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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헌신과 순종 (요 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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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안다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서로 다를 때가 많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과연 믿음이란 안다는 것과 행동하는 것 가운데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믿음은 아는 것 즉 지식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곳도 있고 반대로 믿음을 행위 곧 삶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곳도 있습니다.

(요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고 했습니다. (요일 5:20)"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고 했습니다.

(마 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약 2:19-25)"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들을 때에 혼란이 찾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잘 믿기 위해서는 어떻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서 말씀에 대한 지식이 풍성한 사람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우선 열심히 교회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앙인의 현실에 대한 갈등이 있습니다.

분명히 믿음은 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신앙에 대상에 대해서 바른 지식이 없다면 그것은 신앙일 수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믿느냐 하는 것보다 내가 믿는 대상에 대해서 바른 지식이 더 중요한 믿음의 조건입니다. 가끔 믿음의 대상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어도 무조건 열심히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신앙생활을 바른 신앙생활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기를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하나님시고 너에게 천국 열쇠를 주리니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분명히 신앙이란 바른 지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에서 지식 만이 신앙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주를 고백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무언가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예수를 믿다가 중도에서 그리스도를 떠나는 사람들을 볼 때에 그들도 한 때는 기도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때로 입으로는 가장 바르게 신앙을 고백하는 것 같으나 그 인격은 신앙과 전혀 동떨어진 사람을 볼 때에 갈등이 찾아옵니다. 저 사람을 정말 신앙인으로 인정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의 신앙고백을 정말 인정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에는 자신이 배운데로 전혀 문제없이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며칠 전 2005년 3월 31일자 여러 신문에서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났습니다. 대도 조세형 좀 도둑으로 전락하다 라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조세형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 많이 놀랐을 것입니다. 1975년 서울 명륜동 고급 주택가에서 당시 금액으로 8천 3백 87만원 어치의 보석을 훔친 후에 잡혀서 법정 최고 형인 25년을 언도받고 빨리 출소를 했으나 다시 부자집을 털다가 잡혔는데 공소장에 기록된 훔친 물건의 액수가 5억 6천 1백 61만 9천원이었습니다. 그 후 15년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그는 가정을 가지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1998년 12월 4일 경기도 수동기도원에서 3일을 금식하고 1000여 명의 교인 앞에서 첫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간증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앞에 무너졌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수형 생활을 하면서 10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그 책들은 대부분 신학관련 책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서 새 사람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일반적인 종교적 지식이 있다고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지식만으로는 전부일 수 없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믿어도 인격이 변하기 전에는 지식만 가지고는 신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믿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주님이 보여 주시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큰 군중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빌립의 마음을 알아보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었고 실제로는 이미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 사람들에게 먹여야 할 것임을 알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정리해 보면 주님이 빌립에게 요구하신 대답은 방법으로써 지식을 물으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지식 곧 믿음을 물으신 것입니다. 방법으로써 지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고 믿음으로써 지식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빌립이 말한 대로 이백 데나리오의 떡을 가지면 조금 적기는 하지마는 그래도 허기는 면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방법으로써 지식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고 공감대를 쉽게 형설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방법으로써 지식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빌립과 같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 놓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믿음이 아닙니다.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방법이 믿음을 대신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께 대한 지식입니다. 성도는 항상 주님께 대한 지식이 방법으로써 지식보다 우선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이고 이것이 바로 순종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방법을 말하기보다는 믿음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열 두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열 정탐꾼이나 여호수아 갈렙이나 보편적인 지식은 같았습니다. 아낙 자손들이 장대하다는 정보도 같았고 산지가 험하다는 사실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온 가나안 땅이 비옥하다는 사실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열 정탐꾼은 방법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우면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진 지식은 자연스럽게 안 된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방법 앞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들이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헌신과 순종은 우리의 지식 앞에 하나님이 계시는 상황을 말합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도 그들이 가진 지식 앞에 주님이 계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의 자리에 서기를 원한다면 방법을 앞세우는 태도를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보며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이 믿음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 분야에 방법으로써의 지식이 많기 때문입니다. 방법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은 그 지식이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방법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자신의 방법을 앞세우지 않고 주님께 대한 믿음을 붙잡았습니다.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잡았고 자신은 또한 고기를 잡는 일에 전문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방법으로써의 지식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믿음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이고 순종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방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충성하는 자들에게 피곤을 주는 사람은 방법으로써 지식에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지식이 고집이 되어 있습니다. 자기 세계 속에 갇혀 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힘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써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의 마음에 느끼게 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때 안드레가 예수님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헌신과 순종의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헌신이나 순종에 가장 큰 걸림돌은 상황에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헌신이나 순종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가장 훌륭한 헌신이고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두 렙돈의 돈으로도 가장 많이 드릴 수 있는 것이 헌신입니다.

우리는 다 갖춘 다음에 헌신하고 다 갖춘 다음에 순종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안드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 앞에는 물고기 두 마리로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로도 가장 놀라운 헌신을 할 수 있는 것이 주님이십니다. 나중에 내 형편이 나아진 후에 헌신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일 순종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자신이 아무리 무능하고 내 자신이 아무리 가진 것이 없다해도 예수님 앞에는 가장 위대한 헌신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의 일은 냉수 한 그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냉수 한 그릇으로 섬기는 일에도 주의 이름을 빌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헌신과 충성의 비밀입니다.

내가 가진 부족함 때문에 헌신의 핑계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작다고 해도 순종의 방해가 될 수 없습니다. 바로 작은 대로, 약한 대로 헌신하고 순종하면 됩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때문에 어린이도 헌신할 수 있고 약한 자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헌신하고 순종하는 자를 보면 타인보다 조건이 낫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남은 것을 거두게 했습니다. 주님은 인생의 헌신과 순종을 축복하심을 보여 주십니다. 헌신과 순종을 귀히 여기시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인생의 헌신과 순종을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손에 있으면 결코 남음이 없습니다. 주님 손에 드려지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남음이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 손에 붙잡히면 능히 감당할 수 있음과 같은 것입니다. (조병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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