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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당(천국)이 있습니다 (마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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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은 미래지향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의 배를 하나님으로 삼고 부끄러움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땅의 일에만 집착하는데 반하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면서 내세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땅에 살지만 하늘나라의 시민권자로서 언제나 천당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사는 자들입니다(빌 3:18-2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일평생 나그네 세월을 보내며 유랑생활을 하였지만 오직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여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위하여 하늘나라에 한 성(城)을 예비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히 11:14-16).
출애굽 운동의 영도자 모세도 하늘나라 곧 천당을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을 자기 백성과 함께 광야 길의 고통을 나누었지만 오직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목표하며 그 길을 향해 매진하였습니다. 결국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어 장사 지낸바 되었으나 무덤도 남겨 놓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하늘나라의 영원한 도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하였습니다(신 33:29).

천당에 대한 소망은 성도로 하여금 세상살이에서의 고난과 역경을 이기게 하며 더 나아가서 가장 값지고 보람된 사역에 이바지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도에게 있어서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천당을 믿고 사는 우리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5:19).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 천당에 대한 확신이 있는 이상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5:58).

본문 말씀은 변화산의 현상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사람을 데리고 산위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한 순간이지만 천당의 실제를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성도에게 궁극적인 소망이 되는 천당의 신앙을 가다듬을 수 있기 바랍니다.

I. 천당의 약속

사람들은 천당을 말할 때 이는 죽은 다음의 세계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거나 막연하게 그러려니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같이 확실한 그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그의 지상생활을 통하여 하늘나라 천당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주셨고, 그 바탕 위에서 복음사역을 수행하였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눅 12:32). 성경에는 천당을 말할 때 “하나님의 나라”(막 10:14), “천국”(마 13:11), “아버지 집”(요 14:2), “아버지의 나라”(마 13:43), “하늘의 영원한 집”(고후 5:1) 등으로 표현하였습니다.

(1) 아버지 집

예수님께서는 천당을 “아버지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요한복음 14:1-3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내 아버지 집”이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비해 두신 하늘의 집 곧 천당을 뜻합니다. 히브리서 11:16에 보면 하늘나라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늘의 한 성을 예비해 두셨다고 말했습니다. 본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하여 준비하는 분입니다. 말라기 3:17에 보면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2) 낙원입니다.

계시록 21:1-2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 끝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완성된 천국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에덴동산을 낙원이라고 부릅니다(창 2:8-9). 거기에는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진선미의 원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 마귀가 개입하여 죄가 들어가면서부터 삽시간에 폐허로 바뀌었습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고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싸움터가 되며 마귀의 활동무대가 되고 말았습니다(창 3:17-24). 이후부터 범죄한 인간세상은 어디에도 낙원이 없어졌습니다. 죄로 오염된 세상이기에 온갖 재난과 질병과 전쟁과 죽음으로 얼룩져가다가 결국 예고된 종말을 맞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 바다도 다 없어졌고, 하나님께서 새로 마련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의 낙원이 천당인 것입니다.

(3) 하늘나라 영원한 처소입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그가 행하시는 사역의 초점을 하늘나라 운동에 두고 그 일을 위하여 진력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가장 먼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마 4:17). 제자들에게 산상보훈을 강론하신 것은 그들에게 천국시민의 소양을 교훈하신 것입니다(마 5:3-12). 복음서의 기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증거 하신 말씀을 “천국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마 9:35). 마태복음 13낭에 나오는 유명한 일곱 가지 비유는 하늘나라 곧 천국을 설명하신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천국은 세상 나라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이것은 영원하고 완전한 나라를 뜻합니다. 세상에는 완전한 나라가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역사가 오래되어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눈물 흘릴 일이나 아픈 것이나 죽음이 없는 곳입니다(계 21:4). 계시록 22:5에 보면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Ⅱ. 천당의 실제

하늘나라 천당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입니다. 죄로 인하여 오염되고 변질된 세상은 완전히 소멸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곳입니다.

(1) 변화된 모습입니다.

변화산의 현상은 모든 것이 다르게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본문 말씀 2절에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예수님의 본래 모습을 보이게 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6-7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죄인의 몸을 입고 세상에 계실 때와는 그 모습이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곧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되돌아가신 것입니다.

또한 산 위의 환경도 달랐습니다. 같은 시간 산 아래서는 벙어리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와 아홉 명의 제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마 17:14-20). 이것은 죄로 인한 불행으로 어두워진 세상의 모습입니다. 거기 비하여 산 위에는 빛난 광채와 깨끗하고 아름다운 낙원의 모습이 연출 되었습니다. 이것이 천당의 환경입니다. 계시록 21:2에는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살인자와 행악 자와 우상숭배자 등 나쁜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계 21:8). 거기 있는 열 두 문에는 보석으로 장식되었고, 길바닥은 황금으로 덮여 있으며 사시사철 늘 푸른 나무와 생명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계 21:9-22).

(2) 시공(時空)을 초월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3절에 보면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9:31에는 이 때 그들이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시대의 인물로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들의 사역도 예수님의 하시는 일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곧 모세는 출애굽의 영도자로서 시내산 계명이라고 하는 율법을 반포한 사람입니다. 한편 엘리야는 아합왕 시대에 우상종교와 맞서서 싸우며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과시한 일로 유명합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요,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을 통칭하는 이름입니다(눅 24:27).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파괴하는 자라고 생각하여 정죄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현장에서는 율법도 선지자도 모두 다 예수님을 돕는 자며 하나처럼 사랑하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천당에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없고 사상이나 이념의 벽도 없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입니다.

(3) 환상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변화산의 황홀한 광경을 보고 너무나 감격하여 소리쳤습니다. 4절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답답한 세상을 살면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하늘나라 천당의 실체를 접하고 보니 제 정신이 아닐 정도로 황홀경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영혼이 눈을 뜨고 신령한 귀가 열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소욕에 얽매여 있었던 옛 사람의 상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천당은 그곳의 상황만 좋은 것이 아니라 거기 들어가는 사람 자체가 신령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4에는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새롭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Ⅲ. 천당의 가족들

사도 바울은 똑같이 세상을 살면서도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빌 3:20). 바울 자신은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소지하고 있어서 비록 죄수의 신분이라도 구별된 대우를 받았습니다(행 23:27, 27:3). 하늘나라 천당의 시민권자는 세상에서도 구별된 하나님 나라의 사람입니다.

(1)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께서 천당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였으니 그 집의 가족된 자는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의 자녀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입니다. 로마서 8:15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비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다가 죽게 된 아들이 아버지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눅 15:11-32), 어떤 죄인이라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품안에서 천당의 복락을 같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입니다.

세상에서는 돈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고 좋은 환경을 독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 천당은 그런 것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의하면 부자는 세상에서 호화롭게 살며 연락을 즐기고 있었으나 죽은 다음 음부에서 고통을 겪었으며, 오히려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 낙원의 행복을 즐기고 있었습니다(눅 16:19-31).

성경에는 천당에 들어가는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리스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21:27에 보면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20:15에는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고 하였습니다.
겉으로 신자인체 하거나 입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많아도 막상 주님 앞에 서는 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천당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2-23에 보면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하고 자기를 내세웠으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하고 내어 쫓으신다고 하였습니다.

(3) 정절이 있는 자들입니다.

계시록 14:4에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경건하게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계시록 21:27에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아가서 4:12에는 그 낙원을 가리켜 “잠근 동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잡인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자가 아니면 그리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사야 35:8에도 거기는 거룩한 길이 있어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하늘나라의 백성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에 신앙과 행실이 깨끗하여야 됩니다. 시험 많은 세상에서 육체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정욕이 발동하고 유혹에 흔들리기 쉬워도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자기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혈과 육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15:50).  (손상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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