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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영의 지배를 받아 (겔 36: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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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새 것을 좋아합니다. 새 옷, 새로운 집, 새 차 등 . . 또 누구나 새해에는 구태의연한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무언가 새롭게 시도해 보려는 욕구가 생깁니다. 그러나 ‘작심 3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은 과거로 돌아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었다고, 해돋이를 보았다고 우리를 새로운 모습이 저절로 변화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해 주셔야만 합니다.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된 성도들의 교회, 은혜를 사모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되었던 데서부터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를 드려야 할 제사장들이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백성을 바르게 다스려야 할 지도자들이 뇌물을 받고 타락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가난한 자의 아픔의 소리를 외면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오랜 세월동안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에서 더럽힘을 받은 그 거룩하신 이름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을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22)라는 말씀입니다. 32절에서도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바벨론 포로 되었던 데서 돌아오게 함은 너희에게 그럴만한 무슨 선이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가슴을 아프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반복되는 패역함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23절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의 행위 자체를 보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랑의 손길로 다가오고 계십니다.
그래서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26)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 새로운 심령의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예 바꿔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요즘, 리모델링이 유행합니다. 집도, 아파트도 . . . 리모델링을 하면 새것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리노베이션(Renovation)이라는 말도 많이 하는데 리노베션은 기존 건축물을 헐지 않고 개수 또는 보수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증축, 개축, 대수선, 용도변경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으리의 마음을 리모델링해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은 “마음이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고, 천국을 지옥으로 바꾼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문제는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한 진정한 개혁은 없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렘17:9)고 하였습니다. 이런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을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새 마음을 가지게 하고 바르게 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3:23에서 마치 표범에게 있는 반점을 없앨 수 없듯이, 흑인의 피부를 희게 할 수 없듯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새 영을 받으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6-27)
왜 우리의 생활에 발전이 없고 성장이 없는 것입니까? 마음의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도, 행동도 변하지 않고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1. 인간은 무엇엔가 지배를 받고 살아갑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만의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것에 의해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지배를 받고 사느냐가 인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적 본능과 정욕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육에 속한 사람, 자연인입니다. 이들은 자연적인 본능대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다만 짐승처럼 자기 육신만을 위해서 살고.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 삽니다. 그들의 관심과 욕망은 오직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입니다. 동물과 같이 본능과 충동의 지배를 받고 살기 때문에 방탕과 음란과 호색. 술취함. 쟁투. 시기 등 현세의 말초적 쾌락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삽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사람” 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벧후2:12).

둘째는 자기의 이성과 지식에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소위 지성인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2:14, 3:1). 이들은 자기의 의지와 판단에 의해서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언제나 자기가 기준이 되고 자기가 중심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과 지식이 기준이 됩니다. 자기 판단이 언제나 현명하고 옳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정받으면 기뻐하고 인정받지 못할 땐 우울해 지는 것입니다. 또 자존심이 강하고 명예심이 강합니다. 그래서 위선적이고 나타내는 것을 좋아 합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종교생활도 열심히 합니다. 그것도 자기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육신에 속한 사람은 많습니다.

셋째는 성령의 지배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은 십자가 위에 못박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께서 감화해 주시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성령의 사람”이라 합니다.(롬8:8-10. 갈5:25). 성령의 사람은 자기의 무능함을 깨닫기 때문에 겸손합니다. 순종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자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늘 말씀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순종합니다.(롬8:12-17)

여러분은 지금 이 세 종류의 사람들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들은 무엇에 지배를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새해에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권세입니까? 새해에는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새 영의 지배를 받으십시오.

사람의 마음에는 두 가지 형태의 리듬이 있다고 합니다. 알파의 리듬이 있고 베타의 리듬입니다. 베타의 리듬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먹고 마시고 일하고 공부하고 하는 육적인 리듬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리듬이 발달 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쪽에 머리도 잘 돌아가고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이런 리듬도 참 중요합니다.

또 알파의 리듬이 있는데 이 리듬은 산과 자연을 벗하고 음악을 감상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신령한 리듬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고 신령한 세계에 눈이 뜨입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는 사람입니다. 새해에는 알파리듬이 발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알파의 리듬을 따라가면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러한 민족적인 회복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의 변화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회복은 새 영,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의 회복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주신 씀입니다.
새 영이 무엇입니까? 마지막 말세에 부어주실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고 우리가 그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면 새 마음이 되게 됩니다. 새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성령의 통치와 간섭을 받으며 사는 것이 복입니다. 좋으신 성령님은 우리가 길을 걸을 때에나 집에 있을 때에나 말씀을 들을 때 늘 내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간섭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멀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성령은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에게 보증으로 주신 증표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따라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내주하심은 우리가 천국 문에 이를 때까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오늘 많은 교인들의 비극은 내 속에 계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대부분 현대인들의 사람은 누구의 간섭이나 지배를 받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자기 맘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건방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조차 귀찮아합니다. 싫어합니다. 피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구에 있는 최대 흑인지역 할렘가(Harlem)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마을은 18C에 네델란드 사람들이 일궜는데, 지하철 계획으로 땅값이 폭등했다가 폭락하게 되자, 흑인들이 싼땅을 사서 들어오게 되었고, 흑인들을 피하여 떠나버려서 좋은 집들이 텅텅 비게 되었고, 빈집에는 흑인들과 걸인들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건물마다 낙서와 쓰레기와 무질서로 가장 더러운 마을이 되었습니다.
집을 비워두면 먼지와 쥐가 들끓게 되고, 그 외 모든 원치 않는 것들이 드나들게 됩니다. 비워둔다고 비워 있질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12:43-45절에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에게 있던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어디 물 있는 살만한 곳을 찾아봤으나 얻지 못하고, 옛날 살던 생각이 나서 다시 그 사람에게로 와서 보았습니다. 다른 주인은 없고 텅 비어 있는데, 깨끗하여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그 사람에게서 쫓겨났으니 이제 다시 들어거려면 자기 힘만으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다른 귀신 일곱을 더 데리고 그를 억제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26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비워두면 안됩니다. 누구의 지배를 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마귀가 들어갑니다. 그 사람은 누구의 지배를 받기 싫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지만 마귀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간섭을 갈망하십시오. 사모하십시오. ‘성령님 오늘도 나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온전히 받기만 한다면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게 됩니다. 참된 기쁨과 삶의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찬양나팔2집 117>> 주님과 같이 내 마음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주 자비 강 같이 흐르고, 주손길 치료 하네. 고통 받는 자녀 품으신 주밖에 없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2. 새 영의 지배를 받는 자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26 “또 새 영(靈)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음의 변화, 인격의 변화, 삶의 변화는 내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수양이나 교육이나 윤리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살아서 지금도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똑바로 받기만 하면 나의 성품이 바뀝니다. 기질이 변화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간절히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고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다윗왕은 자신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께 범죄하게 되자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시고, 성령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0-11)

어떤 장로님이 의사였는데 교회에서 참으로 흠잡을 데 없이 생활하는 장로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아주 교만한 성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을 시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기도를 하는 중에 사흘쯤 되는 날 그의 앞에 시커먼 물체가 다가 왔습니다. 점점 가까이 왔을 때 자세히 보니 너무나 더럽고 누추한 거지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신이었습니다. 자신은 여태까지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교회에서도 존경받는 장로인줄로만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자신의 모습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그 장로님은 자신이 이렇게 더러운 줄도 모르고 교만했던 것을 회개하며 울기를 한 달이나 계속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영이 우리 속에 오시면 그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새 일을 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노라”(사43:19) 사람을 리모델링해서 새롭게 바꿔 놓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새 영의 지배를 받으면 우리의 마음을 부서뜨리고 깨뜨리십니다. 그리하여 완전히 가루처럼 부드럽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이 되게 하십니다. 새 사람 되게 하십니다. 생각과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기쁨이 샘솟듯 일어납니다. 소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분 새 영의 지배를 받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새 영과 새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새 영이 아름답고 귀한 복인 줄 알기만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뚜막에 소금도 집어넣아야 짭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주시도록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것입니까? 아닙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물로 포두주를 만드신 기적을 행하셨는데 잔치하는 집 앞에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에 하인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였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영, 즉 성령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하는 자들에게 성령충만을 주십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성령 받는 것을 그렇게 사모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 . . 기다린다는 것은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기다려 본 사람은 기다림의 간절함이 얼마나 큰지를 충분히 이해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기다릴 때 얼마나 간절한지 스타일이 비슷한 사람만 보더라도 그 사람인줄 알고 착각하여 실수(?)할 뻔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갈망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간구를 동반합니다. 정말 갈망하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만약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사정이 그렇기 때문도 아닙니다. 갈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찾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답답한 사람이 찾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고요. . . . 성령님을 간구하지 않는 것은 ‘나는 별로 성령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그러므로 성령님을 사모하지 않는 것은 바로 죄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새해에는 새 영이 나를 지배해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기도하면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2)

그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성령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 거룩하신 분은 죄와 함께 거하실수 없는 깨끗한 분이십니다. 우리 속에 더러운 죄로 가득 차 있으면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 계시다가도 자꾸만 죄를 지어 우리 속이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면 근심하시며 떠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속에 아직 숨겨진 죄가 있다면 미루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금 즉시 회개하십시오. 회개하지 않는 심령에 성령님이 오실 수 없습니다. 회개만 하면 성령을 폭포수 같이 내려주실것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 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주의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되고 그렇게 살면 새 영이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내 신(神)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27)

규례를 지킨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마5:26) 악한 행실을 할 땐 성령이 역사 하실 수 없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엡4;26-27) 악한 행실로 성령을 근심케 하고. 악령이 역사 할 기회를 주어선 안됩니다.
육체의 소욕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소욕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소욕대로 살므로 성령을 기쁘시게 해드리라는 것입니다.

악한 행실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엡4:31에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과 함께 버리라”고 했습니다. 악한 행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악한 행실을 할 때 성령은 근심하십니다.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성령님이 오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이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서 하면 성령님이 오실 수 없습니다. 새해를 성령님과 함께 합시다.

3. 새 영의 지배를 받으면 풍성함을 누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종합적입니다. 영적인 것인 동시에 정신적인 것도 육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풍성함이 있습니다. 영적인 것만이 아니라 육적인 것, 물질적인 것도 말입니다. 예수를 오래 믿었는데도 불구하고 남에게 빌어먹고 멸시받고 업신여김 받는 삶만 계속 살아간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29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29-30)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되자 그들의 삶은 변화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큰 축복이 이루어 졌는데, 늘 그들을 괴롭히던 기근은 없어지고 곡식과 실과가 풍성케 되는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땅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선조들이 누리던 옛 영광을 찾아 누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8)
그리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바로 믿으면 영적으로도 건강하고 기쁨이 있지만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물질적으로도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새영의 지배를 기쁨으로 받아 심령에 회복의 복을 받으시고, 풍성함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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