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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에게 확실한 목표가 있습니까? (빌 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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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시작하면서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많은 걱정들이  쏟아져 들어오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한 5-6년 전쯤 기록된 것으로서 그 당시 바울의 나이는 이미 60대에 접어 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난 30여년 동안, 예수를 처음 믿은 이후로, 그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혀서 소아시아를 누비며 중요한 도시마다 교회를 개척했고, 또한 그 교회들이 아주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가 세계역사가 되도록 자리 매김 하는데 있어서 영웅적인 업적을 남긴 사람이 되었고, 또 서구 문화를 놓고 볼 때 문명의 물꼬를 바꾸어 놓았다고 할 만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면 누구나 자기의 화려한 업적에 도취되고 만족해서 이제는 좀 템포를 늦추고 적당히 살자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13-14절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아직 나는 목표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힘을 다해 달려가고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울에게서 이런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굉장한 도전입니다.
이 바울의 말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바울이 말하는 푯대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푯대라고 말하는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이미 성경을 통해서 잘 아는 바와 같이 바울은 예수님을 혹독하게 핍박했고, 미워했으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살려둘 수 없다는 생각에 그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를 사로 잡으셨습니다.
이것이 그가 바로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잡히자마자 예수님은 바울의 주인이 되었고, 바울은 예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얼떨떨했고 “무슨 이런 일이 있나? 왜 내가 이렇게 비참해지나?”하고 느꼈을지 모르지만, 예수를 핍박한 자기를 불쌍히 여기셔서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사도로 불러 주셨다는 사실을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나는 이제 이 예수를 위해 살리라” 이것이 나의 인생의 유일한 목표요, 내가 달려갈 유일한 푯대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10-11절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러 하나니”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예수처럼 욕먹고, 예수처럼 매맞고, 예수처럼 굶주리고, 예수처럼 멸시받는 일을 자청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처럼 되고 싶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에 자기도 죽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능력을 자기도 체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이 기뻐하는 사람,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 주님을 존귀케 하기를 원했던 것이 바울이 자기의 인생 목표로 설정한 것입니다.
1:20절을 봅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다시 말해서 이 일을 향해 바울은 그의 인생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인생 목표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표가 확실한 사람일수록 그 삶은 의욕이 넘치고, 또 장애물이 있어도 쉽게 뛰어 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슨 목표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표가 뚜렷하지 아니하면, 이 일하다가 안되면 저 일을 하고, 아무런 전략도 없고, 일정한 우선 순위도 없는 행동을 하다가 결국은 작은 일을 붙잡으려고 큰일을 놓쳐 버리는 참 안타까운 인생을 살다가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을 걸 만한 목표가 나에게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라틴어로 목표라는 말은 “피니스(finis)”인데, 이것은 종말 혹은 끝이라고 하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진짜 목표는 인생종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끝에 가서 후회하지 아니하는 목표라야 진짜 목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생 목표를 바로 정하고 달려 왔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환호하듯이 외친 것이 “다 이루었다”는 말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종말에 마지막으로 남게 될 질문이 무엇입니까?
“역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것입니까? 물론 중요합니다.
“우리 후손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입니까? 물론 그것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흐르면 다 먼지 속에 파묻히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남는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예수님 앞에 예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설 수 있을까?”하는 그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의 심판자요, 역사의 승리자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 예수님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통일하셔서 흠과 티가 없는 거룩한 백성들이 사는 영원한 하늘나라를 완성하시고 그분이 영원토록 다스리게 됩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남는 분은 예수님이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날 분도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바로 살았느냐 바로 살지 못했느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바울은 바로 이런 목표를 푯대로 정해 놓고 지금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생활에서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참으로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건강도 중요하고, 열심히 일하여 돈을 모아서 주님의 나라와 선한 일하는 것도 중요하고, 성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현실적인 목표나 계획은 주님을 기쁘게 하는 제자가 된다고 하는 종말적인 목표에 비해서 내가 지금 현실적으로 갖고 있는 계획이나 목표는 이차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짧은 인생인데 두 가지, 세 가지 추구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명을 걸어도 후회하지 아니할 수 있는 것, 마지막에 가서 큰 소리 칠 수 있는 것, 그것 하나만을 잡고 집중해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이 목표, 푯대를 향해서 좇아간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좇아간다”는 말은 달려간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바울의 형편을 한번 보십시오.
그는 지금 감옥에 수감되어 언제 풀려나올 지도 모릅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그는 이미 불길한 죽음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나이도 지금 60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몸에는 여전히 괴롭히는 가시가 있습니다.
남에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늘 어떤 통증을 느끼며 불편을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마치 “육상선수가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서 달려가듯이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우리가 가볍게 들으면 안됩니다.

여러분,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는 감옥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기가 개척한 교회 성도들에게 열심히 편지를 썼습니다.
요사이처럼 볼펜이나 종이가 제대로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어두캄캄한 감옥 속에서 시력도 좋지 않아 고생을 하는 마당에 많은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차가운 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성도들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가며 밤이고 낮이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전도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대인들을 앉혀 놓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감옥에서 쉴틈없이 달려가는 인생을 산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걸어가듯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말하는 달려가는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목표는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요,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요, 내가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는 작은 예수의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 봐야 합니다.
나에게 있어 교회 다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막연히 그저 신앙생활의 습관에 젖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것은 우리의 삶의 본질을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2.바울은 자기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데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두 가지를 포기했습니다.
첫째는, 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했고, 13절을 보면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현재에 만족하여 안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만큼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평생을 투자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지금 어떤 형편에 와 있든지, 여러분의 신앙이 얼마만큼 성숙했든지,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얼마만큼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든지,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만큼 자라서 놀라운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든지 간에 현재에 안주하지 마시고 2006년은 앞을 내다보고 뛰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바울이 포기한 것은 13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말해서 뒤에 있는 것, 지나간 것, 과거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과거는 핍박자요, 훼방자요, 포행자였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과거의 경력이 있고 전과가 있습니다.
그것을 다 이제는 돌아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미 다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앞만 내다보고 달려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에 은혜를 많이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과거에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 많이 봉사한 일이 있습니까?
헌금을 많이 하셨습니까?
그러나 돌아보지 마시고, 예수 안에서 그것들을 다 잊어버리십시오.
요14:21절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임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달려가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모든 일을 우리에게 다 해주시는 독특한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옥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감옥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는 소리를 9번 이상이나 하고 있는 것을 아십니까?
도대체 바울에게 그 힘과 기쁨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푯대를 분명히 하고 달려가는 삶을 살기로 작심하고 있는 바울을 주님이 보시고 매일매일 그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이라는 환경도 바울을 꺾지 못했고, 나이도 꺾지 못했고, 그 몸에 있는 병도 꺾지 못했고, 다가오는 죽음의 불길한 예감도 그를 기죽지 못하게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푯대를 향해 바로 달려가기만 하면 주님이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남 모르는 질병이 있습니까? 남이 모르는 개인의 상처와 고통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무거운 십자가의 짐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푯대를 향해서 끊임없이 달려가기만 하면 주님은 그 모든 것들을 이기고도 남은 새 힘을 날마다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습니까?
롬8:35-39절을 보면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내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음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내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아무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있는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누가 우리를 꺾습니까?
우리에게 푯대만 분명하다면, 달려가는 일만 제대로 한다면, 어디에 우리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질 세력이 있고, 권세가 있고, 고통이 있습니까?
반드시 바울이 승리한 것처럼 우리도 승리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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