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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복된 땅을 바라보라 (창 1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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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약속의 말씀을 따라갔던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서로 다른 땅을 바라보고, 서로 다른 땅을 얻어,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내용입니다.
10절을 보면 “롯이 눈을 들어 땅을 보았다”고 기록했고, 14절에서는 “아브람이 눈을 들어 땅을 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적 수준이요, 믿음이요, 하나님의 비전이요, 우선순위입니다.
따라서 어떤 땅을 보느냐 어떤 땅을 얻느냐? 하는 것에 따라 축복의 사람이 되기도 하고 저주의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위해 사느냐 하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1.잘못된 가치는 잘못된 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너 좋은 대로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목초지를 양보한다고 하는 것은 생명을 내어놓는 일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흔쾌히 목초지를 조카 롯에게 양보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이토록 놀라운 여유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이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큰 것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작은 것에 여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을 선택하기보다는 땅에 욕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롯은 물질을 선택했고, 눈앞에 작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10절에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땅은 어떤 땅이었습니까?
①물이 넉넉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양을 먹이기에는 물이 많으니 풀이 많았을 것이고, 넉넉한 목초지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②여호와의 동산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마치 에덴동산을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③애굽 땅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을 따라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 나일 강변에 펼쳐진 도시의 화려함을 보았던 롯은 이 정도의 땅이면 도시 문명의 화려한 꽃을 피우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땅이 어떤 땅이었습니까?
역사적으로 가장 무서운 심판을 받았던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던 땅입니다.
사실 그 당시에 소돔과 고모라는 화려하고 매력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 축복의 약속이 없었습니다.
단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행복을 약속해 줄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신기루와 같은 도시였을 뿐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유혹이 롯에게만 있을까요?
우리 성도들의 가치관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을 결정하든지 신앙생활의 가치, 복음전도의 가치, 비전의 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롯의 실수는 잘못된 가치관으로 잘못된 땅을 보았고, 잘못된 땅을 찾아간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롯의 비극은 아브라함을 떠나면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떠난 것이 왜 롯의 비극이 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을 떠난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요, 믿음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여러분들이 가는 곳곳마다 기도의 사람들을 만나시고,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시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사람들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12절을 보면 두 사람의 갈림길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물론 아브라함이 끝까지 거주한 가나안 땅은 외로운 땅이었으며, 기근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그 땅을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어떠했습니까?
롯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버리고 세상과 물질을 따라갔습니다.

여기 성경에는 재미있는 한 표현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습니다.
“소돔까지 갔더라”
물론 롯에게 소돔까지 가려는 마음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던 롯은 결국 소돔까지 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자기의 가는 길이 망하는 줄 모르고 망할 때가지 갔다는 뜻입니다.
새해에는 여러분이 성령의 눈으로 환경을 보시고, 예수님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보시고, 십자가의 눈으로 역사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참된 복은 영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한 가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사람들 눈에는 척박해 보이는 땅이었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거기에는 복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붙들고 그 땅을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좋은 길을 선택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확신이 필요할 때에, 말씀이 필요할 때에, 새로운 꿈이 필요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새로운 꿈을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복이 무엇입니까?
14절을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라고 왜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과연 이 땅을 양보해야 할 것인가?
또한 자기를 흔쾌히 버리고 떠나는 롯을 바라볼 때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그런가 하면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비전이 가장 가까운 롯에게 까지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에 아브라함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아마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렸을 것이고, 꿈이 무너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내일을 바라보라,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좋아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믿고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변화되고, 눈이 변하고, 비전이 변합니다.
그래서 땅만 보고 살던 사람이 하늘을 볼 수 있게 되고, 가까운 것만 보고 살던 사람이 먼 곳을 보게 되고, 꿈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도 보지 못한 세계, 들어보지 못한 세계, 꿈꾸지 못한 세계를 향하여 마음과 눈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을 비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일이라고 하는 것은 대게 보면 신기루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붙들은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한줌 재로 변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끝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 땅의 모든 것들은 아무리 귀해도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갑니다.
심지어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내 생명도 물질도 명에도 나를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영원한 것에 집착하고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바라보는 대로 눈이 열립니다.

14절에 보면 롯을 떠나보낸 아브람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동서남북 새로운 세계를 보라는 것이요, 믿음의 세계를 보라는 것이요, 동쪽만 보던 눈으로 서쪽도 보고 남쪽 북쪽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으로서 유대인을 사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그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어 그 당시 개처럼 취급하던 이방인들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고, 유대 땅만 보던 눈이 온 우주에 펼쳐질 하나님의 비전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한 평생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마포 삼열 박사는 미국의 부통령으로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기도하는 중에 예수 없이 죽어 가는 한국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땅에 와서 평양신학교를 세우고 한국최대의 교단인 장로교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구 소련은 알래스카를 얼음덩이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알래스카를 보물창고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단 720만불에 미국 본토에 1/5이 넘는 알래스카를 샀습니다.
그런데 거기는 군사기지였고, 거기는 무궁무진한 석유와 보물들이 가득히 숨겨져 있었습니다.

L.A.는 서울의 10배가 넘는 끊임없이 펼쳐진 사막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들은 400km 500km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나무를 심고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거미줄처럼 고속도로를 도시 가운데 건설하고, 전세계 지구촌의 수많은 인종들이 모여 사는 행복한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15-16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셀 수 없을 만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한대로 펼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 초라한 인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예수를 바라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위대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엔 성령님의 역사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제한없이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새해엔 여러분의 눈이 열려져 어리석은 롯처럼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들, 언젠가 나를 떠나갈 것들에 집중하지 않고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아브라함처럼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교회 설립 100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2006년엔 복된 땅을 바라보는 멋진 눈들이 많이 나타날 것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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