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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명절에 할 일 (호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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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9:5) 너희가 명절일과 여호와의 절일에 무엇을 하겠느냐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이방에 끌려가  앗수르에서 성전이 없고 희생을 드리거나 절기를 지키지 못하므로 받는 고통을 생생하게 알려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명절을 지킬 수 있으니 감사하여야겠습니다.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고들 합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 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들 합니다. 설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라 합니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합니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 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라 합니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립니다.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민족 최대 명절임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명절에 할일을 무엇이겠습니까

  명절에 우상 숭배하는 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조상에게 절하는 것이 왜 죄가 됩니까? 나를 낳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에게 존경을 표하는 마음에서 절하는 것이지 무슨 신에게 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이 우상 숭배일 수가 없지 않습니까?”  “돌아가신 분에게 절하는 것은 존경의 표시이지, 무슨 신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성경에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고 했지, 죽은 분에게 제사하는 것을 금했다는 말이 어디 있는가?” 합니다.

그럴 듯싶은 말입니다. 그러나 제사는 분명히 우상 숭배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제사를 드림은 귀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제사법에 의하면 죽은 사람을 위해서 신주(神主)로 모시거나 지방을 써 붙일 때 생전 벼슬을 못한 분에게 ‘현고학생부군 신위(神位)’라고 쓰고 여자인 경우에는 ‘현고학생 씨 신위’라고 쓴 후에 절을 합니다.  ‘신위(神位)’란 말이 귀신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사에 보면 신이 내리게 하는 강신과 내린 신에게 절하는 참신의 순서가 있습니다. 즉 분향재배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온다고 믿고 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이유가 자기 조상이 돌아가신 뒤에 그 영혼이 여기저기 떠다니다가 제삿날이나 무슨 명절날에 와서 음식을 먹는다는 사상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세상에 있는 식구나 친척들과 가까운 곳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죽으면 가야 할 곳으로 가고 맙니다. 예수님을 잘 믿던 영혼들은 천국으로 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던 영혼들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조상의 영혼을 위하거든 제삿날이나 명절날 하나님께 추모 예배드리면서 인간의 온 영혼을 주관하시고 천국과 지옥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 중에 가장 큰 것은 무슨 살인이나 간음보다도 우상숭배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우상숭배는 어찌든지 거부해야 합니다.

조선 후기 천주교가 제사문제로 한참 박해를 받을 때 이호영이라는 천주교인이 문초를 받게 되었습니다. “너는 부모께 제사를 왜 지내지 않는가? 누가 보든지 조상에게 제사를 안 지내는 자들은 개나 돼지만도 못한 것이니 이런 자들은 죽어 마땅하지 않은가?” 재판 관원이 호되게 꾸짖자 이호영은 대답하기를 “그 제사라는 것은 헛되고 무익한 것입니다. 잠드신 부모님께 음식을 차려다 드리고 잠이 드신 채 그것을 잡수시리라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음식을 잡수실 줄로 아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영혼은 저 갈 데로 가고 육체는 무력한 송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영혼은 신령체이므로 물질적 음식을 먹고살지 못합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관원은 “이놈아,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헛되다고. 그렇다면 천주(天 主)의 그림 앞에 무릎을 꿇는 것도 헛되고 무익한 일이 아니냐?”라고 호통을 치자, 다시 대답하기를 “천주는 전능하시고 무한히 선하시며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천주교에서는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립니다. 죽은 이를 위한 특별 기도문이 있습니다.”고 대답할 때 더 할 말이 없어진 재판 관원은 그를 몹시 매질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3년 후인 1838년 11월 25일 36세 나이로 순교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순교 당하면서까지 제사를 반대하던 천주교가 최근에 와서는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복이 아니라 화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사를 잘 지내고 조상을 잘 섬기려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복을 받으려는 계산도 깔려 있습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지 물질이나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고목나무의  속이 빈 것도 복 달라고 비는데 줄 복ㅇ디 없어서 속이 타서 빈다고 합니다.

좋은 묏자리를 쓰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입니다. 그러다가 집안이 잘 안되면 묏자리를 잘못 쓴 탓인 줄 생각하고 이장(移葬)하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합니다.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자기들이 복을 받고 대대손손 복을 받으려는 노릇이 역으로 벌을 받고 화를 자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출 20:4-6)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질투한다’(엘 카나)는 자기 백성들이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진노의 신이란 뜻입니다.

자기의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을 결코 사탄에게 내어 주지 않는 의미에서 질투란 용어를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희생시키실 정도까지 열렬히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거절하고 다른 신에게 마음을 줄 때는 맹렬히 진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사랑이 있다고 하면서 질투의 감정이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없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에게 마음을 두고 숭배하는 자를 자기를 미워하는 자로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에게 진노하시어 징벌하시되 그런 자들 뿐 아니라 그 후손 3대, 4대까지 벌을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3-4대 벌을 내리면 멸족이 되고 맙니다.

욥이 시험을 당할 때 욥 혼자 남습니다. 그대로 죽었다면 대가 끊히고 말았을 것이나 회복 시켜 자손을 주시므로 대개 이어졌습니다. 

복을 많이 받기 위해 우상을 많이 섬기는 가정, 제사를 많이 지내는 가정의 자손은, 복을 받기는커녕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복은 천대까지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사실이 역사 속에서 증명됩니다. 우상을 많이 섬기던 인도나 중국, 이집트나 동남아시아들을 수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지만 얼마나 못사는 나라가 되었습다. 그러나 과거에는 야만족이요, 해적의 조상들이었으나 일찍이 하나님을 받아들인 유럽이나 영국, 미국 등은 복 받은 후손들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약속대로 되어진 것입니다.

한 인류학자가 미국의 네델란드계 주정뱅이 가문으로 유명한 마구쓰 가족의 78대(代) 1,250명의 후손을 조사해 보았더니 살인자 7명, 상습적인 도둑 60명, 전과자 130명, 허약자 300명, 불구자 400명, 성병 경험자 440명, 행려병자 310명 등이었다고 합니다.

더 한심한 것은 정당한 직업 종사자가 20명뿐이 더 없더랍니다. 이와 반대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신앙적으로 온전히 살았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후손 78대 1,400명을 조사해 보았더니 총장 13명, 교수 100명, 학교 설립자 14명, 의사 60명, 목회자 100명, 군인 75명, 문학자 60명, 판검사 및 변호사 180명, 관리 80명, 그 밖에 부통령, 시장, 대사, 상하원의원 등이 있었고, 그들이 남긴 저서가 135종, 잡지가 18종이었다고 합니다.

후손들이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이번 명절에는 우상 숭배를 하지아니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기를 기뻐하는 자들이 되므로 다 복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인간은 죽으면 구원받은 성도는 기쁨과 위로의 처소인 천국 낙원으로 가고, 믿지 않던 영혼들은 고통의 처소인 지옥으로 내려가 고통을 받으면서 대심판 날까지 기다리는 줄 알고 공연히 무익한 우상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된 효는 예수 믿는 일인 줄 알고 전도해야 합니다.

성결교단지인「활천」지 1923년도 7월호에는 이런 예화가 기재 되어 있습니다. 1923년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교회의 주일 학생인 김성숙 학생은 부흥회 때 많은 은혜를 받고 어머니가 믿는 우상을 밤에 몰래 가지고 나가서 다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매우 노여워하면서 자기 딸을 매우 때렸습니다. 그러나 김성숙은 아주 공손한 말로 “어머니, 사랑하는 딸을 때리시기에 얼마나 애처러우십니까? 그 우상을 없앤 것은 어머니를 불순종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헛된 우상을 섬기시면 지옥에 가실 줄 제가 확실히 알기 때문에 그랬습니다.”라면서 눈물로 호소할 때에 부모는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사로와 부자의 경우에서 예수 믿는 것이 참 효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던 분들은 세상 떠날 때 흰 옷을 입은 천사 같은 이들이 호위하여 가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효도는 어찌든지 부모님이 살아생전에 예수님을 믿도록 도와 드려서 천국 가시도록 해야 합니다.

  민족 문화나 전통을 기독교 문화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좋은 전통을 취해서 성경문화로 만들면, 불신자에게 접근하여 전도하기가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은 비판하셨지만, 바리새인들의 좋은 것은 장려하셨습니다 (마23:23).

그동안 고유의 민족정신과 전통에 무관심했었습니다. 무조건 전통문화와 정신은 비기독교적이라고 치부하며 버려두었습니다.

한국 문화는 한국인의 삶 그 자체입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해서  민족문화 중에 성경의 문화와 같은 맥락이 있으면 찾아서 살려 문화와 정신을 성경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막 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경천애인의 정신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신 가르침으로 높여 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민족에게 없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정신이 있습니다. 이 정신은 아주 귀한 것입니다. 경천애인의 정신은 성경의 핵심신앙인 하나님사랑 사람사랑과 일맥상통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9).

  효의 정신을 십계명의 효의 정신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효(孝)도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이자, 성경적 정신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꼭 행해야 할 삶의 지표인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 중 대인계명에 관한 첫 번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출 20:12).

우리에게 이러한 성경의 핵심사상과 통하는 효정신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한국에서 장차 인류문명에 크게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효사상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가장 한국적이자, 가장 성경적인 효가 가장 세계적인 것입니다. 효의 원조인 성경을 아는 우리 모두 더욱 효를 행하고, 가르치고, 장려합시다.

민족명절인 설은 그 어느 때보다 효를 행하기 좋은 기회입니다. 가족들에게 효를 행할 때, 가정복음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가족 중심의 전통을 성경적 가족교회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민족전통 중에서 꼭 지켜야 할 것은 ‘가족’입니다.  가족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공동체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처음 기적을 베푸신 곳도 가족이 새 출발하는 혼인 잔칫집이었습니다(요 2:1-11).

성경은 가족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우리 민족은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민족입니다. 명절에 가족을 보기 위해서라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고향을 찾아 갑니다. 가족을 위한 것이라면, 아무 것도 아까워하지 않고 희생합니다. 문제는 예수 없는 가족이냐, 예수 있는 가족이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 없는 가족은 가족 이기주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 있는 가족은 내 가족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가족도 사랑합니다. 십자가의 은혜 아래 있으면, 이웃 가족도 사랑합니다(롬 9:3).

설은 가족과 친척이 서로 사랑하고, 결속을 다지는 좋은 기회입니다. 의도적이라도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많이 만들어서 가족의 결속을 다져야 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과도 함께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줍시다. 함께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조상들의 이야기를 해줍시다. 가족은 우리 민족 오천년 역사를 이어온 최고의 에너지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건강한 가족 공동체가 뿌리내릴 때, 이 사회는 행복해집니다.

  잔치 중심의 전통을 천국 잔치의 장으로 나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잔치가 있는 민족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명절이 되면, 잔치를 벌였습니다. 우리 가족만 즐긴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도 명절 때 이웃과 함께 잔치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신 16:11).

그러므로 명절에 잔치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이웃과 함께 기뻐하는 설 명절이 되어야 합니다.

명절 때 가장 많이 소외감을 느끼는 분들은 노인 분들입니다. 그분들을 찾아가서 세배도 드리고, 자녀의 역할도 해드리며 사랑과 공경의 잔치를 열어드려야 합니다(레 19:32). 우리가 잔치를 열고 함께 기뻐할 때, 하나님이 더 크게 복주십니다.

명절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평화와 복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다면 명절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복 받은 민족입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민족명절과 문화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것을 버리지 말고, 성경적으로 발전시켜 나갑시다. 우리가 우리의 민족명절을 소중히 여기고 성경적으로 지켜나갈 때, 우리는 유대 민족보다 더 뛰어난 민족이 됩니다. 민족정신을 성경적으로 바꿀 때, 우리는 세계를 주도하게 됩니다. 

  록펠러(Rock/e Feller, 1839-1937)는 세계 제일의 거부로서 손꼽혔던 사람이며, 미국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부와 명성을 타고났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그는 지독히도 가난하여서 하루 4센트의 보수를 받으며 뜨거운 감자밭에서 일을 했습니다.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었으며, 역사상 가장 많이 남에게 자선을 베푼 사람이 되었고, 98세까지 무병으로 장수한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은 바로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그가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며 의지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주일이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교회에 나가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댄스파티 같은 곳은 아예 출입을 삼갔고, 식사 때마다 기도를 빠뜨린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하루도 쉬지 않고 성경을 읽으며 말씀을 묵상했고, 정결하고 바르게 살아 주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성도로서의 구별되고 정결한 삶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인터넷정보클럽- 록펠러가 복을 받은 까닭)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전도하며 효도하고 기독교 문화를 만드는 명절이 되길 비랍니다.
(강성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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