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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을 위해 달리자 (빌 3:1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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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빌립보서 3:13-16.

  여러해 전에 영국탐험대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 산 정복을 시도했습니다. 그들은 약 700미터 아래에 거점을 마련하고, 그 중 말롤과 얼바인이 정상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16시간 정도만 올라가면 정복한다는 확신에 차서 출발한 이 두 사람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후에 런던타임즈에 이렇게 실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그들은 정상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디서 떨어져 죽은 모습이 아니라 앞의 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도 언제 어디서 하나님이 부르시든지 ‘그의 마지막 모습은 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었다’ 라는 은총이 있길 바랍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주일아침 예배시간이었다. 수요예배에서 손들고 찬양하는 모습이었다. 금요 심야기도회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으며 기도하던 모습이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께로 갔다.’ 금년에도 언제나 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첫째로, 과거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13절). 이 말씀처럼 과거를 잊어버릴 줄 알아야 전진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할 때 두 가지 감정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실망과 후회, 즉 부정적이고 나쁜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감사와 기쁨입니다.

  작년에 실망한 일들이 있을 수 있어요. 후회스러운 일, 죄의식으로 헤매던 일,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감정을 어둡게 만든 것들이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을 이미 2005년과 함께 영원히 지나가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고백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아울러 쓰라린 과거를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지난날의 후회와 실망과 실패와 아픔을 통해서 반드시 무엇인가를 배워야 전진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과거가 우리의 발목을 계속 잡고 있게 해선 안 됩니다.

  작년에 성공한 일들도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성취감과 만족감이 있고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작년에 성공과 성취감과 만족감과 행복의 순간들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하십시오. 감사가 첫째예요. 그러나 역시 또 배워야합니다. 작년에 왜 어떻게 성공했는지 알아내서 그 성공을 금년에도 반복해야 합니다. 반복하되 금년에는 좀 더 잘해야 됩니다. 성공을 반복하면서 성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공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성공을 자주 하고, 좀 더 큰 성공을 몇 차례 반복하고, 아주 큰 성공을 한두 가지 해서 아예 성공적인 사람, 성공이 습관화된 사람, 성공이 생활스타일이 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공을 통해서 또 배우고 더하여 계속 발전해야 합니다. 영어에 이런 말이 있지요. "We never get old; we just get better." 우리는 늙는 것이 아니라 더 좋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라야 합니다. 지나간 실패는 회개하고 배우고, 지나간 성공은 감사하고 또 배워서, 실패와 성공을 통해서 매일같이 계속 성장하는 한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에게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교만해질 가능성입니다. 성공한 순간 교만해지면 끝난 겁니다. 넘어집니다. 교만한 사람은 발전할 수 없어요. 여러분, 성공했으면 반드시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주신 것을 아는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혼자서 성공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반드시 동료나 부하나 친구나 누군가가 옆에서 협력했기 때문입니다. 혼자 성공하는 것이 세상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장으로서 사업을 잘 했다면 직원들과 참모들과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후에는 반드시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고맙다 하고 그들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내세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승리와 성공이 반복됩니다. 지나간 과거는 실패든 성공이든 내려놓고 거기에서 배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둘째로, 미래의 목표를 향해 가야 합니다. 가슴에 새로운 소원을 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갈 곳이 보이지 않으면 갈 수가 없어요. 사도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13-14절). 어디서 새로운 목표와 소원들이 나타납니까?

  첫째, 하나님을 좋아하면 보여주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 하나님은 만물을 갖고 계시고,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여러분이 어디로 가야 가장 좋은지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좋아하고 사랑하여 하나님과 가까우면 하나님께서 금년에도 여러분이 갈 길을 하나씩 반드시 보여주실 것입니다.

  둘째, 기도하면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속상하고 화나서 울고도 싶고 고함도 지르고 싶다가도, 기도하려고 고개를 숙일 때 객관적이 됩니다. 그전까지는 혼자서 주관적으로 이런저런 생각과 느낌을 갖지만, 전지전능하시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앉으면 마음이 비워집니다. 마음의 소원을 다 아뢰고도 결국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소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게 됩니다. 그러면 가슴이 확 트입니다. 조그만 자기 모습이 아니라 새로워진 역동적 모습 속에서 하나님이 창의력을 일으켜주십니다.

  콜로라도대학이 천문학 연구 홀(Planetarium)을 짓고자 했으나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연구소장이 광고를 하나 냈어요. “화성에 팔 땅이 많은데, 5천 평을 20불에 팝니다. 화성은 광대하고 자동차소음이나 공해도 없고, 세 가지 색깔의 광선이 눈앞에 펼쳐지는 정말 살고 싶어 할만한 곳입니다. 지원자는 연락하십시오.” 전국에서 문의전화가 쇄도했어요. 사람들은 그것이 모금을 위한 재치인 줄을 알았지만 ‘저렇게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면 얼마든지 도와줘야지’ 하고 수만 명이 20달러씩을 보내와서 건물을 짓고도 남았어요. 그는 ‘화성 동쪽 이 부분은 누구의 소유다’라고 쓴 서류에 사인하고 도장 찍어서 모든 후원자들에게 한 장씩 보냈어요. 그들은 그 화성소유권증서를 사무실에 붙여놓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나 화성에 5천 평 있어요” 합니다. 그걸 가져오겠습니까? 가서 살겠습니까? 그냥 기분이 좋은 거예요.

  아이디어는 자유에서 나옵니다. 자유로운 마음에서 창의력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창의력이 나타납니다. 금년부터 새벽기도를 1부와 2부로 5시와 6시에 드리기로 했으니 원하는 시간에 올 수 있게 되었죠? 아침부터 하나님을 만나 친해지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새로운 소원을 일으켜주십니다. 내 마음이 열리고 하늘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우리 속에서 창조적인 삶이 쏟아져 나올 수 있습니다.

  셋째, 불만스러운 환경 속에서 새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제가 미국에서 시작한 한인교회가 자꾸 성장하니 임대하여 쓰던 미국교회 공간이 모자라요. 또 아이들은 왜 그리 문제를 일으키는지, 미국목사님의 사무실 책상에 올라가 쿵쿵 뛰고 전구를 깨서 미국인들에게 여러 번 야단맞고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당을 여러 개 빌려서 주일에 먼저 어린이들을 내려놓고, 조금 더 가서 중고등부 내려놓고, 어른들은 마지막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곤 했어요. 세 교회의 미국인들한테 불려 다니니 참 힘들었어요. 이 불만스러운 환경 때문에 우리 자신의 교회가 있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와서 결국 좋은 교회를 지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동생이 와서 얘기했죠. “예루살렘에서 오는 길인데, 성이 다 망가져 형편없이 되었고, 뒤에 남은 백성들이 너무 고생하고 있어.” 느헤미야가 이 말을 듣고 불만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속상해서 울고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데 새 아이디어가 생겼습니다. “왕에게 부탁해서 날 예루살렘에 돌려보내달라고 하자. 그래서 그 성벽을 다 고치고 백성들을 보호해주자.”

  성공적인 사람과 실패적인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불만스러운 상황에서 실패적인 사람은 불평하고 욕하고 화내고 끝냅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 ‘저렇게 하면 안 된다. 더 잘할 수 있다. 더 좋게 바꿀 수 있다’ 생각합니다. 불만스러운 환경에서도 새로운 소망과 목표를 보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 땅에서도 성공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여러분은 인생을 불평으로 끝내지 말고 그 상황을 통해 더 발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이 땅에서 끝내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이 땅에 살아있는 것은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 또는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완수하기 전에는 절대로 이 땅을 못 떠납니다. 그러나 완수했다면 여기 남아있을 사람 없습니다. 수고했다고 하나님께서 “오라!” 하십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이 땅의 소명이 다릅니다. 요즘 여러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 ‘나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 것인가?’라는 사명진술서를 쓰게 합니다. 얼마 전에 은퇴하신 어떤 장로님의 얼굴을 보니 너무 좋으세요. 그 사모님도 전에 좀 아팠었는데 얼굴이 건강해 보여서 어느 날 물었습니다. “장로님, 어떻게 그렇게 얼굴이 좋아졌습니까?” 지난 1년 동안 하루에 부인과 한 시간씩 걸었더니 네댓 가지 병이 다 없어졌답니다. 여러분 개인의 소명이 무엇입니까? ‘금년에는 성경일독을 하겠다. 몇 명을 전도하겠다...’ 그 소명을 느끼고 이루고 발전하는 한 해가 되기 바랍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찬양축제 때 모두 참 잘했는데 특히 한 그룹 때문에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만돌린 연주팀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돌린’인지 ‘만돌라’인지 ‘만기타’인지도 모르던 분들이었어요. 저는 교회 안을 돌아다니며 불만 켜져 있으면 가보고 아무도 없으면 끄는데 누가 또 켜놓고 가요. 금년에는 여러분 가는 데마다 마지막 사람이면 늘 끄십시오. 그런데 어느 날 저쪽 방에 불이 환하게 켜있어서 ‘이 시간에 불을 켜놓고 갔나?’하고 가봤더니 둘러앉아 만돌린을 배우고 있었던 겁니다. 연주할 때 얼마나 잘했습니까? 어느 권사님은 60이 훨씬 넘었는데도 이런 걸 배워서 독주를 해요.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저는 이런 분들을 좋아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삶에 의욕이 있고 갈 길이 있고 소명이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그저 늙어가지 말고 날마다 좋아지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개개인에게 올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보여주십니다.

  가정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에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가정을 이룰까? 어떻게 하면 좋은 남편, 아내, 좋은 아빠 엄마가 될까?’ 가정적으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30대말 40대 초반 여러 해 동안 전국 청소년 집회를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청소년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끝내면 애들이 몸부림치며 울어요. ‘쟤들이 뭘 안다고 저렇게 한이 맺혀 통곡을 하나?’ 의아했지만, 한명씩 대화해보니 공통점이 있었어요. 부모와의 사이에 고통이 있더군요. 저는 그렇게 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런 고통이 있는 줄을 몰랐어요.

  얼마 전에 어느 고등학생이 찾아와 한 시간 이상 얘기를 하는데 얘긴 간단했어요. 부모와의 관계가 나쁜 거예요. “제 부모님은 제 말을 듣지 않아요” 하면서 막 웁니다. 잘못할 땐 지적하고 잘할 때는 칭찬을 안 하니 부모님이 자기를 안 좋아한다고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여러분, 금년에는 아이들의 말을 잘 듣고 “그랬냐? 그런 줄 몰랐구나. 네 마음이 얼마나 상했겠니? 내가 너를 힘들게 한 줄 몰랐어. 미안해”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듣고 “이해가 된다”고 했더니 “제 말을 듣고 이해가 된다는 사람은 제 일생에 처음입니다. 그것으로 제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성령께서 그 아이를 위로하시려고 제게 이해한다는 말을 하게 하신 것 같아요. 그 아이는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잘 듣고 “그러냐? 얼마나 힘들었냐?” 한 것 밖에 없습니다. 가정적으로 금년에 여러분이 갈 길이 있기를 바랍니다. 보다 좋은 길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새 아이디어를 얻고 새 물건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더 축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편안해하고 좋아하고 인생을 쉽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소명을 올해 이루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하늘나라의 상을 바라보며 가야 합니다. 바울은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며 전진하여 하늘의 상을 받아야 합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 하였도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일을 맡기리라”하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듣는 마지막 축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보며 이 한해를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현실에 충실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달려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첫째, 내가 만족스럽고 행복해집니다. 매일 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하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혹시 내일아침에 깨어나지 못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도하며 행복하게 잠자리에 드시기 바랍니다. 무지개 너머가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 공동체가 행복해집니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와 국가가 여러분 때문에 밝아지고 좋아집니다. 하나님을 위해 새로운 일들을 시도하는 가운데 선교전략학교나 선교학교 훈련을 받아 단기선교도 가보는 가운데 사람들이 여러분 때문에 복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언제나 마지막 목표는 영적인 목표라야 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리 잘살아도 수고와 아픔과 눈물과 고통과 오해와 늙음과 병듦과 죽음입니다. 예수님 안에 영생과 부활이 있습니다. 아픔도 눈물도 한숨도 질병도 죽음도 외로움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과 저의 마지막 고향입니다. 그 고향을 바라보면서 이 한해도 한걸음씩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어느 분이 나이 들어 기억력이 점점 나빠져서 의사의 진단을 받으러 갔습니다. 의사가 “뇌수술을 하면 기억력을 증진시킬 수는 있으나 너무 정교한 뇌수술이어서 자칫 잘못 건드리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시력과 기억력 중 어느 것을 되살리고 싶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이 사람의 대답은 “시력을 원합니다.” “저는 걸어온 길을 회상하며 살기보다는 앞으로 갈 길을 눈으로 바라보며 살고 싶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기억력은 사라져도 영적 시력이 좋아져서 저 영원한 세계, 하나님의 축복과 부활과 영생을 바라보면서 이 한해도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영원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행복하고 신실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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