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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소망하는 교회 (엡 1: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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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두 기관이 있다. 가정과 교회이다.
나머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기관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가정과 교회가 신적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소중한 기관이란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정이나 교회에 대하여 놀랄 정도로 무지하고 소홀하다. 이것이 불행의 첫 번째 원인이 되고 있다. 한 예로 청소년들의 문제 - 외모, 신체변화, 이성, 주초문제, 친구, 성적등.. 가정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졌다.

오늘날 교회도 가정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젊은이들이 결혼과 가정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때가 되면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도 있으니까 나가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 대한 무지와 경솔, 가족의 구성원 모두가 불행해지고 사회적 문제로 발전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에 대한 무지로 인해 교회가 약화되고 사회적 역기능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대부호였던 록펠러가 위장병에 걸려서 일년반 동안 크랙커와 우유만 먹고 생활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부자라도 위장병에 걸리면 아주 맛없는 싸구려 식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날마다 최고급 건강식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위장에 이상이 생기므로 인해 고급의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대한 무지로 인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중에서 증거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크게 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이다.

본문 22절 하반절,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다른 번역본에서는 “머리로 삼으셨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만이 유일한 주인이요 리더라는 뜻이다.

엡1:20-22상,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시기 위해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 내셨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셨고, 모든 만물을 그 앞에 복종케 하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그리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런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셨음을 증거하고 있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2002년 월드컵에서 30위 권에 머물러 있었던 한국축구가 히딩크라는 감독에 의해서 세계 4강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과 선수들의 호응으로 4강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도자가 중요하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맛을 잃은 소금처럼 세상에서 밟히는 이유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로드십(주권)과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리스도인들의 교만과 무지 때문이다.

예)홍정길목사(남서울교회), 당회에서 안건을 처리하는데 장로들끼리 파가 갈라져서 서로 격론이 일자 홍목사님이 회의를 중단시키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은 후에 다시 모여 은혜롭게 일을 처리했다는 일화가 있다.

교회의 주인은 개척 설립한 목사도 아니요, 장로도 아니다. 우리가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주인 의식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주인 행세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관철시키려고 고집부려서는 안된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어떤 분인가? 그 분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교회는 바로 그분의 뜻이 이뤄지도록 수종들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천주교의 교황주의도 아니고, 침례교와 같은 회중주주의도 아니고, 감리교의 감독주의도 아니고, 장로교의 장로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교회를 운영하기 위한 정치 체제일 뿐이다.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렇게 모여서 교회라는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그렇다면 마땅히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여야만 한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인식할 때 교회는 질서있게 주님의 뜻을 받드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교회의 사공은 오직 예수.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주인이요, 지도자요, 삶의 목적이 되신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그 위상이 확실해질 때 교회는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인생들이 가야할 길을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23절,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23절 말씀에서 교회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1)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성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가?
사도 바울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인들의 모임인 공동체는 그의 몸이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관계는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관계에서 3가지 특징이 있다.
1.몸은 머리의 지배를 받는다 - 명령과 순종.
2.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신체다.
3.몸은 머리가 받는 영광에 동참한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종의 위치에 있다. 몸이 머리를 조종할 수는 없다. 뇌에서 명령을 내리면 손과 발이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에 대하여 억울한 사람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셨다. 순종할 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몸 안에 여러 기관과 지체가 있듯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요 기관인 것이다.
고전12:14-27.
12: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12: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2: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2: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12: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2: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12: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12: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12:22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12: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12: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12: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서로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쁨도 함께 슬픔도 어려움도 함께 하도록 되어 있다. 독불장군은 없다. 그래서 고통도 함께 받고 영광도 함께 받는 것이다.

2)교회의 기능
어떤 기능인가? - “만물을 충만케 하는 기능”(23절하)
충만이란 말은 가득 채워진 상태, 만족스러운 상태를 의미한다. 만물이란 인간 모든 존재뿐 아니라 천사와 우주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을 통털어서 하는 말이다.

“만물을 충만케 한다”라는 뜻은 우주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의미이다. 실로 엄청난 역사이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가 이 땅의 모든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을 다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 - 성경은 있다고 분명하게 답변하고 있다.
23절,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이니라.

왜냐하면 만물을 충만하시는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어디서나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 계신 곳입니다.”

그리스도가 빠진 세상 사람들의 모임이 만물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
예)조기축구회, 낚시회, 산악회, 로타리클럽, 넓은 범위에서 UN, G7, 아스팍등...

전쟁이나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다. 만물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며, 그 능력을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위임하셨다. 그러므로 오직 교회만이 만물을 충만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성경학자 핸드릭슨, “교회는 우주를 봉사하고 풍성한 선물로서 채워진다”고 말했고,
박윤선목사,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를 전달하는 기관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를 충만히 보유한 그릇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지구상에 있는 교회들이 이 놀라운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가?
어린아이에게 자동차 키를 주어도 소용이 없다. 자동차를 운전할 만한 힘과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의 모습이 이렇다.

그러나 지난 4주 동안 살펴본 네 교회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교회 모습같지 않았다.
1)예루살렘교회는 성령충만한 열정적인 교회였다. 백성들에게 칭송을 들었다.
2)안디옥교회는 세계를 품고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하였다.
3)빌립보교회는 작은 교회였지만 사도 바울의 선교사역을 돕는 신실한 협력자였으며,
4)데살로니가교회는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재림신앙으로 무장한 교회였다.

에드워드 기본이라는 사람이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이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그런데 그의 집필 동기가 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저 거대한 몸뚱아리(로마제국)는 공개적인 폭력에 의하여 침공을 당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뿌리가 서서히 침식을 당하는 동안에 순수하고 겸손한 종교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부드럽게 스며들었고, 조용하고 단호하게 성장하여 반대 당하면서도 새로운 운동력을 얻어 마침내 제국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승리의 십자가 깃발을 나부끼게 했다.”

기독교의 영향력은 로마제국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뻗어나가 세계를 덮어 버렸다. 초대교회는 이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능력을 교회에게 이미 주셨다.
수지 지구촌교회 이동원목사, “‘하나님 저에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는 바른 기도가 아니다.” 올바른 지적이다.

어느 날, 누가복음을 읽다가 한 구절에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성령의 강한 임재를 느꼈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 주님의 교회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그리고 우리 교회에 주어진 이 놀라운 능력을 잊고 있었구나. 회개와 함께 큰 기쁨을 경험했었다.

우리가 소망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 주변에 본 받을 만한 여러 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목표로 하고 소망하는 것들이 이미 나열되어 있다.
1.제자훈련 2.학원선교 3.국내외 선교 4.지역사회봉사 5.기윤실운동

그러나 먼저 회복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의 머리가 되시도록 모셔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철저히 그분의 종이 되어 순종하는 것이다. 이미 종이 된 것을 알고 순종하면 된다.

두 번째, 교회는 만물을 회복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 이 놀라운 능력을 교회에게 부여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과 타협하는 연약한 자들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주역임을 기억하라.

세 번째, 이미 우리에게 능력 주셨음을 믿고 담대하게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막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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