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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기도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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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한 번은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때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주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우리 생활의 규칙이요. 사도신경이 우리 신앙의 요점인 것처럼 주기도는 우리 기도의 모범이 됩니다.

그래서 칼빈은 "우리는 이 모범에 의해서 우리의 기도를 연습해야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 말로 기도하라 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이와 같은 태도로 기도하라." 고 교훈해 주셨습니다. 이 기도문 자체는 매우 간단합니다. 어린이들도 잘 외울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주기도문의 두 번째 부분으로 이것은 주기도문의 내용 중에서 본론에 해당되는 첫 번째 구절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매우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기도문이 새 번역에는 알기 쉽게 번역되었습니다. 또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라는 기도 내용은 새 번역에는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받들게 하옵소서."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기도 내용은 우리의 모든 기도 내용 중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나라이 임하옵시며..."를 먼저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를 먼저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은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할 것을 권면하셨고,. 날마다 일용한 양식이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이 되어야 하며, 인생들의 죄 사함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내용을 우선하여 간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성호를 늘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기도 하고, 욕되게 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이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榮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필요, 나의 개인적인 요구 조건과 그리고 개인적으로 직면한 모든 상황을 위해서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주님은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I.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받들기 위해서 하나님 이름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참된 기도는 인간의 간구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중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더구나 자기 소욕을 이루려는 욕망이 기도내용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 모든 사람의 기도는 자기의 소원이나 해결함 받기 원하는 문제나 고통, 인생의 무거운 짐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는 내용이 간구의 중심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유익하고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새 번역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받들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속성(본성, 특성, 인격)을 대표합니다.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의 전 인격과 신분을 대표하듯이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속성을 대표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 취미, 성격, 기질을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고 또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놀라운 이름입니까? 그래서 시편 8:9에서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모독하는 것입니다(레 24:16)

2.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활동(活動)을 의미합니다.

시편 20:1에서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즉 하나님의 이름이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이름을 부르는 순간, 하나님의 이름을 높아지기를 원하는 순간에 그 하나님은 나와 관계하시며, 나를 높이시며, 내 생활 속에 들어와 나를 간섭하시며 나의 생활을 주장하시며 역사 하시는 하나님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II. 하나님은 어떤 이름을 갖고 계십니까?

1. 엘로힘(Elohim)

[엘로힘]이라는 이름은 구약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로 우리말 성경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번역되어 있으며, 그가 능력이 많으신 분이심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무(無)에서 유(有)를 가져오시는 하나님인데 인간이 모방할 수 없는 이 엘로힘의 하나님을 아는 순간, 이 하나님을 부르는 순간 사람들의 생애는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구약의 모든 성경 인물 가운데 야곱처럼 간사하고 꾀 많은 인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야곱이 인생의 석양을 맞이하여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삶에서 처음으로 [엘로힘]을 부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변화됩니다. 더 이상 그는 자기의 지혜를 의존하지 않으며 자기의 꾀와 자기의 수단을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가 [엘로힘]의 하나님을 부르는 순간, 자기의 아들들이 애굽에 내려가는 문제에 관해서, 자기 인생이 모든 전폭적인 문제들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있습니다(창 43:14)

그렇다면 왜 야곱이 그렇게 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 모든 현실을 그 분께 맡기는 순간,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상황을 주장하시며, 내 현실을 붙잡으시고, 내 속에 역사 하셔서 내 삶의 모든 상황을 변화시키십니다.

2. 여호와(Jehovah, Yawh)

[여호와]라는 이름 역시 구약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로 본래의 발음은 [야훼]로 여호와 하나님 곧 야훼 하나님이라는 부릅니다. 그 이름이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영원자(永遠者)가 되심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여호와]란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시간에서 영원으로 들어가며 그리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게신 그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이 자존자(自存者)가 되심을 말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그의 앞에 섰을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출 3:14)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모든 원인 중에 원인이시며, 그 원인을 존재케 하신 스스로 자존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자존(自存者)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구별자“가 되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분으로써 인간과는 전혀 질적으로 다른 분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거룩한 분이시라고 부릅니다. [거룩](히 :카다쉬)라는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넷째, 구속자(救贖者)가 되심을 말합니다.

즉 이 말은 사람과 더불어 약속하시며, 계약을 맺으시며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이루시며, 생활 속에서 관여하시며 역사 하시는 구속자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계시하며, 우리의 생활 속에 침투해 들어오시고, 우리의 상황을 주장하시며, 친히 약속을 반드시 실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왜 우리 백성을 이대로 놓아두십니까? 약속대로 우리 백성을 구출해 주십시오"라고 절실하게 탄원과 기도를 할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가 "야훼 여호와 하나님이시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복합적으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속성과 활동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 단어들에 하나님에 대하여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① 여호와 이레(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② 여호와 라파(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③ 여호와 닛시(우리의 깃발이시며 승리의 깃발이신 하나님)
④ 여호와 삼마(상황 현실 속에 계시는 하나님)
⑤ 여호와 샬롬(평강의 하나님)
⑥ 여호와 치드케누(우리의 의로움이신 하나님)
⑦ 여호와 라하(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이신 하나님)라는 단어들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들판에 홀로 버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계서서 나를 붙드시며, 나의 생애와 삶 전체에 철저하게 간섭하시며, 구원에 이르도록, 하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함부로 [야훼]라는 단어를 입술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단어를 발음하기 위해서 목욕을 했으며, 그리고 오랜 세월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단지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씩 거룩한 옷을 입고, 양의 피를 칠하고, 그들의 지성소에 들어가 야훼 하나님을 불렀던 것입니다. 심지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읽다가 [야훼]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 단어는 그대로 발음하지 않고 묵음(默音)으로 그냥 지났다고 합니다.

또한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3 계명을 마음속에 생각하게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얼마나 가볍게 경솔하게 불러지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과연 성경에 나타난 대로 거룩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면 감히 어떻게 이 하나님의 이름을 경솔하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말씀하신 뜻을 받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서 거룩하신 야훼 하나님의 속성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황송해서 부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이 "아도나이"(Adonai)"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란 말 대신 하나님을 [아도나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주인(Lord)이라는 말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 내 삶의 주인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시며, 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나의 주인이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라는 뜻입니다.

III.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라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내용만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모든 존재와 구별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과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의 피조물입니다.

사도행전 17장 28절에 "우리는 그의 소생이라 하였고, 말라기 2장 10절에도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
냐?" 고 하였습니다. 이 아버지는 우리를 특별히 택해서 그의 자녀로 삼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 를 예정하사"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서 우리를 택하여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또한 특별하신 은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버지가 되어 주셨십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났으므로 하나님을 우리는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9절에도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닙니까? 바울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게 하였습니까? 믿음입니다. 갈라디아서 3 장 26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창조자, 심판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하늘 나라의 권속으로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으면 우리가 교회의 입교인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새 번역에서 알려준 것처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받들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살 것을 권고하신 것입니다.

성전의 기구들은 왜 거룩해야 합니까? 그것은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되도록 거룩하게 그 사용 목적을 구별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도(聖徒)입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도록 구별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간구는 "하나님은 다른 모든 피조물로부터 구별되고, 구별되어야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그 이름을 거룩히 받들도록 살겠습니다"라는 신앙 고백적인 간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하나님을 다른 어떤 피조물과 비교하려는 어리석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 구원받아 구별된 선택된 자녀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받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선교적 책임을 요청되는 기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에게 속한 그의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9) 나는 그분에게만 속해 있는 선택받아 구별된 백성이며, 하나님을 향해서만 사랑과 충성과 내 생이 바쳐질 것을 약속하는 거룩한 소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IV.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받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가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전에 이미 거룩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생활, 나의 고백, 나의 모든 것을 통해서 그의 이름이 참으로 거룩하고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나타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새 번역의 번역인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받들게 하옵소서."라고 한 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해 집니다.

시편 33:21에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며 그 하나님이 전능한 하나님이심을 알 때 우리는 그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대접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영광스럽게 하고,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를 그 분 앞에 전폭적으로 내어 맡기는 순간 그의 이름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스럽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모든 회의를 청산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였을 때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입니다(롬 4:20,창 18:14)

그런데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위대한 사상가 파스칼(Pascal)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대접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고 있습니까? 혹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주의하여 보아야 합니다. 느 9:5에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 찌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 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다."라고 말씀하고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과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참으로 송축하며 찬양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입술만의 찬양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는 찬양을 드려져야 합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재산과 가족을 잃은 끔찍한 비극을 당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몸에도 악창이 나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욥기 2:10에서 "그대의 말은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냐?"하였고, 욥1:21에서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온 즉 또한 적신으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고 대답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옴으로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 10:3에서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가까이 나와 주님과 교제하며 또 주님을 소중히 여기는 흔적이 내 생활 속에 나타날 때 하나님의 이름은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에 하나님은 얼마만큼 중요하십니까? 참으로 그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며, 내 삶의 전부이며, 내 삶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심을 믿고 가까이 가서 마음을 열어 그분을 경배하는 시간이 많을 때 나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내 삶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되 최선을 드려야 합니다.

시편 96:8에서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찌어다."고 했습니다. 귀한 것을, 최선의 것을 그분에게 드리십니까? 최선의 것을 드릴 때 우리는 그 하나님이 최선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역대상 29:16,17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아직도 젊다고 말할 수 있는 그 계절에 여러분의 최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영광을 내가 취하지 말고 주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시편 156:1절에서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요한은 말하기를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습니다(요 3:30) 하나님을 향해서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림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의 이름을 존귀케 한 것입니다.

다섯째로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주님을 이름을 존귀케 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지만 전혀 하나님의 백성답지 않은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로마서 2:24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경고가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은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마 5:16)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하며, 낮에는 그리스도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밤에는 그리스도를 꿈꾸며, 그들의 의식과 사고는 그리스도로 젖어 있으며,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며,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리스도 중심의 놀라운 삶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를 제자를 가리켜 안디옥의 시민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행 11:26)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속에는 그리스도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이름 앞에 영광과 존귀를 돌리고 있습니까? 혹 나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이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모독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출17:11) 그리할 때만이 우리 자신의 교만적인 자아는 사라지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자신의 모든 삶을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하나님과 자신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삶에서 이탈하지 않게 되는 은총을 받아 비로소 이 땅에서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되 최선을 드려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취하지 말고 주님 앞에 드리되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주님의 이름이 존귀케 되도록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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