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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고전 11: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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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새해 아침을 맞이한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역사 안에서 새로운 해를 우리들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1월 1일이 주일인 경우는 매우 오랜만에 오는 일입니다.

새해 첫 주일은 어느 나라나 어느 교회나 그 해에 중점적으로 해나갈 시정 목표나 정책 방향을 설교하도록 되어 있는데 다음 주일에 하기로 하고, 오늘 우리는 성찬 예식이 있으므로 주님이 식탁을 마련하실 때 말씀하신 뜻을 생각하며 새해 첫 주일을 맞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서 가운데 나타난 대로 주님은 두 번 자신이 준비하신 식탁에 제자들을 초대하셨습니다. 한번은 부활하신 후 갈릴리 해변에서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2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묻는 자가 없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9절에 보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식탁은 무슨 의미인가? 제자들의 육신적 필요를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의 배려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는 작업을 하였으나 헛수고를 했습니다. 제자들이 너무나 지쳐있고 배고픈 상태에 있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 자신이 손수 해변가에서 숯을 준비하여 불을 피우고 생선과 떡을 준비하셔서 육신적으로 시장한 제자들에게 아침 식사를 대접하는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라는 기록이 있는데 예수님이 손수 마련하신 식탁에 제자들을 초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 주님이 마련하신 두 번째 식탁의 의미는 영적 진리로 나타납니다. 갈릴리 해변가의 아침 식탁은 육신적 필요에 만족을 주는데 비해서 오늘 말씀의 의미는 영적 의미의 식탁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가지는 성찬의 떡과 잔의 참여를 육신적 배부름의 만족을 위해 참여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약 배부름의 즐거움이나 취함의 만족을 위하여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오늘 말씀에 나타난 대로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결과가 됩니다. 초대 교회 때는 성찬 예식이 있으면 자신들이 성찬을 준비해 왔습니다. 직접 자신들이 먹을 것을 가져오니까 많이 준비해왔습니다. 떡도 많이 가지고 오고 잔도 많이 준비해 왔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린 후에 그 준비한 음식을 자신이 먹었습니다. 많이 준비했기 때문에 성찬 예식 때 배가 부르고 또 많이 마셔 술에 취하는 현상이 나타나므로 오늘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떡과 잔의 의미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떡을 주님의 몸으로, 잔을 주님의 피로 영적화한 기념입니다.

우리가 새해 첫날 성찬 예식을 갖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새로이 허락하신 역사를 주님의 소원을 위해 살겠습니다.”라는 약속으로 참여합니다. 주님이 떡과 잔을 주실 때 가지고 계셨던 주님의 마음을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은 십자가 죽음이 자신이 마셔야 할 잔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마지막 결단의 기도시간인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잔이 무슨 의미인가? 또한 제자들에게 질문하실 때도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하시므로 십자가 사건을 “잔”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이 잔의 의미는 숙명적인 사명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데 곧 죽음을 말합니다. “이 잔은 죽음인데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만약 내가 이 잔을 십자가로 마신다면 너희가 나의 마시는 이 잔을 똑같이 마실 수 있느냐?” 이렇게 예수님은 죽음과 잔을 똑같은 의미로 사용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뿐만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사약 문화’라는 것이 있어왔습니다. 임금님이 마시고 죽으라는 잔입니다. 그것을 거절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입니다. 다만 잔을 내린 자가 거두어주면 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이 잔을 내리신 하나님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내린 자만이 거둘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을 하나님 믿고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사명이 주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시면 지금까지 신앙 양심에 비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확실한 사명인데 피하여 도망간 일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만약 피했다면 나에게 돌아온 유익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그 잔을 마신 것이 십자가 사건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십자가의 죽음은 자신이 걸어야 될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이후로 지금까지 골고다 행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독한 골고다 행진의 대열에 지금 나는 십자가를 지고 참여하고 있는가 아니면 외면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 성찬의 의미가 됩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영생의 복을 얻는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피하지 말라는 뜻이며 피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로 잔을 마시고 떡을 먹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그 길을 우리는 가야 됩니다. 가끔 성가대 독창자들이 부르는 성가 가운데 김순세 작곡 ‘주님 따라 가는 길’이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주님 따라 가는 길에 가시밭길 걸어도 주님 앞서 가시오니 나 주저할 수 없네. 주님 따라 가는 길에 험한 준령 만나도 주님 나를 이끄시니 나 핑계 할 수 없네. 주님 따라 가는 길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주님 곁에 계시오니 나 당황하지 않으리. 주님 따라 가는 길에 내게 주신 그 모습을 나의 평생 사는 동안 증거하며 가오리다.” 이런 찬송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 다소 고난스럽다 하여도 주님이 우리 앞서 행하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능히 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잔과 떡에 참여함으로 나도 그 길을 가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은 이것을 자신이 치러야 할 값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예제도 문화에서는 사람도 값으로 매매하였습니다. 어떤 노예는 일평생을 일해도 값이 안 되어 자식들까지 노예가 됩니다. 노예는 누군가 그 값을 대신 치러주기 전에는 절대로 자유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 진리는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시작합니다. 우리의 죄를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이 기독교 진리인데, 그래서 주님은 그 값을 대신 치러 인간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피를 “대속의 피”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내가 흘릴 피를 대신 흘렸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 반드시 내가 마셔야 되는 잔이 있고, 가야 되는 길이 있고, 치러야 할 값이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2006년도의 새 역사를 내가 그렇게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뜻으로 해마다 1월 1일의 성찬이 행하여지는 것입니다.

이 성찬은 영적으로 세 가지 의미를 부여됩니다. 하나는 계약적 관계입니다. 오늘 말씀에 주님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내게 약속하신 모든 것이 이 성찬을 통하여 확실하여지는 뜻입니다. “내 살을 먹지 않고 내 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계약적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속의 개념이 있습니다. 주님과 이루어진 약속은 일시적이 아니라 영원합니다. “네 아비는 너를 잊었을 지라도 나는 너를 잊은 적이 없노라.” 주님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찬을 기념하면 영속화의 개념으로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거룩한 통일성입니다.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위대한 생명의 결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러한 의미를 깨닫고 이 성찬에 참여하므로 오늘부터 시작되는 2006년의 순례의 역사의 발걸음이 거룩하고 풍성하여 지시기를 주의 이름 안에서 축복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부터 우리는 일 년의 시작을 성찬에 참여함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영속화가 이루어지는 계약 관계로, 거룩한 통일성이 있는 성찬에 참여함으로 우리도 주님과 같이 내가 마셔야 할 잔으로, 내가 가야할 길로, 내가 치러야할 값임을 깨닫고 갈 수 있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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