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주여, 사모하는 영을 주옵소서! (시 70:1-5)

  • 잡초 잡초
  • 615
  • 0

첨부 1


야구 선수들 중에서 타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손이 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방망이를 꽉 잡고 때리면 홈런을 치기도 하고 안타를 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방망이를 약간 느슨하게 잡고 공을 치다보면 손이 울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손목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삔 것도 아니며 뼈에 금이 간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손을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심하면 손이 한 번 울린 것으로 인해서 시즌 내내 고생하다가 한 시즌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구 선수들에게는 중요한 모토가 있습니다.
"꽉 잡든지 아니면 놓아 버려라!"

이 말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단단히 붙잡으십시오.  언제 어느 때나 주님을 가까이하십시오.  베드로가 시험에 들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가 주님을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결코 주님을 멀찍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마태와 마가, 그리고 누가는 이 부분을 강조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멀찍이 따라가면 결국에는 시험에 들게 된다.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가면 넘어지게 된다.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가면 주님을 부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꽉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아니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힘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도움입니다.  나는 주님만을 믿습니다"  주님을 단단히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은 시험이 와도 손쉽게 이깁니다.  주님을 꽉 붙잡고 있는 사람은 어떤 풍랑을 만나도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제발 어정쩡하게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왔다갔다하지 마십시오.  어정쩡하게 믿으니까 고생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낙심하고 쉽게 넘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의 허물만 보면서 불평과 비난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참된 만족과 기쁨이 없는 겁니다.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믿을 바에야 확실하게 믿으십시오.  믿을 바에야 확실하게 믿으십시오.  안 믿을 바에야 아예 안 믿고 지옥에 가든지 말입니다.  주님을 꽉 붙잡든지 아니면 놓아버리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오늘 주님을 향한 내 믿음의 선택을 분명히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간혹 어떤 사람을 가리켜서 따라지 같은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지'라는 말은 아주 하찮게 살아가는 인생을 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에게도 따라지 같은 종교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모두가 꿈에라도 따라지 같은 종교꾼이 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따라지 같은 종교꾼에게는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삼류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일류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아십니까?  삼류 그리스도인은 사탄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놔두어도 저 혼자 절망하고, 저 혼자 불평하고, 저 혼자 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의 남은 때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하면서 제대로 한 번 살아가십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모든 짐들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버리고 정말로 한 번 멋지게 믿어보십시다.  제대로 한 번 야무지게 하나님만 믿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날마다 때마다 내 삶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시는 것을 간증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여집사님이 몸에 아주 심한 병이 걸렸습니다.  병원에 가도 도무지 무슨 병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여집사님은 작정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생명도 연장시켜 주신 하나님, 제 병을 고쳐주세요.  저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세요"  아주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어느 날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너는 앞으로 50년은 더 살 것이다"  이 여집사님은 그 때부터 아주 밝게 살았습니다.  백화점 쇼핑도 즐기고, 우람한 몸매도 에어로빅과 다이어트로 날씬하게 가꾸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성형수술을 받아서 얼굴의 넓은 주걱턱도 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여집사님이 길을 건너다가 교통 사고로 죽었습니다.  너무 억울한 여집사님이 하나님 앞에 가서 아주 강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제게 앞으로 50년은 더 살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50년은 고사하고서라도 아니 어떻게 3년만에 저를 죽게 하십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게 너였느냐?  너무 많이 깎아서 알 수가 있어야지"

요즘 사람들마다 성형수술을 한다고 야단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형수술보다 더 좋은 수술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수술입니다.  아무리 성형수술을 해도 우리의 겉모습은 시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만져주시면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져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겉사람이 아니라 속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을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령님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으로 우리의 영과 육과 혼이 완전히 새롭게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금년을 시작하면서 목사인 제 마음에는 강한 열망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영적으로 황무한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권속들이 하늘의 능력과 권세를 가진 강한 주님의 군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황무한 이 땅을 정복하는 우리 교회와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곳에 무엇인가를 알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러 왔습니다.  내 인생의 답을 얻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영적 감동을 받으려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의 심령에 하늘의 감동이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거룩한 영적 감동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 강하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으십시오.

지금 우리들의 예배 속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하십시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쓴 뿌리와 상처를 치유하시고 고치시는 성령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지금 이곳에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성령이여, 임하시옵소서.  주의 성령이여, 내 마음에 있는 쓴 뿌리를 제거하여 주옵소서.  성령이여, 지금 이곳에 임하시옵소서."

오늘 이 땅의 교회는 성령을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이 땅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앎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대해서 이론적이고 학문적으로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성령님은 추상적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저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신 성령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십니다.  아십니까?  성령님의 역사는 구체적이고 인격적이십니다.

오늘 저는 말씀을 시작하면서 먼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성령님께서는 도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솔직하게 이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나는 정말로 제한 없는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는가?  내 안에서 역동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정말로 사모하고 있기는 한가?

저는 금년 들어서 계속해서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우리들에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거룩한 만지심의 역사가 없이는 영적으로 황무한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 시대에 유일한 희망은 부흥입니다.  부흥이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쉼 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호흡하기 힘든 상태 있는 사람에게 영적으로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부흥입니다.  때문에 복음증거를 통해서 교인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부흥의 이차적인 결과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임재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부흥입니다.  그래서 죽었던 심령들이 다시 살아나야만 합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과 같은 우리들에게 생기의 바람이 불어와 다시금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부흥을 위해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사모하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의 뜨거운 기름 부으심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갈망하십시오.

지금 이 시간에 성령의 임재를 경험함으로써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영적으로 호흡하기가 힘든 상태에 있는 심령들에게 생령의 바람이 불어와 죽었던 심령들이 살아나는 하늘의 신비한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십시오.

♬"여호와여 임하소서/ 주의 영광 보게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정말로 여러분은 성령님의 임재를 사모하십니까?  성령님의 거룩한 만지심을 사모하십니까?  정말로 주님의 영광을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경험하기를 갈망하십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는다면 사모하십시오.  더 많이 사모하십시오.  사모하는 자가 받습니다.  사모하지 않으면 어떤 은혜도,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모하는 심령이 없는 사람은 복음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십시오.  오늘 성령의 역사와 감동 감화를 사모하는 모든 심령들에게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강권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오늘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마다에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10년을 다니고, 20년을 다녀도 교회에 마당만 밟고 먼지만 묻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서 변화되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 성령의 능력과 역사를 체험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땅의 교회와 우리 언양 영신교회가,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이 회복해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우리 개개인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 가운데 실제로 내 삶에 오셔서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그 사역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통해서 사역을 하도록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우리 모두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우리들의 삶에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하십시오.  결코 우리의 이성과 경험 안에 성령을 가두어놓지 마십시오.  저는 우리 모두가 성령이 충만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한 없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한계가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받아 누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무당에도 학습무당과 강신무당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다 같은 무당이지만 학습무당과 강신무당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습무당은 책을 가지고 배워서 흉내만 내는 무당입니다.  반면에 강신무당은 귀신이 내려서 하는 무당입니다.  학습무당은 작두 위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랬다가는 작두에 발이 작살나고 맙니다.  그러나 강신무당은 작두 위에 당당하게 올라갑니다.  작두 위에서 춤도 추고 뛰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체험이 없는 그리스도인과 성령의 체험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기왕에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힘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능력있는 하늘의 백성이 되십시오.

그저 단순한 종교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권세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이 땅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이 시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숨을 내쉬시며 말씀하시는 주님의 영이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어떻게 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접촉점을 찾으십시오.  인생에 있어 모든 것들은 여러분들이 그것을 접촉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불을 켜는 스위치에는 전기선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스위치에 손을 대는 순간 불이 들어옵니다.  차에서 키를 돌리는 것도 차 안의 모터를 돌리고 운전할 준비가 되게 하는 접촉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에도 여러분이 접촉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접촉점을 찾아서 연결만 하게 되면 오늘 우리들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순간에 여러분은 하늘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는 치유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접촉점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자리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곳을 그분께 완전히 모든 것을 맡겨버리십시오.  그러면 마치 독수리가 둥지에 안착하는 것처럼 성령께서는 은혜롭게 그 자리에 임하시게 될 것입니다.

잠언 3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NIV라는 영어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네가 가는 모든 길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라"  Philips Version이라는 영어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최고의 자리에 놓으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최고의 자리에 모십시오.  하나님을 일등의 자리에 올려놓으십시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의 존재됨을 인정하십시오.  이것이 가능할 때에 여러분은 하늘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과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최고의 분이심을 고백할 수 있을 때에 사랑할 수 있고, 신실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만이 가장 최고의 분이시라는 고백을 가질 때에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나도 싫어하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됩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길을 지도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기운이 가득 찬 영혼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이 어려워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고난을 받아도 찬송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기운찬 영혼의 소유자들에게도 수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람도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뒤통수를 치는 그들의 음해 앞에서 몸이 떨립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히브서 기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기운찬 영혼의 소유자가 되십시오.  그래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늘을 높이 나는 독수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바람이 거셉니다.  그러나 더욱 힘있게 날갯짓해 가는 독수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태양 빛이 이글댑니다.  그러나 더운 열기를 뚫고 창공을 향해 치솟고 있는 독수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참새는 제 날개로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납니다.  바람이 불면 참새는 나가떨어집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불수록 독수리는 더 잘 날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이렇게 창공을 나는 독수리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성령님께서 일으키시는 바람을 타는 사람입니다.  성령님께서 일으키시는
파도를 타는 사람입니다.  그는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의 눈은 성령으로 불타고 있고, 그의 가슴은 하나님 나라로 인해서 뜨겁습니다.  그의 심장에는 복음에 대한 열정, 하나님 영광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냥 예배에 나와서 앉아 있다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생이 하나님 앞에서 기운찬 영혼의 소유자들로,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삶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입을 크게 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채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강제로 입을 열지 않고 자발적인 믿음으로 입을 크게 열기를 원하십니다.  입을 크게 여십시오.  입을 크게 열라는 말씀은 그만큼 더 많이 사모하라는 말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사모하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더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사모하는 영에게 하나님께서는 충만에 충만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성경을 보게 되면 다윗만큼이나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간절히 사모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다윗만큼이나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했던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에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서 책망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그는 성령의 임재하심과 도우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인생의 삶을 통해서 뼈저리게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내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이 없을 때에는 죄악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죄성이 자신을 지배하였기 때문에 충성된 신하 우리아를 죽게 했고, 밧세바를 빼앗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인가를 알았습니
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죄성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성령의 임재를 더 간절히 사모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윗은 자신을 둘러싼 대적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대적들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어야만 된다는 사실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고 보면 오늘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솔직히 우리들이야말로 더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들이야말로 더 간절히 성령의 임재하심과 기름 부으심을 사모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시대가 노아의 시대보다 더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죄악들을 바라보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과연 이 나라에도 희망이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단언하는데, 만약 지금 우리의 모습 이대로 살아간다면 이 땅에는 결코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없습니다.  단지 암울한 상황만이 놓여질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흥을 사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땅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지금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이 땅에 있는 어둠의 영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우리의 아이들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은 치유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쓴 뿌리를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은 회복의 영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같은 말과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주님이 주시는 한 비전을 향하여 일어나 달려가기를 원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어나 주님이 주시는 비전을 향하여 달려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요한 웨슬레를 아십니까?
그는 성령 충만을 받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비웃음을 살 정도로 모든 생활을 엄격한 규율로 통제하고 마음의 성결을 얻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주 2일간 금식하고 형제애의 실천과 사회봉사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 그의 일기장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구원의 유일한 길인 그 믿음이 내게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기도하며 사모했을 때에 성령이 임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어졌으며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소망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사모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충만함을 받으셔야 합니다.  받으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여호와여 임하소서 / 주의 영광 보게 하소서"♬
(오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