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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꾸는 사람 (창 37: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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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
본문 / 창 37:18-20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치러 들로 나간 형제들을 만나러 갔을 대 그의 형들이 요셉을 먼저 알아보고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꿈꾸는 자였습니다.
  요셉이 꾼 꿈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곡식단의 꿈입니다. 
  창 37:5-7절에 보면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들째는 별들의 꿈입니다.
  창 37:9-11절에 보면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라고 했습니다.

  이 두 꿈은 모두 장차 요셉이 왕이 된다는 예언적인 의미가 있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약 20여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애굽에서 바로왕의 총애를 받는 총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꿈대로 그의 형제들이 요셉에게 와서 절하였습니다.

  오늘 이 요셉의 꿈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야망이 아닌 비젼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자다가 꿈을 꿈니다.
  평소의 생각이 꿈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평소 간절히 열망하고 바라던 것들이 꿈속에서 투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사몽(思夢)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때로 꿈속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영몽이라고 하는데 영몽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악한 영의 활동으로 주어지는 악몽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묵시적인 꿈이 있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악몽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요셉이 꾼 꿈은 하나님이 주신 묵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꿈 속에 하나님의 뜻이 숨어있는 경우입니다. 꿈속에 하나님의 비젼이 담겨있습니다. 비젼(vision)이라는 말은 원래 본다는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는 것이 비젼입니다.
  형제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통해서 요셉이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우리는 흔히 요셉이 꿈을 통해서 커다란 야망을 갖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 꿈에서 본대로 형제들이 자신에게 와서 절하는 것을 상상하며 자신이 왕이 되는 그 꿈을 키워갔을 까요? 만일 그랬다면 요셉의 꿈은 한 낮 야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가진 꿈은 야망이 아닙니다.
  야망(ambition)은 “큰 뜻” 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단어입니다. 요셉이 처음부터 과연 그렇게 아버지와 형제들이 자신에게 와서 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대망을 품었다면 갑자기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가 노예의 신분이 되었을 때 낙심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야망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잊어버렸습니다.
  왜냐면 창 42:9절에 보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의 형제들이 곡식을 사러 왔을 때 형제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나중에 꿈이 이루어진 후에 옛날 꿈이 생각났다는 것입니다.
  그의 형제들을 본 순간 그제서야 예전에 꾸었던 꿈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자신의 포부나 야망으로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아마도 그 후에 찾아온 온갖 역경과 고난을 견디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가나안 부잣집에서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며 혼자 때때옷을 입고 살던 요셉이, 어느 날 형들의 모함으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거기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합니다. 만약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 자체를 자신의 비전으로 삼았다면 어떻게 그 종살이를 감당합니까? 어떻게 옥살이를 합니까? 그 상태를 모면하기 위해 도망치다 붙잡혀 곤욕을 치르든지, 아니면 종살이와 옥살이를 이기지 못해 정신병자로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비젼으로 삼아야 합니다. 
  진정한 꿈의 사람은 자신의 포부나 야망을 말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그는 자신이 꾼 꿈을 비젼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꿈을 주신 하나님을 자신의 비젼으로 삼았습니다. 꿈의 내용을 비젼으로 삼았다면 그것은 야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2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진정한 꿈의 사람은 자신의 포부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수단화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요셉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실하게 하나님을 믿었고 자신의 야망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노예가 되어도 ..  감옥에 갖혀도 ..
  요셉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될것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자신의 비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믿는 이상 감옥이든 억울한 일을 만나든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꿈이나 야망을 비젼으로 삼는 사람은 쉽게 절망하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비젼으로 삼았을 때는 옥살이도 이길 수 있었고 종살이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과 목표로 삼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꿈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합니다.
  잠언 29:18절에서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묵시라는 말은 계시(revelation)를 의미합니다.
공동번역 / 계시의 말씀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표준새번역 / 계시가 없으면 백성은 방자해지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결국 묵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강력하게 사로잡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이 하나님을 비젼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젊은이들이 하나님을 비젼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헛된 야망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비젼으로 삼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동안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요셉의 일생이 바로 그렇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자신의 비젼으로 삼았다는 것은 그가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꿈의 사람에게는 고난이 있습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결국 애굽에 팔려갔고 바로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비젼을 보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항상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꿈의 사람은 언제나 삶에 성실합니다. 
  그는 애굽 보디발의 종이 되었지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주인 보디발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의 삶의 태도에 감동하여 자기 집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요셉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더라면 그런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창 39:2-4절의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라고 했습니다.
   
  꿈의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창 45:5-8절까지 요셉이 얼마나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삶을 살았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신을 애굽의 노예상인에게 팔아버린 매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형제들을 만났을 때 그것도 애굽의 총리가된 위치에서 만났을 때 요셉이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비젼으로 삼은 사람은 작은 감정에 매이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아주 폭넓은 이해와 아량을 품습니다. 사소한 감정 때문에 원수 맺고 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며 그들을 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신의 꿈과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꿈이 되고 목표가 되는 사람은 헛된 야망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현실을 받아드리고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차근 차근 한 걸음 한 걸음 정도를 걸어서 목표를 향해 달립니다.

  독일의 유명한 정치가 비스마르크는 젊었을 때 경찰서에서 서기로 일했습니다. 어느 겨울, 난롯가에서 동료들이“장래희망”을 말했습니다. 다들 장관 총리 등이 되고 싶다고 했으나 비스마르크는“부장이 되고 싶다”고 해 동료들의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부장은 서기의 바로 윗자리였습니다.
  동료들이 “사나이의  포부가 뭐 그래” 라고 비웃으며 말하자 비스마르크는 “자네들은 이루지 못할 희망을 말했으나 나는 이룰 수 있는 희망을 말했을 뿐이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후에 부장이 되고, 총리가 된 사람은 비스마르크뿐 이었습니다.
  꿈의 사람은 현재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아무리 지도가 정밀해도 현재 자신의 위치를 모르면 그 지도는 쓸데가 없습니다.
  진정한 꿈의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압니다. 그리고 그 위치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섭리가 자신에게 준 꿈을 이룰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비젼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내소원이 되게하는 것이 비젼의 사람 꿈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욕심에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요셉처럼 하나님을 나의 비젼으로 삼고 최선을 다하는 꿈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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