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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당할 수 없는 영성 (행 6:8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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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쌔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사람들을 가르쳐 말 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아니하는 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공회(公會) 중에 않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사도행전 6:8-15.

  얼굴은 그 사람의 거울입니다.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인터넷에 중학교 여학생이 “제 얼굴이 네모인데 예뻐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라는 글을 올렸더군요. 십대에게는 얼굴이 아주 중요해서 모두 예뻐지고 싶어 합니다. 사실 여자들 대부분이 얼굴을 예쁘게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저는 제 아내보다 조금 연상이지만 얼굴을 보면 10년 이상은 차이 나 보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세수만 하면 그만인데 제 아내는 세수한 다음에도 얼굴에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요즘은 세수하고 나면, 이미 늦었으니 싫다며 손사래를 쳐도, 아내가 그래도 다르다며 손질해줘서인지 제 얼굴이 좀 좋아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얼굴이 우리를 보여주기에 얼굴이 자기 값을 하면 ‘얼굴값을 한다’ 하고, 자기 값을 못하면 우리 언어가 많이 순해져서 요즘 잘 쓰이지 않지만 ‘꼴값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유명배우 이영애 씨의 얼굴값은 1,500만원이랍니다. 최근에 이영애 씨가 허락 없이 자기의 얼굴로 광고를 낸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5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답니다. 또 어떤 개그맨은 200만원을 받아냈는데, 사람에 따라 얼굴에 따라 가격이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자기 얼굴값을 한 스데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15절). 스데반의 얼굴이 어떠했기에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했을까요? 사실 그 당시에는 카메라도 없었고, 그의 초상화도 남겨진 바 없으며, 성경에도 기록이 나오지 않으므로,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구든지 스데반을 보면 그 얼굴이 천사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얼굴이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정연해서도 아니요, 성형수술을 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내면에서 발하는 광채와 경건함이요, 예수를 만나고 성령 충만한 데서 배어 나온 인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할렐루야교회에서 예배하는 성도들의 얼굴들을 스데반 같은 천사의 얼굴처럼 변화시켜주시옵소서!” 오늘 아침 우리 모두 함께 드리고 싶은 기도제목입니다.

  스데반이 어떤 사람이었고 또 그 내면이 어떠했기에 광채 나는 천사 같은 얼굴이었을까요? 대답은 하나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스데반의 가슴에 충만했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가슴속에 임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면 우리의 눈길과 모습과 느낌이 변하여 천사 같은 얼굴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오늘 스데반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특징으로 여기에 여섯 가지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은혜로운 얼굴이었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에서는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즉, 스데반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느끼는 사람입니다. 설령 돈과 명예와 지위는 없었는지 몰라도, 이목구비가 정연하지 않았는지 몰라도, 스데반은 충만한 은혜를 확실히 체험하였습니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좋으신 하나님께서 스데반에게 베풀어주신 많은 은혜를 스데반이 넘치게 체험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떡하든지 하나님과 친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길과 축복과 친절과 자비와 긍휼을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다”라고 간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영원 전에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건강과 가족과 교회와 믿음과 사랑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예배하며 살 수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에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간섭하고 계시는 것이 체험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얼굴 표정과 눈길과 모습만 쳐다봐도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한 하나님과 친한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를 원합니다.

  둘째로, 권능이 충만한 얼굴이었습니다. 그 얼굴을 보면 뭔가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 힘은 자기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많은 문제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겨온 흔적이었습니다. 시련의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여 승리해온,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얼굴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연약해도 주 예수님은 강하십니다. 능력의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 속에 역사하셔서,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얼굴이 차분하면서도 그 속에 감추어진 영적인 힘이 사람들에게 느껴지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연약한 자들이 여러분에게 와서 여러분의 얼굴을 통해 힘을 공급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지혜로워 보이는 얼굴이었습니다. 역시 자기의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지혜가 부족합니다.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모든 상황을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판단력이 부족합니다. 스데반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우리의 지혜가 아무리 부족해도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알면 희망이 있습니다. 매일 지혜가 부족하면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혜로운 말과 판단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찾아와서 충고와 상담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했습니다. 구하는 자가 받을 것이며, 찾는 자가 찾을 것이며,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입니다.

  그런데 지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땅에서 오는 사람의 지혜와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야고보서 3장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의 여덟 가지의 특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약3:7-8).
첫째, 성결합니다(pure). 악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깨끗하다는 말입니다. 순수하고 투명하고 정직합니다. 꿍꿍이속이 없이 있는 그대로 깨끗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둘째, 평화롭습니다(peace-loving). 새 교우 성경공부시간에 어떤 분들은 자기소개를 하면서 우리 교회 교인들의 얼굴이 환하고 평화스러워 보여서 등록하게 되었다고 하시는데, 그 때마다 저는 참 감사하고 기쁩니다. 옆 사람을 한번 쳐다보세요. 환하고 평화롭게 보이시는지. 우리는 이 속에서 오래 살아서 잘 느끼지 못해도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이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갈등 속에서 헤매던 영혼이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 하늘의 지혜입니다.

  셋째, 관용합니다(gentle). ‘관용’이란 우리말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주는 넓은 마음을 말하지만, 여기에서 본래 뜻은 ‘젠틀하다’ 즉 ‘부드럽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부드럽습니다. 남자는 젠틀맨이 됩니다.

  넷째, 양순합니다(submissive). 이 말은 양보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양순하면 양보심이 있겠죠. 자기를 추구하고 자기를 고집하기보다 늘 다른 사람을 앞세우는 양보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사람은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해 줍니다.

  다섯째,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full of mercy and good fruit). 긍휼은 잘못한 사람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냥 덮어주고 벌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잘못을 했어도 그것을 일일이 따지거나 야단치거나 고함지르지 않고, 그저 못 본 척 눈감아 주는 것입니다. 남의 장점은 기쁘게 말해주지만 단점은 뻔히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 주는 겁니다. 시시콜콜 자꾸 지적하고 ‘벌써 몇 번째냐?’며 질타하면 이제 그 사람 얼굴만 봐도 ‘또 이번엔 뭘 지적할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갖고 사는 사람들은 긍휼함으로 자꾸 선을 베풉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이 그의 선한 말과 행동과 모습을 체험합니다.
여섯째,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impartial and sincere). 사람을 판단할 때 지방색, 장애자, 출신학교에 대한 편견 없이 동등하게 대하고 누구나 다 좋게 생각해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거짓이 없다’는 것은 위선이 없다는 것입니다. 앞과 뒤, 속과 겉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말과 마음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 없이 그대로 투명하게 받아도 되니 참 편안합니다.

  일곱째,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습니다(peacemakers).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마5:9)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은 가는 곳마다 평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싸움이 있는 곳에 평화를, 갈등과 분쟁이 있는 곳에 화목을 일으키는 평화의 사도로 모든 일을 원만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위로부터 온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의의 열매가 있습니다(a harvest of righteousness). 말과 행동이 의롭고 거짓이 없이 옳게 산다는 뜻입니다.

  그런가 하면 땅에서 오는 사람의 지혜는 일곱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입니다. 그리하여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고 요란과 악행을 저지르는 것입니다(약 3:15,16). 인간의 지혜만 갖고는 이런 갈등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일용할 양식만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도 구해서 선한 열매들을 많이 맺기 바랍니다.

  넷째로, 스데반의 얼굴은 성령 충만한 얼굴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는 매일 순간마다 그의 말과 행동을 성령께서 이끌어주셨음을 의미합니다. 나를 의지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성령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도움을 찾아 살아가는 모습을 ‘성령 충만’한 얼굴이라고 합니다.
다섯째로, 당당한 얼굴이었습니다. 겁에 질린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의 얼굴과 말과 행동과 모습을 보면 누구도 그를 당해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스데반 자신이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의 안에서 역사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실재 때문에 사람들이 스데반을 당해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모든 면에서 부족해도 하나님과 성령님을 의지하여서 어디를 가든지 당당한 영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스데반의 적들은 그의 당당한 모습을 싫어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잡으려고 거짓증인들을 내세워 거짓증언을 하게 하였습니다. 거짓말은 사실에서 하나를 보태거나 하나를 빼면 만들어집니다. 그렇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합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나사렛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다시 짓겠다고 했다느니, 모세 율법을 다 고치겠다고 했다느니 하며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겠다고 하신 적은 있습니다. 모세율법의 참 뜻을 바로잡아 설명해주신 적은 있습니다. 이렇게 사실을 살짝 비틀어서 상대방에게 좋지 않게 보이도록 하는 악마적이고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방법으로 그들은 스데반을 잡으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권력과 폭력으로 스데반을 억압하였습니다(12절). 백성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충동하여 스데반을 체포해서 공회로 끌고 갔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에 대해 여러분이 아무리 옳아도,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면 벌써 진 것입니다. 옳은 사람이 왜 폭언을 합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진리와 진실은 있고, 아무리 금덩어리가 진흙 속에 쳐 박혀 있어도 금덩어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보시고 들으셨는데 뭘 그런 걸 가지고 화를 냅니까? 사람들이 몰라주고 오해해도 아무 상관없어요. 마지막 심판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서든지 폭력적인 모습을 보일 이유가 없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억압과 위협을 하고 두려움과 긴장과 불안을 일으키는 것은 영적인 지혜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 혹시라도 폭력적인 요소가 있으면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은총 주셔서 성령께서 그 폭력적인 성향을 치워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늘의 지혜가 풍성하여 평화와 화해와 일치를 심어가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데반은 이런 특징들이 다 종합된, 한마디로 천사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우리는 천사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천사가 나타나니까 환해졌다는 성경기록을 보면 환한 얼굴임에 틀림없습니다. 천사들의 그 광채 나는 얼굴, 지혜롭고 은혜롭고 능력이 있고 하늘의 기적이 있는 그 얼굴은 결국 성령 충만한 얼굴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얼굴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은총 주셔서 여러분의 가슴속에 성령 충만하여 늘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위로부터 오는 지혜들이 풍성히 나타나는 얼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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