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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덴과 유브라데 (창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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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네 개의 강이 있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의 이름은 비손강이요 둘째는 기혼강이며 셋째는 힛데겔 그리고 넷째는 유브라데입니다. 비손은 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기혼은 은혜 그리고 힛데겔은 결실 마지막 유브라데는 능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작된 2006년 한해 비손의 뛰는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기혼의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힛데겔의 결실이 풍성하기를 소원합니다. 유브라데의 능력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유브라데강은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2850Km나 되는 긴 강입니다. 에덴동산이 발원지이지인 유브라데는 능력이라는 의미입니다. 에덴안에는 능력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이길 원하고 있습니다. 능력은 힘입니다.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무엇이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강해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단해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보여지길 원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그 방법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금력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힘이라 합니다. 다음이 권력입니다. 사람들은 권력이 힘이라 합니다. 체력입니다. 사람들은 건강이 힘이라 합니다. 지력입니다. 사람들은 아는 것이 힘이다합니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 타고난 건강에 최고의 학벌에 그 위에 부자의 옷을 입고 권력으로 악세사리를 한 사람말입니다. 적어도 남이 보기에는 부러워할만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현대아산의 정몽헌 회장이나 백억대의 재산가였던 파주시장이나 저들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이 꿈꾸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자살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데 우리생각에는 부자만 되면 아무걱정 없을 것 같은데 사실 돈이 힘이긴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주인이 되겠다고 다툴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아니라 할까요? 돈이 온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권력도 이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출세하기를 원합니다. 출세만 하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말 아세요?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왜 높아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최고의 권력의 자리라면 대통령의 자리가 아닐까요? 출세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노무현 대통령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는 것이 힘이요 지식이 힘이다 하지만 최고의 권력을 가지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닌 것 같습니다. 서울대 교수 황우석 박사를 보더라도 항상 무언가 배고픈 사람인 것처럼 자신을 과대포장하며 살아야만 하는 것을 말입니다. 건강이 있으면 될 것 같지만 아닙니다. 지금 말씀드린 세상의 힘이라 하는 것들은 진정한 힘도 능력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힘은 무엇입니까?

사자 굴에 너를 넣어버리겠다는 사람과 들어가겠다는 사람 누가 힘있어 보입니까? 풀무에 너를 넣어버리겠다는 사람과 들어가겠다는 사람 누가 힘 있어 보입니까? 늘 우물을 빼앗는 사람과 빼앗기면서도 또 우물을 파는 사람 누가 더 힘 있어 보입니까? 돌을 던져 죽이는 사람들과 용서하면 미련없이 죽어버리는 스데반 누가 더 힘이 있어 보입니까? 높은 자리에서 호령하는 아그립바와 나의 묶인 것 빼고는 나 닮기를 원한다는 바울 누가 더 힘이 있어 보입니까? 저들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저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사45:24절에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다 합니다. 사49: 5절에서는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다 합니다. 사12:2절에는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하였습니다. 렘16:19절에서는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란 날의 피난처시오 노래합니다. 시28:7절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며 도움을 얻었도다 합니다. 창18:7절에서는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반문합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힘입니다. 영원한 힘입니다. 시간 공간을 초월한 힘입니다. 시52:7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유유히 흐르고 있는 유브라데강은 능력 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안에만 진정한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떠난 힘은 힘도 아닙니다. 능력도 아닙니다. 인간의 힘은 인간의 능력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공급받는 사람입입니다. 진정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 쓰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언제인가부터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삽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언제인가부터 내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법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언제인가부터 내 이름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합니다. 나와 세상은 간곳없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기를 원합니다. 합니다. 이런 삶의 원리속에 비록 양을 치는 다윗이지만 사자나 곰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삶의 원리속에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이런 삶의 원리속에 감옥에 있어도 찬송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삶의 원리속에 나는 가난하여도 부요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원리속에 나는 약하지만 그 약한 것 마져 강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6년 한해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마음껏 삶의 현장에서 공급받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마음껏 빌려 쓰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과 힘으로 내 앞에 있는 여리고도 정복해 버리고 두려움을 주는 골리앗도 박살내 버리고 어두움을 몰아내고 응답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2006년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길 축복합니다. 능력의 상징은 에덴 안에서 시작된 유브라데는 오늘도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유브라데의 능력의 강줄기를 내 삶의 현장으로 끌어올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진정한 힘입니다. 합 2:4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했습니다. 이렇게 외쳤던 하박국 선지자가 불렀던 노래가 있으니 하박국 3장 17절에서 18절까지의 고백입니다.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열매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에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난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리로다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어떤 믿음이 있을까요? 믿음에는 구원의 믿음과 은사 적 믿음이 있습니다. 구원의 믿음은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하지만 은사 적 믿음은 작다 크다로 구분합니다. 구원의 믿음은 있으면 구원이고 없으면 지옥이지만 은사 적 믿음은 딸아 네 믿음이 크도다 할 때 적용됩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은 은사적 믿음입니다. 믿음이 크다 할 때에는 은사적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믿음은 있으나 은사적 믿음이 없으면 힘든 것입니다. 이 은사적 믿음이 병든자를 치료하고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우물을 파도 백배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기도로 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는가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입니다. 기도야말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진정한 능력입니다. 막9:29절에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겔36:37절에서는 많은 회복의 약속과 함께 도장을 찍듯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말씀하셨습니다. 회복의 약속이 기도와 함께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단순한 요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교제입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 하였습니다. 기도는 힘입니다. 그리고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이 기도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제자들과 기도동산 겟세마네에 함께 오르신 주님은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고 졸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훈련입니다. 특별히 기도에 남다른 은혜를 받은 분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더 많은 기도의 사랑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주님도 기도하셨습니다. 지금도 보좌우편에서 기도하십니다. 기도가 살아야 한국교회가 살고 안산빛나교회가 삽니다. 성도가 성도다워집니다. 기도로 유브라데의 능력의 강줄기를 삶의 현장속으로 끌어 올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입니다.

세상의 논리속에 세상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눅1:37절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니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까?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주어진 약속과 명령 앞에 한마디입니다. 창12:4절에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입니다. 갈 바를 몰랐던 아브라함에게 여호와의 말씀은 길이었고 원칙이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는 시몬에게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고기 잡는 축복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한 해 동안 많은 말씀들이 들려지게 될 것입니다. 바랍기는 이 말씀이 내 삶에 중요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능력의 유브라데 강줄기는 어떤 사람을 향하여 흘러갑니까?

하나님안에서 자기확신이 있는 사람 즉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앞에 특별한 창조물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여러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에는 인간만은 구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라해서 다 같은 창조는 아닙니다. 창1:1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서 창조는 [바라]창조입니다. 무에서 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창1:21절에서는 모든 동식물을 창조했습니다. 여기서 창조는 [아좌]입니다. 즉 개조한 창조를 의미합니다. 창1:27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할때 여기서 창조는 [야탈]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만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인간만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만을 닮은 존재로 영적존재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창조를 [야탈]창조라 합니다. 이 [야탈]창조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바로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모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지어 줄 정도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막9:23절에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하셨습니다. 처음사람은 그 모든 능력과 지혜를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고 그 사람은 모든 것을 상실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심으로 모든 것을 회복하셨습니다. 우리는 능력을 겸비한 존재였습니다. 나를 인정하고 믿으십시오. 하나님안에서 자기확신은 또 다른 신앙의 영성입니다. 나를 격려하십시오. 그리고 친해지십시오. 그런데 또 하나의 숨어 있는 나가 있어 나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또한 [야탈]의 특징 중에 하나는 엄청난 가치성을 뜻합니다. 인간의 가치는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가치는 말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아십니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산 사람입니다. 요5:12절에는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하였습니다. 또한 [야탈]은 유일한 독특성입니다. 나는 하나입니다.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이 땅에 나라는 존재는 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처럼 살라 하시지도 않습니다. 바로 너처럼 살으라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흥회에 한 부흥사가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브라함처럼 되게 해 주세요 했더니 하나님이 그럼 너 이삭을 바칠 수 있느냐 했더니 못 바칩니다. 했답니다. 또 기도하기를 모세처럼 되게 해 주세요 했더니 그럼 너 40년동안 광야에서 살래 했더니 못한다 했답니다. 그럼 하나님 바울처럼 되게 해 주세요 했더니 너 그럼 돌에 맞고 매 맞을 수 있느냐 했더니 아니 그건 못합니다. 했답니다. 그럼 누구처럼 살아야 합니까 물었더니 하나님이 대답하시기를 너는 너처럼 살아라 했답니다. 요즘은 너무 이상해서 자신의 가치를 무언가 꾸며야 가치가 있는 줄로 압니다. 그래서 S자 몸매를 만들려 노력을 합니다. 굶어가면서 장이 꼬여 가면서까지 요가를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히려 하지만 아닙니다. 인간은 원래 그 모습 자체로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야탈]은 또한 일회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서 지우개를 주시지 않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생이라 합니다. 일생은 이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은 하늘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오지 않습니다. 기회는 단 한번뿐입니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유브라데의 능력이 능력되는 비결에는 ‘성령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은 믿음이 믿음 되게 합니다. 기도가 기도되게 합니다. 말씀이 말씀되게 합니다. 자기 자신을 믿게 합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아는 것으로 끝나 버립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모양만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해버립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에덴에 운행하시던 하나님의 신이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하십시오. 이것은 명령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령 충만해야 비로소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입니다. 이 능력의 유브라데 강이 성령 충만을 통해 우리 삶에 흘러넘칠 것입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입니다. 작은 것이 큰 것입니다. 이때부터 골리앗을 향해 달려 갈 것입니다. 사자굴앞에서도 당당하게 감당할 것입니다. 억울해도 억울하지 않습니다. 아파도 아파하지 않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에덴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능력의 유브라데 강줄기가 여러분의 심령과 삶의 현장에 충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 아멘 -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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