사랑하노라!”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그는 맡겨진 사명을 제대로 감당했다고 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너도 사랑하노라!”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들어야 할 하늘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이 아니면 잘 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삶이 아니면 결코 복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죽도록 충성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너도 사랑하노라!"는 하늘의 소리를 듣고 만족하게 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