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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민하는 이방인의 위로 (단 2: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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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미래의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이다.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불안에서 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신이 행한 일의 결과를 확신하지 못하여 오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안다고 하여도 그 불안과 두려움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분명한 결과가 나타날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의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있기 때문에 오는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경험적으로,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공통적인 미래를 예측하며,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각종 준비과정에 힘을 쏟기도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확인하기 위하여 각종 점성술이나 미신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실질적으로 정상적인 사람들의 대다수의 삶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의 삶입니다. 오늘의 삶의 준비를 통하여 자신에게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미래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신 하나님의 백성들은 미래의 불안 속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모든 것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습이 느브갓네살이 꿈에서 보았던 거대한 신상처럼 두려워 떨 정도가 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모든 신상들이 하나님의 뜨인 돌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 사라질 존재임을 알고 확신하기 때문에 평강 가운데 담대하게 미래를 맞이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미래에 대한 확신 속에 평강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두려워하는 이방인들의 두 그룹이 함께하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세상의 이방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두려워 떨며 각종 준비 행위로 분주합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고민하는 이방인들입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가족 중에도 그러한 이방인이 있습니다. 함께하는 직장이나 학교 동료 가운데도 그 이방인들이 있습니다.

매년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각종 점성술에 의지하는 가족과 이웃들이 있습니다. 설 명절이나 추석 명절 때마다, 각종 제사나 종교적 행사 때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나타나는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각종 의식과 행위들로 분주한 모습이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으로 보기 전에 불쌍한 이웃들로 보아야 합니다. 그들을 우상을 숭배하는 나쁜 집단으로 보기 전에 불쌍한 이웃들로 보며, 그들의 고난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자신이 포로의 신분이었지만 오히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느브갓네살 왕을 불쌍히 여기며, 그를 위로하였습니다. 세상의 권위 관계는 환경적인 권위 관계일 뿐입니다. 영적인 권위는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이 거대한 왕국의 왕일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의 위로가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의 폭군 같은 정치적 조치들을 바라보며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리는 자의 특권으로 왕의 위로자의 위치에서 왕을 불쌍히 여기며 왕의 고민을 해결해 나갑니다. 그의 두려워 떠는 괴로움을 이방인이며 정복자라는 이유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자신을 포로로 잡아 온 악한 자라고 생각하며 그의 두려움과 괴로움을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모습과 행동 속에 나타나는 영혼의 절망과 절규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의 고난을 해결해 주는 위로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다니엘과 같은 위치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두려움에 떠는 세상의 모든 권력자, 모든 권위자들의 고통과 고민을 해결해 주는 참된 위로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위로가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그들을 평강 가운데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은혜가 넘치는 환경으로 바꾸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일을 위해서 흑암에 앉아 신음하는 가족과 이웃 등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진 존재들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은 두려움으로 고민하는 이방인의 위로자가 된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 앞에서 제일 먼저 자신이 그의 참된 위로자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다니엘은 단 2:36에서 “그 꿈이 이러한 즉”이라고 하며 왕의 불안과 두려움의 실체가 되는 존재인 왕의 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세상의 왕인 느브갓네살은 자신의 꿈을 기억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다니엘은 왕이 꾼 꿈을 정확히 알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두려움으로 인한 고민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왕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단 2:31-35에 보면, 왕이 꾼 꿈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꿈은 “큰 신상을 본 것”입니다. 둘째 꿈은 “그 신상이 뜨인 돌에 부숴지는 것”입니다. 왕은 다니엘을 통하여 자신에게 나타날 미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사실 확인은 왕에게 더욱 큰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왕은 자신이 꾼 꿈의 내용을 몰랐을 때보다 다니엘을 통하여 알았을 때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꿈의 내용을 몰라서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두려워할 때보다 미래의 꿈을 알았을 때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꿈의 내용이 나쁜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에게 더욱 큰 두려움을 주는 좋지 않은 꿈의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꿈의 내용은 누구라도 나쁜 꿈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그 꿈의 내용을 가감 없이 정확하게 왕에게 표현하였습니다. 두려움 속에 고난 받는 자의 고민의 실체를 정확히 알도록 알려주었습니다. 왕이 더 심각한 폭군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는 꿈의 내용이었지만, 왕의 참된 위로자로서 정확한 실체를 알려주며 자신의 영적 권위를 나타내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영적 권위자로서의 증거를 보인 후 단 2:36에서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라고 하며 왕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왕의 불안과 두려움의 근원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한 위로의 선포입니다. 여기서 한글로 “내가”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 방언으로서 “우리가”라는 복수의 표현입니다. 아람어 “니이마르”는 “우리가(니이) 말하겠다.(아마르)”라는 단어로서 다니엘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니엘서는 다른 성경과는 달리 두 나라의 언어로 혼합 기록된 성경입니다. 단 1:1-2:4상, 8-12장은 이스라엘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주로 이방 나라와 이스라엘에 대한 영향에 관한 것이 기록되었습니다. 반면에 단 2:4하-7:28은 이방인의 언어인 아람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주로 이방 나라에 대한 하나님 계획이 기록되었습니다. 단 2:36은 아람어 부분으로서 “우리가”라는 표현의 한 쪽은 다니엘이며, 다른 쪽은 하나님으로 구성된 두 존재로서의 “우리”를 뜻합니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에게 위로의 말을 선포하되 자신의 말을 선포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함께하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알게 하신 것을 전달합니다. 다니엘은 왕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과 함께하는 “어떤 한 분”을 소개합니다. 그분은 이미 다니엘이 단 2:28에서 왕에게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라고 소개하였던 그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꿈을 통하여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신 그 하나님과 함께 왕에게 해석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나가는 것은 다니엘처럼 하나님과 함께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후원하시는 능력을 들고 나가므로 누구 앞이든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늘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의식하며 나아갑니다. 불안한 미래로 인한 두려움 속에 갇혀 지내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의 두려움의 실체를 알려주기 위하여 나아갑니다. 그들을 두려움 속에 잠기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며 그들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소개하기 위해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러한 영적 권위와 특권을 주셨습니다. 두려움에 떠는 세상 영혼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위로자의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 하나님과 함께 세상의 권위자들께 나아갑니다. 세상의 모든 영혼들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세상 권위자들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들은 참된 위로자를 기다립니다. 그들은 우리의 위로를 통해 참된 위로자를 만납니다. 그들은 우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다니엘은 두려움으로 고민하는 느브갓네살 왕의 위로자로 담대하게 위로의 말을 선포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왕의 모든 미래가 인간의 준비나, 인간의 권력과 능력에도 매이지 않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권한 속에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는 꿈의 설명을 통해 왕이 고민하는 꿈의 정체를 알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거로 내어밀며 자신의 영적 권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해석하며 이루어 가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며 그의 두려움에 위로를 선포합니다.

3. 하나님의 은혜의 위로는 하나님의 징계를 피하게 하는 사역이다.

다니엘의 위로의 선포는 왕으로 하여금 두려움에 떠는 인생의 구원의 길을 만나게 합니다. 두려움의 실체를 통한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있는 길을 만나게 합니다. 고민하는 왕을 향한 다니엘의 위로의 선포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단 2:37에서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라고 위로를 선포합니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이 세상에서 땅의 모든 열 왕 중의 왕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확인해 주었습니다. 주변의 왕 들 중에서 바벨론 왕에게 대적할 왕이 없음을 확인시켜줍니다.

왕의 불안과 두려움은 자신의 현재 위치와 영역이 무너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꿈의 실체가 자신의 왕권을 향한 불길한 징조였기 때문에 불안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주시고, 그 꿈을 해석해 주시는 분과 함께하는 다니엘의 입을 통하여 자신의 왕권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입을 통하여 그의 왕권이 열왕 중의 왕의 위치라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말은 왕이 받은 첫 번째 위로의 선포였습니다. 다니엘은 세상 왕의 현재 위치를 무시하지 않고 인정하며 위로한 것입니다.

둘째로 단 2:37 하반절에서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라고 위로를 선포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세우신 귀한 존재라고 위로합니다. 왕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려줍니다. 다니엘은 여기에서도 왕을 위로하면서 또 다시 왕 위에 계신 “하늘의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비록 이방인의 왕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왕권임을 나타냅니다.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알게 하는 위로의 선포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의 실체는 자신의 미래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왕의 현재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임을 알게 합니다. 자신의 현재의 상황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고, 자신의 현실적인 존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부터 미래의 모든 것도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고 믿으며,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셋째로 단 2:38에서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라고 위로를 선포합니다. 현재 느부갓네살 왕이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지닌 “금 머리”와 같은 존재라고 위로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속에서 모든 사람과 모든 만물을 왕의 권세 아래 두셨습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알려주신다고 위로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그 권세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다니엘의 위로는 왕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위로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열왕 중의 왕의 위치에 있음을 확인해 주는 위로였습니다. 왕의 왕권이 왕으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게 했던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주신 왕권임을 확인해 주는 위로였습니다. 왕의 왕권의 통치가 금 머리의 위치처럼 모든 사람과 모든 만물에게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위로였습니다. 왕이 그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따라가기만 하면 그 세 가지의 위로의 선포가 보존될 수 있는 선포였기에 참된 위로였습니다.

고민하는 이방인을 향한 다니엘의 위로에는 네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다니엘은 욥의 세 친구와 달리 왕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안심시키며 접근하였습니다. 욥의 세 친구는 위로한다고 찾아 갔지만 죄악을 따지기만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과 함께 그의 위로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둘째, 다니엘은 왕에게는 위로의 선포였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위로는 이방인의 현실을 받아주는 위로였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주권을 제시합니다.

셋째, 다니엘은 위로 받는 자가 위로의 메시지에 담긴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기만 하면 주님을 만나게 되고, 참된 위로를 경험하게 되며, 문제의 해결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하였습니다. 즉 이방인을 향한 성도들의 위로는 고민하는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만나게 하는 통로입니다. 넷째, 다니엘은 그 위로 속에서 왕이 단순히 위로만 받고 끝난다면 그 후에 징계의 역사가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하였습니다. 왕은 모든 현실과 미래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우리에게 오는 하나님의 위로 중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고민 속에 두려워하며 괴로워하는 세상 가운데 그 위로를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 위로 안에 하나님의 주권을 담아 위로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주권자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 영혼들이 우리의 위로를 기다립니다. (김종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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