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들... (마 11:28-30)

  • 잡초 잡초
  • 304
  • 0

첨부 1


  미국 프리스턴 신학교의 초대 학장을 지냈던 알렉산더 교수가 40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1851년 10월 2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시에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목이 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잔의 물이지 결코 넓은 바다의 물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 역시 온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한 분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다” 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서 무엇을 찾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신에게 필요가 없으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필요가 있는 것이면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라면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필요에 따라 찾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① 죄인에게 필요합니다.
  왜냐면 그분은 죄인의 구주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가 그분에게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성인들이 있고 훌륭한 사람들이 있지만 인간이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속죄권은 하나님께 속죄양으로 바쳐진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지은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나 밖에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내게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용서한다면 그 용서는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범죄는 하나님께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에 속죄권 그에게 있습니다.

  마 9:6절에 보면 한 중풍병자를 그 친구들이 침상에 누인채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자기들끼리 말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하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그들의 수군대는 소리를 들으시고 5절에 보면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라고 말입니다.

  죄를 사했다는 말을 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병든 자에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냐면 그 말은 당장에 증거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네 죄를 사했다” 라는 말을 하실 수 있는 즉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세자임을 스스로 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함으로서 증명하신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자리에서 즉시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이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은 병을 고치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인간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행하신 기적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가 주님에게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권세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죄인에게 예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양심에 죄의 가책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회개하고 보혈의 공로를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② 병든 자에게 필요합니다.
  또 53:3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질고를 아는 분이라고 했고 4절에서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의 질고를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질고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질병을 고치시는 권세가 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것은 예수를 믿으면 아무 질병도 없다는 사상은 절대로 위험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의 육신의 질병을 통해서 마음의 병을 고치시기도 하시고 우리가 병들어 고생하는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서 더 신령하고 영적이며 진정 중요한 것을 주시고자 하시는 거룩한 뜻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어도 아플 수 있고 병들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아픔과 질고를 주님께서 다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담당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는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병 고침을 받는 실례는 성경에서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많은 분들이 체험하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질고도 칭찬과 상급이 될 수 있습니다. 
  단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질고를 참고 견디며 믿음을 지키었을 때 말입니다.
  벧전 2:20절에 보면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질고가 죄 때문에 온 것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그 죄 값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치루어졌기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 질고가 임할 때 십자가를 생각하며 참고 인내하면 상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는 질고도 상급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③ 마음이 외로운 자에게 필요합니다.
  인간의 외로움을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외로움입니다. 끊임없이 외롭고 고독한 것은 바로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군중 속에서 고독하십니까?
  자식들 속에 있으나 외롭습니까? 수많은 친구를 사귀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에 매여 있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소리치며 올라오는 영혼의 고독은 웬 일입니까?

  시 36:9절에 보면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의 원천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행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을 떠날 때 인간은 근본적인 고독이 엄습하는 것입니다.
  렘 17:13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우리의 소망이시고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고독함이 임하며 모든 불행과 저주가 임합니다. 그러기에 고독하고 외로운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④ 마음이 고달픈 자에게 필요합니다.
  고달픈 것은 피곤한 것입니다. 사람은 고달픈 인생을 삽니다. 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휴게소가 많이 있습니다. 운전 중 졸립고 피곤할 때 잠시 들려 쉬면서 음식도 사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정말 피곤할 때는 휴게소를 아무리 들려도 피곤함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휴식은 마음에서 부터입니다.
  휴게소가 아무리 많아도 인생 길에서 마음이 고달프고, 사는 게 괴롭고 힘든 사람들에 참 휴식을 줄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휴게소는 많아도 참 된 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찬송가 290절의 가사처럼 고달 픈 인생 길을 가는 동안 편히 쉴 곳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서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마음의 휴식을 줄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마 11:28절에서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임을 아십니다. 세상에서 진정한 쉼을 얻지 못하는 고달픈 인생길을 가는 존재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고 초청하신 것입니다.   

  1991년 어느 날 알프스산 얼음 속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처음엔 최근 등반하다가 실종된 사람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시체를 정밀 분석하던 조사팀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유는 수천년 전 죽은 사람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먼지 폭풍과 계속된 따뜻한 날씨에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시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 시체는 이집트 고대왕족의 미라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판명 되었습니다. 뼈를 분석한 결과 46세 정도의 남자, 하나 남은 손톱을 분석한 결과 죽기 전 세 차례 병을 앓았는데 그 병은 동맥경화와 뇌졸중, 장에는 편충이 있어서 설사와 이질이 심했을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DNA 검사결과 죽기 전 붉은 사슴과 야생염소고기를 먹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검사한 결과 그의 직업은 구리를 녹여 기구를 만드는 일을 했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의 장속에 꽃가루가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가 죽은 때는 꽃가루가 날리는 늦봄이나 초여름이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의 힘이 놀랍습니다. 수천 년 전에 살던 사람의 성별 건강 음식 직업을 알아낼 수 있다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나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아시고도 남는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 139편에서 다윗은"나의 앉고 일어섬을, 나의 생각을 내 혀 속에 있는 말을 아신다"고 했고 16절에서는"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나도 모르는 나를 하나님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병든 것을 아시고 부족함을 아시고 부르신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이 절실하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다.
  과연 예수가 필요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는 예수가 필요 없는 완벽한 사람이다” 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자만이요 교만입니다. 자신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할 때 필요를 채울 수 있는 해답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십시오. 우리가 정녕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박재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