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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서 선포하라! (욘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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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의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그림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세례 요한의 모습이 나오는 그림이 있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그의 생애 최대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 교의학』을 집필하는 동안 그 그림을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작업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 세례 요한의 손을 언제나 볼 수 있도록... 

  물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 붙잡혀 죽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가 손으로 가리키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처음부터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가 분명히 증거하지 않았습니까? 요한복음 1장 29절 말씀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아마 신학자 칼 바르트도 성경 전체를 통해서 그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이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삶과 죽으심, 그리고 다시 부활하심을 보고 그것을 전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전하는 일에 온 정성을 다 쏟으며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고전 4:1) 살고 또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씀에 붙들려 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그 신비를 드러내는 사람들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았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지 못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요나가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그런데 이 요나에 대해서 성경은 별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우화나 전설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4장 25절 말씀을 보면 그가 예언한 말씀이 성취된 것을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일찍이 예수님께서도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보일 표적이 요나의 표적 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39~41, 눅 11:29~32 참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 요나의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욘 1:2)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그 악독한 것이 하늘에까지 알려진 무리들이었습니다. 니느웨는 당시 근동 지역을 정복한 앗수르 제국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앗수르 제국은 주변 나라들을 정복한 후 포악하게 다스렸습니다. 요나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원수와 같은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런 무리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은 정말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습니다. 비록 사십 일이 지나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요나로써는 할 수 있으면 그 일을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악한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본래 계획대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돌이켜 회개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들을 용서하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도 구원을 받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로써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더욱 그들에게 가기 싫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아주 분명했습니다. “너는 가라!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엄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명령에 복종하기 싫었습니다. 자기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항상 이런 결정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를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사실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마치 벼락에 맞은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만 붙들려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찾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죽음 앞에서도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까닭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마침 거기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습니다. 거기까지는 순조로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가 탄 배가 큰 폭풍을 만나 거의 깨지게 되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지 않는 것이 그의 자유였던 것처럼 그의 앞길에 거센 풍랑을 일으키시는 것도 또한 하나님의 자유였습니다. 그는 뒤늦게 하나님의 방법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요나의 삶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마침내 그 거센 풍랑 속에서 그는 변화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미워하던 원수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마저도 자신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통해서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의 고난까지 대신 짊어지는 이타적인 삶의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폭풍 속에서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요나 1장 12절 말씀입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달아나는 요나를 붙잡아서 다시금 생명을 살리는 일에 투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니느웨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완전히 변화된 그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제 니느웨 백성들에게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그 심판의 때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죄 가운데 있던, 아니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가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말입니다.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 성의 왕까지 그 말씀을 듣고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회개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알고 보면 우리도 요나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는 일꾼은 불순종한 요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믿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는 일꾼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거센 풍랑과 큰 폭풍과 같은 하나님의 방법을...

  이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생각과는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죄 가운데서 멸망하는 것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서 선포하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어 성령으로 새롭게 빚으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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