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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삼상 19:8-17, 행 13:36-39, 눅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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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분은 “기도하는 손”이라고 하는 성화를 다 아실 줄 믿습니다. 그 성화의 유래를 들어보면 매우 은혜롭고 또 눈물겹습니다. 프랑스 어느 시골의 두 형제가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인 파리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러나 둘이 함께 공부하기에는 그들에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학비를 조달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둘이 서로 의논하여 한 사람이 공부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취직을 하여 학비를 벌어 대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공부를 끝내면 나머지 한 사람이 공부하도록 그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형이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먼저 공부를 시작해라. 그동안 내가 취직해서 학비를 벌겠다”. 동생이 아무리 형님이 먼저 공부해야한다고 해도 형은 막무가내였습니다. 할 수 없이 동생이 먼저 공부를 시작하고 형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동생이 그날의 학업을 마치고 형이 일하는 곳으로 방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에서 중얼거리는 사람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형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기도하는 소리였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미 일하노라고 손이 굳어져서 더 이상 미술을 공부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그 대신 동생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미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그 뒷바라지를 하겠습니다”. 이런 기도였습니다.

살며시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기도하는 형님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그림 공부를 하는 동생의 눈에는 기도하는 형의 손이 그렇게 거룩하고 귀할 수 없게 보였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형님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했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성화 “기도하는 손”입니다.

비록 힘든 노동을 하느라고 손마디가 굵어지고, 그림 공부는 포기해 버렸지만 동생의 눈에 비친 형의 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손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연을 가진 그림이기 때문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또 은혜를 기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두뇌와 이 손을 잘 활용하여 오늘 이렇게 놀라운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이 손이 하나님의 한 형상일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흙을 가지고 그 손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친히 그 손으로 돌비에 새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손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적과 기사를 이루셨으며 우리 속죄를 이루실 때 그 손에 못이 박히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성령님의 역사를 일컬어 “하나님의 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그 위치를 감당해 나가게 되는 데는 손의 역할이 절대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머리가 아파도 엄마 손이요, 배가 아파도 엄마 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엄마 손은 약속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엄마 손은 곧 엄마의 사랑의 증거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잘못하게 되면 엄마는 그 손에 채찍을 드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잘못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부모가 자녀를 교육할 때 “한 손에는 사과, 한 손에는 채찍”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사지백체 그 어느 것 하나인들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만은  우리 손을 보면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는 곧 과제라”는 말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만 독특하게 허락해 주신 이 은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룟 유다는 그 손으로 우리 주님을 원수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끌려가는 예수님에게 그들 손으로 온갖 행패를 다 행하고, 심지어 우리 주님의 얼굴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고 로마 군인들은 그 손에 망치를 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설에 의하면 성 베로니카라고 하는 여인은 목말라하시며 기진맥진해 지신 주님을 보고 그 손에 수건을 가지고 예수님 얼굴에 피와 땀을 닦아 드렸습니다. 그래서 교회역사에는 “성 베로니카의 수건”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2. 오늘 사무엘서 본문을 보면 “손”에 관한 이야기가 섞여 있습니다.

(1) 먼저 다윗의 손입니다.

a. 다윗은 여러 가지 훌륭한 은사를 많이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돌팔매질을 위시하여 그 손으로 훌륭한 무술을 발휘하게 해서 전쟁에서 늘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 “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싸워 그들을 크게 쳐죽이매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놀라운 승리를 하고서도 자기의 공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내 손으로 이런 일을 하게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 손을 붙잡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항상 승리하게 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할 것 없이 주님 손에 붙잡혀 감당할 때 늘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b. 다윗은 또 그 손으로 시를 잘 썼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의 시편의 대부분이 다윗의 작품입니다. 다윗은 자기 혼자서 신앙을 즐기고 만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감동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은혜를 체험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내게 주시는 가장 작은 달란트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우리 자신만을 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나는 존재, 생애자체가 그렇지만 가장 작은 일 하나에 이르기 까지 다 먼저는 하나님이요, 그리고 이웃을 위하여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리할 때 비록 다윗이 이새의 아들로 베들레헴 목자에 불과했으나 하나님 마음에 맞아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다윗의 승리에 여러분도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c. 오늘 본문 9절에 보듯이 다윗은 특히 악기를 제조하여 다루는 솜씨가 탁월했습니다.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악기와 그것을 다루는 솜씨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윗의 시편은 그대로 이스라엘민족의 찬양집이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여러분 악기를 잘 다루는 분들, 하나님 찬양하는 사역을 맡은 분들은 다윗같이 소중하게 쓰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다윗은 그 악기를 가지고 악령에 괴롭힘 당하는 사울 왕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성도 여러분이 단지 자기 자신만 아니라 이웃을 위하여 여러분 자신을 내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도구로 쓰여 지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언제든지 주님이 원하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용기있게 나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 “목적이 이끄는 삶”이 전 세계 교회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그 시발점이 되는 말씀이 행13:36입니다. NIV에는 “다윗은 그 세대에 하나님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섬겼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 목적에 따라 쓰임 받게 될 때 하나님이 다윗을 들어 놀라운 일을 이루셨듯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도 놀라운 일을 여기서 이루시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사울의 손이 있습니다.

오늘 사무엘서 9절 말씀을 보면 “사울이 그의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무기는 아무나 소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그 손에 단창을 소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은 단지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물론 경호원들이 있어서 그를 지켜주었겠으나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자기 방어 수단으로 무기를 소지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소에 단창을 가지고 단지 자기 자신을 지킬 것만이 아니고 사실은 그 왕권으로 온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그가 가지고 있는 단창, 그리고 그의 왕권은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미친 왕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말하자면 구국의 용장이요, 현재는 자신의 심리를 음악으로 치료하고 있는 주치의와 같은 역할을 하는 다윗을 죽이려고 그 단창을 던졌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남용했고 또 악용했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그가 악령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결국 나라를 망치고 이웃을 해치는 일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자신까지 망치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탄에게 사로잡힌다는 것이 이토록 파괴적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어렵게 하는데 앞장선다 그 말입니다. 교회의 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창을 던지듯 사정없이 살인적인 말들을 던져댑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게 되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 손에 무엇이 들려 있습니까? 사울처럼 행여 단창을 가지고 던질 사람을 찾는 것은 아닙니까? 지금 바로 그 창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회개하는 일입니다. 그 대신 그 손으로 형제의 손을 잡아주고, 형제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치유의 손,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손이 되기 바랍니다.

(3) 미갈의 손이 있습니다.

미갈은 사울의 딸로 다윗의 아내가 된 여인입니다. 지금 자기 아버지 사울은 다윗을 원수로 여기고 있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갈이 이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이 지금 사울의 손을 피하여 자기에게 왔습니다. 지금 미갈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다윗을 아버지에게 넘겨주는 일입니다. 아버지 사울의 편에 서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다윗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부왕인 사울에게는 반역을 저지르는 일이 됩니다. 아무리 딸이지만 왕의 원수를 숨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공범관계가 됩니다. 여기 미갈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사울왕의 명령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다윗의 생명을 지켜줄 것인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사울 편이냐 다윗 편이냐가 아닙니다. 하나님 편이냐 사탄 편이냐 입니다. 내가 비록 죽는 한이 있어도 진리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내가 살기 위해서는 불의를 선택하느냐 입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끌려가서 위협을 당했습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도 말고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라”. 그러나 사도들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으냐 너희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너희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미갈은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그래서 그 손으로 다윗을 피신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손으로 우상을 가져다가 다윗이라고 왕의 밀사들을 속였습니다. 이렇게 할 때 그 손이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그러나 그 여인은 그 손으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다윗은 그래서 살아났고 나중에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그 뜻을 다 이루어드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론과 훌이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모세의 손을 부축해 준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하는 손도 위대하고, 전쟁에서 싸우는 여호수아도 훌륭하지만 그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가망한 사람들이 아론과 훌입니다. 주연 못지않은 조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군대로 하여금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손을 보십시오.  사울의 손은 아닙니까? 창을 던져 버리십시오. 다윗의 손입니까? 주님께 잘 쓰임받기 바랍니다. 미갈의 손입니까? 여러분의 손이 아니면 결코 하나님의 일이 성취 될 수 없습니다.

“주여, 나의 이 손을 주님께 드립니다.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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