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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홍해와 광야 길 (출 13: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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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와 광야길로 인도하셨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도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배도 없는 이스라엘 자손이 이 방향을 통해서 애굽을 빠져 나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설령 바다를 벗어난다고 해도 건너자마자 거친 광야이다. 어떻게 자녀들과 짐승까지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이 이 험준한 광야에서 살아가겠는가?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었는가? 아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canaan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에서 비록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의 상식과 다를 때가 많지만 거부하지 않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홍해와 광야길"에서어떻게 인도 하셨는가? 살펴보고 저 한다.

(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신다.

17절 보면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불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 하셨으니...”라고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의 첫 번째 특성이다. 즉 하나님은 빠른 길 보다는 안전한 길로 인도 하신다는 것이다.
당시 애굽에서 canaan땅 까지는 10일이면 가는 길 이었다.
그 길이 지중해 해안길이다. 그 길은 대상들이 주로 이용하던 무역로이다. 그러나 그 길은 불레셋 군대가 가로 막고 있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이스라엘 자손이 이들을 능히 물리칠 수는 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난 처지였다.
그래서 17절 하반절 보면 “..... 이는 ....이 백성들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 갈까 하였음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기겁을 하고 돌아 설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발걸음을 돌려 광야길로 인도 하셨던 것이다. 비록 홍해를 건너고 광야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했지만 그래도 당장 불레셋 군대와 마주치는 위험을 피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하나님께서 성도를 인도하실 때에 빠른 길 보다 안전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성도들을 속성으로 키워내시지 않고 안전하게 키워내시는 일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신다. 아이가 병들어 가면서까지 어떤 일에 몰두하는 것 보다 개구쟁이라도 튼튼하게 자라 주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그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나를 급속도로 축복해 주시거나 사업을 성장시켜 주시지 않는가? 불평해서는 안 된다.

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지 않고 “홍해와 광야의 위험”속으로 몰아넣으시냐고 항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당장은 이해가 어렵고 납득이 안가도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방법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모세는 “광야에서 또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 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고 했다.(신1:31)

(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적절한 보호 속에 인도 하신다.

21절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 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 하니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적절하게 보호하시면서 인도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의 두 번째 특성이다.
한낮에 뙤약볕에서 일해 본 노동자나 논밭에서 김을 매본 농부는 광야에서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심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이해 할 수 있다.
또 겨울에 이른 새벽부터 나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일해 본 사람들은 불기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이해 할 것이다.
사실 광야의 한낮의 더위와 한 밤중의 추위는 그것들과 비교가 안 되는 고통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하나님의 인도가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출17:6 보면 물이 없어 목말라 죽게 되었을 때 반석을 터뜨려 물을 내주셨다. (출17:6)
출15:25 보면 마라의 쓴 물을 한 나뭇가지를 던져 달게 만들어 주셨다. 떡을 달라하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셨고 고기를 달라하면 하늘에서 메추라기 때를 몰고 와 코에서 냄새가 나도록 먹이셨다.
그리고 신8:4에 모압 평지에서 모세의 고백을 보면 40년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옷이 해어지지 않았고 신발이 부릍지 않았다고 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누가 어디서 어떻게 인도한다 해도 이 이상 더 잘 인도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인생길이 광야와 같은 험한 길을 걸어 왔다고 해도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때를 따라 매우 적절하게 보호 하시고 인도하셨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해안의 편한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홍해와 광야 길로 인도하신다 해도 거부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히브리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 갈 것 이니라”고 했다. (히4:16)

(三)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세 번째 특성은 좋은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모세는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광야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도록 허락하라고 요구했다. (출5:3)
그러나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들이려고 한 땅은 광야가 아니고 Canaan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와 광야길로 인도 하신 것은 (1) 해안 길로 인도했다가 당장 애굽으로 돌아설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이요

(2) 그 다음에는 광야에서 Canaan을 차지하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 받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종종 다량의 눈물 골짜기로 인도 하신다고 해도 사실은 하나님이 인도 하시는 곳은 그러한 고난의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좋은 곳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좋은 곳에 이르러서 그 곳을 차지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훈련이요 시련이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우리를 망하게 하시는 계획은 없다. 그래서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했다. (욥23:10)

그러므로 우리는 당장 고난이 닥쳐온다 해도 결코 하나님의 인도를 거부 하거나 자기가 포기하고 떠나온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인줄 알고 견디어야 한다.
다윗처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 나이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이지만 그 축복을 받을 만한 자격을 아직 지니지 못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시려고 지금의 이 연단과 훈련을 시키신다고 믿고 기쁘게 여겨야 한다.

(결론)
우리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와 광야 길로 인도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 방식을 살펴보았다.
불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다름없이 오늘날에도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안전하고 적절하게 좋은 곳으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원사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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