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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 일어나야 할 때 (사 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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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벌써 시작한 지 1월 둘째 주일입니다. 새로운 역사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희망찬 새해가 밝았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사회 분위기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눌려 있습니다. 새해 새 희망을 갖기 위해 해돋이를 보러 갔지만, 그 해가 희망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희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역사를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새 해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로 하여금 새 일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지난 주일에 설교에서는 “내가 새 일을 이루리라”라는 말씀으로 증거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43:19-21)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꿈과 함께 일하십니다. 아무리 꿈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도전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가나안 땅을 주셨고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지만 믿음으로 도전할 때만이 소유 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도전하는 자에게 복된 세계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겠다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은 그동안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심판하사 성전은 파괴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그것이 이사야서 1장-39장까지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제 영광스러운 새날, 새 시대를 예언하면서 회복을 선언하십니다. 그 회복의 첫 메시지가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왜 일어나야 합니까? 빛을 비추기 위해서입니다.

빛은 희망을 상징합니다. 매년 12월 마지막 날이 되면 동해 바다 정동진을 찾는 자들로 북적입니다. 새해에 떠오르는 태양 빛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정동진뿐만 아니라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희망차게 떠오르는 태양 빛을 보고 한해 또는 하루를 희망차게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죄악으로 소망도 비전도 없는 세상에 빛을 비추어 소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잠에 빠져 살지 말고, 세상에 도취되어 살지 말고, 앉아 있지만 말고 . . .
가만히 앉아 있는 무용지물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도식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나야 합니다.

1. 잠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롬13:11)
예수님께서 오신 그 때부터 이미 마지막 세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계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잃어가고 있는 자연의 움직임을 보면, 분명히 마지막 세대 중에서도 거의 끝부분임을 느끼게 됩니다.
“일어나라”는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막5:41)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눅7:14)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으며, 사도 베드로 또한 죽어있는 욥바의 다비다(행 9:40)에게 “일어나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소경 바디매오(막10:49)를 치료할 때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으며, 하나님의 천사는 옥에 갇힌 베드로(행 12:7)를 자유케 할 때 “일어나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사60:1). 신앙의 앉은뱅이 되지 말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잠6:9-11). 성령충만 하여 제자 되고, 제자 삼는 사명자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10년 20년 믿었어도, 교회를 수십 년 다녔어도 잡아끌어야 끌려오고 업어다 놔야 하는 신앙에서 이제는 일어나 뛰기도 하며 걷기도 하는 믿음으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왜 일어나야 합니까?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시험이 옵니다. 흐르는 물은 생명체가 살아도 고여 있는 물은 썩어버립니다.

행3: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행3:6)명령했습니다.
앉은뱅이의 특징은 살기는 살았는데 땅에만 붙어서 삽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앉은뱅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나 깨나 땅의 것을 생각하고, 오나가나 땅의 것만 좋아하고, 머리속에 항상 땅의 것만 구상하고, 또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러한 영적인 앉은뱅이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위의 것을 찾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1).

성전 미문에 앉아서 들어가는 사람도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자기도 들어가지 못하는 그런 방해꾼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전도를 막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거기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23:13)

우리의 신앙은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있는 신앙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구걸하는 앉은뱅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우리의 몸도 활동을 해야 합니다. 활동을 하지 않으면 마비가 됩니다. 팔이나 다리가 절골이 되어서 한달이상 깁스를 하였다가 풀어놓으면 다리나 팔이 꾸부러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물리 치료를 해야 합니다. 대부분 현대인들의 성인병이라고 하는 것은 운동 부족에서 온다고 합니다. 일어나야 달릴 수도 있고, 일을 할 수도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엡5:14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라” 성도여러분, 사망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나태와 게으름의 병에서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기도의 잠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의 잠에서 . . .봉사의 잠에서 . . 영적인 잠에서 . .순종의 잠에서 .
.
2. 하나님의 힘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더 절망의 늪으로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지도자 모세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모세가 함께 있을 때와는 달라진 것입니다. 이제는 혼자 모세처럼 요단강을 건너야 하고, 가나안을 점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는 막중한 중임을 맡은 것.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수1:5-6)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낙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낙망하지 않는 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사30:31)

<<찬양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 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주신 능력으로/ 주가주신 능력으로/ 주가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1)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앉은뱅이에게 “일어나라” 고 할 때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38년 동안 앓던 중풍 병자도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고 할 때 믿음으로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믿음은 성도의 기본입니다. 기적의 씨앗입니다. 이 믿음으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2)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슥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일으켜 세워주시며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일마다 때마다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시는 능력입니다. 주님의 말씀 한마디가 장님의 눈을 뜨게 했으며 나환자를 깨끗케 했으며 죽은 자를 살아나게 했습니다. 눅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습니까? 믿습니까? 믿는 대로 됩니다.

3.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새해에는 열심히 일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많은 꾼이 있다고 합니다. 일꾼, 구경꾼, 말썽꾼, 방해꾼, 싸움꾼, 불평꾼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꾼이 되어야 될까요? 우리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은 일하는 곳입니다. 놀고 먹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놀고먹으며 사는 사람을 유복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받은 사람들이란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회에서도 좋은 자리는 일 많이 하라고 주어진 자리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20:1-16에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하나님은 천국에서 일할 고용인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일꾼을 찾으러 장터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십니다. 인간의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은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고독한 사람은 할 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복된 사람은 평생 할 일이 있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을 보장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실업자가 늘어가고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문호 루소는 ‘인생은 두 번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살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요, 또 한 번은 일하기 위하여 태어난 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일은 때가 늦으면 할 수 없고 항상 기회가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기회가 항상 있습니다.
금년은 우리가 다 일꾼이 됩시다. 구경꾼 말꾼이 되지 마시고 . .
교회의 부흥은 재정이 풍부하고 권력이 있는 사람이 많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인물들이 많다고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는 자가 많을수록 부흥하는 것입니다.
뜨겁게 기도하고, 땀 흘려 열심히 봉사하고, 힘 다해 전도하는 수고하는 성도가 많은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한알의 밀알 되어 헌신하는 일꾼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교회의 부흥은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미쳐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열심히 일 할 때에 복을 주십니다.

록펠러라고 하는 세계적 부자가 있었습니다. 록펠러의 여러 회사 가운데 ‘스탠다드 석유회사’가 있었습니다. 이 회사에는 재미있는 직원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치볼드’인데, 이 사람은 자기의 이름을 소개할 때 ‘제 이름은 아치볼드입니다.’하고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가 파는 물건을 소개합니다. “한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이름 아치볼드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이런 소개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웃기는 사람이라고 조롱했습니다. 너무 지나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록펠러 사장은 이 사람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치볼드에게 록펠러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당신의 이름 앞에 “한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를 하는가? 그러자, 아치볼드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사장님을 믿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면 사장님이 내게 분명한 대가도 주고 미래도 보장 해 줄로 믿습니다.”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록펠러는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록펠러가 사장자리에서 물러 날 때에 자기후임의 사장을 누구로 할 것인가 할 때 록펠러는 아치볼드가 생각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웃음거리로 여겼지만 록펠러는 참으로 회사를 사랑하고 자기와 회사를 믿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아치볼드에게 사장자리를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평사원이 사장이 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회사를 믿고 사장님을 믿고 열심히 일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4. 이제 모두 일어나 달음질 합시다.

마귀는 우리가 넘어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패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늪에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큰 군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려다가 걸림돌에 넘어져 실패하신 분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십일조 하다가 시험 드신 분이 있으십니까? 믿음으로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교우관계나 친구, 때로는 이웃들 때문에 쓰라린 경험을 하신 분들이 있습니까? 다시 시작 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뼈들이 가득한 산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른 뼈들이 가득한 산을 보게 되었습니다. 산이 온통 사람의 마른 뼈로 가득하여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뼈들이 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바싹 마른 뼈가 산다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전혀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을 주시면서 이렇게 명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 . .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대언 하였을 때 뼈들이 소리를 내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결이 되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랐습니다.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 하라 생기에게 대언 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여 생기를 향하여 대언 했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바싹 말랐던 뼈들이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힘 있는 큰 군대가 되는 환상이었습니다.

새해에 우리는 이런 환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군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패잔병이 아니라 기백이 넘치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일어나 달리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의 삶은 달음질입니다.
서 있는 사람, 뛰고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드러누워 있는 사람,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달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가 때로는 실수하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곧 뉘우치고 회개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다시 새 힘을 주십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1-2)

달음질하는 자들은 반드시 격려자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홀로 뛰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뛰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영적으로 앞서가신 주님이십니다. 나와 함께 아파하시고, 나와 함께 땀을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나의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앞서간 증인들입니다. 이 허다한 증인들은 앞서간 순교자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완주한 자들입니다. 내가 혹시 넘어질 때 다시 일어나 달리기를 원하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운동선수로서 경기장에 출발선상에 나와 있는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달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인내로써 . .
인간에게 있어서 승리하는 최고의 비결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실천하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최선은 지속성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큰 계획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 사람들도 중간에 가다가 어려움이 몇 번 겹치면 포기해 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기 마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찬양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주일성수 하다가 실패하신 분이 있습니까?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성경보다가 작심삼일하고 실패하신 분이 있습니까?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끊을 것 끊으려다가 실패하신 분이 있습니까? 다시 결단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려고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가 하나님의 큰 복을 받고 살려면 우리도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 죄악의 자리에서 일어나고, 두려움의 자리에서 일어나고, 안일한 생각과 삶에서 일어나시고, 영적 질병의 자리에서 일어나고, 영적 죽음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근심걱정, 무거운 마음의 짐들이 사라지고, 치유받고, 능력받고, 군대로써, 경주자로서 승리하는 새해가 될 줄 믿습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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