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성령이여, 다시 시작하소서 (슥 4:1~9)

  • 잡초 잡초
  • 402
  • 0

첨부 1


200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은 2006년 새해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출발하려 하십니까?
무슨 힘으로, 또 무엇을 의지해서 시작하려고 하십니까?
스가랴 4:6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런데 개역 개정판에서는 본문을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로 번역하고 있고, 킹 제임스 버전에서는 본문을 '힘으로도 아니요, 능력으로도 아니며, 오직 나의 영에 의해서니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때, '오직 나의 신으로'라는 부분은 '오직 나의 영으로' 혹은 '오직 나의 성령으로'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오직 성령'으로 된다는 말일까요?

사실, 우리가 살펴보는 스가랴서는 대단히 어려운 성경중의 하나입니다.
①스가랴에는 8개의 상징적인 환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가랴서는 에스겔서와 비슷합니다.
②특별히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많습니다.
③또한 특이하게도 '천사'에 관한 언급이 풍부합니다.
④그리고 신약성경에 무려 71회나 스가랴서가 인용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루터는 '스가랴서는 모든 예언서의 정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스가랴서의 전체를 표현하는 핵심 구절은 무엇일까요?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이 핵심구절에 스가랴서 전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깊이 이해한다면 스가랴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를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본문에서 우리는 '이는'이란 지시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단어는 앞의 뭔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4장 1절부터 살펴보면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순금등대의 환상을 스가랴가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 환상이 신기해서 스가랴가 천사에게 묻습니다.
'이것들이 도대체 무엇입니까?(4절).
그러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는 엉뚱한 말을 전합니다.
문맥이 전혀 연결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이는'이라는 이 지시어는 단지 앞에 있는 특정한 문맥,혹은사건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이라는 지시어는 스가랴서에 예언된 모든 내용, 사건을 다 받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문제, 온 세상의 모든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모든 것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는 해석이 자연스럽습니다.
스가랴서의 강조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것은 성령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7절을 사용합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여기에 큰 산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오늘 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난관과 시련을 뜻합니다.

이런 장애물 앞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문제 앞에서 좌절하는 형입니다.
'너무 벅찬 문제야, 힘들고 어려워, 이제 끝났어' 이렇게 큰 산 앞에서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에 짓눌리고, 항복해 버립니다. 포기하고, 좌절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할 수 있어' 형이 있습니다.
'난 할 수 있어, 난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이 문제를 보란 듯이 극복할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엘 오스틴은 '긍정의 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패배와 실패의 이미지를 그리는 사람은 실패자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러나 승리와 성공, 건강, 풍요로움, 기쁨, 평화, 행복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리 큰 장애물이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그런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러나 이 두가지 다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문제 앞에서 성경적 태도는 어떤 것일까요?
'내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지만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난 이 사실을 믿어' 바로 이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깨닫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후에야 비로소 주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고 고백합니다.
모든 것은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로키 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가 있습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꿇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이지만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합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는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온 사람입니다.
꿈꾸는 자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찾아오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되고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내는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가 되면 우리는 뭔가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새해이기 때문에 잘 될것이라는 맹목적인 생각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믿고 의지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작을 성령에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교회 올해 표어가 '성령이여,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소서'입니다.
여기에 이곳은 내 마음, 내 가정, 내 삶의 현장을 뜻합니다.
'다시'란 단어를 넣은 것은 1907년에 있었던 평양대부흥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던, 오순절 성령강림에 버금가는 성령의 강한 역사가 이 한반도에 나타났던 그 역사의 백주년을 기억하며 성령의 바람이 다시 불기를 갈망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스룹바벨 앞에서의 큰산과 같은 민족의 위기 속에서 이 민족과 교회를 살린 원동력은 오직 성령의 힘이었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로 모든 곳에서 그 어떤 것으로 해결 할 수 없었던 갖가지의 문제들이 풀렸습니다.
그야말로 큰 산이 평지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어떤 큰 산들이 버티고 있습니까? 아니 그 큰 산 앞에서 지금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나는 할 수 없다, 아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이것도 아니다.
오직 성령님은 하실 수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하게 낮아진 모습으로, 문제 앞에서는 당당히 맞서며 나가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결코 문제를 피하여 도망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문제를 향해 맞서는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 축구국가대표 홍명보 코치가 선수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선수들이 좀 건방져야 한다. 표정과 말투에서 상대를 무시해야 한다. 앞에서 기죽지 말라. 처음 기 싸움에서 이미 승패는 판가름 난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 앞에는 어떤 큰 산이 버티고 있습니까? 그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이 믿음이 있으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문제를 향해 비굴하게 도망치지 말고 담대히 맞서기를 바랍니다.
- 옥성석 목사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