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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시대에 주신 비전 (신 32:48~52, 행 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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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로부터 미국이 알래스카를 단돈 720만 달러에 샀습니다. 처음 알래스카를 사려고 할 때에 의회원의 대부분이 반대하였습니다. 그 때 재무장관 이었던 윌리엄 시워드는 의원들을 설득하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나는 눈 덮인 알래스카를 보고 그 땅을 사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감추어 있는 무한한 보고를 보고 사자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자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비전을 보는 사람입니다. 눈 덮인 땅에서 무진장의 보화를 봅니다. 비전은 엄청난 가치를 동반합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입니다. 그는 형제들의 볏단이 자기 단에 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또 그는 달과 해와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을 꾸고 꿈을 말하기 때문에 고생하였습니다. 그 꿈 때문에 팔려가고, 종살이하고, 옥살이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꿈 때문에 다시 영광을 누리고, 총리가 되고, 가족과 백성을 구합니다.

  꿈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대가 없는 꿈은 허망한 꿈입니다. 백일몽이며 개꿈입니다. 이사야 29장 8절에는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 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 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라고 합니다. 꿈은 그냥 꿈입니다. 그러나 꿈에 대가를 지불하면 현실이 됩니다.

  “비전은 성장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큰 강은 처음에 작은 개울에서 시작 된다”고 합니다. “참나무는 도토리 속에서 잠잔다”고 합니다. “새들은 알속에서 기다린다”고 합니다. “사람 영혼 속에는 천사가 깨어나려고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비전이 있고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잠언 29장18절에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은 방자히 행하거니와”라고 합니다. 꿈이 없으면 성이 망합니다. 꿈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합니다. 얼마 전에 어느 신문에 보니까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꿈을 키워왔던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전 미국 대통령 클린턴, 미국의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골프의 황제라고 하는 타이거 우즈,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등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꿈을 키워온 사람들입니다. 타이거 우즈는 2살 때 골프 치는 동영상까지 나와 있습니다. 그냥 어쩌다가 된 위인은 없습니다.

  전도서 5잘3절에는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들리느니라”고 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이 말을 많이 합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꿈은 절대로 말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새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비전의 의미를 이해하고 비전을 꼭 이루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비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신명기 32장49절에는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땅입니다. 그들이 꿈에 그리던 땅입니다. 이 비전의 땅은 하나님이 직접 하나님의 사람에게 보여주십니다. 은혜로 주시는 것이 비전입니다. 비전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창세기 1장28절에는 인간에게 주신 비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아무 것도 없는 삭막한 곳에 보내시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신 다음에 사람을 보내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창세기 13장14절에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창세기 12장2절에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하십니다. 창세기 46장3절에는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언약은 자세히 보면 비전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룰 꿈을 그리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전장에 갔다가 골리앗이란 불레셋의 거인 장수를 만납니다. 비전의 사람은 하나님께 의존합니다. 자기의 힘이나 장비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가 얘기한대로 골리앗을 보고 “크니까 얼마든지 빚나갈 리가 없겠다. 아무렇게나 던져도 맞출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갔습니까? 사무엘하 21장16-21절에는 그 해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던 사람은 골리앗 외에 네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아스비브놈과 삽과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와 손가락 발가락이 각각 6개씩 모두 24개를 가진 거인 이렇게 네 사람입니다. 다윗은 골리앗뿐만 아니라 이 네 사람까지 모두 자기의 손에 있음을 미리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을 조롱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모두 죽일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사재인(謀事在人)이나 성사재천(成事在天)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을 계획하고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잠언 16장33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비전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시지만 비전을 품고 이루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하나님은 비전을 가진 사람에게 이루어 주십니다.

  오래 전 히로시마에서 아이들이 불을 피워놓고 고구마를 구워먹고 있었습니다. 트럭이 후진을 하다가 아이 하나를 치웠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재빨리 피하여 화를 면하였지만 한 아이가 오른 손을 크게 다쳤습니다. 이 아이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습니다. 근육을 다쳐 오른 손을 잘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 방망이 쥐는 연습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야구선수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이 아이가 장차 자라서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장훈 선수입니다. 비전은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게 합니다.

  “비전을 명확히 세우고 계획의 불확실성에 직면하라. 다시 말해 계획은 연필로 쓰고, 비전은 잉크로 써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전은 확실해야 합니다. 분명하게 성취 가능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도 확실해야 합니다. 비전에 대한 확신과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은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주신 변화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활용하려고 합니다. 청계천이 복구되므로 더 잘 연구하여 선교의 장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다변화하는 세계에서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효율적으로 선교하려고 합니다. 문화의 세기를 맞아 문화와 복지를 사회에 정착시키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가나의 집이 훌륭한 도구가 되게 하려고 합니다. 연동청소년학교가 연동가나학교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사회를 섬기려고 합니다. 주 5일 근무에 따른 복지를 개발하여 사회에 기여하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 타운을 조성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한 해 동안 ‘1-10운동’을 성공적으로 전개하려고 합니다. 작은 꿈을 크게 이루어 교회가 영광을 돌리며 세상의 위로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시대적 사명을 잘 수행하여 많은 교회 중의 하나가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하나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 코가콜라의 회장은 “내 혈관에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그의 비전은 이제 세계 196개국 이상에서 하루에 7억 3000만병의 콜라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전에 대한 끓는 정열을 우리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란 책에는 지혜로운 자와 사귀면 지혜를 얻는 것처럼 성공한 사람과 함께 하면 오래지 않아 성공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의 비전은 전염성이 강해서 우리 마음속으로 금세 파고든다고 합니다. 우리의 비전이 개인의 비전이 아닌 우리 모두의 비전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비전이 우리의 것으로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비전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가지는 은혜입니다.

  사도행전 2장17절에는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합니다. 예언하며, 환상을 보며, 꿈을 가지는 일은 비전을 가지는 일입니다. 어떻게 비전을 가지는 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부으시는 사람에게 비전은 있게 됩니다.
  성령으로 비전을 듣습니다. 성령으로 비전을 봅니다. 성령으로 비전은 가슴에 다가옵니다. 성령으로 비전은 실현 됩니다. 성령 강림으로 세계 선교의 비전을 봅니다.

  이전에는 유대밖에 못 보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회복은 이스라엘 땅이었습니다. 세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이런 좁은 마음에 대하여 예수님은 넓은 세계선교의 비전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장8절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세계를 품습니다. 성령이 임해야 세계를 얻습니다. 성령이 임해야 세계를 변화시킵니다.

  북미 대초원 인디언들에게는 어린 나이에 치러야 하는 비전 찾기(vision-seeking)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무더운 오두막에서 혼자 긴 시간을 보내며 금식하며 기도하는 의식입니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삶의 의미와 인생의 목적 그리고 부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전이란 엄밀히 말하면 찾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입니다. 비전은 얻어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얻는 비전은 결국 개인의 욕망이며 야망으로 끝납니다. 비전의 삶은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 야망의 삶은 자신을 위한 삶입니다. 비전의 삶은 하나님께 목적이 있습니다. 야망의 삶은 내게 목적이 있습니다. 비전의 삶은 하나님의 능력을 얻습니다. 야망의 삶은 하나님의 능력을 잃습니다. 비전의 삶은 주님을 높이고 생명을 얻지만, 야망의 삶은 주님을 팔고 생명을 잃는 삶을 삽니다.

  영성(靈性)은 영성(零性)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 영성은 아무 욕망도 없는 빈 상태라는 뜻입니다. 제 야망을 비전이라고 우겨대는 고집스러움을 버리고, 주님이 이뤄가실 새 시대 새 세상을 꿈꾸는 것이 영성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주님께 의존하는 것이 비전입니다.

  헬렌 켈러에게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 때 헬렌 켈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전 없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왜 비전이 없이 살아갑니까? 성령을 받지 못했으니까 비전이 없이 살아갑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비전으로 충만합니다.

  알프스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13일간 방황하다 구출 당했습니다. 그는 매일 12시간씩 걸었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있는 곳에서 6킬로미터 안에서 왔다갔다한 것입니다. 사람이 눈을 가리면 바로 걷지 못합니다. 20미터를 걸으면 약 4미터 이내의 간격이 생기며 10미터를 가게 되면 결국 원을 그리면서 돈다고 합니다. 이 현상을 윤형 방황(輪形彷徨)이라고 합니다. 인생에도 윤형 방황이 있습니다. 이런 방황을 벗어나는 방법은 눈 가리고 걷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소신대로 과감하게 전진하며 새 출발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안 해 본 것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안 먹어본 것은 절대 안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 먹어보고, 이상한 것만 골라 먹어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윤형 방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전을 향해서 과감하게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이 개척 정신이며 비전을 품은 비전가 입니다.

결론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를 개장할 때 월트 디즈니는 이미 죽고 없었습니다. 행사장에서는 그의 부인이 그를 대신하여 연설하였습니다. 청중 앞에 그녀를 소개한 사람이 “디즈니 여사, 디즈니 씨가 이것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그 양반은 우리보다 먼저 보고 가셨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비전은 아직 없는 것까지도 이미 보게 합니다.

  어떤 이는 사람을 이렇게 구분하였습니다. 비전과 전혀 관계없이 끌려 다니는 사람(stranger)이 있습니다. 비전에 끌려 다니는 사람(follower)이 있습니다. 자신의 비전을 성취하는 사람(achiever)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전을 성취하고 다른 사람에게 비전을 심는 자(leader)가 있습니다. 리더십은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우리 모두는 크리스천 리더이며 비전을 가지고 있고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우리 교회에 주신 복음적 목적과 비전을 곧게 세우고, 사회와 민족을 위해 목적과 비전이 이끌어 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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