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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이 내 말듣게 하라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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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목에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종부리듯이 내 말 듣게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요청하여 응답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내 요청을 주님이 들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을 잘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일생동안 이스라엘 땅에서만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으로 다니시면서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해외로 나가신 유일한 이야기입니다.
에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두로와 시돈 지방은 갈릴리부터 50-60 km 정도 떨어진 지중해 해안 도시입니다. 마가복음 7;26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로와 시돈 지방에 살고 있는 페니키아 족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원수 국가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흉악안 귀신 들린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흉악하다는 말은 원어로 <카코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위험할 만큼 해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죽을 지경이 된 상태입니다.
  딸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와서 딸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는 대한히 파격적인 행동입니다.

이 여자가 파격적인 행동을 한 점이 여러 곳에서 발견 됩니다.
1. 유대인 원수에게 딸을 고쳐 달라고 찾아 왔습니다.
2. 사람들이 많은 데 소리를 질렀습니다.
3. 딸대신 자기가 아파하고 있습니다.

외경에 보면 이 여자의 이름이 유스타라고까지 나와 있습니다. 딸 이름은 베레니케입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에게 와서 딸이 귀신들렸으니 고쳐 달라고 간구한 것을 보면 당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멀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 내 딸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이 여인이 소리를 지르는 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침묵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알려 드려도 예수는 가만히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계신 데에는  네 가지 의미가 있음 알 수 있습니다.
(1) 방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절하였는 데 이방 여인은 이렇게 믿음으로 매달리는 것을 보시면서 어째서 그럴가라고 생각중이었을지 모릅니다.
(2) 이 여인이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이렇게 부른 것은 아첨인가? 아니면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예언되어 있는 데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있는 영감이 있는가?
이 여자를 신비하게 생각하는 침묵을 일지도 모릅니다.
(3) 온 인류는 유대인부터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마 10:5-40).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유대인아닌 이방에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 지 생각하시는 침묵인 지도 모릅니다.
(4) 이방 여인의 인내와 믿음을 더욱 깊게 보시려고 침묵을 지키셨는 지도 모릅니다.

본문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면서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런데 23번째로 일으킨 기적이 바로 오늘 본문의 기적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에게 와서 요청한 것이 아니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뉘 집 개가 짖나하는 식이었습니다. 소리를 질러도 예수님이 반응이 없으니까 제자들이 와서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제자들의 말을 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 말을 들은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 앞으로 와서 절하면서 애걸하였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모욕적으로 말했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 여인은 긍정하며 다시 요청하였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그 여인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순간 딸은 귀신으로부터 놓임받고 해방되었습니다.
계속 침묵을 지키시던 예수님이 여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시고 이 여자의 말을 들으셨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이 이 여인의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말이었습니까?
만일 높으신 대통령이 내 말을 들어 준다면 나는 얼마나 좋을 가요?
정 주영은 우리나라 현대의 신화로 영원히 남을 사람입니다. 그에게 이런 놀라운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 주영이 만든 현대 조선소는 세계에서 제일 큰 조선소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크고 좋은 배를 만드는 곳이 현대 조선소입니다. 그런데 조선소가 만들어지기 전에 영국에서 큰 배를 주문 받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영국에 가서 배를 주문하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영국은 웃었습니다. 배 만드는 조선소도 없는 데 어떻게 배 주문을 하는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정 주영은 500원짜라 동전을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돈을 보십시오. 우리 선조들은 옛날부터 배를 잘 만들었습니다. 이 거북선이 우리 조상이 수백년전에 만든 배입니다.> 동전 속에 거북선을 본 영국 사업가가 껄걸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사업가가 아니라 유모어 맨이군요.> 그리고 배를 주문하여 주었습니다.
놀라운 상대방이 내 말을 들어 준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일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도저히 들어 줄 것같지 않은 예수님이 여인의 말을 들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말을 들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 가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내 말을 들어 주실가요?

1. 끈기있는 말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말 속에는 지독한 끈기가 들어 있습니다.
개같은 욕을 당하고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또 매달리는 이런 끈기스러운 여인의 말을 예수님은 들어 주셨습니다.
용기는 시작하게 하고, 믿음은 계속 하게 하고, 끈기는 마치게 하는 도구입니다.
영국 어느 잡지사에 근무하는 평범한 기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줄 모르는 이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대 부호 브레이크를 취재하였습니다. 브레이크는 신발의 발바닥 밑에 징을 박는 아이디어 하나로 일약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대부호가 된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항상 돈벌이하는 데에만 몰두하였소. 한 가지 일을 하면 끈기있게 그 것만 붙들고 끝장날 때까지 하였소. 그 것이 내 인생 전부였다오.>
브레이크가 대답하였습니다. 기자는 이 말을 듣고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나도 이제부터 신문과 잡지를 만드는 일에만 전념을 하자. 여기에 내 인생을 걸자.>
그는 신문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파산직전의 신문사를 살려 냈습니다. 영국 최고의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신문왕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노스 클리프입니다.
1차 대전 때 독일 황제 카이젤이 말했습니다.
<나는 연합군에게 진 것이 아니라 노스 클리프 신문에 진 것이다.>
무슨 일에나 끈기있게 일하는 이에게 승리는 주어집니다.
밀턴은 매일 아침 새벽 4시에 일어나 실낙원을 집필하였습니다.
노아 웹스터는 <웹스터 사전>을 집필하기 위하여 36년간이나 자료를 수집하였습니다. 두번이나 대서양을 횡단하였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무려 9번이나 대필한 다음에 완성한 것입니다.
시인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시를 보통  99번이나 다듬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8년동안 땀흘려 완성한 작품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10년 걸려 완성한 작품입니다. 그는 일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식사하는 것조차 잊어 버릴 정도였습니다.
슈만 하인크는 위대한 기수가 되기 위하여 20년간 가난과 싸웠습니다.
꿀벌은 살아 있는 동안에 지구의 세바퀴나 되는 거리를 날면서 꿀을 모읍니다.
모두가 끈기 이야기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끈기를 보시고 예수님은 그의 말을 들어 주셨습니다.

2. 너그러운 말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사실은 정말 모욕적이 말이었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이고 이방 여자인 수로보네게 여인은 개라고 하는 모욕적인 말입니다.
경멸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존심이 상하는 모욕적인 말을 너그럽게 받아 드렸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는 얼마나 너그러운 말입니까? 자존심이 상할 때도 꾹 참고 결코 혈기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너그럽게 받아 넘겼습니다. 개라고 그래도 개도 부스러기 먹는다고 받는 너그러움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너그러운 인내가 예수님이 말을 듣게 하여 주었습니다.
지난 달 서울 남 연회가 있었습니다. 은퇴하시는 목사님들을 위하여 축사를 강 병훈 목사님이 하셨습니다. 그 때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을 주셨습니다.
강 목사님은 세례를 두 번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이 천석 목사님에게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장로를 안 시켰다고 한 권사가 물통을 가지고 물을 부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목사님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참으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그리고 말했습니다.
<물을 붓고 나니 속이 시원하십니까?>
권사님은 웃으면서 <목사님 같으신 분 처음 보았습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간증도 들었습니다.
어느 훌륭한 교회가 후임자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분의 목사님들이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2시였습니다. 그 교회를 가고 싶어하는 목사님 댁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사모님이 주무시다가 놀라서 깨어 전화를 받았습니다.
<잘못 걸렸군요>
사모님이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조금 후 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사모님이 다시 전화를 받으면서 <잘못 걸렸습니다>라고 말하며 끊었습니다.조금 후 세번째 전화가 또 걸려 왔습니다.
사모님은 다시 받으면서 <전화 번호를 다시 확인하여 보십지요. 잘못 걸렸습니다>라고 끊었습니다. 그런데 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이번에는 목사님이 받으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전화 좀 똑똑히 걸어요. 밤 2시가 넘었어요. 뭐 이런 것들이 있어>
그러자 수화기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목사님이 오시고 싶어 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참을 수 있는 목사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인내심을 사모님에게 배워야 겠네요.>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습니다.
이같이 어떤 자존심 상하는 상황도 너그럽게 받아 드릴 수 있는 인내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음을 돌리고 이 여인의 말을 듣게 하여주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보험왕, 자동차 판매 세일제 맨 왕을 소개하였습니다. 둘 다 한국에서 일등 세일즈 맨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둘 다 말했습니다.
<나는 출근할 때 집에 간과 쓸개를 두고 가지요.>
다 자존심을 이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얼마나 모욕적인 언어입니까? 그러나 이 여인은 결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어떤 화나는 경우라도 화를 부리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였습니다.
어느 정치가는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은 화가 나지 않습니까?>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나라고 왜 화날 때가 없겠습니까? 화나는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나지요. 그런데 나는 화가 날 때마다 휘파람을 불면서 화를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화를 다스릴 줄 모르는 성품은 성숙한 인격이 아니랍니다.>
이 여인은 어떤 경우든지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기도할 줄 아는 너그러운 여인이었습니다.그래서 딸이 고침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칼바르트는 <자존심은 원죄의 뿌리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존심을 버릴 줄 알기를 주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3. 지혜로운 말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이 여인의 한 마디는 예수님을 사로잡았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개라고 모욕적인 말을 할 때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고 사니까 조금 달라고 하는 지혜는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여 주었습니다.
말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찌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잠 20:6)

독일 베르린 막스 프랑클 연구소가 지난 15년 동안 1,000명을 대상으로 지혜와 나이와의 관계를 연구하였습니다.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였습니다.
1. 큰 역경을 극복할수록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
2. 가난한 환경에 자라서 아픔을 일찍 가졌던 이들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
3. 어려서부터 창조적인 생각을 한 두가지 내놓았던 사람들이 늙으면 더 지혜로워졌다.
4.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고민하고 사는 이들이 더 지혜로웠다.
5. 고집이 세고 괴팍한 사람들은 늙을수록 지혜와 신용을 잃으며 살았다.
지혜로으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4. 믿음의 말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여인의 이 말 한 마디에 예수님은 반하셨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런 여인의 고백 속에는 엄청난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한 마디면 될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귀신이 들렸더라도 예수님은 고치실 수 있다는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대서양을 선원들의 투표에 의하여 항해하였다면 우리는 3분의 1도 건너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선원들은 날마다 돌아가자고 주장하며 콜럼버스 선장을 위협하기도 하였습니다.그러나 콜럼버스는 항상 전진명령을 내렸습니다. 선원들은 의심과 두려움으로 돌아갈 것을 늘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집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제4차 항해를 1502년에 마친 후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르와 왕비 이사벨라 앞에 보낸 보고서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신천지를 발견한 것은 나의 수학의 힘이나 항해술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내 말듣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말을 하면 됩니까? 수로보니게 여인같이 말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이런 말 때문에 그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1. 끈기있는 말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2. 너그러운 말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3. 지혜로운 말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4. 믿음의 말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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