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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 (욘 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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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한 개인의 작은 꿈이나 국가적인 비전이나 소중하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분명한 꿈이나 뜻을 갖지 못한 개인이나 국가는 망할 수 밖에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성도 여러분들께서도 나름대로 뜻을 품었을 것이고 각 기관들은 기관대로 비전을 가졌으리라 믿으며 그 꿈과 비전을 이루실 주님의 손길이 한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니엘서 1장에는 바벨론의 궁정에서 특별 양육을 받는 젊은이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약 3년간의 과정으로 훈련을 받은 뒤 바벨론이 다스리는 지역의 방백으로 임명되어 왕의 통치를 도울 젊고 유능한 예비 엘리트 관원들인 셈입니다. 그들중에 다니엘이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식생활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우상의 제물에 먼저 드려졌던 왕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다니엘 1:8에 보면,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결국 다니엘의 신아적인 결단을 내린것을 두고 하는 표현입니다. 아무리 왕이 먹는 진미라고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먹고 마시는 일에 절제를 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환관장이 맡긴 책임자에게 그 뜻을 전하지만 쉽게 용납되지 않자 그는 자신의 세 친구와 함께 열흘간만 자신들을 시험하도록 간청하였고 결국 허락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는 이들보다 나아 보였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음의 사람들, 특별히 세상을 향하여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결단의 용기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다니엘을 비롯한 젊은이들에겐 앞으로 몇년 후엔 세상이 부러워할 출세가 보장되어 있기에 괜한 일로 미움을 사거나 점수를 잃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그들 집단을 지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소신은 나중에 펼쳐도 된다는 자기위안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용기있는 신앙인이 된줄로 믿습니다.

성도여러분, 세상은 여러분들에게 타협을 요구할때면 듣기 좋은 이야기로 긴장을 풀게하고 경계를 늦추도록 유혹합니다. "우리 김대리는 마인드가 오픈되어서 동료들과 잘 섞여서 좋다든지,, "하면서 우리를 추켜 세웁니다. 제가 군에서 겪은 일입니다만 늘 제 자신을 각성시키는 스토리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일반 장교들은 임관하면 소위로 부임하지만, 군목과 군의관 그리고 법무관은 중위로 임관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군목이 사단에 부임하면 대개 연대에 근무하기 마련인데 그 때 지휘관이 참모들과 함께 환영회를 열여주곤 하였습니다.

군 특성상 20대 후반에 중위를 달고 임관한 군목에게 지휘관이 환영을 해주는 일은 감격스러운 일이지요. 그러나 성직자라고지휘관 옆 좌석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파티가 시작됩니다. 특별히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라면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아, 이번에 우리 부대에 새로운 목사님이 오셨는데 자 한 잔 받으십시오.’ 그리고 소주나 맥주잔을 들어 따라주면 그저 황송할 따름이지요. 대개의 경우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여 감격하며 한잔 마시게 되고 파티는 그렇게 진행되어 가기 마련입니다.

술이 왠만큼 돌게 되면 지휘관은 잔을 들고 건배하면서 외칩니다. "이번에 오신 목사님은 참 현대적인 마인드를 가진분이 오셨다" 고 하면서 띄워주지요. 그리고 초청된 일부 인사들이 자리를 뜨면 대개 본격적으로 2차가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벌어집니다. "야 아까 그 목사말야...가만히 보니까 돌팔이같애...."참으로 충격적인 평가입니다. 앞에서는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멋있는 목사가 왔다고 추켜주었지만 실상은 엉터리가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은 어떤 사람이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엉터리인지를 다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말입니다. 소위 그 파티매너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사람다워야 될 줄로 믿습니다. 뜻을 정했으나 그 뜻이 때로는 나의 앞길에 지장을 줄지 몰라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결단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발씀은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말씀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 순종을 거부하고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며 화를 내며 자기 생각대로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함께 했던 사람들까지 많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정신적 고통을 주었을 뿐 아니라 많은 물질적인 손해도 입혔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것입니다.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하는데, 화의 근원이 되엇다는 것이지요. 결국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과 인도하심에 요나는 결국 손을 들었습니다.

선장에 의해 배 밑에서 잠자던 그가 끌려와 투표를 통해 자신에게 제비가 뽑혀지자 그는 결국 여러사람 앞에서 고백을 하기에 이릅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는 물음에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져 당신들과 내를 분리되켜야 이 환란에서 해방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 정이 든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요나를 살려보려고 방법을 다 써보지만 하나님께서는 더욱 큰 풍랑으로 그들을 질책하시자 결국 그들도 순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한 심령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철저한 회개의 과정을 거쳐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한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도 그 공동체가 철저한 회개의 영적대각성이 일어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평안의교회가 부흥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교회가 먼저 영적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일을 위해 여러분들이 먼저 앞장서야 할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생각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1907년 영적대각성 운동에 기점이 되는 해를 많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수백, 수천번 들어야 할 지도 몰라요. 내년이면 백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그 때에 영적 대각성에 그 은혜를 사모하는 행사들이 준비되어져 있습니다.

1903년부터 5년- 6년 계속해서 감리교 하디선교사님에 의해서 원산에서 각성운동이 일어난 불길이 평양으로 가서 불이 붙기를 시작하는데, 사실은 1907년에 정월초하루부터 8일동안 부흥회를 합니다. 부흥회를 하면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선교사님들이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장로교, 감리교 모든 선교사님들이 모여서 하루에 2시간씩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부흥회를 시작했는데도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아요. 분위기가 냉랭한 거예요.

그러는 중에 평양 장대원교회에서 열렸던 그 집회에 장대원교회의 길성주장로님이 벌떡 일어납니다. 제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그 분은 그 교회에서 성자처럼 존경받던 분이었거든요. 나중에는 유명한 부흥사가 된 분입니다. 그 분이 고백할 것이 있다니까 모든 성도들이 놀랐습니다. 저 분도 무슨 회개할 것이 있나? 그 분이 고백합니다. 여러분, 제가 보니까 이번에 부흥회에 은혜받지 못한 까닭은 바로 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 친구가 죽으면서 유산을 제가 맡아서 관리하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친구의 유산을 맡아서 관리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제가 돈이 필요해서 그 친구 부인에게 의논도 하지 않고, 제가 그 유산의 일부를 가져다 썼습니다. 제 마음에는 도로 제 마음에 채워놓으리라. 그런 마음은 가지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 해 보니까 정말 잘못한 하나님의 앞에 죄를 짓는 일이고, 친구의 부인에게도 죄를 짓는 일이고, 돌아간 친구가 내가 믿고 맡겼는데, 내가 그 친구의 믿음에 부흥하지 못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친구의 돈을 함부로 쓴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그 분이 그런 회개를 하고 나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을 했어요. 어머, 저 장로님이 저런 부분이 있었네. 장로님을 비난하고, 멸시하는 그런 분위기가 된 것이 아니라, 저렇게 성자같은 장로님도 저런 부분에서 회개하는데 나는 뭔가?

그리고 자기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회개하기 시작했어요. 집사님, 제가 이런 이런 생활이었는데, 제가 이것이 고백을 들어보니까 나는 그것보다 열배는 더 도둑놈이었습니다. 나는 열배는 더 잘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정월초하루부터 시작된 부흥회가 회개운동으로 평양대각성운동에 물꼬가 크게 된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평양 시내에 교회교회마다 부흥회를 하면서 제일먼저 부흥회의 주제가 회개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삼년 뒤에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통합하는 한일합방이 있는 사회적으로는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당시로부터 평양을 가리켜서 한국의 예루살렘으로까지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의 참된 신앙의 출발은 회개에서 비롯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 회개가 주님 앞에 되어지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나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한 후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 니느웨 성으로 가서 외쳐라" 하시니까 요나가 "알겠습니다" 하고 나갑니다.

1,2장에서는 순종하는 일이 그렇게 복잡했는데, 이제는 너무나 간단하잖아요. 제가 목회하면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나 말이 많고, 이유가 많고, 복잡할 때가 언제냐 하면 믿음이 없을 때예요. 믿음이 떨어질 때입니다. 그 때는 이유도 많고, 사연도 많고, 복잡해요. 뭐 한가지 하려면 너무너무 복잡하고 힘든 거예요. 그런데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면 단순해 집니다.

문제는 인간적인 것으로 해 보려고 하니까 "아이고, 저는 말 주변이 없는데...차라리 학습지는 잘 돌려도 전도지를 돌리려고 하면 괜히 떨리는데..." 그러나 믿음이 생긴 뒤에는 달라집니다. 요나 역시 단순한 메시지를 선포했는데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니느웨 사람들이 조그만 도시가 아니거든요. 니느웨성이 얼마나 크냐하면 직경이 30㎞, 둘레가 96㎞라고 문헌에 소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그 큰 성에서 단 하루 밖에 복음을 선포하지 안않았습니다만 지금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는데, 그들은 두 가지의 중요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를 통해 역사하신 기적을 그들이 들어 심령에 큰 도전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또 하나는 그들이 요나를 보고 하나님을 믿은 줄로 하나님을 그들이 알지 못하지만 기적의 주인공 그 요나를 보면서 우리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요나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본 거예요.

성도 여러분, 그 의미에서 저와 여러분들은 이 시대에 요나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자연인 아무개가 아닙니다. 아무데나 가서,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되는 여러분들이 아닙니다. 세례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집사요, 권사요, 장로요, 목사요, 어디가든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여러분들이예요.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실망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합니다. 성도여러분, 세상에 나아가서 괜히 비굴하게 살지 말고 당당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손해를 볼 지라도 당당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손해보게 안 하십니다.

요나를 보면서 그들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요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요나의 메시지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식을 선포합니다. 금식이라고 하는 것은 일상생활을 중단하겠다는 거예요. 비상상태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론대소하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6절에 보면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었다고 그랬습니다. 조복은 왕이 입는 제일 마지막으로 입는 옷입니다. 왕의 명예와 권위와 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벗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그 조복 벗고 나오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로서 나와야지요. 무슨 시장으로서, 국회의원으로서 나오는 거 아니거든요. 제가 어디 군인교회 보니까 찬양대석 앞에 의자가 따로 있는데, 거기는 카펫을 깔고 의자도 굉장히 고급스런 소파 비슷한 것을 놓았어요. 그래서 이것은 뭐냐고 그랬더니 이건 장군들이 앉는 자리랍니다. 계급으로는 장군과 쫄병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장군이라는 존재는 없는 거예요. 이승만 대통령도 정동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는 성도로서 제일 앞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권위가 세숫대야와 수건에서 온 것이지 직책에서 온 게 아니거든요. 왕이 조복을 벗었습니다. 권위의 상징, 명예의 상징, 영광의 상징의 옷을 벗었어요. 우리가 예배할 때에 그런 세상적인 것을 벗지 않고 예배의 자리에 오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것들을 벗어내지 아니하면 우리의 심령에 은혜가 다가오지 않습니다.

왕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서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했습니다. 자기가 지배하는 곳에 조서를 내려서 말합니다. "이제는 금식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며 힘써 여호와를 부르짖어야 합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달라지니까 온 나라가 달라지기 시작을 했어요. 하나님께서 그 왕과 니느웨 백성들의 그 모습을 보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때에는 예고하시는 줄 믿습니다.

40일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할 때에 "무너진다"는 히브리어 '하파크'는 '뒤집어 버린다'는 의미로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할 때 쓰였던 똑같은 단어입니다. 다시말하면 40일 후에 멸망하리라는 말씀은 공포탄이 아니라 그렇게 심판하시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며 겸손과 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에 뜻을 돌이켜 주신 줄로 믿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하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광야시대에도 모세를 통해서 "너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러이러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순종하지 아니하면 심판을 받으리라"고 미리 예고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심판의 예고를 받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인줄로 믿습니다.

베드로서에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리니 그 날에는 땅과 공중에 있는 모든 날이 드러나리라. 그 심판의 날에 체질이 녹아지는 그런 날이 오기 전에 회개하라"고 경고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의 첫 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고, 예수님도 공생애 첫 마디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였습니다. 2차 세게대전이 끝나는 계기가 되었던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큰 폭격이 있을 것을 예고하는 전단을 뿌리며 30㎞ 반경을 떠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그 말을 믿지 않았던 시민 27만 4천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어린이를 통해서 경고하십니다. 때때는 자연을 통해서 경고하십니다. 때때로 우리의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경고하십니다. 영성이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들을 줄 아는 영의 눈과 안목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들을 귀를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그 요나의 선언에 니느웨 사람들은 들을 귀를 가졌습니다. 그들이 회개하며 주님 앞에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 사랑하는 평안의 성도들에게도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의지해서 오늘도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는 담대함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주님의 의에 의지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의 피, 문설주에 바른 피를 보시고 주님 심판의 사자들을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안전한 것은 우리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의인 문설주에 피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주님, 언제나 우리에게 문설주의 피가 있게 하옵소서. 회개와 각성의 삶들이 우리의 삶에서 떠나가지 않게 하옵소서. 돌이키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황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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