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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을 죽이라(?) (삼상 19:1-7, 롬 8:31-39, 마 2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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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에 C. S. Lewis의 “나니아 연대기”가 흥행을 타고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과 쌍벽을 이룬다고 할 만큼 이미 독서계를 강타하고 있으며 “나니아 연대기 해설서”가 잇따라 나오며 영화까지 개봉되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의 세 번째 책이 “말과 소년”입니다. 여기 나오는 소년은 그 이름이 샤스타인데 원래는 쌍둥이 왕자 중에 형이었으나 장차 이 아이가 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한다는 예언 때문에 납치되어 무식하고 난폭한 어부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탈출할 기회를 얻어 말을 타고 이상의 땅이요 자기 모국인 “나니아”를 향하여 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마치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기독도가 장망성을 떠나 천성을 향하여 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일이 너무 풀리지 않고 어렵게 되자 샤스타는 자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학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무도 없는 캄캄한 산속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알지 못할 숨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숨소리는 굉장히 컸습니다. 그래서 샤스타가 물었습니다. “누구세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마치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던 것과도 같은 질문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뜻밖에도 “나는 나 자신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신 바로 그 대답이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사자(獅子) 아스란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 사자인데 계5:5에 보면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사자가 샤스타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면 “나는 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위기가 닥칠 때 마다 너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샤스타는 고국에 돌아가서 왕자의 자리를 회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왕위에 앉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수없이 들을 수 있는 말씀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또는 “내가 너를 지키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말씀들을 “그때,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만 주신 말씀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여기 살고 있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실감 있게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지금도 우리 곁에서 그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에 계시면서 일마다 때마다 나를 도와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 우리 신앙의 맹점이 있습니다.

저 샤스타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운이 나쁜 사람이라고 자학하는 모습이 어쩌면 오늘 나의 자화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바로의 학정 아래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울부짖을 때 하나님은 “내가 너희 고난당하는 것을 다 보고, 내가 너희의 신음소리를 다 듣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연출하신 것이 모세를 통한 저 출애굽이라고 하는 전무후무한 역사적 드라마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할 때 그것은  오늘 여기 살고 있는 나와 함께 하시면 일마다 때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권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우리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으며 무엇을 염려하겠으며 무슨 일에 주저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 복음성가에 “나의 등 뒤에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 하시네”라고 했습니다.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이 말씀이 바로 “여호와”라고 하는 거룩한 이름의 뜻입니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샤스타에게 “나는 나 자신이다”라고 하는 말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2. 오늘 삼상19:1을 보십시오.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다”고 했습니다. 다윗 암살 지령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일국의 왕이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면 다윗이 살아남을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막 무대에 등장하게 된 다윗은 등장하자 말자 바로 엄청난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단순히 사건 전개 과정만 보면 절반의 유익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욥기를 보면 지상에서 욥이 온갖 고난을 당하고, 또 그런 과정에서 욥의 친구들이 온갖 언어폭력으로 욥을 공략할 때 저 천상에서는 하나님이 욥을 눈동자처럼 살피고 계셨습니다. 아니 이미 사탄에게 절대로 욥의 생명에는 손대지 말라고 그 한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욥을 붙잡고 있는 것은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육신을 가지고 사는 우리는 현실 밖에 보지 못합니다. 거기다 절대 가치를 두다보니 우리는 쉽게 낙심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욥은 그 길고도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욥16:19에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데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의 신앙의 정절을 지켰고 결국 승리했습니다.

다윗은 이때로부터 고난의 역정이 시작됩니다. 한 나라의 생탈여권을 쥐고 있는 왕이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으니 그 어려움이 어떨까 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신앙으로 초지일관했습니다. 그가 골리앗과 대결하려 나아갈 때 사울 왕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다윗의 승리는 그의 전략의 승리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다윗은 그의 수많은 시편을 통하여 이러한 그의 신앙을 절절하게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신다”(시17:8)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시18:2-3)라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 다윗은 정말 완전히 낙담 실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바로 자신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욥이 고난이 극심할 때 한 말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오직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이미 우리는 고난을 짊어지고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세상을 “苦海”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이 나 혼자만 당하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고난당하는 것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고난이 하나님 모르게 임한다고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고난의 현장을 다 보시고 또 아십니다. 우리의 신음소리까지 다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고난을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합력위선으로 역사해 주시고, 마침내 이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로 할 수 없는 유익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에게 고난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도 그렇고,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일관된 믿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나라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도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금같이 되어 집니다. 이런 연단을 통하여 주님께 쓰임 받게 되고, 또 주님께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고난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까지 했습니다.

3. 지금 다윗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영웅으로 등장하게 됩니다(19:5). 이런 다윗을 보실 때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다윗을 통하여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구원의 위대한 경륜”입니다. 마1:1에 보면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있어서 다윗의 등장이 얼마나 비중이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루시기를 원했던 뜻입니다.

그렇다고 할 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이런 다윗을 그냥 둘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울은 단지 다윗의 대적으로서가 아니라 사탄의 화신으로 하나님 사역의 대적자로 등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파괴하기 위해서 다윗을 없애려고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일군으로 등장했다면 사울은 지금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쉽게 판단해도 이 싸움은 승패가 난 싸움입니다. 사탄이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아주 간단한 예가 본문에 이미 나타나 있습니다. 사울이 요나단과 그의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의 품안의 자식인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요나단이 다윗이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도움을 주어서 다윗의 생명을 지키는데 일익을 감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이제 구언을 위한 민족 공동체로 성장했을 때  바로 왕이 역시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이스라엘을 백성을 전멸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바로와 애굽의 멸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페르샤에서 아하수에로 왕 때 하만이라는 작자가 나타나서 역시 모르드개를 핑계로 유대인 전멸 작전을 수립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없애려하고 괴롭히는 세력은 그가 누구이든지 다 사탄의 종입니다. 주의 교회를 교란시키고 어렵게 하는 사람도 역시 그가 무슨 명분을 내걸더라도 그는 이미 사탄의 하수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왕의 전권을 위임받은 하만이 과연 유대인을 이겼습니까? 하만과 그 일가족이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 헤롯이 역시 사탄의 화신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없애기 위하여 베들레헴 지경에 있는 두 살 아래 아이들을 다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는 이미 천사의 지시를 받고 유대지역을 벗어난 후였습니다. 오늘 헤롯의 흔적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영왕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실에서 적어도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내가 비록 신앙으로 인하여, 또는 신앙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도 낙심하지 말 것입니다. 주님이 다 아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나는 지금 다 알지 못해도 결국 주님은 내게 가장 유익한 방향으로 합력하여 선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절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지 말고, 절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에 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자칫하면 나 개인의 의견이나 기분이나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 일을 거부한다든지 반대하는 입장에 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마치 정의의 투사라도 되는 것 같이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 마음을 주장할 때 무지하고 완악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되 지극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결국 승리하게 된다는 이 사실을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하여 외친 말씀을 들어봅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김이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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