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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행의 증거 (창 39:1-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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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이가 스포츠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닭 한마리가 스포츠카와 똑같은 속력으로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젊은이는 속도를 높였습니다.
그래도 닭은 따라왔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게 여긴 젊은이는 닭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닭이 간곳은 조그만 초가집이 있는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거기는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노인에게 ‘저 닭 할아버지 꺼예요’라고 물었습니다
노인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마침내 젊은이는 1억원을 줄테니 그 닭을 팔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노인은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왜 안 파시는 거예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하는 말
‘잡아야 팔지’

아무리 좋은 보물도 잡아야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누구에게나 열려져있습니다. 그 약속을 붙드는 믿음의 사람이 약속의 성취자가 될 수 있습니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큰 부자가 된 깁슨이란 미국인에게 사람들이 돈을 번 비결에 대해 물었습니다. 깁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첫째, 술을 마시지 말 것.
둘째,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할 것.
셋째,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말 것. 이게 그 비결입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건 누구나 다 아는 것이군요."
그러자 깁슨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렇소. 그러나 당신은 아직 그걸 실천하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우리는 지난 주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따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 실패의 문제는 말씀을 들었고 알지만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지 않은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지난주일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동행에도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 목적과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둘째, 한 걸음 앞서가시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동행이어야 합니다.
  셋째, 언제나, 끝까지 같이 가는 변함없는 동행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동행하는 삶에 축복의 증거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축복의 증거들이 무엇인지 살피며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동행의 증거 첫 번째는 형통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형통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사람의 집에 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먼저 형통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봅시다. 
새 번역에서는 창39:2-3을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요셉은 그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형통이라는 말은 '주께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혹은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 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2006년을 사는 동안 주님께서 여러분의 앞길도 활짝 열어 주시고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돌보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나 형통은 문제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없는 것 어려움이 없는 것이 형통이 아닙니다. 고난이 있어도 잘되고, 문제가 있어도 망하지 않는 것이 형통입니다.

요셉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베냐민을 낳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사랑은 받았지만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따돌림을 받아야 했고 언제나 외톨이여만 했습니다. 결국 노예로 팔려지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한 삶을 살았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노예 신분으로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도 그는 형통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죄인의 자리에서도 그는 형통하였습니다.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있을 때도 그는 형통하였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증거는 형통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시므로 2006년을 사는 동안 만사형통의 축복을 받고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고난을 만나도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움을 당해도 어려움을 이기며 오히려 범사에 강건해지는 복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형통은 자신을 넘어서는 형통입니다.
요셉의 형통은 자신만의 형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발탁한 보디발의 집도 형통케 했습니다. 그가 갇혔던 감옥도 형통케 했습니다.  그가 살고 있던 나라도 형통케 했습니다. 

성경에서 약속한 형통은 자신만 잘 되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자신과 그의 가정뿐만 아니라 그가 몸담고 있는 직장도 형통하게 되고 그가 섬기는 교회와 지체들에게도 축복이 되게 하고 그의 나라에까지 큰 영향을 미쳐 형통함을 확산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의 근원이 되며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받기를 원하는 형통의 복입니다.
나의 형통이 가정의 형통이 되고, 교회의 형통이 되고, 나라와 민족의 형통으로 이어지는 것이야 말로 진정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받아서 누려야 할 형통의 축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다 그런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처럼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의 처한 곳들이 모두 형통께 되는 축복의 통로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주변에 가족들이, 직원들이, 거래처 사람들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수없이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아 행복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와 같은 동행의 증거, 형통의 축복이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 위에 가정과 자녀들 위에 임하시기를 주님의 축원합니다.

동행의 증거 두 번째는 성취입니다.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을 꾸는 자였습니다.
형들의 핍박이 있을 때마다 요셉은 형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꿈이 있어 나를 무시하지 마. 형들의 단이 내 단 앞에 절하는 꿈을 꾸었다고. 해와 달과 열한 별도 내 별에게 절하는 꿈을 나는 꾸고 그 꿈을 꼭 이루게 될거야.’ 나는 꿈이 있다고 요셉은 형들에게 계속말합니다.
그 이유로 더 많은 미움과 핍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꿈을 성취하였습니다.

가나안에 기근이 와서 형제들은 애굽으로 곡식을 구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애굽의 총리대신 앞에 부복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곡식주기를 강청하는 형들 앞에 있는 총리대신은 바로 꿈꾸는 자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요셉의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요 하나님이 성취하신 일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꿈을 꾸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꿈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인종차별이 사라지고 백인어린이와 흑인 어린이가 함께 노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아무도 그 꿈이 실현되리라 믿지 않았습니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은 킹 목사님을 향해 총을 겨누고 꿈을 잘라버리려 했습니다. 킹 목사는 두려움 속에서 절망했습니다. 피하고 싶었습니다. 편안히 안주하는 생활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옆방에서는 아내가 갓 태어난 딸 욜란다와 함께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언제라도 그 아이가 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과 헌신적이고 사랑 깊은 아내를 남기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용히 리더의 자리를 내어 놓고 계획했던 공부나 계속하면서 평온한 삶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도 먹어보았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의로운 일을 해보고자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 지금 제가 너무나 약한 존재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용기가 꺽여 버렸습니다.' 

바로 그때 마음속에서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마틴 루터야, 의를 위하여 일어나라. 진리를 위해 일어나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결코 떠나지도 혼자 버려두지도 않겠다.'
그 이후로 13년동안 활동하면서 무수히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그 밤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너와 함께 하리라" 그 한 마디로 충분했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나님과 동행했던 킹 목사님이 보았던 그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소유하고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동행의 증거 세 번째는 풍성함입니다. 담을 넘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야곱이 죽기 전 야곱은 그 아들들을 불러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49:22)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요셉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담장너머로 뻗은 나무처럼 풍성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가져다 준 축복이었습니다.
요셉의 풍성함은 흘러넘치는 풍성함이었습니다. 쌓아 두고 혼자만 누리는 풍성함이 아닙니다. 흘러가게 하는 풍성함의 축복입니다.
성경의 축복자들은 한결같이 흘러가는 축복의 소유자들이었음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물을 퍼내면 퍼낼수록 점점 더 큰 웅덩이를 만들고 더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성경적인 축복은 나에게서 머무는 축복이 아니라 흘러감으로 나로 인하여 너가 잘되고, 나로 인하여 이웃이 잘되고, 나의 복이 민족과 열방의 복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창49:2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하나님은 복을 담을 그릇대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분량대로 축복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분량이 문제입니다. 복 받을 그릇이 문제입니다.
복 받을 그릇이 준비되어야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복이 흘러넘치는 복이 되어 모든 족속이 그로인하여 복을 받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큰 분량이 되어야 합니다. 넓고 큰 가슴을 가져야 합니다. 넉넉하여 모든 풍성한 축복을 담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조브랍고 쩨쩨한 사람들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범하고 큰 그릇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복을 담고 나누고 베풀 수 있는 풍성함의 복을 누리시며 멋진 하나님의 축복자들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후 짐승들에게 선물을 한 가지씩 주었습니다. 날짐승에게는 높이  빠르게 날 수 있는 날개를, 짐승에게는 뿔이나 강한 발톱을 선물한 것입니다.
이를 본 사람은 하나님께 찾아가 "왜 저에게는 아무것도 안 주십니까?"라고 항의 했습니다.그러자 창조주는 웃으며 말했답니다.
"이미 특별한 것을 주었는데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다. 
날개 가진 짐승보다 높이 날 수 있고 뿔 가진 짐승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이 마음입니다.  우리는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 밀려오는 죄악을 막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는 한 가지 이유로 요셉은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 길이 막힌 것 같은 상황에 던져졌지만 주께서 앞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일마다 다 꼬이고 안 된다고 여겨지는 상황과 환경에 던져졌으나 주께서 하는 일마다 다 잘 되게 해 주셨습니다.

꿈꾸는 자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그 꿈을 성취하는 축복자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의 형통과 꿈의 성취는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형통이며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요셉은 무성한 가지가 되어 담을 넘었습니다. 그로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6년을 어떻게 살아가시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는 복된 증거들이 있습니다. 형통할 것입니다. 꿈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풍성함으로 복이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복된 증거들이 가득한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이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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