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남은 자’의 의식 (습 3:12-17)

  • 잡초 잡초
  • 517
  • 0

첨부 1


□‘남은 자’의  의식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엠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2-17절)

오늘 사도 바울과 같이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이 자리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기를 원합니다’아멘.

요즘 이렇게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야 말로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얼마든지 즐기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스팔트 포장길로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지 편히 다녀올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보다 밖으로 나가는 유혹이 더 강해진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와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이야 말로 이 시대의 <남은 자>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성경에 <남은 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홍수처럼 밀려가는 죄 된 세상에서 <남은
자>란 어떤 의미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대로 보면, 모두 넓은 길로 가는 세상에서 <좁은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 <남은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역사를 이어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남은 자>의 의식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1. <남은 자>들은 이 시대를 바라보는 신앙의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 하였습니다.
마 24:32절에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줄 알라”고 하였습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나, 시대의 징조를 보고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화가 잎이 돋아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 듯’ 이 시대를 보는 눈이 열려 있어야 함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이 시대의 징조를 보면 점점 무신앙적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말입니다.
1960년대 후부터 신학자들 사이에는 이 세대를 규정하는 말이 새로 생겼습니다.
그것이 ‘종교 이후시대’
(post-Religious-Era),
또는 ‘기독교 이후시대’
(Post Christian Era)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앞으로의 세대는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 또는 기독교가 지배하던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지금까지의 지배해 오던 기독교의 모습이 변화하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 점점 멀어져 갈 것을 내다보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미 1990년 이후부터 나타난 현상입니다.
소위 문민정부의 출현과 함께 지금까지의 모든 기존질서에서부터 <해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군사정권 시대의 모든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허물어지기 시작하면서 기존질서가 해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이 <해체> 작업이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를 갈라놓았고,
<아나로그시대와 디지털세대>로 갈라놓았고, <보수와 진보>로 갈라놓는 등, 전 사회의 해체로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 결과 기존의 모든 <규범>과 <권위>들이 살아져가고, 다원화 현상으로 인한 상업주의 사상이 교회의 본질적 신앙마저 해체시키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 결과 디지털시대 주인공들인 청소년들이 교회로부터 멀어져 가고, 소위 지식인 신자들은 의미없이 나열되고 반복되는 설교보다 주 5일제로 인한 가족단위의 여행으로 기울어져가는 것이 바로 기독교 이후의 특징의 세대란 것입니다.

옛날 같았으면 신자라면 주일은 무조건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는 것이 첫째 의무로 받아들였었습니다.
요즘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믿는 사람들도 주일 하루쯤 예배 빠지는 것은 가책도 안 느낍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주일 예배에 나온 여러분이야 말로 이 시대의 남은자들이란 말입니다.

2. <남은 자> 들에게는 내일을 바라보는 의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 시대의 <남은 자>들을 남겨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남은 자>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아무리 암흑시대에서도 남은 자들을 두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성경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타락한 인류 역사 속에서 언제나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노아>였고, 그것이 <아브라함>이었고, 그것이 <모세>였고, 그것이 <여호수와 갈렙>이었고, 그것이 <다윗>이었습니다.
이 남은 자들을 통하여 마침내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위에 보내신 하나님이 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중 제일 암흑시기가 아합왕 때이었습니다.
모두 바알신에게 무릎을 꿇고 바알을 섬기는 타락한 시대를 만들었던 때입니다. 당시 선지자 엘리아는 최후까지 싸우다가 너무나 지쳐서 나도 더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엘리아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000명을 남겨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죄악의 물결이 아무리 거세게 흘러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남은 자들을 통하여 진행되어 감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 때의 이스라엘에 대한 <남은 자>에 관한 예언입니다.
포로 후 시대적 상황은 오늘 우리의 시대와 흡사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 보다 물질만능의 가치관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시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남은 자>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12절에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습3:12) 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이 누구이겠습니까? 그것이 <남은 자>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진실 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요즘 세상에서 진실 된 믿음으로 살려하면 곤고하고 가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밀어내듯이 악한 세대에서는 선한 사람들이 밀리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곤고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3. 그러면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13절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①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② 거짓을 말 하지 아니하며(정직), ③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사기) ④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정말로 거짓말 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거짓말에도 선의의 거짓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사랑하기에, 또는 아내를 사랑하기에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장사를 하는 분들, 남는 것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처녀들이 시집가지 않겠다고 거짓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의적인 거짓말> <남을 모함하려는 거짓말>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악의적인 마음으로 행하는 자들은 자연히 거짓 혀를 달고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신문에 난 어떤 로비꾼에게 넘어가 정치계가 들먹거리는 것을 보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또 예수쟁이 냄새를 피운다고 하니 참으로 가관입니다.

온통 악을 행하고, 거짓으로 찬 세상에서 남은 자의 의식을 가지고 이렇게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곤고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적당하게 거짓말도 하고, 적당하게 악과 타협하여야 출세도 하고, 명예도 얻고, 재물도 벌어들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넓은 길을 택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세대에서도 노아를 남겨두었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였고, 다윗을 들어 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들은 모두 저들이 살아간 세대에서 힘들게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남은 자들의 생활모습입니다.
쉽고 넓은 길을 가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좁은 길을 걸어가려는 남은 자들은 그래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17절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13절 끝에 뭐라고 했습니까?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먹고 누워도 편치 않은 사람들 많습니다.
거짓말 하고, 악행으로 출세한 사람들,
먹고 누워도 언제 무너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이 말을 음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너희 가운데가 어디를 말합니까?
우리의 삶의 현장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현장 한 가운데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자가 없겠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송에도 이 말씀으로 지은 노래가 있습니다. 함께 불러 보겠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 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 하시리라’ (아-멘) 
(김이봉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