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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뱀과 손잡은 아담, 뱀을 멸하신 하나님의 아들 아담 (창 3:9-15, 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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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일에는 뱀의 말을 듣고 마귀의 조종을 받은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아 숨게 되고, 나뭇잎을 엮으며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을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동산, 놀라운 축복의 동산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인 아담 이브가 범죄 하므로 동산은 무너지고 이 땅은 한 순간에 저주의 동산, 멸망과 죽음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음 받은 첫 사람 아담이 범죄 함으로 멸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 나온 모든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하여,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시고 모든 무너진 에덴동산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국가, 개인, 가정, 교회, 기업도 한 사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국가의 지도자를 뽑을 때, 성도들은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전 국민이 잘 할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을 잘 세워야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특별히 전 국민들의 수준이 높아야, 높은 수준의 지도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국민은 지도자를 세울 때 철저한 검증과 그의 행적을 수없이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슨 말이든 청사진 같이 잘 한다고 해서, 세워서는 안 됩니다. 발걸음이 중요합니다. 그의 모든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도 국가는 이 한 사람이 혹시 잘못할지 모르기 때문에, 지도자가 마음대로 못 하도록 국가는 수많은 법을 가지고 견제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사람이 잘못하면 큰일이 나기 때문입니다. 화투 칠 때 똘똘 말이라는 게 있는데 정말 똘똘 말아 가지고, 무엇으로 만들지 모릅니다 그렇게 못하도록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미국은 더합니다. 절대로 대통령이 마음대로 못하도록 국회가 사법부가 철저하게 감독을 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힘은 언론에 있습니다. 언론이 모든 일을 면밀히 살펴봅니다. 언론은 언론인의 사명을 가지고 국가 지도자를 감시를 할 때, 그 국가는 잘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 지도자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힘이 잘못 쓰여 질 때는 큰 부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재주의 국가들은 한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언론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 폈다 놓았다 하며, 절대로 바른 말을 못 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공산국가입니다. 입법부도, 사법부도 없습니다. 한 사람이 마음대로 법을 자기 손으로 주무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의 의미를 잘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국가뿐만 아닙니다. 교회와 가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가만히 보십시오. 엘리라고 하는 한 사람이 영적으로 어두워지니까 온 나라가 어두워지고 이스라엘에 위기가 오지 않습니까? 사무엘 하나가 잘 들어서니까 이 어린 한 사람을 통해서 전 이스라엘이 살아나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사울 왕이 등장해서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보복하고 하니까 나라가 한 순간에 또한 무너집니다. 그 다음에 다윗이 일어나서 하나님을 잘 경외하니까 한 순간에 나라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누가 일으킵니까? 사람이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 나라를 망칠 수도 있고 넘어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역사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안 합니다. 중요한 한 사람이 나와서 이렇게 되고, 변하는 모습을 성경은 말씀해 줍니다.

인간의 역사, 인류 역사, 성경이나 오늘의 모든 삶 속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의 진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바로 에덴동산은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이 무너지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아닙니다. 전쟁, 지진, 천재지변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어떤 것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절망 속에서도 우리 성도들은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은 왜 무너졌습니까? 하나 때문에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하고,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행복 하려고, 잘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멀리 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삶은, 에덴동산처럼 무너집니다. 파괴됩니다. 마귀에 의해서 저주가 찾아오게 됩니다.

  공부를 좀 못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봄 학기에 얼마나 많이 등장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인물이 좀 못났다고 낙심하며, 성형수술 하다가 망가진 사람, 키가 좀 작다고 낙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키가 작아도, 인물이,  배운 것이, 빽이, 가진 것이, 돈이 없어도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천국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있어도 마귀가 좋아하는 사람은 다 외적으로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입니다. ‘인물이 좋아서 행복하다’라는 사람을 역사에서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인물이 좋아서 전 행복했습니다.’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키 커서 ‘나는 행복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확실히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어디든지 에덴동산인 줄로 믿습니다.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헛되도다.” 모든 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어떤 의, 노력, 수고는 헛됩니다. 하나님 없는 우리 인간의 모든 수고와 힘은 모아져도 헛됩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 에덴동산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곳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어디든지 지옥이 됩니다. 저주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에덴동산의 마귀가 이브에게 접근하듯이 우리에게 어떤 것이 접근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봅니다. 하나님 없는 것은 물리칩니다. 하나님 없는 예술, 친구, 길로 이끄는 부모 형제를 우리는 담대하게 물리칩니다.

  요사이 우리나라는 몇 달 동안 윤씨 게이트라고 하는 게이트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여기에 걸려들었습니다. 경찰 고위직, 검찰 고위직, 판사, 국회의원, 청와대 수많은 사람들, 우리나라의 높은 사람들이 여기에 모두 다 걸렸습니다. 얼마나 많이 걸려들었는지 지금 윤씨 게이트에 걸린 사람이 참 많습니다. 돈 몇 푼주고 받고 왔다 갔다 하다가 모두 다 걸려들었습니다. 교인들은 이런 데에 걸리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사람을 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님! 오 마이 브라더!’ 그래도 우리는 그런 거 물리칩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언제나 그럴듯하고 아름답게 말을 하며, 친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가까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아무리 가까운 친구, 형제, 부모, 자식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으면 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복을 받아도 오래 가고, 잘 살아도 영원히 잘 사는 이유가 바로 믿음 안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해마다 수많은 게이트, 게이트는 원래 문인데 얼마나 잘못된 문이 많습니까? 여기에 모두 형님, 동생 하던 친구들, 선후배들, 동창들, 동료들, 가장 친한 사람들, 서로 한 덩어리 되었다가 나중에는 전부 영광 굴비같이 모두 다 걸려들어 가지고 감옥에 갈 때 전부 똑같이 가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보아 왔습니까? 이렇게 게이트를 많이 보고도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깨닫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친한 것, 친해도 하나님보다 더 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부모 형제가 가까워도 하나님 말씀을 떠나 가까이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몇 번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 하던 장로님이 제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대통령께서 저희 집에 찾아 오셨습니다. 저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하고, 불러서 우리 두 내외하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저 보고 대통령 비서실장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모두 그저 ‘아, 오 마이 갓’ 그러고 다 갑니다. 그러나 이 분은 “안 됩니다” 그랬습니다. 한 번 두 번 다 거절하다가 마지막에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장로입니다. 주일은 교회에 가서 예배드려야 하기에, 주일은 제가 대통령 각하를 모실 수가 없습니다. 주일은 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비서실장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 곁에 항상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거 못합니다. 예배가 우선입니다.” 그러니까 대통령께서 “그렇게 하십시오. 주일에 예배드리는 건 언제든지 열어 드릴 테니까 비서실장을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내 앞날을 책임져 준다면 대통령의 말을  모두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내 앞날을, 요만한 것도 좌우할 수 없습니다. 비서실장이 최고의 높은 자리이지만 역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길을 떠나서는 비서실장도 에덴동산이 될 수 없습니다. 안 됩니다. 별것 아닌 지위, 출세 가지고 교회를, 하나님을 저버리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성공 할 수 있으나, 그 성공은 짧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행복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지나갑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출세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맛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쓴맛으로 변합니다. 독으로 변합니다. ‘하나님 떠난 모든 영광은 헛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온 세계 앞에서 훌륭한 작품이지만, 그 수고의 남은 게 무엇입니까? 중국의 만리장성도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만드는 이 대단한 일들도 백 년 지나서 부활해서 와 보십시오. 내 집도 못 찾습니다. 다 뜯기고 새로 짓습니다. 지금 이 강동구에 있는 집들도 남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뜯기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지나가지 않습니다.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승리의 길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모든 축복은 예수님과 함께 누리는 것이지 하나님을 떠난 에덴동산은 거짓말입니다. 이 세상에 유토피아, 이데아의 세계, 아름다운 지상낙원은 없습니다. 수많은 과학자, 종교인들, 석가모니도 이 세상에서 유토피아를 찾아보았지만 없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명왕성까지 인공위성을 보냈었는데 명왕성 아니라 어디를 찾아가도 지상낙원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만 천국, 구원, 기쁨, 평안, 자유와 안전이 있습니다.

아담 이브는 마귀와 손을 잡았습니다. 아담은 마귀의 말을 따라 살았습니다. 마귀와 손잡은 사람입니다. 아담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담을 첫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첫 사람은 마귀와 손잡아서 에덴동산을 파멸시켰습니다. 둘째 아담 예수님은 두 번째 오신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이 우주를 다 죄악으로 물들게 했지만, 두 번째 오신 아담 두 번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 우주에 있는 이 저주를, 파괴된 이 지구를 회복하시고 치료하시며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을 만들어 주십니다. 아담 이브가 마귀를 따라가므로 마귀가 이 지구에 충만해졌고, 에덴동산의 문을 열어서 마귀가 들어오면서 이 땅은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마귀의 나라의 핵심은 네 가지입니다. 마귀의 나라는 이 네 가지 기둥 위에 세워집니다.  이 네 가지가 버팀목입니다. 이 네 가지 정책으로 발전합니다. 마귀의 나라, 뱀이 지배하는 곳은 죄와 멸망, 사망, 저주 이 네 개의 기둥 위에 세워집니다. 그래서 마귀가 있는 땅에는 죄악이 관영 합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라도 모든 사람이 죄를 더 짓도록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마귀는 모든 사람이 풍성한 죄 가운데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받아 죽음에 이르고, 저주아래 살도록 하는 것이 마귀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마귀의 부하들은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 모두가 죄를 지어서 죄의 풍년을 누리고 죄의 충만함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귀가 지배하는 곳에는 죄악이 관영합니다. 그래서 죄와 함께 사망, 멸망, 저주가 이 땅에 충만한 것입니다. 찬송가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찬송가 330장에도 이 세상을 비유할 때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예수께로 나옵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주께로 옵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찬송가 474장에도 이 세상에는 근심된 일이 많고 죽을 일이 많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런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로 때문입니다.

유명한 톨스토이도 이렇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비유하느냐? 인간이 호랑이를 피해가지고 도망을 치다가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까 연못이 있는데 왼쪽에 있는 연못에는 아프리카에 있는 아나콘다 같은 큰 뱀 이무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땅에는 호랑이가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 떨어지려고 양손으로 꼭 나무를 붙잡는데 마침 위에서 꿀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그 꿀맛을 들이면서 밑에 있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잡고 있는 그 순간에 흰쥐가 와서 이쪽 나뭇가지를 갉아먹고 가고, 조금 있으니까 검은 쥐가 와서 이쪽 나뭇가지를 갉아먹고 가고 계속 갉아먹는 것입니다. 이것은 낮과 밤을 의미합니다. 내가 잠깐 이렇게 먹고 있지만 저 꿀이 떨어질 날도 얼마 안 남았고, 이 나무가 끊어질 날도 얼마 안 남았다라는 이것이 유명한 문학가가 인간을 지적한 것입니다. 내가 대단한 기업 붙잡고, 누구를 붙잡지만 이건 금방 곧 끊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자가 누구냐”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모든 우리 인류의 과학, 지식, 정치, 교육과 노력이 우리를 여기서 벗어나게 하려고 하지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길이 하나 있습니다. 누구이십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창세기 3장 15절에 말씀해 드린 여인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후손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9장 2절에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에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사야 11장 1절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장 15절은 참 중요합니다. 에덴동산이 무너졌습니다. 마귀 사탄이 들어 왔습니다. 에덴동산은 마귀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땅의 왕이 되어서 우리 모든 인류를 자기의 종으로 만들어서 저주아래 사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이러한 이 땅에 하나님께서는 여인의 후손,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인의 후손으로 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여인의 후손, 독생자, 동정녀 마리아가 낳은 후손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이 뱀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유대인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문제가 있어도 메시아가 올 것을 기다렸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여인도 자기가 만신창이지만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된다고 여인의 후손을 기다렸습니다.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 모두 예수님이 그 메시아임을 바라고 동방의 박사들도 그 별을 찾아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 세계가 메시아, 처녀의 후손, 처녀가 낳을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처녀의 몸을 통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드디어 이 땅을 전부 다 통치하던 이 뱀과 여인의 후손은 싸움이 붙습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싸움은 1차 대전, 2차 대전이 아닙니다. 러․불 전쟁도, 독․불 전쟁도, 영국과 미국의 독립전쟁도 아닙니다. 어느 전쟁보다 가장 큰 전쟁은 바로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마귀와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입니다. 드디어 뱀이 예수님의 발뒤꿈치를 물었습니다. 뱀은 언제나 뒤로 공격을 하는데 발뒤꿈치를 물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를 매어 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입니다. 뱀은 예수님을 물었습니다. 십자가에 매어 달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하십니까? 뱀이 예수 그리스도를 멸망시키려 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지신 십자가로 뱀의 머리를 박살내어서 뱀을 멸하고 온 인류를 건져내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어디에서의 해방을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귀로부터의 해방을 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인류가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데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십니까? 감옥에서도 아무것도 못 얻는데 마귀의 지배 아래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러한 우리 인류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마귀를 멸하시고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신 줄 믿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서 이제 다섯 가지를 첫 아담과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이 본문의 말씀을 로마서와 창세기에 있는 말씀과 함께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첫 아담, 사람이 범죄 하여 파괴한 에덴동산을 사람을 통하여 역시 해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 있는 독생자, 신이시고 창조자이신 그의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을 이 땅위에 사람이 되게 하시어-인 카네이션-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복음이며 의도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21절 22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아담은 죽음을 가져 왔지만 둘째 아담은 생명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그래서 첫 아담의 자손으로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둘째 아담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첫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둘째 아담은 하늘로부터 내려 오셨다”라고 역시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옵니다. 우리는 둘째 아담인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잃어 버렸던 에덴동산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두 번째, 창세기 3장 15절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넘어뜨린 이 에덴동산을 여자의 후손이 되어서 오셨습니다. 뱀과 손잡은 여자로 말미암아 멸망한 에덴동산을 여자의 후손이 하나님과 함께 손잡고 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마귀는 우리 온 인류가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권력, 힘과 능력은 완전히 파멸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절대로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서 마귀를 예수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여러분을 마귀에게서 지켜주십니다. 여러분이 좋아서 마귀의 길로 가지 않는 한,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호를 영원히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를 멸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마귀를 멸하지 않고 부모와 자식을 아무리 사랑하고 도와도,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바쳐서 길러도, 그 아이에게 하나님을 경외하여 마귀로부터 벗어나지 않게 하는 한 우리 인간은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요한일서 3장 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온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하셨습니다.

  세 번째,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로부터 받은 모든 저주를  모두 다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모두 다 해결하십니다. 예들 들어, 마귀의 나라는 네 가지라고 합니다. 죄, 죽음, 멸망, 저주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저주를 당하심으로 저주아래 있는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죽음에 있는 우리를 건지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멸망을 당함으로 멸망에 있는 우리 인류를 건져 주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4절 15절에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나옵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의 구리 뱀이 되셔서 누구든지 저를 바라보면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뱀에게 물렸을 때 어떻게 치료했습니까? 뱀으로 뱀을 치료했습니다. 뱀에 물려서 병든 사람을 뱀을 가지고 치료하신 하나님. 저가 텔레비전을 보면 코브라, 독사 이런 뱀 종류가 많습니다. 전문가들이 독사를 잡아서 독을 다 뺍니다. 왜 뺍니까? 독사에게 물린 사람을 독사의 독으로 그 독을 제거합니다. 놀랍습니다. 태국 같은 데서는 일 년에 몇 천 명이 뱀에게 물려 죽는데 그 약이 어디서 나오느냐하면 독사의 독에서, 독사의 독에서 치료하는 약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저주입니다. 십자가의 저주가 죄의 저주에 있는 우리를 해결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마귀로부터의 죽음을 해결합니다. 이 멸망이 저 멸망을, 이 아픔이 저 아픔을 해결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저주의 종류는 천 가지 만 가지인데 누구로 말미암아 왔습니까?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마귀로부터 온 것은 이 세상에서 치료약이 없습니다. 마귀로부터 온 저주는 하나님의 아들의 저주로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삽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용서함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저주에서 해방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모든 불행에서,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따라오던 마귀의 세력은 그 한 순간에 끝납니다.

  네 번째,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는데, 하나님 앞에 버림받고 멸망을 받게 된 우리를 두 번째 아담이 오셔서 순종하심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켜주십니다. 우리가 잘 살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하늘 문이 열려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원래 우리가 가졌던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우리는 원래 영원히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사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한 분이 불순종함으로 모두 무너진 것을, 한 분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어디까지 순종하느냐?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우리 모두를 하늘로부터 축복해 주십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
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 거룩하사 주님나라 임하시고 뜻이 이루어지이다 일용할 양식 주시고 우리들의 큰 죄 다 용서 하옵시며 또 시험에 들게 마시고 악에서 구원하소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길이 열려집니다. 영원한 축복이 열려집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원히 삽니다. 우리는 잠깐 살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잠깐 편할려고 여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이제 하늘로부터 우리의 지원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영원함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으로 나가면 점점 인색해지고 마음이 좁아지고 불안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어도 돈을 끝까지 잡습니다. 저도 임종을 맞이한 분들을 가서 보면 내일 돌아가시는데도 통장을 절대로 자녀에게 안 줍니다. 꽉 잡습니다. 안 놓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래에 믿을 것은 이놈밖에 없으니까 끝까지 잡는 것입니다. 안 놓칩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을 것은 이것 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세상으로 가는 사람은 인색합니다. 불안합니다. 늘 긴장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십 년 넘도록 매 주마다 남을 돕는데 한 주일에 2억 이상씩 나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금년에는 한 주일에 3억 이상씩 나갑니다. 계속 끊임없이 그렇게 나갑니다. 여러분! 돈 일억이 얼마나 많습니까? 백 원짜리 천 원짜리 모아서 그 일억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왜 주겠습니까? 제가 돈 아까운 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나가는 것만 보지 않습니다. 미래에 부어주실 하나님, 무한한 축복을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나 버리면 어떻게 하나’ 이런 불안이 없습니다. 버려도 좋습니다. 그러나 안 버릴 줄로 믿습니다. 하여튼 불안함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영원하신 나의 기업,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 미래를 향하여 가기 때문에, 지난날을 바라보고 후회하며, 낙심하고 허무하게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오늘 성가대 찬양이 ‘아름답다 저 동산’이지 않습니까?
♬아름답다 저 동산 우리가 같이 가보세 무궁세월 흐르는 풍파가 일지 않는 곳 저 아름다운 동산♬ 마지막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계신 곳이로다 주님의 동산 고요한 기쁨 천사의 노래 아름답게 들린다♬ 이 노래가 그런 것입니다. 얼마나 저도 듣고 눈물이 나는지... 우리 가는 길, 우리 미래가 어디냐 하면, ♬아름답다 저 동산 화려한 곳으로 평화의 동산에 주님이 계신 곳 주님이 계신 곳 평화의 동산♬ 저와 여러분, 우리 민족이 가야 할 곳은 주님의 동산, 주님이 함께 하는 동산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주님의 나라, 주님을 귀히 여기는 주의 왕국입니다. 영원히 망하지 않는, 영원한 축복의 하나님의 동산에서 살고 그와 함께 영원히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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