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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이지 않는 동행자 (눅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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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제가 다니던 학교가 저희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를 다녔는데, 그나마 버스 정류장도 집에서 걸어서 30분 가량 가야만 버스를 탈 수가 있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30분 가량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자리를 잡으려고 반대편에 건너가서 미리 버스를 탑니다.  때문에 제가 기다리는 정류장은 종착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는 언제나 버스가 만원이었기 때문에 버스를 놓쳐버리기가 다반사였습니다.

지금은 포항시의 도시계획에 의해서 상당히 많은 집들이 철거가 되었고, 또 마을 앞으로 왕복차선이 만들어지고 버스가 다니고 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 제게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고 한다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대학교에 가서 자취 생활을 하면서 그 소원을 풀게 되었습니다만, 여하튼 학교에 다니는 길이 꽤나 멀었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정규수업을 마치고 자율학습을 하고서 집에 돌아오면 보통 밤 10시가 넘어갑니다.  버스를 타고 종착점에 내려서 30분이 넘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혼자서 털레털레 집으로 오게 됩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 오기 위해서는 마을과 마을 사이에 한쪽에는 바다 모래사장이 있고, 반대편에는 숲이 있는 곳을 거쳐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 학생회 예배를 마치고 어쩌다가 늦은 시간에 집으로 오게 되면, 또 다른 길로 40분 가량 걸어야 하는데 집으로 오다보면 언제나 숲이 우거진 산 속을 지나서 와야만 했습니다.

참으로 힘이 들었던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원래 겁이 많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든,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든, 인가가 없는 길을 거쳐야만 했는데, 그 당시에는 그 길을 혼자서 걸어서 온다는 것이 어떻게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그 길은 우범지대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살인사건까지도 있었던 그런 곳입니다.  더구나 그곳에는 숲이 워낙 우거져 있었기 때문에 한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지 못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여기 저기 무덤들이 있었든 곳이었습니다.  때문에 당시에 밤늦게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숲이 시작되는 그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혹여 아는 사람이 지나가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 자리에서 기다리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는 사람이 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혼자서 그 숲 속 길을 걷게 되는데 그때에는 아는 노래를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가면서 그 길을 걷는 겁니다.  얼마나 두렵고 불안하고 공포에 질렸는지 집에 와서 보면 온몸이 땀으로 젖었던 그런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기억이 나는 것은 어느 토요일에 학생회를 마치고 놀다가 밤늦게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날도 숲 입구에서 동네 마을 사람이 지나가기를 1시간 여를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며 숲을 지나가는데 절반쯤 갔을까 뒤에서 사람 인기척이 나는 겁니다.  누군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려니 겁은 나고, 그래서 더욱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빠른 걸음을 재는데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뒤에서 낮 익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거 앞에 가는 놈, 주철이 아이가?"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께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겁니다.  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순간 긴장이 탁 풀리고, 아버지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든든했던지 모릅니다.

그렇게 무서운 숲을 지나오는데도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렇게 무섭고 떨리던 캄캄한 밤길도 믿음직스러운 아버지와 함께 동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그 짧은 동행길에 참으로 유쾌하고 즐거운 길이었습니다.  그 무섭던 길이 이제는 아주 마음 편하게 걷게 되는 길이 되었습니다.  공포에 떨며 오던 그 길이 웃으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동행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무서운 밤길에 든든한 동행자가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함께 길을 걷는 동행자가 있으면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쉽게 걸어 갈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무섭고 힘든 길이라도 동행자가 있으면 편안하게 걸어 갈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멀고 캄캄한 길이라도 믿음직한 동행자가 있으면 함께 웃으며 걸어 갈 수가 있습니다.  동행자와 함께 손을 잡고 길을 가면 마음이 든든하고 무엇 하나 겁날 것이 없습니다.  동행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다 죽음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다.  우리가 왜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합니까?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전혀 가보지 않았던 낯선 길을 혼자서 떠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구와 함께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죽음도 아마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설날입니다.  저는 설날 아침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다른 설교 시간에 이미 여러분들에게 한 두 번 말씀을 드렸었고, 또 여러분들도 여러 번 들으셔서 잘 아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다시 한번 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갔습니다.  천사가 그를 데리고 어느 방에 가서 필름을 보여 주는데 그 사람이 세상에서 걸어 왔던 발자취가 찍혀 있는 필름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가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걸어 왔던 그 길옆에, 자기의 발자국 그 길옆에 한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내 평생 동안 내 곁에서 나와 동행한 사람이 누구냐?  내 가는 곳마다 같이 갔던 저 사람은 누구냐?  함께 갔던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냐?"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님께서 당신 옆에 서서 평생동안 당신이 가는 어떤 곳이든지 함께 동행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그가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예수님이 자기 옆에 계신 줄을 알지 못했는데….  그 험난한 인생 길을 혼자 외롭게 걸었다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어떤 때는 예수님을 그렇게도 목말라 찾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찾을 수 없었던 예수님, 그분이 자기와 늘 함께 동행하셨다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만, 또 한편으론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기 옆에 발자국이 없어진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이 하나 밖에 나지 않았던 때는 언제인가 하면 자기의 인생이 정말로 어려웠을 때에, 자신의 삶이 정말로 힘든 삶을 살았을 때, 가장 어렵고 힘들었을 때….  그때에는 예수님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고 발자국 하나만 나 있었을 뿐이랍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 사람이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웠을 때, 내가 실패했을 때, 내가 간절히 주님을 필요로 했을 때 주님은 어디에 가셨나요?  나를 혼자 놓아두고 피하신 것이 아닙니까?  왜 주님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고 내 발자국만 보입니까?"

천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자세히 보시오.  저건 당신 발자국이 아니라 주님의 발자국이요.  당신이 인생을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 때, 좌절과 실망으로 주저앉았을 때, 도저히 당신의 힘으로 걷지 못할 때, 주님은 아예 당신을 등에 엎고 걸으신 것이요, 그래서 발자국이 하나 뿐이지요."

여러분, 다 잘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은 실망과 좌절에 빠졌습니다.  선생님을 잃어버린 그들은 그들의 살 길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말씀은 실망과 좌절을 가슴에 안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까지 주님을 따라왔던 삶을 생각하면서 후회하고 있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깊은 허탈함에 빠졌을 것입니다.  결국에는 혼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혼자 걸을 수밖에 없는 그런 절망감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힘없이 엠마오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을 찾아오셔서 그들과 함께 동행을 하십니다.  그러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동행하시던 주님을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걱정과 근심에 사로 잡혀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아무리 위로하여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알아듣게 말씀을 해주셨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끝내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해주시는 말씀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합니다.  자신들과 함께 길을 걷는 분이 무덤에서 살아나신 영광의 주님임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실망과 좌절 속에 엠마오로 내려가던 이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던 오늘 본문의 주님은 지금 우리들과 함께 걷고 계십니다.  우리들 곁에 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문제는 그 옛날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우리들 곁에 계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들 옆에 계시는데 우리가 그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과거에도 그러하셨지만 지금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우리들에게 여러 말씀으로 격려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주님의 말씀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여러 가지로 많은 어려움과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어떻게 내 힘으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주저앉고 싶은 그런 실망과 좌절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근심하지 마십시오.  실패를 당했다고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일의 일을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바로 우리 곁에 계셔서 나와 함께 동행하고 계십니다.  능력의 주님께서, 영광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데 우리가 무엇을 걱정할 것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너무 힘들고, 살아가는데 어렵고 지쳐서 내 힘으로 도저히 내 인생을 살아 갈 수 없으면, 내 문제를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되면, 그때 사랑하는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등에 엎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을 등에 꼭 엎고 걸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마시고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의 손을 꼭 잡으십시오.  우리들의 믿음의 눈을 떠서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보십시오.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보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은 보이지 않는 동행자이십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면서 그들의 방향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실망과 좌절을 안고 걸어가던 엠마오 길을 희망과 비전을 안고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슬픔으로 낙심되어 걸어가던 그들에게 동행자 예수님께서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 주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절망을 동행자 예수님께서는 소망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그 동행자 예수님께서는 지금 저와 여러분과 함께 걸어가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동행자 예수님은 때로는 묵묵히 침묵하시면서 함께 걸으신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 이하를 보면 제자들은 주님께서 동행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의심이 있습니다.  푸념이 있습니다.  신세 타령이 있습니다.  원망과 절망이 베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는 침묵의 동행자 예수님이 거기에 같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두 제자는 그 동행자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묵묵하게 동행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혼자 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실망 가운데 낙심하면서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홀로 길을 가고 있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우리 주님은 침묵의 동행자로 내 곁에서 묵묵히 함께 걷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믿음이 부족하고 우리 눈이 세상의 염려와 근심 때문에 어두워져서 주님인 줄 알아보지 못해도 우리 주님은 우리 곁에 계속해서 묵묵하게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침묵의 동행자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을 떠나서 애굽 땅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에 우리 하나님은 묵묵히 침묵의 동행자로서 그와 함께 따라가셨습니다.  요셉이 종이 되어서 깊은 감옥에 빠져 있을 때에도 우리 주님은 침묵의 동행자로서 묵묵히 그 모든 고난의 현장, 고통의 현장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세워주시고 세상을 떨치는 민족의 복을 주셨습니다.  비참에 빠졌던 그들을 존귀한 자로 일으켜 주셨습니다.

스바냐 3장 17절의 말씀을 다같이 찾아보시겠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기에 보면 '너'라는 말이 다섯 번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너'라는 말 대신에 자기 이름을 넣어서 읽어보시겠습니다.  "주철이의 하나님 여호와가 주철이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주철이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주철이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주철이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동행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십니다.  지켜보고 묵묵하게 함께 걸어가시는 침묵의 동행자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 혼자 인생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소리 없이 주님이 동행하고 계십니다.  내 모든 말을 다 들으시고, 내 모든 사정을 다 아십니다.  참으로 나의 모든 것을 돌보시는 침묵의 동행자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아침에 우리의 동행자가 되시는 주님을 의지해서 일어나 비전을 향해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침묵의 동행자이신 예수님은 계속해서 침묵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때가 되면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바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침묵하며 따라오시지만 때가 되면 필요할 때 말씀하시는 동행자 되십니다.  본문 17절 이하를 보면 슬픈 얼굴을 하면서 걸어가는 두 제자들에게 다가오신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을 하십니다.  실망하고 있는 제자들, 의심하고 있는 제자들, 슬퍼하고 있는 제자들, 낙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에 일어난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본문 32절을 읽겠습니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부족한 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일어나 비전을 향해서 달려가십시오.

수전 엔드슨이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부인은 직장 생활을 하다 그만 사고를 당해서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1년 동안을 집에 있었습니다.  모든 가슴의 상처를 치료하고 1년 뒤에 직장 상사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육군 장교였습니다.  그가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남편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는 남편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보, 이제 나도 나의 생활에 리듬을 찾아야 될 것 같은데 당신 혼자서 출근하도록 하오."  아내가 화가 났습니다.  "아하, 남편에게 내가 짐이 되는 모양이구나.  남편은 이제 나와 함께 가지 않을 모양이구나."

그녀는 남편에게 화를 냈습니다.  "알았어요.  나 혼자도 출근할 수 있어요."  그렇게 화를 내고 혼자서 버스를 타고 출근했습니다.  걸어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혼자서 출퇴근을 했습니다.

한 보름쯤 지났는데 그날도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그 버스 운전기사가 말합니다.  "아주머니, 참 행복하십니다."  "행복하긴 무엇이 행복합니까?  눈도 볼 수 없는데 행복하긴 무엇이 행복합니까?"  "저 앞에 보이는 잘생긴 군인이 아줌마 남편이 아닙니까?  제가 아주머니를 태운 그 날부터 보니까 항상 이 시간쯤에 저 군인 아저씨가 늘 여기에 서서 아주머니가 사무실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쳐다보시고는 손을 흔들고 돌아가시던데 오늘도 저기에 계시군요."

이 말을 들은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걸어가면서 그는 자기와 동행하고 있는 자기 남편의 사랑을 확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했을 뿐이지 남편의 사랑은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남편은 그와 동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당장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나와 동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지 않는 동행자가 지금도 내 곁에서 나와 동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는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만질 수 없어도 성령으로 우리와 동행하고 계시는 보이지 않는 동행자입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금 내 곁에 계시는 동행자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사랑을 어떤 순간에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동치는 폭풍 속을 걸어갈 때에도, 나 혼자 외롭다고 느낄 때에도 보이지 않는 동행자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십니다.

보십시오.  눈을 뜨고 보아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떡을 먹자 주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길을 돌렸습니다.  실망과 좌절의 길이었던 엠마오의 길에서 소망과 비전이 충만한 예루살렘의 길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광의 주님은 보이지 않는 우리의 동행자이십니다.  내가 지치고 힘들어 할 때에 나를 엎고 가십니다.  그분의 손을 꼭 붙잡고 그분과 함께 인생 길을 찬송 부르며 믿음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인생 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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