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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가 해답이다 (요일 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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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만능의 시대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만능이라고 합니다. 돈 있는 사람은 황금이 만능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과학만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만능이 되지 못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약간의 유익을 주고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결코 만능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만능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기도는 만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동서고금을 통하여 기도하는 자가 망한 예가 없습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기도하는 자를 이기지 못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그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굶주린 사자의 입을 봉하여 그를 살리셨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옥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그들을 묶고 있던 착고가 풀렸습니다. 여호수아가 기도할 때 태양을 중천에 붙들어 매어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10도 물러가게 했습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입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음식이라 한다면 기도는 호흡이고, 전도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음식과 운동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나 그러나 제일 필요한 것은 생명의 호흡입니다. .

우리의 삶이 무기력합니까? 신앙에 진보가 없습니까? 생영의 맥박수가 떨어져 있다는 징조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했습니다(요일 5:15). 부르짖어 구하고, 구한 것 받으시는 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Ⅰ. 자녀를 살린 끈질긴 기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도가 실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지방을 지나가실 때에 한 가나안 여인이 귀신들린 딸을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의 첫 번째 드린 기도에 주님은 잠잠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아뢰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릴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엎드려 절하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엎드려 절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최대의 겸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세우고 내 몫을 주장한 것은 없었습니까? “내가 그 동안 얼마나 교회에 충성했는데....” “내가 교사로, 성가대로, 몇 년을 수고했는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감사 생활을 하고, 십일조 생활을 했는데....” “주님! 저의 이 작은 소원을 들어 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기도하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주님께서 아무런 응답을 주시지 않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짐짓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부르짖음은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이 여인의 믿음의 극치는 “마는”에 있었습니다. 가장 큰 겸손이요, 가장 절실한 기도였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제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이 말은 그의 생애와 믿음과 소망을 이 한마디에 걸고 있는 겸손한 기도였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는 끈질기고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시로 그의 딸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에서 자녀를 구원한 능력은 겸손하고 끈질긴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Ⅱ.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소원의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10장에서 여리고 성의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디매오의 아들 소경 거지 바디매오”라고 했습니다. “디매오”는 소경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소경의 아들,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2대에 걸쳐서 소경이 된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바디매오의 눈을 뜨고 싶은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는 간절한 소원을 가진 자에게 임했습니다.

어느 날 이 소경에게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얼마나 오매불망 기다리던 소식인가? 얼마나 그 분을 만나기를 소원했는가? 그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용수철처럼 뛰어 일어났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다윗의 자손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라고 들었을 것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시는 예수라고 들었던 것입니다. 문둥병을 고치시는 예수라고 들었을 것입니다 소경이 눈을 떴다고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가?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만 만나면 내 눈도 뜰 수 있다는 소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소경의 간절한 소원은 예수님의 발걸음을 그에게로 돌리게 하였습니다. “예수만 만나면 눈을 뜬다”는 그의 믿음은 실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선생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믿음으로 구한 간절한 기도는 소경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Ⅲ. 나라를 구한 회개의 기도가 있습니다.

열왕기하 19장에서 히스기야 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열왕기하 19장 1절에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라고 했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은 것은 통회하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는 자신 뿐 아니라 모든 궁내 대신들도 베옷을 입고 재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대신을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어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히스기야의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자를 파송하여 하룻밤에 18만 5천명의 앗수르의 군대를 치심으로 이스라엘을 멸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할 때 에서의 마음이 녹아지고, 모세가 기도할 때 홍해의 물이 갈라지고, 여호수아가 기도할 때, 아간의 죄악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한나가 기도할 때 사무엘을 얻고, 엘리야가 기도할 때, 3년 6개월간 닫힌 하늘 문이 열리고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여닫는 능력입니다. 기도는 여러분이 가진 모든 문제의 해답입니다. (이윤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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