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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새해는 이렇게 삽시다 (Ⅲ) (엡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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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는 이렇게 삽시다 (Ⅲ)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1-9)

‘새해는 이렇게 삽시다’ 세번째 시간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만나는 사람에게 천국 방언이라고 말하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응원단장으로 연세대학에서 이름을 날리던 분이었는데, 한동안 방황하면서 어머님의 속을 썩이다가 늦게 회개하고 신학을 한 후, 목사가 되어 지난 날의 삶을 회개하면서, 특히 어머님의 기도를 되새기면서, 못다한 불효를 가슴깊이 간직하며 늘 하는 말이, ‘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저 때문입니다’ 라고 인사를 하곤 하였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영세교회> 김종수목사님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우리 교회도 제직 세미나 강사로 오셨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왜 그것이 천국 방언이라고 했는가 하면, 이후에 하늘 나라에 가면,
지상에서 하던 말은 다 사라지겠지만,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한번 그렇게 옆 사람들과 천국 방언으로 인사를 나눕시다.

1. 사랑은 누구나 바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말이 있다면 <사랑>이란 말입니다.
<사랑>이란 말이 안들어가는 곳이 없습니다.
문학, 예술, 음악, 회화, 모든 분야에서 <사랑>은 영원한 주제입니다.
심지어 대중가요들을 보아도 거의 다 사랑의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대중가요의 사랑은 모두 성공한 사랑보다는 ‘실패한 사랑’‘깨진 사랑’‘가버린 사랑’‘잊혀진 사랑’ 등 입니다.
한동안 TV 드라마 주제곡으로 불렀던 ‘사랑이란?’노랫말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 그것은 정녕 그리움,
노을 빛 처럼 타는가,
가슴 가득히 설레는 바람,
잠들지 않는 물결,
사랑,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네.
사랑, 보내지 않아도 떠나가네,
사랑, 혼자선 이룰 수 없는
오, 사랑이여!”

복중에 있는 태아도 어머니의 맥박 속에서 사랑을 느낀다고 합니다.
사랑은 동물이나 식물도 사랑을 느끼고 안다고 합니다.
사랑! 참으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이 있었기에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누군가의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에 목숨을 유지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을 부정하려고 해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부모를 모르고 성장한 사람들이나, 학대 속에 성장한 사람들은 사랑을 부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도 사춘기가 지나 결혼 적령기가 되면, 또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사랑은 영원한 창조의 질서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짝을 찾아 사랑하게 되고, 사랑의 열매로 자녀들을 키우게 됩니다.
이것은 영원토록 이어질 사랑의 연결고리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느끼게 하고 한 몸을 이루어 살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부부가 되는 관계요, 부모가 되는 관계입니다.
이 <사랑>을 통하여 당신의 속성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4:12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2. 그런데 사랑에는‘사랑의 법칙’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이 한 말이 있습니다.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 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옳은 말이라고 봅니다.

사랑의 법칙이 여러 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철학적 사고를 좋아는 민족이었던고로 사랑도 몇가지로 구분해 생각했습니다.
<에로스>, <스톨게>, <필레오>, <아가페> 등등....
그러나 사랑의 법칙은 하나입니다.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요한1서 3: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라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기에, 비로소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 된 우리를 의인의 신분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상대방을 위하는 행위입니다.
사랑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사랑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세태에서 보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행위들을 보십시오.
모두 자기를 사랑해 달라고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두 사람의 본능적인 욕망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랑은 그것을 능가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미국 코넬대학 <인간행동 연구소>의 연구 보고를 보면, 남녀의 사랑의 유효 기간을 18개월에서-30개월이라고 하였습니다.
2년에 걸쳐 다양한 문화집단에 속한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남,녀 간에 가슴 뛰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30개월 이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깨소금 사랑은 3개월, 싸우며 3년, 참으며 30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보십니까?

‘내가 남편을 사랑한다’‘내가 아내를 사랑한다’라고 할 때,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 없으면 사랑은 아니란 말입니다.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인줄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요즘 세상에서 사랑은 다분히 조건적인 사랑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이 해 주는 것 만큼 나도 한다는 그런식입니다.

우리 믿는 신앙인의 사랑은 여기에서 넘어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2-28 절에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서처럼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3. 그러면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사랑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한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희생 제물>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죄인 된 인간들이기에 어떻게 그런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마 있다면 위선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드물게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차선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 그 밑에 3-7절의 말씀입니다.
음행하는 자들처럼 행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누추하고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하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적인 말 속에 담겨진 행동들을 보면 모두 더러운 말들이 많습니다.
상대방을 사랑하기 보다 희롱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의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자리에서 헤매고 있었을 때 주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마귀의 자녀로 있을 때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죽음의 자리에 있던 나를 생명의 자리로 옮겨 놓았습니다.
절망에서 살던 나를 소망으로 살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사랑을 깨닫고 우리도 이렇게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실천하면서 살아야할 사랑입니다.
그래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라고 찬송하면서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못난 자기를 생각하면서, 죄인 된 자신을 생각하면서, 허물 많은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사랑의 과제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들이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새해는 어떻게 살아야겠는가?
‘새해는 사랑하면서 삽시다’
‘새해는 사랑하면서 살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랑을 가정에서 실천하지 못하였으면,
새해는 사랑하면서 살게 해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수개국어를 할 수 있어도)
또 천사의 방언 (설교를 아무리 잘해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괭가리가 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또, 내가 예언의 능력이 있어 모든 영적인 비밀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열심있는 믿음이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그런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내가 나의 모든 재물로 남을 구제하고,
정의감에 불타 내 몸을 불사르게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할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이 한해 동안 사랑하면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김이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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