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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확실한 훈련으로 실전에서 승리를 (행 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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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7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오랫동안 유대교의 지도자들에 의하여 공회에서 재판을 받고 지금은 그가 그렇게도 가고 싶어하던 로마에 가기 위하여 배에 올랐지만 지중해를 건너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멜리데 섬에 도착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바울을 쉽게 로마에 도착시키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바울을 철저히 훈련시키기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도착하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유라굴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멜리데라는 섬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해 서두르지만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철저히 준비해야만 실전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삶에 있어서 더디게 보이는 많은 일들은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철저한 준비일 수 있다는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제12차 단기선교 파송 예배를 즈음하여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로마에 가기까지 어떤 준비를 시키셨는가를 통하여 은혜를 받겠습니다.

1.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시고, 그 기도의 능력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사도행전 23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공회 앞에 섰을 때, 그토록 바울 자신이 소원하던 로마에는 가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기약없이 감옥 속에 갇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행23:11절을 보면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고 약속하셨고, 행27:23-24절을 보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고난에 처했을 때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7:22절에서 유라굴라 풍랑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배 안의 276명을 향하여 담대하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의 계획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걸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신과 약속 가운데 사는 인생입니다.
암3:7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는 종들에게 확신을 통해서 “이것이 나의 길이다”라고 알려 주시고 난 다음에 그 길을 걸어가게 만드십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우리가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모세는 위기나 환난이 와도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문제만 오면 갈팡질팡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전체의 그림이 다 보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체 그림이 보이지 아니하고 매일매일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만을 보았기 때문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의 능력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전체 그림을 보게 만드는 힘입니다.
시103:7절을 보면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고 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때그때 사건만 보이니까 거기에서 낙심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모세에게는 모든 여정의 길을 다 보여주셨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그 계획의 전체를 다 바라보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보이는 영의 눈이 어둡기 때문에 매 사건마다 안달복달하며 항상 원망하거나 좌절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여 기도의 맛을 체험하고 그 능력으로 여러분의 영의 눈이 활짝 열려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라보고, 전폭적으로 주님을 의지하여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께서 준비시켜 주신 치유의 능력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8-9절을 보면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난 다음에 로마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자기 손에 붙은 독사를 떼어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블리오 부친을 비롯해서 멜리데 섬에 있는 다른 병자들을 고치는 능력을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바울을 로마에 들여보낼 때 빈손으로 보냈습니다.
아무 것도 주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이름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시고 들여보내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능력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권력이나 힘, 돈, 이런 것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교회의 진정한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지고 있는 성령의 능력” 그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안도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치유의 권능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해서 매순간마다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께서 모두를 구원하는 전도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바울이 배를 탔을 때 같이 동승했던 사람이 276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와 같이 있던 사람들을 다 전도대상자로 삼고 구원시켰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다 구원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를 환난 가운데 보내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들을 건져내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가끔 병원의 병상에 누워 계신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도 보면 병상에 누워서 옆자리에 있는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받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병상에서 복음을 증거해서 여섯 명이 누워있는 병상 전체를 다 구원받게 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위치에 있을 때 당장은 이해를 잘 못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들 전체를 건지는 하나님의 지렛대 역할을 감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삶 속에서 당하는 고난과 어려운 위치에 있는 것이 우리가 사명자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그 자리에 왜 갔습니까?
사명자이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건지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로마에 보내기 이전에 로마에 비해서 작은 장소인 멜리데 섬으로 보내어 거기에서 복음증거로 말미암아 배에 탔던 사람을 건지는 체험, 멜리데의 많은 토인들을 변화시키는 체험을 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체험을 가지고 로마에 들어갈 때, 또 한번의 확신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큰 승리를 주시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승리를 맛보게 만드시고, 그 작은 승리를 통한 확신을 통해서 보다 큰 승리로 이끄셨던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루아침에 골리앗과 맞부딪히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자의 발톱, 곰의 발톱과 싸워 이기는 작은 승리를 맛보고 난 다음에 비로소 골리앗과 싸워서 승리하고 골리앗과의 승리이후 오랜 체험을 다 겪고 난 다음에 비로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장기적인 선교에 비해 지극히 작은 단기선교를 한다고 해서 작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단기선교에 함께 팀이 되어 동력하셨던 사람들 가운데 사회에서 성공자가 되었거나, 복음 전도자가 되었거나, 선교사가 되어 뛰는 사람들의 모든 고백을 들어보면 “단기선교 다니면서 거기에서 겪었던 경험들이 사회에 나가 보니까 똑같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기에서 얻었던 작은 승리들이 내 실제적인 삶에서 승리를 보장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 안에서 불신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나 사회 속에 나가서 리더십 갖고 뛰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회가 더 쉽더랍니다.
왜냐하면 사회는 월급도 주고 얽어맬 것이라도 있어서 오히려 사람들이 쉽게 변화되는데 교회는 아무 것도 없잖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안되는 그런 상황에서 사람을 변화시킨 경험을 가지고 나가니까 사회에 나가서는 오히려 별것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변화시길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을 한번 보십시오.
20대에 100명 200명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체험을 합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어디 흔히 있습니까?
저는 교회에서만 제대로 승리하는 것을 맛보아도 사회 속에서의 승리는 보장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 2차 대전 이후 일본이 짧은 시간에 새로운 경제적인 부흥을 맛보게 되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식민지 국가에서 20대의 젊은 장교들이 한나라를 통치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이런 나라에 가서 20-30대에 일본군의 젊은 장교로서 한 나라를 통치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망했지만 그 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고스란히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을 중심으로 해서 일본은 60년대 70년대에 종합상사라는 것을 통해 다시 한번 세계를 뒤집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경험들, 가지고 있는 작은 승리의 체험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우리가 잘 무장되어서 앞으로 가는 곳마다 더 큰 승리를 이끌 수 있는 하나님의 믿음의 종들이 되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신만고 끝에 사도 바울을 로마에 보낸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천신만고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훈련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진짜 싸움에서 승리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작은 싸움에서 많은 승리를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때마다 우리가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성령치유의 능력을 체험하고, 무엇보다도 전도의 능력을 체험해서, 작은 싸움의 승리만이 아니라 보다 큰 싸움의 디딤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귀중한 성도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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