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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영의 눈을 뜨고 새해를 바라보자 (왕하 6: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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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서너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자연인, 육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사물을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5감을 통하여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사물을 직감, 또는 지각을 통하여 판단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성적 사람 혹은 지성적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물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판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영감의 사람, 신령한 사람, 믿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북 이스라엘 여호람왕 때 아람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그는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엘리사가 머물고 있는 도담성을 밤중에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아침에 엘리사를 수종드는 종자가 일어나 나가보니 아람의 말과 병거가 성을 둘러 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엘리사에 고하되 “아 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오리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엘리사가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했습니다(왕하6:16). 그리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했습니다.

육의 눈으로 본 사환은 도단성을 둘러싼 아람 군대를 보았습니다. 영의 눈으로 본 엘리사는 도단성을 둘러싼 천군 천사를 보았습니다.

오늘 2006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 영의 눈을 활짝 열고 대망의 새해를 바라 봅시다. 우리가 영의 눈을 열고 보면 무엇을 볼 수 있는가?

Ⅰ. 영의 눈을 열고 보면 비젼을 볼 수 있습니다.

장군과 병사, 사장과 사원, 군자와 소인, 영웅과 겁쟁이, 성도와 불신자, 바울과 네로의 차이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평가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보는 것의 차이입니다. 무엇을, 더 넓게, 더 깊이, 더 많이, 더 높이 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위치와 그 사람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의자의 높이 따라서 보는 것이 다르다고 합니다. 흔히들 한 사람의 빈부차이는 소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오해도 없습니다. 빈부의 차이는 물질의 다과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빈부의 차이는 오직 볼 수 있는 능력의 차이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돈 부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강의 부자, 믿음의 부자, 사랑의 부자, 꿈의 부자 지식의 부자, 지혜의 부자, 건강의 부자..... 세상에는 돈보다 귀한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울밑에 핀 작은 꽃 한 송이를 보고도, 궁궐 같은 저택에 사는 사람보다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근심 걱정 하나 없는 마음이 부자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비록 가진 재산은 없었지만, 단지 그가 더 높은 것은 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세계를 정복한 씨저보다 위대하고, 솔로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눈은 더 높이, 더 멀리, 더 깊이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인 눈을 감고, 육적인 눈을 떠서 세상을 보니, 불안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내 저금통장의 동그라미를 세어보니 남의 것보다 적어서 가난하게 생각되고, 내 집이 남의 집보다 좁아서 내 자신이 작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안을 열어서 다시 나를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피로 값 주고 바꿀 만큼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나는 천국을 소유할 만큼 큰 부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강하고 무한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나를 둘러 보호하시고 나를 지키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해 보여도 저들 보다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는 자 같으나 늘 이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하는 자 같으나 늘 성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자 같으나 위대한 자들입니다. 영안을 열어서 세상을 보면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영안을 열고 앞을 보면 무한한 가능성의 비젼을 볼 것입니다.

Ⅱ. 영안이 열린 자는 무한한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한국에 천만 명이 넘는 크리스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진실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나님께서 내 가까이 계셔서 나를 돕고 내 삶을 지배하고 계신다는 이 믿음 위에 굳게 선 성도는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이 내 삶과 신앙생활을 이원화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오면 성도가 되고, 밖에 나가면 세상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안을 열고 바라보면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여화와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시4:8).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모세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 하나를 죽일 만큼의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 백 마리의 이드로의 양을 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입이 둔하여 남을 설득한다든지, 말로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을 역사상 유례없는 방법으로 출애굽을 시켰습니다. 무엇이 이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었는가? 육신의 힘이 아닙니다. 육신의 능력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7장 5절에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었는가? “내가” - “내 손을 펴서” -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모세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수종을 든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질병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실패로 우겨쌈을 당하고 낙망과 좌절로 우겨쌈을 당하고 있어도 영안을 열고 보면 나를 불 말과 불 병거로 둘러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능히 승리하시는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Ⅲ. 영안이 열린 사람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본문 17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열왕기하 19장의 말씀에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하룻밤에 아람의 군대 18만 5천 명을 모두 죽였다고 했습니다. 한 천사가 18만 5천명을 당할 수 있다면 사람 숫자보다 더 많은 천군 천사가 무슨 일인들 할 수 없겠는가? 그러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믿음의 사람 엘리사는 승리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미래에 보장된 축복이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히11:1). 하나님의 천군천사가 우리를 둘러 보호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대적도, 어떠한 난관도, 어떠한 재난도, 어떠한 사고도, 능히 물리치고 승리하는 2006년 한해가 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윤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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