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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습니까? (창 1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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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s, Be ambitious!”라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19세기의 세계적인 식물학자이며 농학자였던 윌리엄 클라크 박사가 한 말입니다. 이분은 매사추세츠 주립농과대학 학장으로 있다가 1876년 7월에 일본 삿포르 대학의 농림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의 일행이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아주 큰 보따리를 여럿 들고 들어 왔습니다. 이것을 본 일본의 장학관이 “무슨 짐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저 없이“성경입니다.”라고 대답했고, 장학관이 “이곳에서는 성경은 가르칠 수 없는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러면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했습니다. 이 말에 크게 당황한 장학관은 “강의 시간 이후에 가르치시지요”라고 허락했고, 그는 삿포르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성경에 인생의 꿈이 있다’고 방가 후에는 학생들을 모아 놓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임기를 마친 후 그는 고별사에서 “Boys, Be ambitious!”즉,‘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오늘도 일본 삿포로농과대학 교정에 세워진 그의 동상에는 이 세계적인 명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도 이 분의 말처럼 성경에는 인생을 살리는 ‘꿈’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들에게 꿈을 주시고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이 어느 날 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결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어거스틴에게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는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만을 원합니다. 오직 주님 사랑만을 원합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주님이 인생의 창조자이시며, 우리의 삶의 모든 것 되심을 고백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우리 인생이 시작되고, 주님 품 안에서 우리의 인생이 마쳐 진다는 것을 고백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조차 롯과 헤어졌습니다. 좋게 헤어졌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과 롯은 목초지라는 재산 문제로 다투고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헤어졌습니다. 재산 문제로 다툼이 나고 재산 문제로 헤어지게 되면 마음에 상처가 오래 가고 깊게 생기는 것입니다.

  이번 월요일과 화요일에 저도 친가에 다녀왔습니다. 장모님 생신도 되었지만 이번에 그곳에 댐이 생기면서 옛집을 헐고 장인 장모가 새로 집을 지어 집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어느 친가의 친척이 하시는 말씀이 댐이 생기면서 가족들이 서로 보상 문제로 싸우고, 십여년간 얼굴도 보지 못한 형제들이 찾아와서 보상금을 나눠 달라고 싸움을 한 집이 한 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가 마을 전체가 시끄러웠고, 가족이 붕괴되고 형제가 원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처가 형제들이 하는 말이 아들 하나만 있어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재산으로 인해 죄가 얼마나 쌓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베드로 전서 1:24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18절에는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했습니다. 

  롯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좋은 곳을 선택했습니다. 물이 많고, 풀도 많고, 문화적인 시설도 좋은 요단을 선택하여 떠났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차지해야할 땅은 광야였습니다. 광야에는 목초지도 없었고, 광야에는 물도 없었고, 광야에는 자연이 주는 어떤 혜택도 없는 문화적인 시설도 없었습니다. 광야는 그저 바람과 돌과 먼지와 더위와 추위뿐이었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조카에게 당했다는 일종의 배신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좌절과 실망감으로 주저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저 광야에서 어떻게 이 많은 양떼를 먹이고,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깊은 근심과 걱정 속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앞날과 미래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절망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는 눈을 들어....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17절에는 너는 일어나서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디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요단입니까? 아니면 광야입니까? 하나님은 일어나서 도대체 어디를 두루 다녀 보라는 것입니까? 풍요한 요단입니까? 아니면, 절망의 땅 광야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아브라함처럼 주저앉아서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혹은 우리 자신들의 삶에 대해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볼 때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바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며 우리들에게 꿈과 소망을 주시며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그 창조자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는 분이며, 사막에 강을 내시 분입니다. 사망의 길에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소망 없는 곳을 소망의 장소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에스겔 골짜기를 생명의 골짜기로 부활의 골짜기로 바꾸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왜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까?

  수년 전에 저도 이 임대 건물이 경매 당하고, 법원에서 오라 가라고 할 때마다 참으로 낙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전도도 안 되고 성도들이 모이 않을 때 낙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무시하는 거냐?”“무슨 말씀입니까?”했더니, 이사야 45:7절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말씀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시고,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으로 건너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창조의 하나님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바로 안다면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광야에 샘을 내게 하시고, 벌판을 꽃동산으로 만드시는 그분의 능력을 믿는다면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은 광야를 보며 한숨짓고 있는 아브라함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럼 어디에서부터 바라봄을 시작해야 합니까? 14절을 보면 멀리서 시작할 것이 아니라 바로 “너 있는 곳에서부터...”라고 했습니다. 소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수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 앞에 있습니다. “너 있는 곳에서부터...”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들이 서 있는 그곳에서 소망과 꿈을 가지고 시작하면 됩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토크 쇼 중의 하나가 The Oprah Winfrey Show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18살의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9살이 되었을 때 친척에게 강간을 당하고, 14살이 되기 전에 두 번이나 더 유린을 당했고, 14살에 출산한 아이는 2주 후에 죽었고, 남자 친구로 인해 마약에 손을 대었으며,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녀의 몸은 100kg이 넘는 볼품없는 드럼통같은 큰 몸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시사주간지인 타임지에 의해 '20세기의 인물'중 하나로 뽑혔으며, 포춘지 선정 미국 최고 비즈니스 우먼 2위로 올라갔으며, 인콰이어러지에서는 그녀를 '세계 10대 여성'의 첫번째 자리에 당당히 올려 놓기도 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조사로는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중에서 놀랍게도 3위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저는 삶을 통해 정말이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그 동안 사람들에게 각자 꿈을 가질 필요와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진실입니다. 처음에는 몇 번의 좌절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죠. 하지만 그러한 좌절은 저에게 어떠한 것도 이겨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도무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오히려 할 수 있습니다....인생이란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삶이 진보하는 방식이 매우 기쁩니다....인생의 승리자가 되려면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과거에 머물러서 그 과거가 지금 당신을 지배하도록 놔둔다면 결코 성장 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저는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해골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죽음과 사망의 골짜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이며 유일한 길은 해골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나 앞으로 앞으로 계속해서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걸어가야 그 골짜기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그 죽음의 골짜기, 사망의 골짜기를 빠져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꿈을 주시지만 그 꿈과 소망을 향해 걸어 나가는 것은 분명히 우리들의 몫입니다. 바라보고 또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걸어가야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걸어 앞으로 나가야 홍해를 뚫고 마른 땅을 지나 구원의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나를 인도하고 있다고 해도 내가 걸어 나가지 않고 있다면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과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약속해 주시고, 보여주신 비전과 꿈이 있다면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니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쉬지 말고, 앞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비록 지금 그 땅이 광야처럼 소망이 없어도 말씀을 믿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17절에는 “너는 일어나라!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그 약속을 향해 앞으로 나가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불가능한 약속입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 구걸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의 소망은 오직 구걸이었습니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날 때부터 그런 인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일어 설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날 때부터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어 설 수 있었고, 걸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지금 내 모습, 내 환경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달리 보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내게 주니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할렐루야! 그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이제 뛸 수도 있게 되었고, 주님을 찬양 할 수도 있게 되었고, 사람들 앞에서 구걸하는 인생에서 도움을 주고 주님을 간증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작년에 히트한 영화중에‘말아톤’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영화의 소재는 배형진이라는 자폐아를 가진 아니와 그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배형진 군은 정상적으로 사회 활동이 힘든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배형진의 어머니는 그를 사회 속에서 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달리기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사실은 배형진 군이 달리는 달리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영화 속에서 나오는 배형진군의 말이었습니다. 배군의 어머니는 배군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형진이 다리는....” 그러면, 형진이는 “백만불짜리 다리”라고 대답합니다. 어머니는 그에게 “형진이의 몸은...”이라고 물으면 형진군은 “끝내줘요”라고 대답합니다. 이 얼마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답입니까? 참으로 그 어머니의 생각이 긍정적으로 적극적인 것이 아닙니까?  결국, 어머니의 고백과 형진군의 고백처럼 그들은 백만불자리 다리와 끝내주는 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볼 수도 없고, 걸어 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4절에는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 전투에서 인생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출발점은 바로 일어서서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일어서야 합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걸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걷고 또 걸어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1절 이하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할렐루야! 하나님은 주신다고 하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채우신다고 하시면 채우시는 분입니다. 진실로 올 해 동안 채워 질 것이 채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룰 것이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합니까? 무조건 일어나서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을 믿고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합니다. 좌절과 낙심 절망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합니다. 과거는 과거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일어나 눈을 들어 광야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는 약속을 믿고, 소망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용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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